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⑮] ‘가짜뉴스’, 권력이 판별하고 시정한다? 언론의 감시대상 ‘권력’, 그 언론 감독한다?
상태바
[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⑮] ‘가짜뉴스’, 권력이 판별하고 시정한다? 언론의 감시대상 ‘권력’, 그 언론 감독한다?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8.23 0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디어, ‘권력’은 직접 ‘언론’을 매질하려 하는가? 언론의 감시·비판을 받아야 할 그 ‘권력’이, 언론에 ‘가짜뉴스’의 시정을 명령하며 처벌하려 달려드나? 언론-권력의 갈등관계에서 권력의 언론 간여를 금하는 그 민주사회의 룰도 파괴하려 하는가? 최근 여당의원들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보는 우려다.

정부가 ‘가짜뉴스’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물린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며 민·형사 소송 같은 사법적 대응 체계를 두고, 행정력으로 언론에 명령을 내리고 처벌을 가한다? 그건 헌법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현대 민주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깔아뭉개려는 독선적 폭주다.

정부가 ‘가짜뉴스’에 직접 시정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을 두고, 언론출판 자유의 직접적 침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그림: 가짜뉴스 이미지, Pixabay 이미지).
정부가 ‘가짜뉴스’에 직접 시정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을 두고, 언론출판 자유의 직접적 침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권력, 부동산정책 실패로 국민들의 공포를 키우곤, 부동산 감독기구로 국민을 감독하려 든다. 권력, 언론에의 도 넘은 간여로 언론 생태계를 무너뜨리곤 위헌적 법률로 언론을 감시·감독하려 든다. 국민·언론의 감시·비판을 받아야 할 권력이 거꾸로 국민과 언론을 일상적으로 감독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 명확할 터다. 언론은 자기검열에 쫓기며 권력에의 감시·비판 기능을 잃고 공멸할 것이다. 언론이 본연의 저널리즘 기능을 잃은 뒤, 기자며 언론사며 관련 단체는 또 무슨 소용이랴. 혹, 을사늑약 체결을 슬퍼하며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장지연 선생처럼,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외치기나 할까?

권력의 사법적 판단 배제한 언론 간여? 헌법 가치 외면

1.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언론이 고의나 중과실로 허위의 사실을 보도할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 등에 대한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당 언론사가 문체부장관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 정부가 ‘가짜 뉴스’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려와 비판이 따른다. ‘가짜뉴스’의 정의가 모호하다, 정부가 직접 언론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기존 제도로 오보에의 조정이며 소송,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행정권력이 사법적 판단 없이 언론보도에 명령을 내린다는 건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준웅)이 선명하다.

법안은 정정보도·반론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한도 4배가량 크게 늘렸다. 현행법은 ‘언론보도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 언론보도가 있은 날부터 6개월 이내’다. 이를 ‘언론보도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 언론보도가 있은 날부터 2년 이내’로 연장하는 것이다. 역시 정치적 소송의 양산에 따른 언론기능 위축의 우려가 크다.

언론-권력 갈등, "권력, 언론-출판 영역 그저 규제할 수 없다..."

2. 언론과 권력의 갈등,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피할 수 없다. 민주사회 언론의 존재의의는 권력의 권리남용을 감시·비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언론-권력의 갈등관계, 민주사회라면 그를 규율하는 분명한 룰이 있다. 권력은 언론· 출판 영역의 어떤 표현을 두고 가치 없다거나 유해하다는 주장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가끔 해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시정기능은 사상의 경쟁체제에 의존해야 한다. 비록 언론이 종종 상업적 폐해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국가권력의 남용에 따른 폐해보다 덜하다는 경구도 있다(차용범, '진실보도와 국익보도, 그리고 언론-권력의 갈등').

언론사상사의 고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은 일찍이 설파했다. 언론의 근본적 문제들이 보다 많은 법이나 정부 조치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는 것는 것이다. 비록 힘에 의한 정부의 전복을 주장하는 표현이라도 이러한 표현이 폭력을 유도할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없다면 어디까지나 헌법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이다.

언론사상사의 고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은 말한다. “언론의 근본적 문제들이 보다 많은 법이나 정부조치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권력의 언론부문 간여를 금하는 자유언론 사상이다(사진; 책자 표지).
언론사상사의 고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은 말한다. “언론의 근본적 문제들이 보다 많은 법이나 정부조치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권력의 언론부문 간여를 금하는 자유언론 사상이다(사진: 책자 표지).

<자유롭고...>는 권력-언론 관계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것’도 예시한다. 언론기관이, 정부가 공중에게 강조하고 싶은 바를 알려줄 것을 권고한다. 단 (민영)언론기관들이 정부를 위한 미디어 서비스를 할 수 없거나 꺼린다면 정부도 관영매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정부가 관영매체를 운영하는 근거다.

언론-권력의 관계, 문재인 대통령은 자주 언급한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 기념식 영상축사에서 한 말도 있다. “정권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을 언제나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는 표현이다.

정부, 언론통제 정책 집요... 우드워드, "가짜뉴스 프레임 넘어서야" 

3. 그러나, 실상 대통령의 언론관은 ‘자유언론’에 호의적이지 않다. 대통령은 시나브로, ‘언론개혁’이며 ‘가짜뉴스’ 대응을 강조한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다", 대통령의 말이다. 그 회한의 ‘조국 사태’ 속에서 ‘국민갈등 야기에의 송구한 마음’을 얘기하며, ‘언론의 깊은 성찰’을 함께 거론한다.

대통령이 국민갈등 상황에 책임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할 터. 다만, 그 상황에, 왜 (모든) 언론이 ‘깊은 성찰’과 ‘자기 개혁’을 다해야 하는지는 참 궁금하다. 대통령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전제하며, 굳이 ‘언론개혁’을 재촉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 그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언론의 현실을 보라.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언론통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 정책 의지는 집요하다. 그 결과는 신문·방송의 정권 종속 현상이다(김대호, <한국의 미디어 거버넌스>). 권력의 언론통제 과정에서 나타난 유튜브의 ‘가짜뉴스’ 대응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정부비판 보도와 조국의혹 보도를 자주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가짜뉴스’ 문제, 논란의 출발은 권력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대책이다. 공무원의 혐오·차별 표현 금지, 역사의 부정·왜곡 금지 등을 예시하며, 유튜브의 가짜뉴스 대책까지 담고 있다. 정부가 비판적 뉴스까지 '허위조작 정보'로 규정, 유튜브 규제를 서둘렀음을 알려진 바다. 최근 뉴스 생태계의 강자, 유튜브의 언론기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문제는, ‘가짜뉴스를 누가 가려낼 것인가’이다. 이 부분, 가짜뉴스 규제의 근본적 과제다. 언론자유 논의의 고전 <아레오파지티카>(존 밀턴)의 중심개념이다. “진리는 토론 끝에 당당하게 표출한다”-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두고, 누가, 어떤 과정으로 판별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거짓 의견이라도 시장에서의 공개 기회를 사전 억제하는 것은 진리 확인의 기회를 막기에 악이라는 주장이다.

연전 방한했던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주장이 새롭다. 탐사보도의 찬란한 역사, 그는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말을 폐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언론 간담회 자리에서다. 그는 가짜뉴스 판별 방법을 묻는 말에 잘라 대답했다.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그 표현, 언론의 신뢰를 저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미 ’오보‘ 개념이 있는 상황에서, '가짜뉴스'라는 표현의 정치적 이용에 대한 경계이다.

탐사보도의 세계적 대명사 밥 우드워드는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의 신뢰를 저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이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탐사보도의 세계적 대명사 밥 우드워드는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의 신뢰를 저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이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정정보도 청구시한 연장? 조국 대한 권경애 비판 연상

4. 정정보도 청구시한 연장 부분도 그렇다. 얼마 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경향신문의 1년 전 기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했다가,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의 정면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제척기간이 지난 줄 모르고 정정보도 청구를 했다면 법학자로서 자격미달이고, 지난 줄 알고도 정정보도 청구를 했다면 그 또한 법학자로서 자격미달"이라고 쏘아붙인 일이다.

조국은 최근 자신을 비판한 언론사·기자·유튜버 등을 상대로, "지치지 않으면서 따박따박 진행하겠다"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 법안의 그 시한 연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대체 언론의 감시·비판을 받아야 할 특정인, 그 누구를 보호하려 하나. 법 체제의 취약성을 넘어, 그 목표도 참 궁금한 법안이다.

논의 귀결은 '공인' 문제... ‘공인’ 명예 낮게 보호 흐름

5. 논의의 귀결은 ‘공인(公人) 문제다. 우리 사회가 언론보도에 폭넓은 면책을 허용한다 함은 자주 얘기한 바다. 특히,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생각할 때, 공인의 명예·인격권 보호를 이유로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공무 관련 비밀이 너무 많고 취재원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막힘없는 정보유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정치인·공무원 같은 공인의 명예까지 폭넓게 보호하려 할 때 언론은 무력해지고 언론자유는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게 헌법정신이다.

언론자유와 인격권 보호, 두 헌법적 가치의 충돌을 정리한 것은 헌법재판소다. ‘공적 인물의 공적 활동에 관한 신문보도가 명예훼손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 언론보호와 명예보호의 이익조정 기준’을 제시한 헌재 결정(1999. 6. 24.)이다.

그 법리는 명확하다. 공적 인물의 공적 활동에 관한 명예훼손적 표현 때는 공인의 명예를 보다 낮게(얇게) 보호한다는 것이다. 종래 공인임에도 명예보호를 두터이 하던 입장에서 전환한 결정이다(차용범,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판결기준의 변화추세', 한국언론학보).

이 법리에 관한 조국 전 장관의 논문이 있다.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이다. 조국은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적 인물은 항상적인 비판과 검증의 대상인데, 보통의 시민이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허위사실이 제기되었다는 이유로 그 시민에게 법적 제재가 내려진다면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사진)조국 전 장관은 교수 시절,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주장했다. 다만, 최근 그의 행동은 그 주장과 극히 모순적일 뿐이다(사진; 조국 트위터 캡처).
사진)조국 전 장관은 교수 시절,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주장했다. 다만, 최근 그의 행동은 그 주장과 극히 모순적일 뿐이다(사진: 조국 트위터 캡처).

조국은 트위터에서 강조했다. “시민과 언론은 공적 인물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 공인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부분적 허위가 있었음이 밝혀지더라도 법적 제재가 내려져서는 안 된다”,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시민도, 쓰레기 같은 언론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의 검증도, 야멸찬 야유와 조롱도 허용된다”고-. 이 부분, 조국의 주장은 옳다. 최근 그의 행동이 모순적일 뿐-.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규제는 정부 역할이 아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려주는 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서울 발언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번 법안, 참 불온하다. 권력은 ‘진짜뉴스’가 맘껏 활개 치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할 일이다. 그를 제쳐두고 감시·비판보도에 멋대로 ‘가짜뉴스’의 딱지를 붙이려 한다.

언론, '언론자유' 투쟁엔 좀 단결, 자율 해결 서둘러라"

권력은 정말, 그 강고한 진영논리로 ‘공인’영역에 대한 언론의 견제를 싹부터 자를 생각인가. 사법제도도 아닌 언론중재위원회를 내세워 비판언론에 결정적 재갈을 물릴 속셈인가. 도대체, 권력·정부가 국민·언론을 감시·감독하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온 건가?

이 개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을까? 언론탄압’에의 비판이든, 위헌성에의 지적이든, 그건 변수일 수 없다. 역시 권력의 의지에 달렸을 뿐이다. 그 권력들은 권력비판을 사명으로 삼는 언론의 비판을 싫어한다 그래서 ‘법의 지배’(rule of law), 그 실질적 법치 대신,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그 형식적 법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권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시대다. 언론계·언론단체며 관련 시민사회 역시 언론자유를 위해 일치단결하는 시대도 아니다. 더러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진영논리에 탐닉하며, 권력의 행보에 가세하기도 할 터이다.

그 권력에 묻고 싶다. 부동산 감독기구를 내세워 국민과 시장을 감독하듯, 언론통제를 위해 법을 앞세워 언론을 감시하고 감독하겠다고? 정말 국민이며 언론은 권력의 감시대상인가? 권력은 정녕 우리 사회를 소설 <동물농장>이며 <1984년> 같은 감시·통제의 디스토피아(dystopia: 역유토피아)로 이끌고 싶은가?

권력의 일상적 공세에 직면한 언론에도 경계의 말을 전한다. ‘언론자유를 향한 길은 끝이 없다’--대통령의 한국기협 창립기념 축사 문맥이다. 그렇다, 어느 시대인들, 언론의 책무는 권력을 견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이제, 제발, 좀, 언론자유를 향한 투쟁에는 좀 단결하라. 권력이 시비 걸고 문제 삼는 ‘가짜뉴스’, 그 해결방안도 스스로 좀 생각하고 실천해 보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어느 언론에도 예외일 수 없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