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아픈 역사’ 가슴에 묻고 ‘찬란한 미래’ 기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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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아픈 역사’ 가슴에 묻고 ‘찬란한 미래’ 기약하기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19.12.1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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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우리 현대사의 어느 해 치고 놀람과 고통, 분노와 슬픔이 없었던 때가 있었으랴만, 정말이지 올 한해처럼 아픔과 갈등, 충격과 허탈이 컸던 해도 달리 없었을 듯하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세모(歲暮)를 맞고도 아직 한해를 접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언론 역시 연례적 결산치레였던 ‘올 10대 뉴스’ 선정작업 조차 계속 미루고 있다고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언제, 어디서, 그 ‘10대 뉴스’의 윗자리를 너끈히 차지할 대형 사태·사건·사고가 또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나라걱정과 가슴졸임이 올해처럼 깊고 절절한 적이 또 있었을까.

사실 우리는 연초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약속처럼 ‘경험하지 못한 나라’, ‘나라다운 나라’에의 기대를 한껏 키워왔다. 언론들도 “‘더불어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새해 되길”(한겨레), “새해 '함께 가는' 대한민국 만들자”(세계) 같은 사설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염원했다.

그러면서, 민생에의 실질적 어려움과 대내외 경제여건의 악화 따위를 걱정했다. 언론들은 올해의 험난한 정치·경제 환경을 꿰뚫은 본연의 경고 역시 덧붙였다. ‘‘대한민국 재도약 위해 국정운영 틀 확 바꿔야 할 때“(중앙), ”문 정부 3년차, 경제부터 이념에서 실질로“(조선) 같은 고언들이 그것이다.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기대와 겪어보지 못한 나라의 기억

그리고 1년. 대한민국은 정녕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구가하고 있는가? 실상, 국민들은 지금 건국 이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불안하고 초라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는 추락하고 있고, 외교적으로 고립무원의 지경이며, 안보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방에서 “이건 나라냐?”는 외침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마이 웨이’를 고집하고 있다(최광, ‘대한민국 파괴되고 있는가’ 서평).

이 부분, 김형오 전 국회의장 역시 한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 있다. 경제는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가장 안 좋고, 외교·안보는 6·25전쟁 이후 가장 불안하며, 국론분열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가장 심각하다고(문화, 파워인터뷰).

우리가 도저히 잊지 못할 ‘아픈 역사’는 단연 ‘조국 사태’다. 이건, 한 개인·가족의 범죄나, 온갖 범죄혐의로 얼룩진 인물이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가 민의에 몰려 물러난, 그런 차원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마치 전장의 한복판으로 내몰며, 한국사회를 ‘이념적 내전’으로 몰고 간 ‘불행한 역사’다.

광장의 목소리가 대등하게 둘로 쪼개진다? 한낱 임명직 장관의 거취를 두고 ‘퇴진’과 ‘수호’가 맞부딪힌다? 그건 참 찾기 어려운 사례다. 그만큼 국민간의 치열한 갈등·대립을 부추기며, 공정·평등·정의에 대한 진보의 민낯과 ‘조적조’(조국의 적은 과거 조국)·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류의 자각·우려를 남긴 ‘한국사회의 내전’이다. 우리의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정면으로 부정한 그 ‘내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공명지조’(共命之鳥)', 전국 교수들이 올 한국사회를 정리,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교수신문). 공명조,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분열된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그 성어, 우리의 어리석음과 경계해야 할 바, 그대로다.

전국교수들은 올 한국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선정했다. 한국사회의 분열상을 대변한다는 설명이다(사진; 교수신문 홈페이지 캡쳐).
전국교수들은 올 한국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선정했다. 한국사회의 분열상을 대변한다는 설명이다(사진; 교수신문 홈페이지 캡쳐).

암울한 정치·경제 뉴스에 ‘정치 스캔들’... 민주주의 위기 걱정까지

연초 걱정한 민생이며 경제는 또 어떤가. ‘어제 하루 쏟아진 암울한 경제 뉴스’이라는 최근 보도는 우리의 엄혹한 경제실상을 그대로 증언한다. 수출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도체·자동차·유화·석유제품 등 5대 주력 수출품이 모두 큰 폭 감소세다. 한국 경제의 주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고용이며 부동산, 물가며 재정에서 암울한 경제 뉴스들이 나날이 넘쳐난다.

그리고, 연말까지도 우리는 마음고생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연말까지 풀거나 풀려야 할 외교현안들을 보라. 북한 비핵화-지소미아-방위비 협상의 ‘3대 현안’ 역시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렵다. 그것도 국론결집의 바탕보단 국론분열의 벼랑 위에서, 우리의 위기감은 높아만 가고 있다. 최근 정국(政局)을 보라. 내년 예산의 일방적 처리며 ‘패트 전쟁’을 둘러싼 정치권의 날선 대치는 그저 지켜보는 국민이 불안할 정도다.

최근 정가를 강타하고 있는 ‘3대 농단 게이트’는 또 뭔가? 올 연말은 청와대의 ‘감찰무마’, ‘울산시장 선거개입’, ‘특혜대출’ 의혹 같은 누추한 정치 스캔들로 얼룩질 가능성이 크다(송호근, 혁신의 척후). 결국 우리는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이 비난하듯, ‘한국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과 함께, 한동안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다(차용범, 한국 민주주의는 건강한가? ‘민주주의의 위기신호’ 앞에서).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이 어지러운 역사에 붙들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순 없다. 어차피 우리는 이 아픈 역사들을 우리의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불행하고 아픈 역사들도 피할 수없는 우리의 역사’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다. 본디 역사란 그런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적 과제란 사실의 은폐가 아니라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요, 그리하여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은 진실과 정의를 바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불안·혼돈도 눈앞의 불법·비리를 청산하고 정의와 진실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굳게 믿어야만 한다.

세모다. 다가오는 경자(庚子)년은 제발이지 올해 같지 않기를 않기를 바라는 마음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그저 희망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겪어온 그 ‘역사’들은 어느 한사람의 한순간 실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총체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올 한해를 묻으며 다시 다짐해야 할 일은 혼란 속의 냉정, 불안 속의 평상를 찾아가는 것이다.

 

올해, 혼란 속 냉정 찾기... 새해, ‘남과 더불어 살기’를 그리며

독일의 2차 대전 패망 이후,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역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침착 또는 태연을 강조했다. 그것은 본 것을 보지 못한 척 하라거나 감수성을 없애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바깥의 사태가 격동하고 때로는 절망적일수록 그 사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 뿌리까지 숙고하는 정신의 온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이야 다단해도 봄은 오고 또 가누나/묻노라 저 세상일 얼마나 아득하여/한평생에 몇 번이나 이렇게 울리려느냐.” 세모에 읊은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세모 시 마냥 어차피 썰렁하고 스산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게 세모이다.

그 스산한 세모 속에서, ‘한국철학의 아버지’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본 삶의 지혜는 우리에게 새삼 용기와 기대를 준다. 그의 행복론, ‘남과 더불어 살기’의 가치다. 연초 언론들이 제시했던 우리의 염원과 같은 키워드다.

이제, 며칠 뒤면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안고 또 다른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그저 아쉬움과 서글픔을 안고 저물어가는 이 한해를 곱게 전송하자. 그리고, 이 참담하고 낭패스러웠던 한해가 우리에게 남겨준 귀한 뜻을 조용히 가려내자. 그 ‘못난 과거’들을 가슴에 묻고 ‘찬란한 미래’를 위해 힘차게 달려가자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미래를 상상하며-. 잘 가라, 기해(己亥)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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