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들이 ‘언론의 자유’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권력의 숱한 언론자유 침해행위에 입을 닫고 있다. 동료 기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인신 구속을 당해도 모른 체하고 있다. 국제 언론자유단체가 수감 중인 한국 기자의 석방을 요구해도 남의 일인 양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다.
권력이 권력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고, 언론대상 소송의 적잖은 부분이 고위 공직자와 관련 있음을, 외국 언론이 꼬집어 보도한다. 문재인 정부가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을 못 참는다”는 혹독한 평가, 오로지 외국 언론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정의-공정이 날로 무너지며 드러나야 할 진실이 두꺼운 구름에 가려도, 이즘 우리 언론은 직설을 꺼린다. 뉴스의 온라인 유통을 온통 포털에 맡기면서, 권력의 서슬 퍼런 포탈뉴스 통제에도 무력하다. “국민은 천부적 자유와 행복의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100세 원로’ 김형석 선생의 고언(苦言)은 그저 외롭다.
권력의 언론자유 침해입법 시도에, 시민단체가 반발해도, 기자단체는 의견 내기를 꺼리고 있다. 옛 상소(上疏)의 형식을 빌려 시국(時局)을 직설적으로 논박하는 ‘먼지 같은’ 30대 평범한 가장이며, ‘경상도 백두(白頭)’ 김모(金某)를 보는가. 그들은 그저, 기자들의 취재대상일 뿐인가?
하기야, 기자들이 권력감시며 현실비판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기자세계의 문제만을 말할 수 있겠나. 그러나, 당장의 기자 구속사례는 그리 간단한 일일 수 없다. 그건 한국의 언론자유 역사에 획기적 분기점일 수 있을 것이다. 머잖아 기자들은 저널리즘을 추구할 ‘적극적 취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1.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최근 내린 문재인 정부에의 평가다.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South Korea’s liberal rulers unleash their inner authoritarians)라는 칼럼을 통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과거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등을 겪으며 자유를 위해 저항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 따라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더욱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반대에 관대할 것을 약속했다고 되새겼다. 그리고, 평가했다, 이런 좋은 의도는 시들어가고 있다고-.
이 매체는 한국의 언론상황을 참, 자세하게 주목했다. 정부 반대의견에 건설적 토론보단 소송으로 대응한다는 것, 고위공직자 관련 명예훼손 소송이 박근혜 정부 때보다 많다는 것.... 대통령 부부의 잦은 해외순방을 비판한 칼럼('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과 관련, 청와대가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예도 들었다.
우파 유튜버 우종창 씨의 구속 수감사례도 거론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썼다가 고발당한 임미리 교수의 예,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반대했다 비영리단체(NGO)의 지위를 상실한 탈북자단체의 예도 주목했다.
매체는 문재인 정부의 현실인식을 비판하며 세종대왕까지 소환했다. 문재인 정부가 세종대왕의 말을 잘 생각해보면 좋으리라는 것이다. 그 말,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
2. 문재인 정부가 비판을 싫어하는 것은 일상적이다. 대통령의 취임 때 약속을 외면한 채, 그 비판을 막으려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가시적이다. ‘가짜뉴스’ 규제에 매달리는 권력의 그 집요함을 보라. 그 ‘적극적 언론통제’ 정책 속,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보 왜곡·통제의 양상들을 보라.
그 권력은 권력비판을 사명으로 삼는 언론의 비판을 받지 않으려 한다.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고발·의혹 보도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법의 지배’, 그 실질적 법치 대신, ‘법에 의한 지배’, 그 형식적 법치를 추구하느라 바쁘다. 언론자유의 헌법적 가치에도 둔감한가? 기자들이 누려온 언론자유의 영역을 옥죄고 있다.
국제 언론자유단체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최근 수감 중인 언론인 우종창 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우 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세드리크 알비아니 RSF 동아시아국장은 "RSF는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법이 자유를 박탈하는 형으로 명예훼손을 처벌한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주장은 뚜렷하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기자를 구속하는 것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인은 논란이 많은 경우라도 사법적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고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언론인에 대한 사법적 탄압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미디어오늘).
성명서는 보수 언론매체 '미디어워치' 기자 4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최대 2년 징역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언급했다. 미디어워치 기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의 증거조작을 고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이번 RSF의 성명서를 인용 보도하며, 이 ‘전례 없는’ 사례 부분은 보도에서 누락했다(미디어워치).
‘채널A 사건’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도 그렇다. 그는 구속재판을 받고 있다. 취재원에게 특정인의 비위 정보를 알려달라고 강요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다. 그 수사, 온 사회를 뜨겁게 달군 논란거리다. 권언유착?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이며 검찰의 생사를 건 수사에도 그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권언유착?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그의 구속과정은 논쟁거리다. 영장 발부 사유, ‘언론과 검찰의 신뢰회복’이라는 표현을 보라. 이 부분, ‘검언유착’ 프레임에 바탕했으나, 실제 기소-공판과정에선 실체가 없다. 공영방송 KBS가 ‘검언유착’ 보도를 했다, 하루 만에 사과방송을 한 사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숱한 파문을 보라.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한 것은 또 어떤가?
하기야, 대통령 비판 전단을 뿌렸다고, 30대 청년을 ’대통령 모욕‘으로 10개월째 수사하는 나라다.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을 ‘건조물 침입’ 혐의로 유죄 선고를 하는 나라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JTBC ‘썰전’에서 대답했다, ’대통령이 됐을 때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는 질문에, ’참아야죠.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대통령은 최근에도 강조했다,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라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 비판 전단을 뿌렸다고 10개월여 수사를 받는다? 휴대전화를 석 달간 압수당하고 경찰에 10차례나 출석해 추궁을 당한다? 모욕죄는 친고죄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정말 그 청년을 고소하며 처벌을 요구했나?(강찬호, 대통령 비판 전단 뿌린 30대 청년 ‘죽음 같은 10개월’).
3. 그러나, 언론취재 행위와 관련, 기자를 구속하는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주로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사안이며, 설령 명예를 훼손했다 하더라도 보도책임을 묻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은 언론보도 과정의 면책사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생각할 때, 개인의 명예와 인격권 보호를 이유로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할 순 없다. 이게 헌법정신이다. 지난 시절 미국의 찰스 휴즈 대법원장은 수정헌법 초안자 제임스 매디슨의 말을 인용, 현대사회에서의 언론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정부의 비대화 속에서 무책임한 공직자의, 국민의 생명·재산에 대한 위협은 용감한 언론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는 것, 일부 무책임·부도덕한 언론인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남용된다고 해서,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위축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법률체계는 명예훼손 행위에 민·형사상 책임을 함께 규정하되, 특별한 경우 아니면 형사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공인의 명예훼손에 관한 한, 그 면책범위는 더 넓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과정에서 오직 ‘진실’만을 보도하라? 그건 거대한 권력 및 사회에의 감시, 그 고발·의혹 보도를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우리가 이 만큼의 법리를 확보하기는 쉬웠겠나. 법리는 분명하게 말한다. 공적 문제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 공인의 직무사항은 신랄하게 공격할 수 있다, 자유로운 토론에 오류는 불가피하고 그 오류는 토론을 위한 ‘숨 쉴 공간’이다, 그 ‘악의’ 없는 언론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차용범,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판결기준의 변화추세, 한국언론학보)..
그동안 언론보도 과정의 기자 처벌을 다룬 몇 가지 사례를 본다. 김영삼 정부 때의 일, ‘시사저널’ 기자의 ‘청와대 밀가루 북한 제공설’ 보도와 관련, 검찰은 ‘대형 오보=명예훼손‘의 관행에 따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가안보 침해‘를 들어, 검찰에 기자 구속을 청했다는 얘기가 자자했다). 서울지법 홍기종 판사는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보도 자유의 한계를 폭넓게 인정,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기각사유. “언론보도가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없어도, 공공의 진지한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인 만큼, 특정인의 명예가 훼손됐다 해도 보도자를 처벌하려는 권력의 개입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언론자유의 헌법적 권리를 바로 본 결정이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쇠고기 보도’에 따른 대법원의 판결례. 이 프로그램으로 농림수산부장관 등 명예를 훼손한 죄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에게, 대법원은 형사상 무죄를 확정했다. 농림수산부가 같은 사안에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제작진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과는 반대 결론이다.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명확했다. 방송내용에 부분적 허위사실이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형사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우너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직접 연결한 것이나, 한국인이 광우병에 특히 위험하다는 내용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RSF 같은 언론자유단체가 (언론보도 관련)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주장하거나, 그 규정에 따른 기자 구속을 반대하는 것은 그저 선언적 행동만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취재기자의 인신을 예사로 구속하며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행위에 한국의 기자단체들도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단체가 언론자유의 수호, 기자권익 옹호에 무심하다? 그 단체의 존재이유는 뭔가?
4. (사)오픈넷(이사장 황성기)은 최근,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언론중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 정청래·신현영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에 “국가검열·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대의견을 밝힌 것이다. 오픈넷,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법률가·학자 등 전문가 모임이다(미디어오늘).
반대 사유는 뚜렷하다. 문광부가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 등에 시정명령을 내리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건, 국가기관이 '허위'와 '진실'을 결정하는 것으로, 국가의 '검열'에 해당한다는 것, 반정부적 여론을 차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어 민주국가에서 금기시되는 규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언론의 보도 피해자가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 그건, 공적 인물들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보도에 대해 열람 차단청구를 남발, 인터넷 언론의 보도활동을 심대하게 저해·위축시킬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오픈넷은 이 법률 개정안들이 안고 있는 법리상 오류, 개념의 추상성 등도 일일이 지적했다. 헌법상 명확성 원칙 및 과잉금지원칙에 위반,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이 심대한 법안이라는 주장이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입법, 보도자를 처벌하려는 권력... 한 국가의 언론자유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지표다. 한 나라 기자의 구속에 작심하고 달려드는 국경없는 기자회처럼, 국제적 인권·언론 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 역시 해마다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산출하며 이런 부분을 평가한다. 우리, 기자를 형사처벌하는 권력의 개입,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입법 시도가 잇달아도, 기자는, 기자단체는 침묵 모드다.
한국 사회의 ‘100세 원로’ 김형석 교수는 고언한다, ‘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는 칼럼의 문맥은 그저 절절하다. 역사 심판의 권한을 어디서 받았는가고 묻고, 선의의 국민은 정부의 적이 아니라고 고언한다. ‘진인(塵人) 조은산’은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경상도 백두’ 김 모는 “이치와 의리를 따르는 천성은 사람이면 누구나 같다”며 만인(萬人)의 소리를 상소한다.
그럼, 권력을 감시하며 여론을 창달해야 할 언론은? 어느 시대인들, 언론의 책무는 권력을 견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며, 국민의 자유·권리를 지키는 데 헌신하는 것이다. 권력에의 두려움인가, 적전분열 속 전전긍긍인가?
당장,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병역관련 특혜·청탁' 의혹과 관련, 추 장관 측이 공익제보자 A 대령과 의혹을 보도한 SBS 및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보라. 최근 조국, 정의연 등의 언론 대상 명예훼손 제소도 잇따르고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언론에도 예외일 수 없다.
지금대로라면, 이 땅의 기자들은 나날이 권력 견제며 언론자유 수호에 필요한 고발·의혹 보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묻는다. 한 시대 기자는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이 지고 권력이 이긴다”는 비장함으로 글을 쓰는 기자는 누구인가. 권력의 오만함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기자는 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