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한국 고관들의 비재(非才)와 불민(不敏); 노영민·추미애·이정옥의 ’진담'(眞談)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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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한국 고관들의 비재(非才)와 불민(不敏); 노영민·추미애·이정옥의 ’진담'(眞談) 퍼레이드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0.11.0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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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그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모든 사물은 존재의 이유·가치를 갖는 것, 다시, 공직자의 가치를 의심하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가 어지러우며, 값진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온갖 혼란·갈등을 빚는 것은 공직자의 존재이유 내지 그 활동의 정당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 그들의 정책활동과 행정행위가 과연, 왜, 누굴 위해 행해지는가를보며, 가끔은 절망을 떨쳐낼 수 없다. 공권력을 남용하고 권력형 부정·비리를 저지르며 국가기강을 파괴하고 국민분열을 부른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가 ‘큰 집단’(국민)보다 ‘작은 집단’(진영)에 충성하다 끝내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재앙을 초래한다. 오늘도 겪는 한국사회의 병폐다.

‘‘민정수석 조국’의 비재(非才)와 불민(不敏)“-그의 퇴임 때 쓴 칼럼의 제목이다. ”업무수행에서 국민에게 심려 끼친 부분, 비재(非才)와 불민(不敏) 탓“이라는, 그의 변을 빌린 것이다. 조국의 직분을 잃은 ‘불민’과, 각계에서 비판받는 법학자의 ‘비재’를 지적했다. 무엇보다, 민심을 살펴 대통령에게 직언할 직분을 잊고, 직접 국민을 향해 정치를 한 그 ‘불민’이다.

칼럼은 그의 장래까지 경계했다. 그가 걸어온 논쟁적 기질과 그가 걸어갈 길에의 우려다. 그 결과는 우리가 겪은 대로, ‘조국 사태’다. 개인·가족의 범죄 혐의에 얽힌 인물이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가 민의에 몰려 물러난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마치 전장의 한복판으로 내몰며 한국사회를 ‘이념적 내전’으로 몰고 간 ‘불행한 역사’다.

고위 공직자의 비재와 불민은 오늘도 뚜렷하다. "(8·15)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 “월성원전 1호기 감사는 난센스”(노영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은 권력형 비리가 아니다”, “월성 수사는 정치인 총장의 정부 공격"(추미애), ”박원순·오거돈 성범죄 따른 보궐선거 비용은 국민 성 인지 감수성 집단학습 기회“(이정옥)···. 정부 고관들의 국회 공식발언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8·15)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발언, 국민분열 책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퇴요구를 받고 있다(사진; 국회 발언 장면, TV조선 캡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8·15)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발언, 국민분열 책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퇴요구를 받고 있다(사진: 국회 발언, TV조선 캡처)

선출직 공직자의 비재·불민도 예사롭지 않다. “월성원전 수사는 정치검찰의 국정 흔들기···당장 폭주를 멈추라”(이낙연), (예산을 빌미로 대볍관에게)“'의원님 살려주십시오' 해보세요"(박범계)···. 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이 발언들을 ‘순간적 실언’(失言)인가 했다. 그건 그들의 ‘확신적 진담’(眞談)이었다. 공직자의 비재와 불민을 말하는 이유다.

1.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8·15)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주장했다. 야권의 반발이 뜨겁다. 우리 국민을 총살한 북한엔 살인자라 단 한마디 못 하고, 우리 국민에게’ 증오의 좌표를 찍었다, 청와대가 국민을 ‘우리 편’과 ‘적’으로 철저히 구분한다, 그런 방식을 권력을 다지는 핵심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런 비판이다.

노영민은 “국가 에너지 정책을 경제성만으로 평가·감사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감사 결과를 비난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즉각 반발했다. 정책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고 수없이 말했다, 그 경제성 평가는 불합리했고 조기폐쇄 결정과정도 적합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독립성·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월성원전 수사를, “정치검찰의 폭주, 국정 흔들기”고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정치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인 만큼, 검찰은 위험하고 무모한 폭주를 당장 멈추라는 것이다. 원전 감축은 문재인 정부의 국가정책인 만큼, 이에 대한 의혹수사는 말라는 강압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시각도 같다. 월성원전 수사를 “권력형 비리가 아니고, 정부 정책결정 과정 문제”라고 강변했다.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편파·과잉 수사를 하는 것은 민주적 시스템을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만인에 평등해야 할 법 앞에 당당하다면(정부정책 결정 및 집행과정이 행정절차법 상 투명하고 적법했다면), 그 권력이 검찰수사를 두려워 할 이유는 뭔가?

그는 조국 자녀 입시 비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같은 의혹도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의혹,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에 따라. 국가기능이 수사하여 기소한 사건이다. 이건 어떤  난센스인가.

이정옥 여성가족부장관은 박원순·오거돈 성 추문 관련 보궐선거 비용을 “국민의 성인지 집단학습 기회"라고 평가했다. 당장 ‘여가부 폐지론’이 나왔다. 박원순 사건 ‘뒷북 대처’ 논란과 피해자에의 ‘고소인’ 표현 등 여가부의 존재이유부터 의심받고 있다. 오거돈 피해자는 ”그럼 나는 학습교재냐“고 반발했다.

2. 고위 공직자·선출직 공직자, 그들의 현실인식과 공개발언은 그 윤리와 직분에 적합한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서실을 지휘하는 비서실장이, 집회에 나온 국민을 ‘살인자’라고 격정적으로 비난한다? 국민의 천부적 인권, ‘집회의 자유’의 가치는 그처럼 가벼운가? 정말, 우리 국민을 총살한 북한에, 그런 항변이라도 해 본 적이 있나?

감사원의 월성원전 감사도 그렇다. 국가정책 사항은 감사하지 말라? 그럼 정책 집행이면 그저 법을 무시하며 행정절차를 위반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감사원은 행정부에 대한 독립적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헌법기관이다. 그 기관이 국회의 감사 요구에 따라 수행한 감사 결과를 거부한다? 그건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겠다는, 전제주의적 발상이다.

그러잖아도, 최근 이해관계의 충돌 우려에, 조정·타협이 필요한 현안일수록 입법절차를 우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우려는 높다(중앙, “툭하면 입법 패싱, 위헌논란 부르는 '시행령 정치'”). 정권의지를 담은 정책의 입법 없는 우회강행 논란, 법치주의 체계를 흔드는 위헌 논란이다.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는 어떤가? 그 수사, 검찰 고발과 감사원 자료에 따른 것이다. 감사원 감사결과와 수사 참고자료, 증거관계와 법리검토가 탄탄해 법원도 수긍했다. 행정부의 불법 여부에 관한 정당한 수사인 것이다. “주요정책 대한 사법적 수사는 헌법정신에 대한 도전”? 그 말이 정의롭고 공정한지,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역시 민주주의 규범을 위배한 ‘불민’을 걱정한다.

3. 미국 대선이 끝났다. 미국이 마침내 ‘트럼프 광풍’을 극복했다. 트럼프의 ‘비재·불민’ 탓도 컸고, 주류언론의 적극적 보도 공도 컸다.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 우리도 대단했다. 미국 언론이 경계한 '트럼프 광풍'은 굳이 미국의 문제만도 아니었을 터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대사 승리 대국민 연설에서, “이제는 치유할 때”라며, “단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사진; WP 온라인판 캡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승리 대국민 연설에서, “이제는 치유할 때”라며, “단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사진: WP 온라인판 캡처).

트럼프의 탓?의 패배는 현직 대통령 패배로는 98년 만의 일이다. 그의 편 가르기 정치와 좌충우돌식 국정운영은 심각한 사회 분열과 혼란을 빚었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하며, 미국의 가치·신념을 훼손한 폭군이다.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 억압···. 두루 국민의 신뢰를 배신한 트럼프의 전제주의다.

언론의 공? 미국 주류언론은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에 올인했다. 양대 권위지 <NYT>와 <WP> 등은 일찌감치, 바이든 지지선언에 나섰다. ‘미국이여, 바이든을 뽑아라’(NYT),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WP) 같은 사설을 통해서다. 지지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대통령의 조건‘이다.

전국지 <USA 투데이>는 창간 후 처음으로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트럼프를 거부하고 바이든을 뽑아달라”는 것이다. 시사주간 <TIME>은 창간 97년 만에, 제호(TIME)를 뺀 표지를 선보였다. 제호 대신 ‘VOTE(투표하라)’를 앞세운 표지다.

그들의 바이든 지지 이유는 뚜렷했다. ”바이든은 법치를 수용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것"(NYT), “바이든은 미국의 품위·명예·유능함을 복원할 대통령”(WP)···. 그들은 트럼프의 비재(非材), 특히 민주주의 파괴에의 책임을 엄히 비판했다.

그 결과, 대선 열기는 참 뜨거웠다. 최소 1억 5980만 명이 투표, 투표율 66.8%다. 1900년 이후 120년 만의 최고다. 당선자의 전국 득표수 역시 7536만 표(현지시간 8일 오후 4시 기준) 넘어 역대 최다다. 코로나19 여파, 선거전 과열 등 요인과 함께, 언론 보도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결과다.

4. 그 주류언론이 제시한 ‘대통령의 조건’에는 공직자의 윤리며 직분을 말한 부분도 있다. “바이든 후보는 법치를 수용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것", "바이든 행정부에는 능력과 자격, 원칙을 갖춘 인물들이 포진할 것"이라는 기대다(NYT). 트럼프는 법치에 미약했고, 능력·자격·원칙 없는 인물들을 썼다는 비판이다.

NYT는 사설을 통해 조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그에의 기대도 두루 제시했다. 그의 행정부에는 능력과 자격, 원칙을 갖춘 인물이 포진할 것이라는 것이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NYT는 사설을 통해 조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그에의 기대도 두루 제시했다. 그의 행정부에는 능력과 자격, 원칙을 갖춘 인물이 포진할 것이라는 것이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트럼프의 그 정략·인기 위주 용인술, 두루 본 바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비재·불비한 공직자'를 중용하며 국가역량을 훼손한 예가 적지 않다. 공직자의 국익우선·법치주의 공직관을 외면하며, 그에의 충성만을 강요하다 공개적 반발을 산 사례도 더러 있고.

최근 노영민의 ‘살인자’ 발언에 대한 국회의원 윤희숙의 말이 있다. 미국민이 트럼프를 버린 이유, 그의 끝없는 국민분열 책동에 대한 실망이다, 희망·통합이 아닌 분열·분노를 정치 에너지로 삼는 포퓰리즘 시대는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권력들도 품위 있고 사려 깊은 품성으로, 대통령의 ‘국민통합’·‘소통·협치’의 약속을 잘 추구하면 얼마나 좋겠나.

5. 공직자의 비재·불민을 얘기하며 덧붙이고 싶은 부분, 언론에의 기대다. 역시 언론은 현대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킬 필수적 사회체제다. 미국 언론은 이번 대선에서 언론의 몫을 다했다고, 나는 평가했다. 민주사회의 본질, 그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언론답게 최선을 다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역사적 국면에서, 그저 ‘진영논리’에 침몰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그저 의견을 공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가 열세를 직감하며 개표를 막으려 할 때, 언론은 함께, ‘개표 계속’을 주장했다. “개표를 계속하자, 대통령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자”, NYT의 사설이다. 그가 패배 앞에서 근거 없는 ‘불법 선거’를 강변할 때, 많은 방송은 백악관 회견 중계를 아예 중단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개표 중단’ 압력에 ‘개표 계속’을 주장했고, 트럼프의 ‘선거 불복’ 회견의 중계를 중단했다(사진; 개표 계속을 주장하는 NYT 사설, 온라인판 캡처).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개표 중단’ 압력에 ‘개표 계속’을 주장했고, 트럼프의 ‘선거 불복’ 회견의 중계를 중단했다(사진: 개표 계속을 주장하는 NYT 사설, 온라인판 캡처).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켜 가야 할 터라면, 그에 필요한 국민의 몫과 언론의 역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은 대국민 연설에서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보장된 게 아니며, 그것을 위해 싸우려는 우리의 의지만큼만 강하다"고. 민주주의의 미래는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건 한국사회의 과제이자 기회이다.

우리 언론, 제 역할에의 철저함 대신 진영논리적 양극화를 걱정하는 시각도 많다. 우리는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현상과 그저 무관한가? 고관들의 설득력을 잃은 오만과 편견, 그 ‘선택적 정의’는 그저 괜찮은가? 언론의 존재이유, 무엇보다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은 그 ‘몫’을 위해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떤 노력을 다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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