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변화·사회갈등 속 미디어의 역할·위상? 그 도전적 질문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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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변화·사회갈등 속 미디어의 역할·위상? 그 도전적 질문에 답하다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3.3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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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정태철 지음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

‘한국언론의 위기’라고들 한다. 그 한국언론의 위기는 언론환경의 격변에 따른 전통매체의 산업적 위기나, 언론지형의 급변에 따른 언론소비형태의 변화에 따른 것뿐은 아니다. 한국언론은 사회갈등과 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진영논리에 뒤엉겨, 언론의 존립바탕이라 할 ‘신뢰’를 잃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며 스스로 존립기반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한국언론이 사회구조 속에서 갖는 본질적 위기상 속에서도, 한국 사회변화 및 사회갈등 속 언론의 역할을 구명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현대 사회갈등과 사회변화는 미디어와 굳게 연동되어 있다는 것, 오늘날 미디어는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 뚜렷한 ‘사회역사적 특수성(sociohistorical particularity)’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천착한 연구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갖는, 또는 가져야 할 의문은 분명하다. 과연 한국 사회변화의 동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켰을까? 미디어는 정말 한국 사회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했을까? 미디어는 한국 사회변화와 어떤 관계인가? 최근 미디어는 전통적 신문·방송에서부터 인터넷, SNS, 모바일,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사람들의 사고, 행동, 문화에 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차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와 사회변화의 관계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런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 나왔다.

사진설명
정태철 교수(경성대 신문방송학과)의 신작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는 한국 전통적 미디어의 역사는 물론, 한국 사회갈등 및 사회변화 과정 속 미디어의 역할과 위상을 규명한 귀한 저작이다(사진; 표지 스캔).

정태철 교수(경성대 신문방송학과)의 신작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경성대 출판부, 2020)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적 미디어 역사는 물론,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사회갈등과 사회변화를 설명하며, 그 과정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위상을 규명하고 있다.

저자는 1985년 미국 미주리대학교 저널리즘 스쿨로 유학길에 올랐을 때 가슴에 품은 연구주제 ‘뉴스란 무엇인가’로부터 화두로 삼고 있다. 그 질문을 발전시켜 박사학위 논문, “The Media, Social Conflict and Change in South Korea: A Critical Analysis"를 썼고, 한국의 뉴스통제와 사회갈등, 그리고 사회변화와의 관계라는 거시적 관점의 연구를 계속해왔다. 1990년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자리잡은 지 어언 30년,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사회상황은 급변해갔고, 저자의 ‘미디어의 역사’ 강의록도 날로 풍성해졌다. 이 책은 ‘한국언론사’, ‘세계언론사’, ‘언론 역사와 철학’ 같은, 그 학부·대학원 과목 강의록의 결정판이다.

이 책의 주요 주장 겸 결론을 요약하면-

1. 한국의 사회갈등과 사회변화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한다(구한말-1980년대).

헤겔의 변증법을 한국 근현대사에 적용해 보자. 한국 사회는 고대부터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구조가 있었다. 이게 한국 역사의 ‘정립’이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의 신분세습제, 전제군주제, 일본의 식민지배, 그 후의 권위주의 독재, 군부 독재, 국가중심 지배구조(군부-기업-언론 3자동맹) 등이 있었다. 이것들이 곧 지배계급들의 지배구조였으며, 시대가 변해도 지배계급은 지속적으로 지배구조를 재생산해서 민중을 지배했다.

그러나 한국 역사는 민초들이 시대별 지배계급이 만든 지배구조에 꾸준히 저항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민중들은 지배구조(정립)를 부정하는 저항행동(반정립)을 실천했다. 그것들이 곧 구한말 동학, 농민전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정부 수립 후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언론 자유 투쟁, 6월 민주화운동이었다. 그 어떤 지배구조도 한국 민중의 저항의식을 잠재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배구조(정립)’에 대한 ‘저항의식(반정립)’의 결과가 곧 ‘산업화와 민주화(종합)’였다. 다시 정리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곧 구조적 억압(정립) → 저항의식(반정립) → 종합의 산물이었다.

2)민주화 이후 한국 미디어는 사회갈등과 사회변화를 이끌려는 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 쟁탈 공간이 되고 있다(1980년대-1990년대).

노태우 시대가 들어서자, 국내 진보 정치인들은 그람시 이론처럼 사회 각계에서 진지전을 연상케 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학교는 전교조(노태우 시대에 결성됨), 회사는 노동조합(노태우 시대부터 노동3권이 보장됨), 종교는 진보 종교단체(박정희 시대인 1974년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결성됨), 언론은 노동조합 내지는 진보 언론인(한겨레, 민언협 등), 정당은 진보 정당 창당(NL과 PD계열이 서서히 제도권 정당에 참여하기 시작함), 법원은 진보 판사들 모임 활성화(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결성됨)가 유기적 지식인이 되어, 각자 진지전(직장에서의 설득작업)을 벌이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자발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따라오도록 하는) 행동에 착수했다. 보수 진영은 학교, 언론, 종교, 법원 등에서 기득권 또는 주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헤게모니를 이미 얻고 있다고 보고 진보 진영의 진지전에 소극적으로 방어했고, 진보 진영은 보수가 장악한 시민들의 헤게모니를 빼앗으려고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의하면, 특히 언론은 시민들의 헤게모니를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한국에서 민주화와 동시에 신문이 등록제로 바뀌고, 한겨레신문 등 진보 매체가 등장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기존 미디어를 장악하거나 새로운 미디어를 신설해서 결국 국민들로부터 헤게모니를 쥐려는 설득 싸움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디어는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으로부터 자발적인 동의를 얻으려는 헤게모니 쟁탈 공간, 쟁탈 장(場)이 되고 있다. SNS, 공중파, 인터넷신문, 유튜브 등으로 번지고 있는 보수/진보의 이념 대결도 결국은 전방위적으로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헤게모니 쟁탈전의 연장이다.

3)헤게모니 쟁탈 싸움이 이성적, 지적, 논리적이 아니고 낭만적 대중주의가 되고 있다. 제도만 민주주의고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민주적이지 않은 후기 권위주의 사회가 되고 있다(1990년대-2000년대).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게이(Robert Gay)는 이런 현상을 ‘후기 권위주의(post-authoritarianism)’라고 불렀다. 후기 권위주의는 비록 한 나라의 법과 제도는 민주화되었지만, 국민 의식과 정치인들의 능력이 민주화된 시스템을 운영할 수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다. 후기 권위주의는 곧 민주화된 제도와 이를 운영할 사람들 능력의 갭(gap)을 말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은 급속한 민주화를 이뤄냈다. 군부에서 문민정부로의 평화적 전환,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물론, 2003년 보수에서 진보로의 정권교체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 민주화는 전 세계 정치학 교과서에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도 후기 권위주의의 덫에 빠진 듯하다. 한국 역시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과, 정치적 반대 세력을 대하는 정부의 방법이 서툴다. 한국 민주주의 역시 서툴고 햇병아리 같은 처지에 놓였다. 한국 미디어도 언론 자유를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상업적 이윤을 취하고 정치적 주장을 펴는 데 사용해 왔다. 한국이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과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4)후기 권위주의가 계속되면서 정치세력은 미디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데 치중하고 있다. 즉, 사회의 미디어화(mediatization), 이미지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2000년대-2020년대)

책 안 읽고, 영화 많이 보고, 성형 많이 하는 나라의 특징은 바로 인성보다는 외모, 내용보다는 형식, 이상보다는 현실, 본질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하는 국가적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 지지자들은 연예인 팬클럽처럼 ‘닥치고’ 환호하는 팬덤문화를 닮았다. 정치인들은 정책과 이념으로 국민을 설득해서 표를 얻을 필요가 없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이미지 ‘코디’를 통해서 열성 팬을 관리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성적 리더쉽, 자발적 존경심 같은 지적인 요소는 선거에서 의미가 없다. 미디어를 타고 흐르는 이미지가 대한민국의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미디어 결정론이 주효하고 있는 미디어 선진국, 이미지 선도국가가 됐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며, 고교 일반사회나 정치경제를 단편적으로(또는 편파적으로) 배운 대학생들이 한국 정치와 미디어가 사회갈등과 사회변화 속에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사회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의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미디어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대학생은 물론,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나 일반인도 마치 부담 없는 수필집을 읽는 것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된 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그 매력만큼, 미디어의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나 한국 사회변화 속 미디어의 역할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귀한 저작이다.

저자 소개

저자 정태철은 1956년 대전 출생으로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7년과 2002년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했다. 그동안 부산경남언론학회 회장(1999), 한국언론학회 부회장(2012)을 역임했고, 경성대 대외협력처장(2006-2008), 대학원장(2013-2015)을 지냈으며, 현 법정대학장(2019-)이다.

2013년 네이버 뉴스검색 제휴사인 인터넷신문 ‘시빅뉴스’의 발행인 겸 대표로 창간을 주도했고 현재도 운영 중이다. 이 신문은, 의대의 부속병원처럼, 경성대 신방과의 부속언론사로서 학생기자 실습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언론학회 제정 희관언론상(번역 부문, 2004), 부울경언론학회 및 영남 四社 문화방송 제정 연구공로상(2009),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활용 공모전 전국 최우수상(2010), 경성대학교 교육 우수교수상(2011)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미국신문 연구(1999)>, <신문의 시각혁명과 모듈러 디자인(2009)>,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2020)>, 역서로는 <이미지와 환상(2004)>이 있다.

경성대학교 출판부 발간,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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