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④]북한 선전·선동지 ‘로동신문’이 ‘자유 대한민국' 뒤흔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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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④]북한 선전·선동지 ‘로동신문’이 ‘자유 대한민국' 뒤흔든다고?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6.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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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동신문’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대남 비난 담화문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에서,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내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대남경고담화를 발표, 한숫사회가 또 어수선하다(사진; KBS 관련보도 화면 캡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대남경고담화를 발표, 한국사회가 또 어수선하다(사진: KBS 관련보도 화면 캡처).

김여정의 담화에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다. 당장 통일부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법률안'(가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도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북 전단 살포를 제한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참 신속한 반응들이다.

정부 움직임에 대한 우려며 반발도 뜨겁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 늘 저자세 기조를 보이며 그들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균형 잃은 태도 때문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북한 정권의 '넘버2'가 불호령을 내리며 지시하자 복명복창을 한 꼴"이라는 비난(윤상현)에, ”김여정 한 마디에 왜 벌벌 기나… 대한민국이 북한 식민지인가“ 같은 칼럼(박강수)도 있다.

1. 김여정의 담화를 전한 통로는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고유 표기 ’로동신문‘)이다. 북한의 대외적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대표적 신문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8·15광복 후 대중조작을 위한 신문에 눈을 돌려 1945년 11월 1일 <로동신문>(원래 제호 <정로(正路)>을 창간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단 중앙의 <로동신문>이란 제호 아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라고 표기하고, 최고지도자 관련기사와 사설, 대남관계 기사를 주로 싣는 선전·선동지다.

2. <노동신문>의 선전·선동지적 특징은 그 지면 구성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재구성된 현실(restructed reality)’이라고 할 때, 그 현실을 구성하는 뉴스선택의 초점에서다. 이른 바 뉴스가치 판단과정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이다. 보편적 언론이라면, 언론사는 양질의 정보를 수집-가공-전달해야 할 막중한 책임 아래, 독자적인 게이트키핑 기능을 발휘한다.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 어떤 정보를 사용치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Kurt Lewin).

언론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은 그 언론의 권위·신뢰의 구축을 넘어, 때로는 언론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대사안이다. 세계 자유언론사에 길이 빛나는 미국 NYT의 ‘미 국방성 기밀문서(Pentagon Papers) 보도 사례를 보라. 이 보도, 자유언론을 향한 불굴의 저널리즘과 신문사의 운명을 내걸고 역사의 진실 앞에 떴떴하고자 했던 용기·결단의 결실이다. 이 보도의 게이트키핑 과정을 보라.

’워낙 중요한 사안‘ 앞에, *취재기자(Neil Sheehan)부터 보도 가능성을 반신반의하고, *편집국장(Abraham Rosenthal)이 이 보도의 역사적 의미를 통감하며 나라-NYT의 장래를 걱정하며, *편집인(James Reston)이 ’보도‘ 방침을 정하고, *발행인(사주, Arthur Shulzberger)이 ’계속 보도‘를 지시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NYT가 언론자유를 놓고 대통령과 ’한 판‘을 뜬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최고의 신문‘의 명성·위상을 다진 결정적 계기였다.

잠시 NYT가 ’보도중지‘ 결정에 결려 주춤할 때 미 국방성 기밀문서를 계속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의 게이트키핑 과정은 영화 <더 포스트(The Post)>(-세상을 속인 완벽한 거짓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폭로’, 스티븐 스필버그, 2018)에서 그린 바와 같고-. 그만큼 한 언론의 게이트키핑 과정은 두렵고 중요한 과정이다.

이 부분, 자유주의 언론의 케이트 키핑 기준은 ‘수용자가 원하는 기준’일 터다. 공산주의 언론은 ‘미디어가 원하는 기준(국가의 필요)’을 적용한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언을 고한 그 역사적 사실, 1989년 말의 ‘베를린장벽 붕괴 사건’ 때도 공산권 언론들은 그랬다. 이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주요지는 단 둘, 북한 <로동신문>과 중국 <인민일보>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 “인민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언론들에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라 할 정확성·공정성 같은 가치를 기대할 이유는 없다. 그저 인민들의 선전·선동·교화 기능을 추구하는 선전·선동지일 뿐이니.

3. <로동신문>을 비롯한 선전지의 성격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사례 하나. 지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두 번 째 남북정상회담 차 평양을 찾았을 때다. 이틑날 북한 4대 신문들의 1면 보도지면은, 참 재미 있다. 단 한 건의 톱기사에 3장의 사진을 다루며, 제목 문장까지, 4개 신문이 똑 같다. 작은 차이라면, 같은 제목 문장을 활자크기에 따라 2행 또는 3행으로 배치 한 정도(관련사진 참조).

북한 신문들은 선전·선동을 위한 노동당 기관지여서, 대체로 통일적 편집지침을 따르고 있다(사진; 4대 신문 편집지면 비교, 차용범 자료).
북한 신문들은 선전·선동을 위한 노동당 기관지여서, 대체로 통일적 편집지침을 따르고 있다(사진: 4대 신문 편집지면 비교, 차용범 자료).

글쓴이도 <노동신문>의 ‘단순한’ 게이트키핑 과정을 실감한 적이 있다. 2003년 8월 하순, 부산시 북한교류협력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고인)을 포함한 북한교류협력단은 부산과 북한과의 본격적 교류, 특히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찾았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이 서서히 물꼬를 트면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고, 만경봉호가 부산에 기항한 뒤다.

부산 대표단이 중국 북경을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일. 북측은 공항 출입국 절차를 생략, 대표단을 활주로에서 바로 승차토록 특별히 배려했다. 차량에 타기 전, 순안공항 활주로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증명사진’) 몇 컷은 찍었고. 버스에 탑승했을 때, 참 똑똑하되 나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장년 한 사람이 나를 찾아 내 옆자리에 앉았다. 북한 일정 중 나의 ‘파트너’다. 내가 맡은 일의 북한측 상대, 양측의 주요 입장발표 내용-수위며 일정 정리며, 이런 일들을 함께 조율하는 일이다. 통성명을 했다. 그는 통전부 소속 ‘⥁⥁ 동무’, 김일성대 출신 엘리트였다.

호텔로 옮겨가며 내가 넌지시 물었다. “공항에서, 사진기자·방송기자 완장 차고 사진도 찍고 촬영도 하던데, 우리 평양 온 거 노동신문에 나오나?” 그는 바로 대답했다, “아, 그거, 신문에 나왔으면 좋겠느냐?"고, ”잘 알았다“고. 뒷날 아침 잠을 깨니 문틈 사이로 노동신문이 들어와 있었고, 그 노동신문엔 우리 대표단의 공항도착 소식이 사진과 함께, 2면에, 크게, 실려 있었다. 나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덕담했다, ”야, ⥁⥁ 동무, 쎄던데. 앞으로 쑥쑥 자라 큰 사람 되라“고.

‘⥁⥁ 동무’와 나는 ‘파트너’ 답게 ‘딱 붙어’, 허물 없이 지냈다. 평양 곳곳을 방문하거나 묘향산이며 남포를 찾는 지방일정 때도 늘 옆자리를 지켰다. 묘향산을 다녀오는 차중에서 내가 목소리를 높여 농담을 했다. “⥁⥁ 동무, 묘향산 다시 올 만 하던데, 내 휴가 때 다시 초청해 줄 수 있나...”. 그의 대답은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북한의 대남부문 중책을 맡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뉴스엔, 당시 부산대표단을 초청했던 그 기구의 ‘장’(長)에 오른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는 ‘쑥쑥 자라’ 중요인물로 성장한 듯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얘기를 못하겠다. 그의 신상에 혹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참고; 아래 평양 촬영 사진은 선명도를 낮춰 처리했다. '⥁⥁ 동무'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초상권을 고려해서다. 

부산 북한교류협력단은 지난 2003년 북한을 방문, 본격적 교류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사진; 평양 환영연회를 마치고 부산-북한 관계자가 함께, 사진; 차용범 제공).
부산 북한교류협력단은 지난 2003년 북한을 방문, 본격적 교류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사진은 평양 환영연회를 마치고 부산-북한 관계자가 함께 찍은 장면(사진: 차용범 제공).

4. 그 <노동신문>을 통해, 김여정이 ‘2인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노동신문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 그만큼 노동신문의 권위며 기능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김여정은 그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존엄을 지키는 ‘경호실장’ 역할에서, 최근 행사에선 김 위원장과 나란히 앉는 ‘제2인자’의 입지까지 과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김여정의 담화문을 2면 상단에 게재했다. 노동신문은 모든 북한 주민이 보는 당 기관지로 내부적 체제 선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노동신문은 ‘김여정 담화’를 접한 평양 각계의 반응도 속보로 보도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의 변화를 읽은 보도도 있다. 이 보도로, 우리 사회는 어수선하다. 그들이 노린 전략 대로다. 정부의 즉각적 대응입법 제정추진 발표와 청와대의 입장에 이어, 여권도 탈북자단체 때리기에 바쁘다. 논리는 같다. 대북전단 살포행위는 ‘백해무익한 행위’이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한동안, 어쩌면 오래동안 깊고 넓은 ‘남남 갈등’에 시달릴 것 같다. 법 제정의 정당성·타당성을 둘러싼 의견차이며, 이 법의 위헌성에 따른 논란이며, 나아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나 지금 북한을 보는 시각에까지..., 우리는 또 서로를 바라보며 어르렁거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 나름의 철저한 게이트키핑에 바쁠 우리 ‘자유언론’들, 그 ‘저명언론’들도 저마다 진영논리적 입장으로 이 전쟁 같은 상황에 앞장설 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2대 기본원칙, 그 정확성-공정성의 가치 앞에서, 우리 언론들은 또, (철저한 게이트키핑에 따른)‘’뉴스의 전달‘보다, (진영논리에 따른)’정파적 전투‘에 앞장서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안전을 사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둘 다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다는데, 우리 언론은 또 어떤 가치 앞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이전투구를 벌일 것인가. 북한의 선전·선동 전략과 그 선전·선동을 위한 기관지의 활약(?)에, 우리 민주사회와 '자유언론'이 시나브로 홍역을 치른다? 참 알다가도 모를, 안타깝고도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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