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이게 나라냐?”...문재인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리더십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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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이게 나라냐?”...문재인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리더십 보여야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10.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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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편집주간

대한민국이 온통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부두교 주술에라도 걸린 듯, 마약에라도 취한 듯 나라 전체가 이성을 잃었다.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를 노려보는 눈엔 적의와 살의마저 느껴진다.

국민이 두 패로 나뉘어 으르렁거린다. 서초동파와 광화문파다. 조폭 세계의 이름이 아니다. 한쪽은 촛불과 노란색 플래카드를 들고, 다른 쪽은 태극기와 흰색 붉은색 플래카드를 들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으로 구호만 다르다. 적개심에 가득 찬 저주를 상대방을 향해 쏟아내는 건 양쪽 모두 매한가지다.

싸움판이 꼭 서초동과 광화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 곳곳이 전쟁터로 변했다. 밥집 술집 찻집은 물론 동창회 친목회 동호회에서 문재인, 조국, 윤석열, 검찰이란 말이 대화에 오르는 순간 말싸움이 벌어진다.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에도 얼굴을 붉히고 밥상머리에서 뒤돌아 앉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정한 이름이 혀끝을 떠나 이토록 짧은 시간에 입씨름으로 비화하는 건 처음이다. 인화성과 폭발력으로 치자면 화염병 제조에 쓰이는 신나와 휘발유는 저리 가라다. 좌석에 찬바람이 부는 순간 이미 파장 분위기다. 밥상이 엎어지고 술잔이 날고 주먹다짐이 오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들은 극도의 피로감과 방향감각 상실로 패닉,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분열의 정치, 세대결의 정치...정치가 초등학교 운동회 줄다리기 시합인가?

지난 토요일 오후 대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 앞거리는 일렁이는 촛불과 노란색 플래카드로 다시 뒤덮였다. 여덟 번째로 열리는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다. 핵심은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이다. “300만 명이 넘는다.” 사회자가 참가인원을 단정적으로 선언하자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머릿수 모으기 시합은 일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촛불집회가 시발이다. 처음엔 참석 인원이 10만 명이라더니 이후 50만 명, 150만 명으로 늘어났다. 급기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참석 인원이 200만 명”이라며 단정했고, 누군가는 “촛불 시즌 2가 시작됐다”고 오버했다. 심지어 청와대 관계자조차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지입장을 냈다.

태극기를 든 광화문파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서초동파가 “200만”을 내세우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게다가 민주당과 청와대에서 “촛불시즌 2” “예상 못한 사람 숫자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자 한국당도 ‘올인’했다. 시·도당에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할당 인원수도 나왔다. 당일 광화문에선 “참석 인원 300만 명”이라고 선언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서초동 도로보다 광화문이 훨씬 넓다. 그들이 200만 명이면 우리는 2000만 명은 왔겠다”고 으스대며 서초동 쪽을 노려봤다.

10만에서 시작한 사람 머릿수 싸움은 믿거나 말거나 300만 명까지 왔다. 이게 끝인가? 아니다. ‘조국 퇴진’ ‘문재인 타도’ 세력은 다시 9일(한글날) “300만 이상”을 올려 부르겠다며 기세가 충만하다.  촛불세력 역시 사흘 뒤인 12일 서초동에서 대미를 장식하겠다고 이미 밝혀놓은 상태다. 점입가경이다.

새뮤얼 헌팅턴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위기...정부 대처능력 떨어지면 국가는 무너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대의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통해 정치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교과서적으로는 옳지만 광장정치가 휩쓸면 전체주의 파시즘 독재로 흐를 소지가 많다. 제도권 정치가 실종되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된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은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를 ‘참여 폭발의 위기’라며 “사회 전반에 참여 욕구가 팽배한 데 이를 대처하는 정부의 능력이 떨어지면 국가는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상태다. 그것도 벌겋게 눈을 뜨고 우리는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대한민국을 보고 있는 중이다. 남북문제, 한일외교갈등, 한미동맹 균열, 북미회담결렬, 미중무역전쟁, 지소미아파기 등 국제안보문제에다 경제난과 취업난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도 해결될까 말까인데 내란같은 진영싸움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이러다 나라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정말 소는 누가 키우나?

세상 어느 천지에 광장에 모이는 사람 머리 숫자로 누가 옳은지를 결정짓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줄다리기 시합도 아니고, 경매장에서 경매인들이 부르는 호가도 아니고 이 무슨 유치한 집회 숫자 싸움이란 말인가. 여기에 여야 정치인과 청와대까지 나서서 부추기고 선동하는 꼴이다.

대한민국이 두 쪽으로 나뉘어 대결을 벌이는 불행한 상황을 이제 멈춰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폭주 기관차를 세워야 한다. 대통령이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자신을 찍었던, 찍지 않았던 정파를 떠나 화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상황은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국론분열의 결정타이자 블랙홀이 돼버렸다.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면서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이 순간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의 운명을 조국 한 사람과 맞바꾸는 도박을 한 셈이 됐다. 또 전 국민을 분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말았다.

과거에 수많은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본인들이 책임질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어서 중도에 자진 사퇴했던가. 스스로 주위를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 무엇보다 계속 버틸 경우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물러섰다. 왜 억울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청와대도 이런 저런 사인을 보내 주저 앉혔다. 그런데 조국 때는 달랐다.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정의 오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장관 주연에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가 조연으로 참여해 만들어낸 사태다.

조국 스스로 물러나게 해 사태 풀어야...검찰 개혁은 더욱 강력한 인물로 추진하면 될 일

장관은 정무직이다. 말 그대로 정치적인 자리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질 수밖에 없는 자리다. 부하직원이 잘못해도 옷을 벗고,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비위를 저질러도 “부덕의 소치”라며 자리를 내놓는다. 임명될 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임명하기 전에 조국은 스스로 자리를 사양했어야 했다. 그게 문재인 정부 탄생에 큰 공을 세우고 정권의 성공을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현명한 처신이었다. 그런데 조국은 임명권자의 처분을 기다리며 버텼고, 대통령은 오기를 부리듯 임명장을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혹시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는 대단히 불행하다. 국민이 두 쪽으로 나뉘어 국론분열이 초래된 것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은 가볍지 않다. 대통령이 진영의 한쪽 편에 서서 우리 편이 승리하면 팡파레를 울리며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진보나 보수, 양쪽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령만 떨어지면 서초동과 광화문에 출근도장을 찍을 것이다. 문제는 지난번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지만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문파 혹은 문빠의 무조건 지지에 두드러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문재인을 지지했지만 냉정한 태도를 가진 중간층의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이들은 결코 ‘조국수호=검찰개혁’ ‘윤석열 퇴진=검찰개혁’에 동의하지 못한다. 검찰이 개혁돼야 한다는 데는 100% 찬성하지만 왜 그게 조국이 아니면 안 되고, 왜 조국과 검찰개혁을 동일시하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국 한 사람의 무게가 5000만 대한민국의 무게와 같으냐고 반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전부터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어 오던 사람들보다 지난번 개천절에 처음으로 광화문에 나간 사람들, 그리고 평등과 공정, 정의에 배신감을 느끼는 20대 청년들과 지식인들의 이탈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 지금 문재인의 적은 문재인이 돼가고 있다.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늦기 전에 국민통합으로 국가 위기 벗어나야

더 늦어선 안된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이미 정치력을 상실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마저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를 놓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집회를 연상시킨다”고 진영논리에 매몰돼 무책임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사고가 얼마나 굳어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매월 첫주 월요일에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 당대표가 점심을 함께 하는 ‘초월회’에도 불참해버렸다. 정치가 왜 필요한지 되묻게 된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허물어버렸으면 싶다.

대통령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과 함께 국민통합이라는 막중한 의무가 있다. 국론분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을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지지기반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됐지만 당선된 순간 모두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조국 장관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지는 게 이기는 길이다. 그래야 검찰개혁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검찰개혁은 조국 보다 더욱 개혁적이고 강력한 인물을 내세워 추진하면 될 일이다. 조국을 붙들고 있는 한 검찰개혁도 물 건너가고 정권도 흔들리게 된다. 시간은 결코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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