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 ① ]언론은 오늘도 ‘언론 용어’로 말한다... 스텔스 바이러스, N차 감염, 차박, 감성방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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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 ① ]언론은 오늘도 ‘언론 용어’로 말한다... 스텔스 바이러스, N차 감염, 차박, 감성방역까지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5.1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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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재구성된 현실(restructed reality)'이라고들 한다. 언론은 사회적 실재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사회적 현실을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더러, 용어들을 선택하거니 창출한다. 복잡한 현실을 보다 쉽게 구성, 전달하기 위하여, 그 현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이른 바 ’언론 용어‘다.

‘언론 용어’는 시나브로 논쟁거리다. 언어는 그 자체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언어학 이론가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랑그(langue)는 파시스트’라는 말로 언어의 권력적 성격을 지적했다. 어떤 특정 언어에는 높은 사회적 위신이 주어져 그 언어의 화자라는 이유만으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반면 그 이외 다른 언어의 화자들은 여러 면에서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언론들은 오늘도 복잡한 현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언론 용어들을 창출한다. 코로나19 사태 역시 그러하다(사진; 코로나19 상징 이미지, Pixabay 무료 이미지).
언론들은 오늘도 복잡한 현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언론 용어들을 창출한다. 코로나19 사태 역시 그러하다. 사진은 코로나19 이미지(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최근 한국 언론의 용어 선택을 두고도, 자주, 날카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코로나 19’다. 이즘 언론들이 정부 권고에 따라 사용하는 ‘코로나 19’에서, WHO가 권고한 ‘COVIC-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우한폐렴’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바이러스 가족의 이름이다. Coronavirus(CoV)의 가족들은 감기, 사스(SARS)), 메르스(MERS))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코로나 19’, 우리 언론의 첫 표현은 ‘우한폐렴’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그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때론,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뜻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표기하기도 하고. ‘COVID-19', WHO가 권장한 용어다. 이 권고에도, 세계 유력언론들은 한동안 쓰던 용어를 그대로 썼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한동안 ’우한폐렴‘이란 용어를 썼듯.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 바이러스-19‘ 같은, 학술적 용어를 쓰기도 하고. '코로나19’? 우리 정부가 권고한 독자 용어다. 그만큼, 언어가 갖는 권력적 속성은 무섭다.

이 ‘코로나 19’, 그 용어선택이 노린 권력관계와 함께, 그 현상을 전달하기도 참 복잡하기 때문일까? 언론은 나날이, 새 언론용어들을 창출하고 있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팬데믹’(pandemic)에, 한 지역에서 유행하는 ‘에피데믹’(epidemic)도 있고.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우리말은 '팬데믹'⇨'(감염병)세계적 유행', ‘에피데믹’⇨‘(감염병)유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감염성 높은 질환의 전파를 막거나 느리게 하기 위하여, 정부나 보건당국 혹은 시민단체가 제안하는 행동으로서, 목적은 감염된 사람들과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접촉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 부분,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social distancing보다 "physical distancing(물리적 거리두기)"란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렇겠기도 하다. 우리가, 사람간의 '사회관계'를 멀리 할 수야 있나?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하여 사람간의 물리적 접촉(거리)을 멀리할 순 있지만.

오늘 아침도, 언론들은 새 용어들을 창출하고 있다. 그만큼 복잡한 사회현실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다. ‘스텔스 바이러스’, ‘이태원 발’ 코로나 19가 이태원 클럽과 홍대 주점에서 나라를 오가며, 구치소 담장도 넘고, 할아버지-손자를 함께 덮치며, 2-3차 감염까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세다. ‘N차 감염 비상’, 아니 2-3차 감염까진 확인할 수 있겠는데, 이젠 도대체 몇 차 감염인지 모를 확진자가 나타났다. 언론은 뭐라고, 줄여서, 쉽게 전달해야 하나? ‘N차 감염’이 등장한 이유다.

팬데믹 ‘감성 방역’도 있다. ‘거리 두기 ’중 ‘예술품 만들기’를 압축했다. 캐나다 스토리다. 폐쇄된 상가, 절도를 막으려 나무판을 댄 삭막한 상점, 그 나무판에 코로나19에 맞선 의료진 응원 그림, 그 벽화는 곧 예술품이다. ‘차박’은 또 뭔가? 코로나 시대, 캠핑도 ‘언택트’시대다. “별 헤는 밤, 별별 ‘차박’(차에서 숙박)‘ 캠핑 유혹”.... 이만 하면 사회적 현실을 재구성하는 언론의 '깊은 뜻', 그 선한 의도며 끝없는 노력이며 열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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