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대통령의 존재이유: ‘나라를 나라답게’의 지독한 아이러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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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대통령의 존재이유: ‘나라를 나라답게’의 지독한 아이러니 앞에서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0.10.0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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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과연 대통령이 있는가? 대통령이 있다면 그의 직분은 무엇인가? 특히 오늘의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가? 모든 사물에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는 것, 하물며 국가원수, 그 대통령의 존재이유를 들먹이는 것은, 더러 민망하긴 하나 그리 생소한 일일 순 없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총체적 위기, 우리가 절감하고 있는 그 혼란과 불안은 대통령의 존재이유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대통령, 그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원초적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 지금 어디 계신가?” 같은 구호, 그건 굳이 야당의 정치공세일 뿐이랴.

대통령은 지금 국가안보에 헌신하며 국민생명을 지켜야 할 그 기본적 존재이유를 잃고 있다. 서해 근무 공무원에 대한 북한의 만행과 대통령의 상황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보라. 대통령은 ‘통합과 공존의 세상’을 열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그 약속도 잊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불공정·불의 행위, 대국민 ‘거짓말’을 묵인하며 국민들의 실망을 사는 것을 보라.

한국 사회에선 최근 대통령의 존재이유를 묻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서해 국민피살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더팩트 제공).
한국 사회에선 최근 대통령의 존재이유를 묻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서해 국민피살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장면(사진: 더팩트 제공).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은 취임 때의 약속에서 두루 실패했다. 그는 ‘과거와의 전쟁’에 매달리며 국민통합을 포기했다. ‘문로남불’ 진영논리에 탐닉하며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외면했다. 실정(失政)을 거듭하며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다. 이건, 민초들의 상소(上疏)형 청원과 여론(조사)에서 두루 지적한 바다. 오죽하면 그 상소형 국민청원에, 대통령의 그런 ‘실패’를 들어 하야를 촉구하는 청원이 잇따르겠나.

선인들의 ‘정치’에 관한 설명을 다 들을 필요도 없다. 공자의 ‘정치론’ 한 구절이면 대통령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국가는 국민의 신뢰 없이는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는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의 요체, 그 ‘신뢰’를 잃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 대신 ‘상황의 극복’을 우선한다? 그건 그 직분의 존재이유일 수 없다.

이즘의 국민적 화두, 북한의 ‘서해 공무원 살해사건’과 추미애 아들의 ‘군대 특혜·청탁 의혹’을 보라. 정부는 정녕 진실을 밝혀가며 국민 앞에 떳떳한가? 그 의혹·사건의 처리과정, 국민들의 불신이며 실망을 사는 이유는 뭔가? 대통령은 정녕 정의·공정을 추구하며 국가기강을 걱정하고 있나?

“정부, 북한만행 대응 잘못" 68.6%… ”추미애 아들 특혜" 61.7%.... 최근 KBS 의뢰에 따른 국민여론 조사결과다. 우리 국민이 바다에서 표류 중 북한에 총살당한 사건, ‘문재인 정부가 잘못 대응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추미애 아들 군 복무 중 특혜 받았다고 생각하나’에 역시 ‘그렇다’가 절대 다수다.

이즘 여론조사의 표본추출과 조사주체를 둘러싼 편향성 논의는 제쳐두고, 그 여론의 향방은 분명하다. 권력에의 불신이다. 그런 국민 앞에서 정부는 많은 의혹을 사고 있다. 국민피살 사건의 경위, 청와대-국방부 두루 오락가락하며 진실을 가리는 모양새다. 대북정책 역시 ‘마이웨이’, 일방적 저자세다. 국가와 국민의 자존은 누가 지켜가야 하나?

그런 국민 앞, 추미애의 태도를 보라.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한 논란은 제쳐두고, 확실한 사실은 있다. 그가 쏟아낸 27번의 거짓말이다. 휴가연장과 관련, “(보좌관에게) 지시한 적 없다”고 주장한 것부터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의 아들이 여러 특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는 ‘거짓말’에 대한 사과 대신, ‘근거 없는 정치공세’를 주장하며 언론·야당을 겁박하고 있다.

국민들은 안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 권력은 여러 권력형 사건을 뭉개려 바쁘다는 것,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 법무부 장관이 거짓말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것, 국민들은 그런 것을 알 만큼 자라났다는 것이다.

역시 문제는 대통령의 존재이유다. 국민의 생명보호에 대한 대통령의 ‘잃어버린 시간’과 국가 기강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몰염치에, 대통령은 말이 없다. 그 국민은 왜 그런 만행 앞에 속절없이 당했나? 법무부장관은 그런 부도덕 앞에 어떻게 그리 당당한가? 국민의 의혹과 분노에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대통령은 스스로 그 존재가치를 망각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 ‘주요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 이런 약속을 팽개쳤다.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외면했다. 대통령도 알 것이다. 법무부장관의 행위가 정의-공정과 거리가 멀다는 것, 고위 공직자답지 않게 많은 거짓말을 쏟아냈다는 것을.

대통령은 알 것이다, 권력은 추미애를 살리려 나라의 근간 국군을 또 얼마나 ‘당나라 군대’로 망가뜨렸는가를. 대통령은 읽었는가, 최근 민초(民草)들이 쏟아낸 상소(上疏)형 청원의 그 서늘한 문맥들을. 대통령은 들었는가, ‘광대를 자처하는 예인(藝人)’ 나훈아의 “국민 힘 있으면 ‘위정자’ 생길 수 없다”, “KBS, 정말 국민 위한 방송이었으면“ 같은 표현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요즘, 옛 ‘상소’를 자청한 청원이 잇따른다. 30대 가장의 정부 실정(失政) 풍자 글 ‘시무 7조’ 상소 역시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피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요즘, 옛 ‘상소’를 자청한 청원이 잇따른다. 30대 가장의 정부 실정(失政) 풍자 글 ‘시무 7조’ 상소 역시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피 캡처).’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의 다짐에 과연 당당한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미래의 청사진’은 온데간데없고 그 존재가치도 희미하다. 성급하고 불경스런 지적일지 모르지만, 국민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좋은 이미지보다 오만·독선의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즘 그의 처지는 그동안 쌓아온 권력의 오만·불의, 약속에의 배신에 터 잡은 바 크다. 그의 열정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오늘 그의 실패를 대변하는 지독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국민은 엄청난 성처를 받았으며, 나라 역시 큰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과반은 그의 국정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요”-북한의 총살 만행과 정부의 대응에 맘카페도 화를 내고 있다. 30~40대 여성 민심의 지표로 통한다는 맘케페다. 친여(親與)성향 주부 커뮤니티도 같다. "이 정부를 어떻게 믿죠?", 그들의 한탄이다.

이쯤에서 대통령은 취임 때의 그 열정·다짐을 되새겨야 한다. 권력의 거짓말에 따른 신뢰 상실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의 믿음 없이 설 수 없다 하지 않나. 추미애의 거짓말 역시 진영의 정치적 계산으로 방임·비호할 순 없다. 국민 절반 이상이 그의 퇴진를 원한다 하지 않나. 국민의 신뢰 회복이며 국가기강 확립 차원에서 그를 엄히 징치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의 존재이유다.

민주주의국가 미국에서 대통령의 본분을 잊었다가 임기 중 사임한 리처드 닉슨을 보라. 그의 사임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따른 거짓말 때문이다. 대통령이 도청했다는 사실보다, 누구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지녀야 할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책임 있는 공직자의 처신은 그만큼 무겁고, 국민의 신뢰는 그만큼 두려운 것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탄핵 직전 자진 사임했다(사진; 사임 성명을 읽는 닉슨; 게티 이미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탄핵 직전 자진 사임했다(사진: 사임 성명을 읽는 닉슨,  게티 이미지).

대통령은 이제 국민이 궁금해 하는 부분부터 적극 소통해야 한다. 대통령의 ‘잃어버린 시간’을 묻는 국민에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정부로서 송구한 마음” 식으로 답하는 것은 국민에의 예의도 아니다. 그 의혹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고.

이즘 권력은 정의-공정-인권의 해석 권한을 독점하며 진영논리식 선택적 소통에 기대고 있다고 하지만(손영준), 그래서야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꾀한다 할 수 있겠나. 그 역시 ‘신뢰받는 정치’, ‘솔직한 대통령’의 약속을 스스로 외면하는 행위다.

대통령은 다짐처럼, ‘군림·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소통하는 대통령’을 추구해야 한다. 최근 국민에게 나타나는, 대통령의 표정과 어투를 걱정하는 얘기도 있다. 화안애어(和顔愛語), 언제나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맞이하고 상냥한 말을 건넨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정말 ‘겸손한 권력’으로, 신뢰가 있고 나라기강이 바로 선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어떠한 난국에서도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짐처럼,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아야 한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성공한 대통령’은 못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통령’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대통령의 진정한 존재가치를 잊거나 잃지 말라는 것,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절실한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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