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법무장관·국방장관 인책사임 용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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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법무장관·국방장관 인책사임 용의 없나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19.06.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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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언론 무시하는 장관, 대통령·총리는 어떻게 보는가

‘사회부 기자 이연교(李演敎)’. 동아일보 주월(駐越)특파원과 국방부 출입을 거친 군(軍) 전문기자다. 사회부 기자 10년차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청력과 평형감각을 상실, 오랜 기간 투병했다. 청력 회복과 현업 복귀의 꿈을 안고 8년을 버티다, 끝내 ‘깨어진 허망한 꿈’을 절감하고 사직한 집념의 인간이다. 젊은 세대에겐 다소 생소할지라도, ‘사회부 기자’로선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그는 언론계와 결별하며 그의 언론역정을 기록했다 ‘네가 기자냐-체험적 사회부기자론-’이다. 그의 선배 박권상은 그의 8년을 되새겼다, “...그로부터 벌써 8년이 지났다. 긴 긴 세월이다. 그에게 인간으로서 더 없는 절망이 있었고, 운명이 내려치는 가혹한 시련이 있었다. 그에게는 한탄과 실의에서 다시 일어서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것은 기자직에의 멈출 수 없는 집념이었다.”

“인책사임할 용의는?” 못 묻곤, “네가 기자냐?” 호통 들어

‘네가 기자냐’, 책 제목 역시 예사스런 사연은 아니다. 그의 체험과 다짐을 응축한 작명이다. 그가 기억하는 스토리-. 한 장관이 책임을 지고 자리를 물러나야 할 만한 충격적 사건이 터졌을 때, 기자가 회견석상에서 “장관은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용의가 있는가?”를 묻기 위해선 사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 같은 언론의 천국에서야 기자들의 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튀어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인습적으로 풍토가 다른 우리나라에선 그렇지가 못하다.

이연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당 차장으로으부터 눈물이 나오도록 호통을 맞은 일이 있다. 국방부에서, 장관이 인책 사임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국민에게 죄송하며, 장관으로서 응분의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장관에게 ‘모진 질문’을 하지 못한 채 회견은 끝났다.

전화로 짤막한 기사를 송고했다. 전화통에서 갑자기 사회부 데스크의 격한 호통이 떨어졌다. “이봐, 자네가 기자야, 이 정도 사안에, 장관에게 인책사임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 한번 못하고, 이 따위를 기사라고 보내고 있어!” “네가 기자냐?”, 그 섭섭하고 원통하게 들렸던 선배의 호통은 날이 갈수록 가슴에 새겨졌다. 어렵거나 흔들릴 때마다 그를 때리는 채찍으로 작용했다.

이연교, 그가 언론계와 결별한 것은 1980년 2월이다. 나는 그로부터 한 달 뒤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의 전설 같은 스토리를 듣곤, 그의 결기와 집념에 사무치게 감동했다. 언론학도에게 그의 얘기를 전할 때면, 감정이입 상태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목메어 하곤 했다. 그 40년 전의 전설을 지금 기억하는 이유는 뭔가? 최근 법무장관의 ‘기자 없는 홀로 회견’과 국방장관의 ‘질문 거부 회견’ 때문이다.

국방장관은 며칠 전, 북한 목선의 ‘노크 귀순’에 사과했다. 국방부는 사건진상 은폐논란에 휩싸였고 장관 퇴진요구도 나온 상태였다. 대통령의 지시도 엄중했다. 경계에 실패하고 국민의 불신을 산 데 대한 질책이다. 장관은 혼자 1분 여 사과문을 읽곤, 기자들의 일문일답 없이, 바로 퇴장했다. 논란에의 해명, 책임에의 인식은 전무했다. 그는 진실을 밝힐 용기,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을까. 사임용의를 묻는 질문이 두려웠을까.

두 장관의 ‘질문 없는 회견’, 국민과 소통할 뜻 없는 정부?

법무장관의 ‘나 홀로 기자회견’은 어떤가. 그의 회견에, 기자는 없었다. 기자단이 기자회견을 보이콧한 것이다. 장관이 입장문만 발표하고 질의응답은 받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한 탓이다. 장관은 기자단의 보이콧 의사를 전달받곤 “그래도 강행하겠다”며, 텅 빈 기자실에서, 홀로, 8분간 입장문을 읽고 퇴장했다. 이건 실화인가, 코미디인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의 텅 빈 브리핑실에서 과거사 진상조사 활동의 종료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법무부 출입 기자들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장관방침에 항의, 브리핑을 보이콧했다(사진: 더팩트 제공).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의 텅 빈 브리핑실에서 기자 없는 나홀로 회견을 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 기자들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장관방침에 항의, 브리핑을 보이콧했다(사진: 더팩트 제공).

한국기자협회는 입장을 표명했다. 기자회견의 핵심은 질의응답이라는 것, 장관의 태도는 기자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질문은 기자의 권리이자 본분이며, 기자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것은 공직자의 의무라는 것이다. 기협은 전선을 확대했다. 이 정권의 대언론 태도를 주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기자간담에서 “국내문제는 질문하지 말라”고 한 전례까지 들면서-.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기자회견은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언론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과 소통할 뜻이 없다는 선언에 다름 없다. ‘나는 내 할 말만 할 테니 너희는 그대로 받아 적으라’는 오만한 언론관(야당 논평), “그럴 거면 뭐 하러 기자회견을 하나?”, “국민 속이거나, 국민 설득할 자신 없는 그런 논리·자세로 장관 왜 하나”(댓글).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과 함께 갑시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청와대 홈피의 표어요 문맥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취임사의 약속이다. 언론은 권력자와 국민의 소통수단이며, 언론의 책무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나는 ‘힘 있는 분’들의 시선들이 참 궁금하다. 국민에게 약속한 대통령, 언론에 일가견을 가진 ·총리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이지 권위주의는 얼마나 참담하고 민주주의는 얼마나 소중한가. 이제 우리 권력도 국민의 감정이나 확신을 깔볼 순 없다. ‘네가 기자냐?’, 그 이연교의 가슴 속 채찍의 힘으로, 나는 묻고 싶다, 정부는 정말 (대통령 약속대로)국민 위에 군림하는 강한 권력 아닌, 국민을 섬기는 낮은 정부인가? 국민과 언론을 무시하고 깔 본 장관, 당신들은 정말 민주국가의 장관인가? (벼룩만한 낯짝이라도 있다면)인책사임할 용의는 없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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