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論客,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전성시대다. 논객들은 오늘도 SNS·언론기고·저작·토론을 통해, 강력한 입담·필력에 바탕한 비평적 독설(毒舌)을 쏟아낸다. 그 논객들의 독설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현상(신드롬)이다. 언론은 그들의 독설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대중은 그 독설에서 폭넓은 공감과 ‘선한 영향력’을 실감한다.
이즘 한국 논객사회의 특징은 뚜렷하다. 현 정권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던 진보논객들이 그 권력의 위선·남용을 고발하려 말과 펜(筆)의 싸움에 작정하고 달려들고 있다. 그들의 행보는 개인의 지향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함축한다. 진보진영이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 아래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월간중앙).
진보논객, 그들은 ‘권력의 역설(逆說)’에 침몰한,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을 까는데 탁월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권좌에 오를 때까진 ‘선한 권력’이었으나, 어느새 공감능력을 잃고 준법정신·도덕적 감정도 약해진 권력이다, 그 진보진영 권력의 무책임·부도덕을 비판하는데 불같은 열정과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다.
그 진보논객의 상징은 진중권이다. 그는 일찍부터, ‘모두까기’라는 별명처럼 ‘진영을 가리지 않는 신념가’였다. 그는 권력의 부패·타락을 감시·비판하는 그 ‘진보논객’의 선봉으로 우뚝하다. 그의 저격 대상은 문재인 정권과 집권 여당이다. 현 권력에 대한 그의 분노와 반전은 이 시대 대중에겐 축복이요 타락한 권력엔 재앙이리.
그가 ‘진보논객’에서 은퇴하려는가? 조국 부인 정경심이 유죄판결을 받은 뒤, 갑자기 페이스북 절필(絶筆)을 선언했다. “이것으로 내 싸움은 끝났다,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마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당장, 그의 ‘날카롭고 정교한 논리-반박 불가의 어록’에 열광해 온 대중들의 허전함이 크다. 그와 ‘조국흑서'를 공동집필한 서민은 "두렵고 가슴이 철렁인다.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진중권, 그에게 묻고 싶다. 그를 ‘눈물 나게 한’ 그 권력의 타락은 끝났는가? 그가 걱정한 ‘거짓이 진실을 집어삼키는 사회’는 나아졌나? 그의 ‘절필의 변’ 역시 그답지 못하게, 개운찮다. 권력의 독선과 무책임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이 불안한 시대다. 이 난세에, 대중은 그의 귀환을 기다린다.
1. “'진중권·강준만·홍세화' 문재인 정부 비판하는 진보논객들”-'미디어오늘'의 최근 분석기사다. 청년논객 노정태의 담론집 ‘논객시대’(2014)에 등장한 논객들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등이다. 진중권·강준만·홍세화는 오늘도 권력비판적 독설을 쏟고 있는 반면, 유시민·김어준은 ‘어용’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진보논객’은 진-강-홍의 ‘노장’과, 서민(단국대 교수)·김경율(회계사)·권경애(변호사) 같은 ‘신예’들이다. 신예들은 2019년 ‘조국 대란’을 겪으며 진보진영에서 탈출, 진중권과 함께 ‘조국흑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집필했다. 우석훈·고종석도 최근 권력비판에 합세한 것을 보면, ‘진보논객’들이 ‘진보정권’을 저격하는 흐름이다. 논객 노정태 역시 '한때 좌파' 논객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대는 '반문(反文)' 논객이다.
“‘진중권 현상’의 모든 것”-2020년 초 월간중앙 커버 스토리다. 그의 논객사(史)를 심층분석한 특집이다. ‘펜을 든 논객과 칼을 든 검객의 진보권력 위선 고발’-진중권·윤석열의 극적 반전(反轉)을 규정한 부분, 경쾌하고 명쾌하다.
-그는 일찍이 조국·유시민·노회찬과 함께, 진보 대표논객 4인방으로 꼽혔다. 그들의 입담과 필력은 이전 보수정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제 조국·노회찬은 갔고, 유시민은 ‘어용’으로 추락했다. 진중권만 남은 것이다. ‘진보의 저격수’로 등판, 진보권력 까기에 열정을 쏟는 ‘시대의 논객’으로. 변곡점은 ‘조국 사태’다. 조국은 삿된 욕망 끝에 ‘진보’를 배신하며 자멸했다. ‘진보논객 4인방’도 우리에게, 한때의 기억일 뿐이다.
-진중권은 ‘조국 대란’ 속에서 지금까지, 분투했다. 당적을 버리고 교수직을 내려놨다. 그가 사직하며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영화 ‘베테랑’ 대사). 이젠 자유다!”라고 썼을 땐, 그 출전의 결기가 예사로웠겠나.
2. 진중권의 독설은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한국일보 연재칼럼에서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외려 피해자 행세하며, 그것을 적발한 검찰과 그것을 알리는 언론을 질타한다. 이 적반하장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일상의 풍경”이라고 일갈한다. 문재인 정권을 ‘촛불사기정권’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을 ‘위선자’로 비판한다.
진중권 현상의 흥행요소도 특출하다. 개인적 언어능력과 침묵하는 다수의 민심을 포착하는 감각이다. 권력의 위선·책략은 진중권의 독설 앞에 ‘벌거벗은 임금님’에 불과할 뿐, 현란한 독설의 상식적 메시지는 강력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부여한다. 그 현상의 본질, 권력이 만든 거대한 매트릭스(matrix)에 갇힌 시민들을 각성하는 데 있다(월간중앙).
그는 성공했다. 여야가 충돌하는 현장마다 권력비판의 창 역할을 다했다. 그의 신속·정확한 분석·비판은 정부·여당의 오만·무능·부도덕을 까발리며 시민을 각성시키기에 우뚝했다. 오죽하면 그의 페북 절필에 “1당 180 논객 사라져 공백 크다”는 한탄이 나왔겠나. 그는 진정, 말해야 할 때 말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요, 삶으로 정의를 표현한 ‘용감한 지성인’이다.
3. 강준만(전북대 교수)도 권력비판에 가세했다.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2020)에서 문재인 정부·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0년대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하던 진보학자, 그가 권력의 독선·오만, 유시민·김어준의 타락을 비판하는 논객으로 거듭났다. 그는 지지자만 바라보는 불통 대통령, '싸가지‘ 없는 정치인, 균형감을 잃은 권력편향적 언론을 작정하고 비판한다.
‘싸가지 없는···’은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 '진영의 정치'가 우리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킨 현상을 분석·논평한 책이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여당의 오만·독주, ‘추-윤 대립’ 같은 최근 사례까지 분명하게 비판한다. "내 나이 이제 60대 중반, 젊음의 열정을 소환해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니, 그 집필의 결기가 그저 예사로운가.
책의 구성을 보라. 왜 문재인은 늘 고구마처럼 침묵하며, '공사 구분 의식'이 모호한가, 왜 문재인은 '의전'으로만 소통하며, 정치를 '적과 동지'의 대결구도로만 보는가, 왜 추미애는 졸지에 '이순신 장군'이 되었는가···, 진보진영의 위선·독선을 꼬집는 그 도발적 표제에서 논객의 속내를 바로 알겠다.
강 교수는 유시민을 평가한다, "문재인에게 유리하면 뭐든지 선이요 정의라고 보는, 비생산적·파괴적 진영논리에 중독"됐다고. 김어준도 비판한다, "늘 '거대 꼼수(음모)와 싸운다'며 자주 음모론을 양산해낸다", "엉터리 음모론으로 밝혀져도 매우 당당하다“는 것이다
원로 진보논객 홍세화. 그는 '한겨레칼럼'에서 현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했다. 불편한 질문-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임금님에 가깝다는 것이다. 신동아 인터뷰에선 현 정권주류의 586세대를 '민주건달'로 지칭했다. 그는 ‘평등-공정-정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같은 구호에 대해, “내용은 없고 수사(修辭)만 있는 정부”라며, 대통령의 책임윤리 없음을 직격했다.
4. ‘신예’들의 활약도 만만찮다. 우선 서민. 그는 ‘조국흑서’에서 ,‘새로운 정치 플랫폼, 팬덤 정치, ‘위선은 싫다, 587 정치엘리트’,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을 위하여’를 주제로 대담에 참여했다·. ‘기생충의 세계와 사회현상을 빗대어 글을 쓰는 컬럼니스트‘답게, 그의 입담은 신랄하고 발랄했다.
그의 발랄한 착상·신랄한 입담을 과시한 독설. 최근 ‘새해소망’으로 유시민·김어준을 직격한 것이다. “유시민 같은 어용지식인이 쫄딱 망하고 죗값 받는 세상이 왔으면, 덤으로 털보도”다. ‘유시민의 새해소망’ “부동산으로 돈 못 버는 세상 왔으면···”에 대한 반격이다. 난, 그 발랄·신랄함에, 빵 터질 뻔 했다. 그는 이제 4개 지역신문 연합필진으로 활약하니, 그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리.
김경율의 유시민 비판도 신랄하다. “그런 인간은 공적 공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거짓말 사과하라”면서, “진실을 말하는 이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전형”이라고 맹폭했다.
5. 진중권은 ‘절필’을 선언하곤, 페북 포스팅을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논객 전선’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다. 그는 새로 맡은 중앙일보 ‘진중권의 퍼스펙티브’를 통해, “망상과 공작으로 통치되는 나라”, “히틀러도 ’선출된 권력‘이었다”처럼, 지금까지의 결 그대로, 권력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선출된 권력’에 저항하면 ‘쿠데타’ 세력 간주하고/자유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며/민주주의의 파괴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언어의 혼란은 전체주의화의 첫 조짐···” 이런 발문(跋文)은 그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권력의 독선·탈선을 꾸준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부재는 허전하다. 서민은 고백했다, “존경해온 지식인이 모두 위선자의 수하로 가 버린 지금, 그가 부재한 지금이 두려워 죽겠다”고. 나는 공감한다, 진중권의 한 페친이 한탄했듯, ‘해박한 논리와 논점, 속도와 필력, 좌우를 아우를 포용력과 투시력’에서, 그를 대체하기란 참 만만찮을 터다.
그의 절필선언은 3300자 분량이다. 많은 얘기를 한 것이다. 그는 ‘조국 사태’에서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사람들을 기억했다. 빤히 알면서도 대중을 속여온 더불어민주당, 조국 비호를 위해 사실을 날조해 음해공작까지 벌인 열린민주당, 이들의 정치적 사기행각을 묵인·추인해 온 대통령을 비판했다.
위조 표창장을 진짜로 둔갑시킨 MBC ‘PD수첩’, 이상한 증인으로 진실을 호도해온 TBS ‘뉴스공장’, 조국 일가를 비호하려 여론을 왜곡한 다양한 어용매체, 국민을 속여온 수많은 어용기자를 비판했다. 감시자의 역할 대신 권력의 사기극에 협조한 시민단체, 온갖 궤변으로 곡학아세한 어용 지식인, 이들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단언했다. 유죄판결이 내려졌다고 당정청과 지지자들이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들의 정신은 이미 사실과 논리의 영역을 떠났다고, 그렇다. 그 유죄판결 이후의 한국사회는 그가 단언한 대로다.
그 절필선언의 속내가 개운찮다? 그 마무리 문맥을 보라. 부동산대책 때문에 전세에서 월세로 쫓겨났을 때는 문프를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추스리고 그분을 다시 지지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주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文 대통령은 허수아비···현 정권 몰락할 것”(시사끝짱)이라면서, ‘문프’를 다시 지지한다? 그답지 않게, 논리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오늘은 어떤 시대인가? 그의 말처럼, 대통령부터 비판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가치 대신, 권력은 계속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그가 ‘조국 흑서’를 주도하며, 무너진 정의-사라진 공정-물구나무선 민주주의를 말할 때며, 최근 “히틀러도 ‘선출된 권력’이었다”, “망상과 공상으로 통치되는 나라”를 쓸 때보다, 한 치도 나아진 게 없다.
그의 부재 속, 나는 궁금했다. 최근 추미애의 어줍잖은 요설(妖說)이며, ‘피고인’ 법무장관 후보자의 등장이며, 박원순 사건 관련 남인순의 불미(不美)한 민낯, 감사원장에 대한 임종석의 '집 지키는 개' 비유 비난···. 이런 논쟁거리를 보는 그의 눈과 독설은 어땠을까?
다시, 서민의 말, “우리가 신명나게 싸울 수 있었던 건 진중권이 씌워준 커다란 우산 덕”, ”진보의 재구성은 정권교체 후에 하면 된다···“. 그래서, 진중권의 ‘종전선언’은 더러 성급한 것 같다. 동(同) 시대를 사는 대중도 그의 절필을 공감하기 쉽지 않으리.
진중권은 최근 칼럼 ‘선동정치에 발목이 잡힌 민주당’(중앙)에서, 김어준을 ‘방송인 아닌 프로파간디스트’로 까고, “오직 프로파간다로만 창출·유지되는 권력이라면, 그 정권은 국가·사회를 위해 되도록 빨리 무너지는 것이 좋다”고 맹폭했다.
다른 칼럼에선 “문 정권 숭배자 대깨문과 트럼프 지지자 큐어논은 닮았다"고 규정했다. 위력으로 시스템 공격하는 광적 지지층에 의존, 정권을 이끌어가는 민주주의 파괴현상에의 질타다. 진중권의 문 정권 까기, 강준만의 김어준 까발리기에서, 그 진보논객들의 명징함에 탄복한다.
그럴수록, 진중권은 돌아와야 한다. 그답게, 오늘의 상황을 날카롭게 보며, 시대정신에 맞는 논평을 계속해야 한다. 늘 그래왔듯 단순·명쾌한 권력비판으로 대중을 일깨워야 한다. 그 논평은 ‘구독자’만의 신문보단, ‘실시간 중계’의 페북을 통하는 게, 역시 좋겠다.
이 시대 진보논객들의 논평은 시나브로 ‘독설’이기도 하리. 오늘을 버텨가는 대중은 기다린다, 행동하는 진보논객들의 가혹하고 끈질긴, 경쾌하고 발랄한 독설을. 진중권이 ‘진보논객’에 귀환함으로써 이 시대 그의 존재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