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된 ‘신조어 현상’...세대간 대화단절, 언어 파괴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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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된 ‘신조어 현상’...세대간 대화단절, 언어 파괴 불러
  • 취재기자 박지혜
  • 승인 2020.11.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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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이 된 외래어, 외국어 사용... 문제의식도 옅어져
예능 프로그램 외국어 남용 심각, 방통심의 ‘주의’

얼마 전, tvN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8’에서 출연진들이 훈민정음 게임을 윷놀이에 적용시키는 게임을 펼쳤다. 단, 게임 시작 이후 한 명이라도 외국어를 사용할 경우 그 팀은 말을 하나 리셋 하는 규칙이 있었다. 결과는 어떨까? 출연진들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외래어, 외국어는 기본이었고, 말을 아예 하지 않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출연진 중 강호동은 “오케이”, “백(back)도” 등을 사용, “나도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많이 사용하나봐”하면서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방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외래어, 외국어, 신조어 사용이 도를 넘어 세대 간 단절을 부르고 언어파괴를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상 대화에서 이젠 외래어나 외국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일상생활에서 외래어, 외국어 사용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사진: tvN 신서유기 캡처).
일상생활에서 외래어, 외국어 사용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사진: tvN 신서유기 캡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로 분류된다. 고유어는 ‘하늘’, ‘땅’처럼 우리말에 본디부터 있던 낱말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 만들어진 낱말이다. ‘한자어’는 한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낱말로 우리말에 한자어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한자어의 비중은 높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외국어’는 다른 나라의 말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아직 국어로 정착되지 않은 단어를 뜻하고,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를 뜻한다.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외국어는 다른 나라의 말이지만, 우리말로 쉽게 바꿔 쓸 수 있는, 즉 대체할 한국어나 한자어가 있는 단어다. 예를 들어, ‘밀크’는 ‘우유’로, ‘댄스’는 ‘춤’으로 바꿔쓸 수 있다. 반면, 외래어는 대체할 한국어나 한자어가 없는 단어를 뜻하는데, ‘컴퓨터’, ‘텔레비전’, ‘커피’, ‘버스’ 등이 그 예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정수아(2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이미 일상 속에서 외래어나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 같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근희(20, 경남 양산시) 씨는 “한국인으로서 한글을 쓰는 것이 좋지만, 외국어나 외래어를 쓰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쓰는 것 같다. 또한 주변에 외래어나 외국어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 나도 모르게 동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외래어, 외국어 사용은 비일비재하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는 ‘찐 성덕’, ‘댓츄롸잇’, ‘개인기가 없어효’, ‘오빠 말씀 is 뭔들’, ‘우리 오빠가 카펫 찢어 놓으셨다’처럼 한글이 눈에 띄게 적고, 고유어와 외래어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정체불명 신조어와 저속한 표현, 불필요한 외국어 혼용 표현 등을 남발해 한글 파괴에 앞장섰던 7개 방송사에 대해 ‘주의’를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거론된 프로그램들은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MBC <놀면 뭐하니?>, SBS <박장대소>, 채널A <도시어부2>, JTBC <장르만 코미디>, tvN <놀라운 토요일> 등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쓰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정수아 씨는 “요즘 세대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써 소통에 있어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외국어 사용을 문제삼기 보다 새롭고 다양한 언어문화의 발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김근희 씨는 “적당한 외래어나 외국어의 사용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하지만, 무분별하게 사용은 옳지 않다. 방송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말보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에서 자주 비춰지고 있다. 방송에서 먼저 한글을 사용해야 대중들도 따라서 우리말 사용에 힘쓸 것이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우리말보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에서 자주 비춰지고 있다. 방송에서 먼저 한글을 사용해야 대중들도 따라서 우리말 사용에 힘쓸 것이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조푸름(22, 경남 거제시) 씨는 “재미를 위한 어느 정도의 외국어, 외래어 사용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비속어 등은 자제하고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할 때 간단한 해석을 붙여 이해를 도울 필요는 있겠다"고 했다.  

청소년들의 신조어의 과용도 문제다. 신조어 현상은 온라인상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10대뿐만 아니라, 전 계층,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맘고리즘(평생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표현한 신조어)’, ‘라떼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 같은 신조어는 부모 세태를 반영한 것들로 어느 정도 리듬과 운치가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무작정 단어를 줄여 말하는 '축약어'들은 세대 간 대화 단절과 국어 규칙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모티콘 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모바일 대화에서 무시로 등장한다. 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갈 때, 자칫 딱딱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현상을 재치 있는 이모티콘 하나만으로 대화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김 모(22) 씨는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할 수 없는 대화방에서 자칫 무뚝뚝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모티콘은 적절한 상황 속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편리하지만, 과도한 이모티콘 사용은 역시 우리말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바일 대화에서 이모티콘 사용은 딱딱한 대화체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반면, 한글 파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 카카오톡 이모티콘 화면 캡처).
모바일 대화에서 이모티콘 사용은 딱딱한 대화체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반면, 한글 파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 카카오톡 이모티콘 화면 캡처).

전문가들은 "외래어를 쓴다고 반드시 유식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우리말과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드라이크리닝'을 '마른 세탁'으로, '로그인'을 '접속'으로, '북클럽'을 '독서 모임'으로, '패널'을 '토론자'로, '페스티벌'을 '축제'로 말이다. "우리의 주체성은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데서 빛난다"는 말을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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