[차용범 칼럼]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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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2.0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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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권력과 늘 갈등관계인가?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 그렇다. 민주사회 언론의 존재의의는 권력의 권리남용을 감시·비판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즘 한국 권력은 그 권력을 시나브로 남용,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파괴하고 있다. 한국 언론 역시 그 권력남용을 감시·비판하려 때론 권력과의 대립을 불사하고 있다. 권력과 언론의 대립, 그 끝은 어떨 것인가? 나는 굳게 믿는다, ‘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고-.

“조국, 김기현 경찰수사 상황 15차례 보고받아”-동아일보 인터넷판 3월 5일 새벽 3시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의 첫 단락은 보도기사의 정형을 일면 벗어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송철호 울산시장 등 ‘청와대 하명수사’ 관련 13명에 대한 공소장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만남 제의에 송철호 시장이 핵심측근에게 “만나볼까”라고 묻자, 이 측근은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모아 놓은 김 전 시장 비위 자료를 줘보이소’라고 답변했다....“ ‘동아’가 이 사건 공소장을 입수, 1보를 전한 특종기사다.

세칭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사건’과 관련, 법무부가 정당한 근거없이 이 사건 공소장 공개를 거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다는 각계의 비판을 듣고 있다. 동아일보는 공소장 전문을 따로 입수, 권력과의 갈등에 정면 대응했다(사진; 동아일보 인터넷판 공소장 전문 공개 부분 갭쳐).
세칭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사건’과 관련, 법무부가 정당한 근거없이 이 사건 공소장 공개를 거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다는 각계의 비판을 듣고 있다. 동아일보는 공소장 전문을 따로 입수, 발표함으로써 권력과의 갈등에 정면 대응했다(사진; 동아일보 인터넷판 공소장 전문 공개 부분 갭쳐).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에서 ‘워터게이트 스캔들’ 연상...

이 기사의 파장은 엄청나다. 세칭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사건'이다. 조국 민정수석, 이광철 민정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함께,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 등이 함께 얽힌 청와대 주도형 사건이다. 공소장 A4 71쪽 분량에, ‘대통령’이 35번 등장하는 ‘대통령 관련 정치 스캔들’이다. 그리고, 최근 권력이 ‘살아있는 권력’에의 수사를 막으려 검찰에 가한 그 집요한 ’사법방해‘며, 이 사건 공소장 공개를 한사코 거부한 ’권한남용‘의 저의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쯤에서 미국의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을 떠올린다. 이 사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다. 이 사건 역시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 전국위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한 ‘절도미수’ 정도의 사건, 당시 워싱턴포스트(WP)의 신참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집요한 추적 끝에 리처드 닉슨의 탄핵을 부른 ‘권력형 스캔들’로 확 커진 것이다.

물론 닉슨이 탄핵위기에 몰린 건 이 도청을 넘어, 수사담당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법방해 때문이었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닉슨은 국민 앞에서 자신의 연관성을 당당히 부인하며 증거은폐를 위해 권력을 남용한다. 꼬리 자르기를 하고, 법무부장관을 바꾸고, 자신을 옥죄어오는 특별검사까지 해임한다. 그러다 결국 자진사임의 길을 택한 것이다.

역사는 기록한다, 닉슨 정부는 태동 단계부터 거대하고 비열한 음모를 모태삼아 만들어진 정권이었다고(양상모,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역사는 평가한다, 당시 닉슨은 언론기피 증상이 있었다는 것, 측근들만 신뢰한 나머지 백악관에는 ‘인(人)의 장막’과 함께 공작정치의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는 것, 그 결과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라고.

 

‘알 권리’ 대 ‘국가권력’ 대립? 언론 뭉쳐 언론자유 수호

미국의 ‘국방부 비밀문서(펜타곤 페이퍼) 보도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뉴욕타임즈(NYT)가 그 문서의 존재 및 의미를 특종보도했을 때, 정부는 ‘보도중지’를 강요하며 강경대응한다. ‘알 권리’ 대 ‘국가기밀’’의 전형적 갈등구조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동서냉전 체제가 절정을 이룰 때였으니, 정부가 ‘간첩죄’를 내세운 명분은 그럴 듯 했다.

영화 ‘더 포스트’(The Post)-세상을 속인 왼벽한 거짓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폭로’(2018. 스티븐 스필버그)는 권력과 언론의 대립, 그 전개를 극적으로 증언한다. 펜타곤 페이퍼의 주요내용을 폭로한 특종은 NYT가 한 발 앞섰지만, 워싱턴포스트(WP)가 NYT 편에 서서 그 후속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WP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발행인에게 말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결국 WP는 숱한 위협을 무릅쓰고 보도를 강행한다.

WP는 정부와의 소송에서 승소한다. 대법원 판결의 문맥은 묵중하다. “이 나라의 건국이념에 따르면,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고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다”(차용범, 진실보도와 국익보도, 그리고 언론-권력의 갈등). 이 부분, 세칭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언론이 깨우쳐야 할 교훈은 크다. 최근 ‘동아’의 특종보도에 이은, 다른 언론의 양면성 보도태도에서 절감하는 안타까움이다.

 

한국도, 공권력 압력·다른 언론 비협조 속 진실 찾은 사례

오늘 한국의 권-언 갈등을 얘기하며, 한국언론의 사례도 증언해야 한다. ‘부산 북부서 강주영양 유괴살해사건 고문·조작수사 추적보도’다. 민망스럽지만, 나의 언론생활 중 가장 험난하고 위험했으며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정말이지 ‘기자의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할 만한 역작이다. 한 어린이의 유괴살해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경찰이 주장한 사실은 조작이라는 것, 피고인 넷 중 진범 1명을 제외한 3명은 모두 무죄라는 것을 주장, 입증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고발하며 인권보호에 앞장선 보도물이다.

이 보도 역시 처음부터 이런 귀결을 꿈꾸긴 했겠나. 그저 사건수사 초기의 ‘작은 단서’ 하나가 언론이 사명으로 알아야 할 ‘인권보호’ 문제였고, 그 ‘고문조작’의 가능성을 추적하며 진실찾기 과정을 밟았을 따름이다. ‘탐사보도의 국내판 전형’, ‘한국 탐사보도의 개척자’ 같은 언론계·언론학계의 평가를 받긴 했으나, 그 과정 역시 그리 순탄하기만 했겠나. 다만 “지방의 한 ‘작은 신문’이 막강한 ‘수사기관의 압력’과 ‘다른 언론들의 비협조’ 속에서 용기있게 진실을 파헤쳤다”(한국기자상·한국언론학회 언론상 등 심사평)는 그 교훈은 분명하다.

문맥은 뚜렷하다. 지금 한국의 권-언 갈등 속, 언론은 더 각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우리는 그 권-언 갈등을 얘기하며, 한국의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수사며,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 ‘국방성 문서 보도사건’을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사건의 진실캐기에서 언론의 추적·탐사에 따른 기여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그 사건, 한국검찰의 (기대 밖의)분발·헌신의 결실이라고 해야 옳다. 한국언론은 지금, 권력의 남용을 감시·비판할 그 본연의 몫을, 어쩌다, ‘감시받아야 할 권력’, 그 검찰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한국언론, ‘특종경쟁’·‘언론통제’ 딛고 ‘진실 캐기’ 함께할 때

“靑 선거공작 공소장 숨긴 秋,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라”-‘동아’의 특종보도에 이은 다른 언론의 사설이 고맙다. ‘살아있는 권력’이 부정선거에 간여한 사실이 드러나고, 그 사실을 가리려 헌법·법률·관례를 무시하며 ‘언론의 자유’를 파괴하는데도 언론이 존재의의는 커녕 ‘제 몫’도 찾지 못한다? 그건 더 이상 ‘언론’일 수 없다. 한국 언론, ‘어긋난 특종경쟁’에 갇혀 있다면 지금이라도 ‘역사적 진실캐기’에 힘을 합쳐야 한다. ‘권력의 통제’속에 갇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본연의 몫을 향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오늘 권력 아래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파괴와 정의·공정, ‘알 권리’의 유린행위를, 함께 감시·비판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른 그 불법비리며 권력남용을, 때론 현장으로, 때론 역사의 이름으로 소환해야 한다. 언론의 몫을 다하는데 불굴의 용기가 늘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서 묻는다. 한 시대 언론은 정녕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가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이 지고 권력이 이긴다”는 비장함으로 글을 쓰는 기자는 정녕 누구인가? 여기에서 새삼 일깨운다, ‘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는 역사적 진리를-.

 

☑글 제목, ‘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는, 이 글에서 되새긴 탐사보도('부산 강주영...추적보도') 비평책자 ‘권력, 인권 그리고 언론’의 머리글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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