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당신은 고릴라를 보았습니까?-‘조국 수호’ 집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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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당신은 고릴라를 보았습니까?-‘조국 수호’ 집회에 대한 단상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10.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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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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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의 시대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집회의 내용과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를 보면서, 의아해하거나 황당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불가사의’란 표현도 나오고 있습니다. 상식, 양심, 언행일치, 소통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성격의 집회에 저토록 많은 사람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보는 것입니다.

극단을 혐오하는 중도층의 시선과 확장성의 문제를 의식한다면 저러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그래서 매우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상식의 눈으로 살핀다면 ‘조국 사태’로 인해 문재인 정권의 핵심가치로 여겨지는 부분 즉,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훼손돼 버렸는데도, ‘조국 수호’ 쪽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고 있으니 이상하다고들 합니다.

범죄혐의는 수사 중이니 별개라 치더라도, ‘조적조(조국의 적은 과거의 조국)’ ‘조로남불 (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해괴망측한 신조어를 낳은 인물을 ‘개혁의 적임자’라며 엄호하고 있으니 의아하다고들 합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무시하기 힘든 인물인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팩트를 들이밀며 분노하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젊은층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삼키는데도, 특정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버리며 ‘조국 수호’를 외치고 있으니 불가사의하다고들 합니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말과 글로써 생각을 드러내는 언론인으로서, 나름의 근거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이미 이야기 한 확증편향(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리플리증후군(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으면서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방어기제(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 같은 부분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권력을 잃었을 경우 단죄와 이권 상실의 쓰나미가 닥쳐올 게 두려워서 저런다는 해석도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왜 고릴라를 보지 못했을까?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아십니까?

한 사안에 몰두하다 보면 명백하게 존재하는 다른 사안을 놓쳐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1999년에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인터넷에는 관련 동영상이 많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학자는 학생들을 각각 3명으로 나눈 뒤 한 팀은 흰옷을, 다른 팀은 검은 옷을 입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뒤섞여서 농구공 패스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피험자들에게 보여주었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공을 몇 번 패스했는지를 세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1분 남짓한 상영이 끝나자 두 학자는 피험자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동영상에 등장한 고릴라를 보았습니까?”

사실은 이랬습니다. 동영상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한 사람이 패스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가슴을 두드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9초가량 나옵니다. 놀랍게도 피험자들 중 50%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흰옷 입은 팀의 패스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대의 배경이 된 커튼의 색깔이 바뀐 것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선택적 주의’라고도 하고, ‘무주의 맹시’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저도 고릴라를 보지 못했고, 커튼이 바뀐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ㅠㅠ)

이 실험은 우리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인지구조는 불완전하며, 얼마든지 특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릴라를 보셨나요(사진: 유튜브 캡처).
고릴라를 보셨나요(사진: 유튜브 캡처).

거위와 ‘각인효과’

‘프레임’을 아십니까? ‘생각의 기본 틀’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패스 횟수’라고 하면 패스 횟수만 세게 되고, ‘고릴라’라고 하면 고릴라만 집중해서 보게 되는데, 이처럼 ‘지시하는 단어(지시어)’에 따라 인식을 달리하는 상황을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프레임은 힘이 무척 셉니다. 웬만한 사람은 프레임에 따라 행동 양식을 결정하게 마련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신뢰하는 누군가가 프레임을 짜면, 그 프레임대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프레임을 짜는 주체는 종교인, 정치인, 문학인, 언론인, 교수/교사, 사장, 노조위원장, 평범한 옆 사람 등으로 다양합니다.

우리한테는 또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을 유지 내지는 보호하려는 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거위처럼.

웬 거위? ‘동물학계의 아인슈타인’ 콘라트 로렌츠는 ‘각인효과’란 말을 했습니다. 거위는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처음 본 것에 대해 깊이 애착을 갖는데, 그때 본 것이 어미가 아니라 다른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를 어미라 여기고 평생 졸졸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각인효과입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프레임’과 ‘각인’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의도된 프레임을 보여주면, 그 사람은 그 프레임대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거위처럼. 운동권의 초기 단계 ‘의식화 작업’이 그런 유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호모 사피엔스(인류)는 결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수렵채집 시절부터 터무니없는 짓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서양의 경우 중세 때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 있었습니다. 교황은 ‘면죄부’를 팔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 소년단(유겐트)’, 중국 마오쩌둥의 ‘홍위병’ 같은 어처구니없는 기구가 ‘고삐 풀린 증오’를 발산했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조국 집회’를 계기로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이유’와 ‘프레임’ ‘각인효과’ 들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너도 고릴라를 못 보았지 않았느냐, 너는 그런 데서 자유로우냐, 하는 힐난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군요.

기필코, 성찰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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