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조국과 열린사회의 적들 -톨레랑스 , 나마스테 , 김남주를 생각하며
상태바
[이광우 칼럼]조국과 열린사회의 적들 -톨레랑스 , 나마스테 , 김남주를 생각하며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8.19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표/발행인 이광우
대표 / 발행인 이광우
대표 / 발행인 이광우

하나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얼마 전,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이 대표는 보수입니까?”

“왜 그러십니까?”

“<시빅뉴스>에 조국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하 조국)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나와서요.”

“저는 보수도 진보도 중도도 아닙니다. 언론인(기자)입니다. 조국은 여권에서도 당 대표를 비롯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던데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래전에 군부독재를 끝장냈고, 무려 인공지능(AI) 시대가 다가온 시점이라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한 책의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입니다. (저는 오늘 조국에 대한 글을 쓸 것인데, ‘조국’은 단수이기도 하고 복수이기도 할 것입니다.)

둘-'소문의 벽'과 김종규 씨의 국가유공자 상장

‘진술공포증’을 아십니까?

작고한 전남 장흥 출신의 소설가 이청준의 중편소설 ‘소문의 벽’에 이 말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진술을 거부하는 정신적 병리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정신적 충격 때문입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이 어두운 방 안에 들어와 어머니의 얼굴에 전짓불(손전등 불빛)을 들이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좌, 우 어느 편이냐. 어머니는 사내들이 빨치산인지, 국방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식구들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주인공에게는 진술공포증이 생겼습니다.

김종규 씨를 아십니까?

소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의 새 산문집 <연필로 쓰기>의 2부 ‘이등중사 박재권의 구멍 뚫린 수통’ 편에 김종규 씨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김종규 씨는 연평도에서 타이어 정비 가게를 경영했습니다. 마을 주민입니다. 김종규 씨는 한국전쟁 때 국군 특수부대 요원으로 참전했고, 국방부와 보훈처가 주는 국가유공자 상장을 받았습니다.

김종규 씨는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가 준 상장을 불태워버렸습니다. 북한군이 연평도에 들어오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김훈은 이 삽화에 대한 소회를 289쪽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그는 훈장이 곧 죽음일 수 있다는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 정확한 생존술을 긍정한다. 이 민첩한 생존술은 그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겪어낸 모든 광기와 야만성,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작동되는 생물적 조건반사였다. 이 조건반사는 이념이 아니고 당파성이 아니다. 애국이 아니고 매국이 아니고 혁명이 아니고 반동이 아니다. (...)총칼을 들이대면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이념의 폭력 앞에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훈장을 태워버리는 행위는 정직한 삶의 길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셋-조국의 독선과 편가르기

조국을 아십니까?

서울대 로스쿨대학원 교수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현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입니다.

명색 ‘학자’라는데 감정이 이성을 압도할뿐더러, 논리마저도 가늘고 빼빼하다는 말들을 합니다.

조국은 ‘앙가주망(사회참여)’ 운운했습니다. 서울대생 일부가 자신의 폴리페서(정치 참여 교수) 경향을 비판하자, 페이스북을 통해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도덕적 의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때 앙가주망을 언급했습니다.

앙가주망의 기원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사르트르입니다. 그런데,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은 ‘권력 행사’가 아니라 언론 활동 등을 통한 ‘권력 감시, 비판, 견제’를 뜻한다고 합니다. 조국은 앙가주망을 ‘제 논에 물 대기(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셈입니다.

조국은 자신을 비판한 학생들을 ‘태극기 부대’ 혹은 극우 성향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조국을 두고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서양정치사와 정치사상을 제대로 아는 학자라면 함부로 극우 운운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조국의 이중성과 기만행위를 꾸짖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조국은 한일관계가 악화하기 시작했을 때 죽창, 의병, 이적, 친일, 헌법위반 같은 독한 단어들을 동원하면서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을 겁박했고 국민을 선동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국민 몰래 일본에 고위급 특사를 두 번 파견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근식 교수는 여기에 대해서도, 정부로서는 일본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곤궁함에 대한 창피스러움이 있을 텐데, 조 전 수석이 이걸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의도와 계산을 갖고 반일 감정을 확산하는 한편 편가르기를 한 게 아니냐, 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기가 막힐 일”이라고 개탄했는데, 개인적으로 그 개탄에 동의를 표합니다.

조국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적’ ‘친일’ ‘매국’ 운운하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 내지는 겁박한다는 것입니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과 출판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유린하고, 감히 국민의 판단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 내지는 재단하려 들기도 했습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란 책을 두고, ‘구역질’ ‘매국’ ‘친일’ 운운하며 감정 배설을 한 행위가 단적인 예입니다.

넷 -톨레랑스와 나마스테 그리고 김남주의 시

이런 상황에서 조국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습니다. 그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품 넓은 강물이 되고자 한다. 세상 여러 물과 만나고 내리는 비와 눈도 함께 하며 멀리 가는 강물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진심이기를 바라면서, 조국에게 몇 가지 조언을 드리려 합니다.

조국이 인용한 앙가주망은 프랑스어인데, 같은 프랑스어인 톨레랑스도 상기했으면 합니다. 톨레랑스는 관용, 포용의 정신을 뜻합니다. 나와 다른 신앙, 나와 다른 사상, 나와 다른 행동 양식을 용인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지식인’들조차도 지독한 독선의 위세에 눌려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진술공포증’과 ‘김종규 씨의 자기 보호 행위’가 여기저기서 재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모종의 칼을 벼리고 있는 것 같은데, 요컨대, 톨레랑스는 실종돼 버린 것이니 일차적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에 네팔 트레킹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네팔과 인도 사람들은 인사를 할 때 ‘나마스테’라고 합니다. 당신이 믿는 신, 당신 안의 신, 당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는 뜻이라 들었습니다. 조국이 이 인사법을 마음에 두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시(詩)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조국은 김남주의 시 ‘죽창가’를 인용했습니다. 김남주는 ‘전사 시인’이란 말을 듣는 사람이지만, 그의 시들 중에는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해지는 것도 있으니 조국은 부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옛 마을을 지나며’입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