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은 죽어가는가? 최근 ‘조국 보도’를 보며 차마 망설였던 도발적 질문을 새삼 되새긴다. 한국언론은 정녕 민주국가의 존립을 위한 기초로서, 사회통합·여론형성에 제 몫을 다하고 있는가. 언론의 존립바탕이라 할 그 진실·공정을 추구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가. 한국언론은 존망을 다툴 위기 앞에서 최선의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가.

한국언론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언론환경의 격변에 따른 전통매체의 산업적 위기를 넘어, 언론지형의 급변에 따른 언론소비 형태의 변화까지, 한국언론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지 오래다. 그 뿐인가. 한국언론은 최근 권력의 언론자유 침해 책동에 시나브로 시달리며, 그야말로 내부-외부-권력의 ‘삼각파도’에 휩쓸린 국면이다.
한국언론, 진영논리 빠져 신뢰 잃고 사회갈등 증폭
한국언론의 위기, 그 뿌리는 분명하다. 오늘 한국언론은 사회갈등·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진영논리와 자사이기주의에 침몰하고 있다. 언론의 존립바탕이라 할 ‘신뢰’를 잃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오태규, 한국언론의 품격). 한국언론이 진영논리와 자사이기주의에 침몰했다? 언론의 자사이기주의는 참 갋지도 못할 인습이지만, 그 강고한 진영논리는 끝내 언론의 ‘사망선고’를 조롱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언론이 사망했나요?” 최근 한 포털에 오른 질문이다. “한국언론 사망한 거 아닙니다. 조국이 잘못한 겁니다”, 한 답변 제목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지지자들이 특정 키워드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며, 실검순위를 장악할 때였다. 그 키워드의 하나, ‘한국언론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실검대전’의 주요 키워드는 ‘가짜뉴스아웃’, ‘한국기자질문수준’, ‘근조한국언론’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언론을 조롱·매도하며 특정진영의 일사불란을 과시했다. 한국사회의 진영대결·국민분열을 부추긴 그 ‘실검대전’은 우리의 사회갈등과 진영논리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단적인 사례이다.
뉴스 사회학의 시조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설파했다. “뉴스란 ‘사회적 모든 상황의 반영 아닌 눈에 띄는 측면에 대한 보고”라고-. 언론은 특정한 독자·시청자를 위해 시각·지침을 바꿀 순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 저널리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통적 과제가 있다. 정확성·공정성이다. 특히 언론이 공정성을 의심받는 순간, ’언론‘은 이미 ’언론‘일 수 없다. ’공정‘ 없이는 ’정확‘을 담보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현대 저널리즘 전통적 과제, 정확성·공정성 찾기
언론은 그 ‘공정’을 어떻게 견지하는가? 특유의 이념·지침을 갖더라도, 사회구조에 대한 입장·태도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른 바 ‘정당한 정파성’이다. 진보적 입장을 취하려면 특정 정당(진영)을 항상 지지하기 보다는, 진보가 추구하는 이념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노조관계를 다루더라도, 항상 노조의 주장을 지지하기 보다는. 평등에 어긋나는 일자리 세습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이 정파적 경향에 빠져 기본적 사실관계를 게을리 한다면, 그건 ‘정당하지 못한 정파성’에 해당한다. 저널리즘의 진실추구 원칙을 거스르며 불공정의 늪에 침몰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언론이 안팎에서 절감하고 있는 ‘공정’에의 위기는 바로 이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친정부·여당 성향을 보여온 매체에서 노골적 권력 감싸기 보도에 대한 자성이 나오는 것도 그 반증이다.
“'조국 감싸기'에… 한겨레 이어 KBS도 내부반발”, 최근 기사제목이다. 조국 의혹검증 소홀에 대한 한겨레신문 기자들의 내부비판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기자들의 편집국장단 사퇴요구가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다. 한겨레는 ‘조국 비판’ 기자칼럼을 출고 4분 만에 삭제한 후폭풍에 이어, 권력비판 보도가 무디어졌다는 안팎의 비판을 듣고 있다.
KBS도 마찬가지. 조국 검증을 위한 시사 프로그램의 일방적 삭제, 과도한 데스킹 등에 대한 반발 열기가 높다. KBS, “언론의 공정성보다는 현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내부비판이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의 위기 역시, 진영논리에의 침몰-편향에 따른 공정성 상실-국민의 신뢰상실-시청률 급락의 궤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비판 성향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는 이 부분을 짚고 있다. 조국 비리·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우선 진영논리를 접고 조국 사태와 현 정권의 실체를 규명·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권익위는 “언론들은 자기 진영 논리만 주장, 대변, 확대했다면서, “조선일보는 청와대·조국·민주당 비판에 갇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의·공정·윤리 붕괴 앞에 진영논리... ‘편 들기’ 언론?
한국언론, 이제라도 되돌아보라. ‘조국 사태’의 본질은 뭔가? 법무부장관(후보자)의 도덕성, 정의-공정-윤리의 붕괴, 민주주의 원칙을 넘어서는 초법적 권력행사(고려대 최장집) 문제 아닌가.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이 사태를 ‘진영간 전쟁’으로 본 청와대·민주당의 전략적 오판을 걱정한다. 언론이 더러, 끝없는 진영논리에 침몰, 본질을 외면하며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우리가 본 대로다.
이번의 '사회적 내전’을 부추긴 그 진영논리는 또 뭔가? 사태의 본질을 보는 건 지식의 크기와 상관없다. 선악의 이분법에 빠지면 본질이 안보인다. ‘진영’은 모든 걸 삼키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 진보좌파의 선과 정의의 독점, 허위적 오만·위선적 기만에 대한 사회적 항거과정이다(정치 컨설턴트 박동원). 한국언론은 더러, 이 본질을 외면하고 진영 편들기에 탐닉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대신 갖은 논리로 권력을 두둔한다? 참 볼썽사납지 않나?
한국언론, 오늘의 위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것인가? 저널리즘의 경계 밖에서 진영논리를 대변하며 자멸할 것인가? 국민갈등의 블랙홀, 그 법무장관은 ‘가짜뉴스’ 규제를 공공연히 주장한다. 공적 인물의 수사과정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공보준칙 개정을 당당하게 추진한다.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분별없는 도전, 언론의 존립근거에 대한 결정적 위협이다. 한국언론은 또, 진영논리를 생각할 것인가?
공정성 회복·언론신뢰 찾기... ‘최고의 저널리즘’ 추구를
한국언론, 저널리즘의 경계 안으로 복귀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으며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공정성,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공정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BBC의 캐치 프레이즈를 보라. "우리는 편들지 않는다(We don’t take a side). 세계적 권위지 WP의 주문 역시 결은 같다,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공정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의 위기, 돌파구는 있다. 이른 바, ‘최고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것이다. 신문의 종말을 걱정하는 시대에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가 거둔 성공을 보라. ‘세계뉴스미디어총회(·World News Media Congress) 2019’의 결론도 그렇다. “꾸준히 혁신하되, 결국 핵심은 최고의 저널리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언론은 무엇보다 저널리즘의 전통적 과제, 공정성·정확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한국언론, 살려 들면 살 것이고, 죽으려 들면 죽을 것이다. 그 선택이 무엇일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