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9] 위대한 편집국장의 찬란한 일대기: 저명언론의 세대교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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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9] 위대한 편집국장의 찬란한 일대기: 저명언론의 세대교체 물결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1.02.14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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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권위지 '워싱턴포스트(WP)'의 마틴 배런(Martin Baron) 편집국장이 2월말 퇴임한다. 취임 8년 만이다. '뉴욕타임스(NYT)'의 딘 바케이(Dean Baquet) 편집국장도 내년 정년을 맞아 은퇴를 준비 중이다. 역시 8년 만이다. 'LA타임스(LAT)' 노먼 펄스틴(Norman Pearlstine) 편집국장은 지난 12월 퇴임했다. '로이터통신' 스테판 아들러(Stephen Adler) 편집국장은 4월 퇴임한다.

미국 저명언론의 권위를 다져온 ‘위대한 편집국장’들이 물러나고 있다. 언론산업의 거대한 세대교체 물결이다. "WP, Reuters 및 LAT, 새 편집국장 찾다“-NYT는 최근 주요 언론 편집국장들의 퇴임 소식을 보도했다. 1940~50년대 출생한 ‘위대한 언론인’을 대체, 보다 젊은 ‘최고의 언론인’이 뒤를 이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런-바케이-아들러-펄스타인 세대는 두루, 격동의 시기에 언론산업을 이끌었다. 독자들이 인쇄매체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는 역사적 전환기다. 그들은 소속 신문의 진실보도 전통을 다지며, 도널드 트럼프의 언론자유 침해 및 민주주의 훼손에 맞서 싸운 이력도 갖고 있다. “우리의 의무는 진실을 찾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함께 되뇌이던 사람들이다..


1. WP 마틴 배런 편집국장은 2월 28일 퇴임한다. WP는 한 달여 전, 배런 국장이 동료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은퇴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배런은 "WP의 용기와 독립성에 경의를 보낸다"면서, "WP의 구성원들은 최고의 저널리즘을 전달해왔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끝없는 공격에 단호히 맞서고 있다"고 감사했다.

그는 "WP에 도착한 순간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하려 노력했다"면서, "45년 동안 쉼없이 달려오다 이제 66세를 맞아 새롭게 나아가려 한다"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24시간, 365일 연결되어 있는 업무특성상 활력을 많이 소진했다고,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언론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겠다고 덧붙였다.

배런 국장,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6)의 실존인물로 유명하다. 이 영화, 2001년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의 탐사보도팀 기자들이 수십 년 동안 일어난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과 조직적 은폐를 불굴의 의지와 집요한 취재를 통해 보도한 과정을 다룬 명작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포스터(왼쪽)와 실제 인물 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당시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사진; WP 온라인판).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포스터(왼쪽)와 실제 인물 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당시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사진: WP 온라인판).
배런 편집국장이 퇴임을 발표한 뒤, 편집국 동료들과 그간의 소회를 나누고 있다(사진; WP 온라인판).
배런 편집국장이 퇴임을 발표한 뒤, 편집국 동료들과 그간의 소회를 나누고 있다(사진: WP 온라인판).

당시 배런 국장은 지역면에 실린 작은 기사와 칼럼에 등장한 사제의 성추행 의혹을 자세히 파헤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스포트라이트 팀에 심층취재를 지시했다. “신문이 제 기능을 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 영화 속 배런 편집국장의 대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 팀의 취재기자들이지만, 중요한 국면에서 결정적 판단을 한 사람은 편집국장 배런이다. 이 보도는 퓰리처상을,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WP는 도널드 트럼프 취임 이후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트럼프는 종종 WP를 ‘가짜뉴스’, ‘국민의 적’이라 공격했다. 트럼프 4년간, 배런은 주류언론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했다. “우리는 정부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맡은 책무를 수행할 뿐”이라며, WP 저널리즘의 세 가지 중요원칙을 강조했다. 공정-정확-진실 보도다. 기자들은 그를 “중요한 보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보도하게 해 주는 편집국장”으로 기억한다.


2. “대통령에게 어려운 질문 던지는 게 언론의 역할”-NYT 딘 바케이 편집국장의 말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과 함께 보인 언론에의 적대적 태도를 보곤 “앞으로 2년여 언론기관들에 역사적 시대가 될 것”을 경고했다. “저널리즘은 진실을 정확하게 추적해야 한다”, “겁내거나 호의를 갖지 말고 독립적으로, 정권에 대해 과감하게 보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바케이, 그는 2014년 NYT 사상 첫 흑인 편집국장에 올랐다. "딘은 저널리즘 최고의 편집자이며, 스스로 그 일이 매우 행복하다고 확신해 왔다“-NYT 발행인의 아들 A. 슐츠버그의 찬탄이다. 그와 딘은 NYT 편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NYT 딘 바케이 편집국장은 '저널리즘을 통한 진실의 정확한 추적'을 주도하다, 정년을 앞두고 퇴임 준비 중이다(사진; NYT 사옥 앞, NYT 온라인판).
NYT 딘 바케이 편집국장은 '저널리즘을 통한 진실의 정확한 추적'을 주도하다, 정년을 앞두고 퇴임 준비 중이다(사진: NYT 사옥 앞, NYT 온라인판).

바케이 국장은 LAT에서 편집국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NYT 대변인은, 그의 아들이 그곳에 살고 있으며, 그도 은퇴 후 그 곳에 정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케이 국장은 “신문산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며, 트럼프 집권 이후 NYT의 디지털(온라인) 구독자가 급증, 사세가 크게 팽창했다고 설명했다.


3. NYT와 WP는 2018년 퓰리처상(보도부문)을 공동 수상했다. 트럼프가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던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다. NYT는 트럼프가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에게, 마이클 플린 전 NSC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보도로, WP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2016년 대선 기간에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와 접촉했다는 보도로 수상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연계를 부인하며 두 신문을 `망해 가는 가짜 언론`이라고 비난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보도가 두 신문의 명성을 드높인 것이다. 딘 바케이 NYT 편집국장은 편집국 기자 앞에서, "이 상은 두 위대한 신문사가 워싱턴의 혼돈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날마다 벌이는 경쟁에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NYT·WP는 트럼프의 코로나19 브리핑에 기자들을 보내지 않았다. 일종의 선거유세장으로 변해버려 뉴스거리가 없는 대통령 브리핑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브리핑에 저명언론이 기자를 보내지 않는 것도, 그 브리핑에서 뉴스거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4. LAT 노만 펄스틴 편집국장은 고령으로 퇴임했다. LAT 패트릭 순시옹 회장은 펄스틴(78세)이 편집국장에서 자문 역할로 옮겼음을 알렸다. 펄스틴은 전 소유주의 경영실패에 따른 혼란 속에서 편집국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시대흐름에 부응한 디지털화를 주도, 디지털 구독자를 2배 이상 늘렸고, 기자들의 퓰리처상 수상을 끌어냈다.

순시옹 회장은 펄스틴의 기여를 극찬했다. 위대한 LAT를 신속하게 부활시켜야 했을 때 그의 저널리스트 겸 경영간부로서의 경험은 매우 귀중했다는 것, 그의 재임기간 동안 LAT는 훨씬 강한 조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LAT 사옥 앞에 함께 선, 패트릭 순시옹 회장과 펄스틴 편집국장(사진: LAT).
LAT 사옥 앞에 함께 선, 패트릭 순시옹 회장(왼쪽)과 펄스틴 편집국장(사진: LAT).

세계 최대 통신사 로이터의 스테판 아들러 편집국장은 4월 은퇴한다. 재임 10년 만의 일이다. 아들러는 “로이터 편집국을 이끈 것은 영광이자 경력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동료에게 감사했다. 그는 자부했다, “우리는 속도, 정확성, 공정성 및 통찰력으로 뉴스를 보도했다.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했으며, 사실적이고 두려움 없는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로이터 사장 스티브 하스커는 아들러의 공헌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독립적 저널리즘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옹호자이자 언론자유의 챔피언이다, 그의 엄청난 공헌에 감사한다···. 아들러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국장이었으며, 언론자유 기자위원회 위원장, 언론인 보호위원회 위원이다.


5. 미국은 대중신문의 발전을 꽃피운 역사에, ‘명(名) 편집국장’의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우선 편집국장의 평균수명이 없다. 그 자리는 결코 밥그릇 수대로 돌아가며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번 발탁되면 10년을 넘기기도 예사다, 신문의 개성은 곧 국장의 개성과 통한다. WP의 벤 브래들리 국장이 좋은 본보기다. 그는 편집국장 26년의 최장수 기록을 세운 뒤 70세로 은퇴했다.

그가 편집국장을 맡을 1965년, WP는 보잘 것 없는 지방지였다. 브래들리는 그런 신문을 NYT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 권위지로 키워냈다. 그의 WP 시절을, 기자들은 3단계로 구분한다. 제1기는 편집국에 개혁의 바람을 집어넣던 초기 시절이다. 이 시기를 그들은 ‘창조적 긴장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기사를 뜯어고치고 지면을 개혁하며 우수한 기자를 충원하느라, 그는 밤낮없이 뛰었다.

제2기는 신문이 목표한 궤도에 진입한 이후 그 명성과 책임에 걸맞은 도전의 시절이다. 이 도전에 성공해 세계를 경악시킨 것이 ‘워터게이트사건’이다. 어느 신문도, 심지어 NYT도 거들떠보지 않던 워터게이트사건을 WP만이 물고 늘어졌다. 닉슨을 사임시키기까지, WP와 브래들리가 보여준 용기와 보도정신은 세계 언론사에 찬란하다.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8)'를 보라. ‘세상을 속인 완벽한 거짓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폭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이다. 미 국방부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 주요내용을 폭로한 특종은 NYT가 한발 앞서 했지만, 발행금지 조치를 당한 NYT 편에서 WP가 그 후속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브래들리+그레이엄
'워터게이트 사건'과 '국방성 문서' 보도를 통해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WP를 세계적 권위지로 키워낸 캐서린 그레이임 회장과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사진: 구글 이미지).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발행인에게 말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결국 WP는 숱한 위협을 무릅쓰고 보도를 강행한다. 결과적으로, 전국 수많은 신문들이 WP를 지지하며 ‘펜타곤 페이퍼’ 폭로 기사에 동참했다. WP가 지역신문에서 단숨에 전국구 신문으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제3기는 그의 은퇴 전 마지막 7년, 승계 기간이다. 그는 이 시기에 젊은 중견기자 중심의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대임을 맡길 후계자를 키웠다. 사주와의 공동작전이다. 그렇게 해서 49세의 신예가 후임 국장으로 등장했다. 그는 편집국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운영하면서도 참견 안 하는 척 전체를 파악했다. 자신의 판단과 능력을 믿는 만큼 부하들도 전적으로 신뢰했다.

브래들리는 막강한 힘(Power)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힘을 신문 만드는 데만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힘은 있어도 없는 것 같고 권위(Authority)는 없는 것 같으면서 막강했다고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헨(Richard Cohen)은 회고하고 있다.

편집국장은 한 신문의 상징이다. 그 신문의 개성과 품격을 좌우하는 신문제작의 사령탑이다. 그 다양하고 개성적인 기자들을 지휘하며 기자집단의 조직력을 극대화시켜가는 편집국의 최고책임자다. 당당한 위세와 빛나는 영예를 겸비한 자리, 그 편집국장은 정녕 기자에겐 꿈이요 꽃이며 종착역이다.

NYT-WP-Boston Globe-LAT 같은 저명신문의 편집국장, 아무나 맡을 수는 없다. 그런 만큼, 그 편집국장이 물러나는 것도, 후임을 찾는 것도 미국사회의 주요 관심사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 후임자를 선정하는 과정도 예사 까다로운 게 아니다. 사주와 편집국장, 그들은 내·외부를 대상으로, 제2의 브래들리, 배런, 바케이를 찾으려 몇 달째 고심하고 있다. 저명언론의 권위와 전통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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