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 ③]내가 좋아하는 신문기사 스타일-나는 ‘관점형’의 ‘긴 기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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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톺아보기 ③]내가 좋아하는 신문기사 스타일-나는 ‘관점형’의 ‘긴 기사’가 좋다-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5.3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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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 사실 중심의 ‘짧은 저널리즘’(short journalism)보다 사실의 복합성을 반영한 ‘긴 저널리즘’(long journalism)이 좋다. 역피라미드형의 압축형 기사보다, 관련사실의 배경·맥락을 다양하게 풀어주는 관점형의 긴 기사가 좋은 것이다. 신문편집 역시 조합식 구성(Mosaic make-up)보다는 통합적 접근(Integrated story approach)방식을 좋아한다. 한국의 몇몇 신문에서 이런 ‘좋은 기사’와 ‘예쁜 편집’을 접하며, 신문 스크랩을 즐기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Smart Media시대에도, 논점 분명하고 근거 정확한 ‘긴 기사’ 선호

1. 나는 청·장년기 언론생활 때 사회문제를 감시·비판하는 초점형 보도기사를 주로 썼다. 그 기본적 기사 틀은 역피라미드형이다. 언론인의 연륜을 쌓아가며 관점형 의견기사를 집필했다. 공공사안에의 견해·주장을 제시하는 사설과, 시대현상을 논평하며 여론형성에 기여할 칼럼이다. 그 기사들은 관점형이긴 하되, 분량은 일정한 제약을 따라야 했다. 동시대인(同時代人)의 ‘사람 이야기‘를 즐겨 쓴 것도 장년기부터다. 그 틀은 주로 서사(敍事)형이다.

내 기사를 써 보고 남의 기사를 읽으며, 기사 스타일의 장·단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역피라미드형의 문제점을 실감하며 그를 극복할 대안을 절감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즐겨 쓰는 서사형 보도기사에선 생소함과 흥미를 함께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기사, 스트랩하고 싶은 기사의 DNA를 찾은 것이다. 사실들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며 현안의 논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러면서 논지(論旨)는 사실과 정확한 근거에 바탕을 두는 기사다.

지금은 Smart Media시대다. 독자들은 신문기사를 주로 온라인으로 읽고 있다. 종이신문과 모바일+인터넷 등의 결합열독률은 88.7%(2019 언론수용자 조사)에 이르는 반면, 종이신문의 구독률은 날로 급감하고 있다. 한국 신문에 대한 나의 애증 역시 만만찮다. 신문은 분명 매스컴의 기본적·주축적 매체라는 자긍·기대와, 그들이 수행하는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한 실망·우려다.

그 속에서, 나는 ‘좋은 기사’들을 골라 읽으며 스크랩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그 스크랩 대상은 ‘읽는 신문’보다 ‘보는 신문’이다. 콘텐츠의 혁신과 함께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예쁜 신문’, 즐겨 읽고 쟁여두는 그 기사 역시 길이도 상당히 길다. 이른 바 ‘긴 저널리즘’이다. 그런 기사는 주로 글쓴이의 시각이 뚜렷한 관점형 기사다. 논점이 분명하고, 다른 입장과의 흥미로운 논쟁을 다루며, 독자로 하여금 한 사안을 객관적으로 생각토록 하는 글들이다.

베를리너판 ‘중앙’-대판 ‘한겨레’의 ‘긴 기사’... 열정·저력 대단

신문 판형 비교. ①대판(391X545mm) ②베를리너판 323X470mm ③타블로이드판(272X391mm)(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신문 판형 비교. ①대판(391X545mm) ②베를리너판 323X470mm ③타블로이드판(272X391mm)(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2. 내가 즐기는 ‘긴 저널리즘’ 기사의 기본형. 우선 한국의 전통적 대판(大版) 신문에서 ‘한겨레’의 ‘토요판 커버스토리’가 우뚝하다. 토요일마다 ‘커버스토리’를 통해 관점형이든, 서사형이든, 참 긴 호흡으로,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고, 메시지·주장·입장을 넣으며,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해 준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며 애환을, 그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끈기가 대단하다. 대판신문 1면과 3·4면을 털어 편집하는 그 열정이며 저력은 예사롭지 않다.

5월 16일자 “‘빨간 가방 요정’ 이야기 할머니”편은 21세기 이야기 할머니의 탄생과정과 활동상황을 전하며 본문만 200자 60매를 허용했다. 5월 23일자 ‘토요판-김종철의 여기’는 “‘56년 만의 미투’에 나선 최말자 씨” 스토리를 다뤘다. 1면에 통단 사진을 싣고, 3·4면에 다양한 증언과 설명으로 기사를 구성했다. 그 분량 역시 200자 60매. 특히 이 기사는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며, 등장인물의 인간심리까지 엿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느낌이 강한 기사였다.

내가 즐겨 읽으며 스크랩하는 기사, ‘중앙’·‘중앙선데이’의 ‘오피니언’면이 있다. 알다시피, 이 신문, 국내최초의 베를리너판(Berliner format)이다. 대판과 타블로이드판의 중간 크기다. 일찍이 신문이 융성했던 독일에서 출생했다. 이 판형은 대판 크기의 약 72%, 장점이 많다. 휴대하기 편리하고, 버스·지하철에서 신문을 펼쳐 읽을 때 옆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며, 시선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서도 한눈에 기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신문사 100년 만에 겉과 속을 다 바꿨다’-‘중앙’이 2009년 3월 베를리너판을 사용하며 내건 변신의 변이다. 새 판형을 통해 지면 쇄신과 감성적 기사 접근, 다양한 시각의 섹션 차별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판형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모양새만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콘텐츠의 혁신과 함께 디자인 개념을 도입,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혁신한 것이다.

'중앙'의, 하나의 기사를 두 면에 걸쳐  스프레드(spread)형으로 배치한 편집(사진; 중앙 PDF판 캡처).
'중앙'의, 하나의 기사를 두 면에 걸쳐 스프레드(spread)형으로 배치한 편집(사진: 중앙 PDF판 캡처).

‘중앙’의 베를리너판 창간을 주도한 이는 독일에서 신문 디자인을 연구한 김경래 디자인센터장이다. 나도, 부산시에서 국문-영문-일문-중문 종이신문을 제작할 때, 베를리너판의 기능과 아름다움에 꽃혀 그 도입 가능성을 거듭 살펴본 바 있다. 그 때 만난 김 센터장의 지론은 뚜렷했다. “신문은 이제 이미지로 뉴스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앙’의 혁신은 크게 성공했다. 뉴스의 선택과 집중, 세련된 디자인으로 젊은 독자 유인효과도 컸다.

‘중앙’은 ‘긴 저널리즘’에 최적화한 베를리너판을 통해 매일 3-4개의 전면 기사를 싣고 있다. 5월 26일자 ‘김동원의 이코노믹스-기후변화의 경제학’(지구온난화 방치하면 코로나19 같은 재앙 닥친다) 같은 기사는 두 면을 함께, 스프레드(spread)형으로 배치했다. ‘중앙선데이’는 Focus, Culture, Business,, Insight 같은 내지를 거의, 전면기사로 다룬다. 5월22일자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진실의 죽음’(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프레임’...거짓도 사실로 둔갑) 같은 사례다. 판형에 맞춰 대략 200자 30매를 전면 편집하는 것이다.

최근 '윤미향 사태'로 드러난 시민단체의 도덕성 타락이며 불법성 논란도, 한 기사의 전면편집을 통해 그 배경과 맥락을 콕 집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현안을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 근거를 통해 대안을 주장하는 특유의 저널리즘이 돋보인다. 기사의 깊이와 편집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스크랩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중앙’·'중앙선데이'는 베를리너판을 통해  ‘긴 저널리즘’을 최적화, 매일 3-4개의 전면 기사를 싣고 있다(사진; PDF판 캡처).
'중앙’·'중앙선데이'는 베를리너판을 통해 ‘긴 저널리즘’을 최적화, 매일 3-4개의 전면 기사를 싣고 있다(사진: PDF판 캡처).

한국식 ‘짧은 기사’ 모델, 선정적·정파적 가능성 크다?

3. ‘짧은 저널리즘’과 ‘긴 저널리즘’의 차이는? 한국과 미국 신문의 저널리즘 모델 차이이다. 한국의 한 유력지와 미국의 한 권위지의 저널리즘 모델을 분석한 결과다. 기사쓰기 관행에서 한국 기사는 짧고(단편적·파편적) 미국 기사는 길다(종합적·다원적). 취재원·관점에서 한 가지 관점(‘적게’): 다양한 관점(‘많게’), 현실인식 방식에서 단순 사실 중심:사실의 복합성 전제의 차이다.

이 차이의 결과는 만만찮다. 한국식 단편적·토막적 기사는 선정적·정파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우선가치를 생각하면, 언론의 공정성 상실이며 갈등유발형 저널리즘의 득세는 결코 좋지 않다. 저널리즘은 무엇보다 진실을 추구해야 하고, 진실추구를 위해선 사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다원적 관점에서 여러 논리적 요소를 구비한 ‘긴 저널리즘’의 강점과, 부분적 관점에서 사실을 선택·생략하는 ‘짧은 저널리즘’의 한계가 선명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 신문의 저널리즘 모델 차이. 이 차이의 결과, 한국식 단편적·토막적 기사는 선정적·정파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그림: 차용범 강의자료 캡처).
한국과 미국 신문의 저널리즘 모델 차이. 이 차이의 결과, 한국식 단편적·토막적 기사는 선정적·정파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그림: 차용범 강의자료 캡처).

‘긴 저널리즘’은 일찍부터 미국 권위지의 특징이기도 했다. 대통령제 중심국가에서 대통령 기사를 다루더라도, 개인중심 기사보다 견제·균형을 반영한 기사를 지향했다. 당연히, ‘짧은 저널리즘’에서 나타날 불공정성의 우려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그 ‘긴 저널리즘’은 오늘도 여전히 빛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다룬 WP의 칼럼(오피니언) 운용방식을 보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는 5월 1일 WP에 칼럼 한 편을 기고했다. 제목은 '코로나19로 잃은 시간을 만회하는 방법(Here’s how to make up for lost time on covid-19)'. 팬데믹의 급속한 확산을 막기 위한 세기적 발명가의 정책제안이다. 이 칼럼은 한동안 WP의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리스트 1위였다. 그 분량, 인터넷판 54행에, 2300단어였다. 현안의 논점과 주장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정확한 근거와 논리적 요소를 구비하고 있다.

Smart Media 속 기사 압축 필요? ‘긴 저널리즘’ 만족도 높다

4. Smart Media시대, 종이신문은 쇠락하고 있지만, 다양한 수단으로 신문기사를 읽는 열독률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도 언제부터인가 ‘긴 저널리즘’을 즐기고 있다. ‘나 때는 말이야’ 시대 때, 나는 사설 5.5매-칼럼 12매의 한계를 엄수했다. 지금은 그 ‘읽는 수단’을 감안하면 기사를 한층 압축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더 긴 기사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사 문장은 "짧게", 이 원칙은 불변이다.

나는 요즘 200자 30매 안팎의 칼럼을 쓴다. 주제의 배경·맥락을 설명하며 정확한 근거에 바탕한 논리로 나의 주장을 한껏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기사가 좀 길면 어떠랴, 그런 글을 쓴 뒤끝은 한결 개운하다. 스트레이트성 보도기사도 더러 길게 쓴다. 최근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 관련 기사, 그저 현상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그 의미며 평가까지 충분히 넣은 ‘긴 저널리즘’ 방식으로 썼다. 독자반응은 좋았다. 글을 쓴 나도 만족했고-.

한국 신문 정확성·공정성 논란, ‘긴 저널리즘’으로 극복할 수도

5. Smart Media시대다. 그 똑똑함-영리함-간편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긴 저널리즘’의 효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세계 속 신문들은 오늘 눈부신 (기술적)혁신과 함께, ‘최고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인식을 다져가고 있다. ‘세계최고’ 명성의 NYT 역시 같은 인식 아래 ‘NYT의 전통적 저널리즘 제품’에 열정을 쏟고 있지 않나. 그 전통적 저널리즘, ‘긴 저널리즘’의 특장을 한껏 확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신문에 새삼 ‘긴 저널리즘’에 주목할 것을 기대한다. 많은 신문들이 정확성-공정성 논란에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그 결정적 약점을 극복할 대안으로 ‘긴 저널리즘’이 참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떨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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