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원로들의 고언(苦言)’이 쏟아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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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원로들의 고언(苦言)’이 쏟아지는 사회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20.01.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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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며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라고 질타했다(사진; 구글 이미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며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라고 질타했다(사진; 구글 이미지).

중국 절세미녀 왕소군(王昭君)을 그리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며 ‘신년래불사신년(新年來不似新年)’을 떠올린다. 나라의 어수선함과 위태함은 가시지 않고, 사회엔 오늘의 희망보다 내일에의 두려움이 많으니, 새해가 와도 새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원로들의 고언(苦言)이 잇따르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벼슬·덕망이 높고 경험·지혜가 많은 사람, 그 명망 높은 원로들도 겪은 바 고통을 되새기며 다가올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최고의 생존 인문학자’, ‘진보성향 정치학계 원로’에,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성직자, 국회의장을 지낸 노(老)정객, 고관(高官)을 지낸 과학기술계 거목까지.... 그 원로들의 현실비판과 고언 퍼레이드는 최근 특출하다. 언론 기고며 인터뷰에, 학술강연이며 건의문까지, 그들은 시대상황에 굳건히 뿌리내린 평가와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朴寅煥)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 한 구절을 변용한다면, 그 원로들은, 그 노년에, 정녕 걱정할 그 무엇이 그리 많아, 이처럼 정색하며 고언들을 쏟아내는 것일까.

원로들은 왜, 정색하며 현실비판 고언 쏟아내나

“슬로건·이념적 확신만으로 사회발전 이룰 수 없다”-한국 지성계의 대표석학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의 고언이다. 그는 신년 인터뷰에서 정부의 윤리규범을 직설적으로 꼬집는다. ‘적페청산’에는 동의하나, 무엇이 폐단인지, 그 청산으로 이룰 바는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이유? 설명능력 이 부족하거나, 실제에 대한 연구·고려를 안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그런 예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급격한 탈원전 등을 든다. 그런 맥락에서 여러 정부 정책에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신동아, 석학 김우창의 文 정부를 향한 고언).

 

그는 지난 연말, 현실 속 ‘운동권 정치’의 협량함도 신랄하게 꼬집은 바 있다. 그들은 정치운동을 위한 결사(結社)와 함께, 정권을 장악한 뒤에도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치는 정당·의회를 떠나 캠프·진영의 정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 정책집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생각의 협소함, ‘청와대 정치’라는 말로 설명한다(중앙선데이, ‘김우창의 빠른 삶 느린 생각’).

 

진보성향 정치학계 원로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역시 최근 현실정치에 바탕을 둔 고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작심하고 비판한다, 일부 운동권세력은 시대가 변했는데도 아직까지 1980년대 `친북·반미·반시장`가치관에 갇혀 편 가르기를 일삼고, ‘조국 사태’에서 보듯 편법·반칙을 통해 기득권 유지에 매달리고 있다고. 그는 경고하듯 질타한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한국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며, 현 진보세력의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비슷하다고(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

 

한국정치 과도한 진영논리에,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까지

“내 이념 중요하면 남의 이념도 중요, 서로 존중하라” “"편 가르기는 그만···단합하고 화합해야", ‘대통령들의 멘토’로 알려진 김장환 목사의 고언이다(월간중앙, ‘대통령들의 멘토’ 김장환 목사의 고언). "지지세력 만을 위한 정치, 진영논리 깨야 나라가 산다"-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과도한 진영논리에 빠진 정치권을 비판하며, 한국정치에 대한 우려를 여과 없이 쏟아낸다(파이낸셜뉴스,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듣는다).

 

"탈원전은 21세기 미스터리"라는 과학 원로들의 고언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에서 장관을 지낸 과학기술계 원로 13명은 대통령에게 ‘탈원전 에너지 정책의 전면철회’를 촉구했다. “원전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문제 해결, 국가 기간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대 전력원”, “탈원전으로 원자력산업 생태계 붕괴, 수출경쟁력 쇠퇴 등 심각한 부작용”..., 그들은 이념에 묻혀 친환경적·세계최고 기술력의 원전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고언한다('탈원전 중심의 에너지전환 정책추진 재검토 건의문').

 

원로들의 고언에서 그들의 생각을 간취할 수 있겠다. 그 고언들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적극적 경고인 것이다. 언론들이 선정한 지난 연말 ‘10대 뉴스’며 새해 다짐을 들지 않더라도, 새해를 맞은 우리 현실은 그만큼 엄중하다. 무엇보다, 진보-보수는 서로 갈등하고 배제하며 나라를 두 동강 내고 있다. 연말 정치권의 그 막장 난장판을 보라. 올해 경제사정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북핵 리스크는 크기만 하다. 당장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고질적 정치문화와 정치권의 선동에 따른 갈등·분열은 또 어디까지 갈 것인가.

 

원로·언론 키워드, '민주주의 위기' ‘더불어 함께 살기’

새해 언론사설들이 걱정하는 바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 없이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중앙), “대립·반목 넘어 ‘민의 기반한 정치’의 해 되길”(한겨레), “대통령, 지지층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를 바라보라”(동아), “특권과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소망한다”(경향).... 언론사설들은 최근의 정치문화와 현실상황을 현상적·표피적으로 보며, ‘달리며 역사를 쓰는’ 방식으로 저널리즘의 몫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원로들은 역시 같은 문화·상황을 보다 구조적·심층적으로 본다. 그들의 삶의 경험과 지헤, 생각의 넓이와 깊이는 그만큼 완숙한 것이다. 실상, 최근 한국정치는 외국석학의 눈에 ‘복수문화’로 비칠 만큼 살벌하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 은 새해, “한국은 ‘복수(vengeance)’에 함몰된 정치로 항상 내전(內戰) 상태”라고 진단하며, “내부 싸움을 멈추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동아, 2020 신년 글로벌 석학 인터뷰).

 

‘한국사회의 이념적 내전’, 이 부분에 대해선 ‘진보 논객’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도 최근 신랄한 어조로 ‘진보 저격’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가 드디어 미쳤다”, “알릴레오는 음모론적 선동” 같은 표현으로 문재인 정부와 극렬 지지자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 역시 극단적 진영논리에 대한 우려며 탄식일 터다.

 

이런 문화·현상, 우리 원로·석학들은 논리적으로 뿌리를 캐며 명백한 말로써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키워드는 같다. ‘한국철학의 아버지’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본 삶의 지혜처럼, ‘더불어 함께 살기’의 가치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이다.

 

‘국민 모두 행복한 한 해’ 위한 통합·책임의 리더십 절실

마침, 대통령의 새해 다짐이 있다. “국민 모두가 지난해보다 좀 더 행복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보며 대통령의 취임사를 되새긴다.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다. 이 부분, 원로 김우창의 평가와 기대가 있다. 많은 이의 마음에 울림을 줬으나 구체적 현실에 연결됐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 현실의 삶을 살피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제 해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차제에, ‘국민 모두의 행복한 한 해’를 위해, 눈앞의 위기를 돌파할 리더십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오늘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믿을 만한 위기돌파의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원로들의 고언을 살피지 않더라도, 국민들의 반목과 분열부터, 결국 대통령의 책임은 적지 않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해, 대통령은 마음의 문을 열고 때로 고집을 꺾어가며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더러 대통령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절실해 하기도 하지 않나.

 

이제 대통령은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통합의 리더십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저 자화자찬식의 신년사며 혹 자기 합리화의 기자회견을 넘어, 정녕 국민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열망하는가를 새삼 챙겨갔으면 좋겠다. ‘주역의 대가’ 김석진 옹의 새해 전망은 “작은 산이 하늘을 품듯이 욕심 가득... 올해는 멈출 줄 알아야”이다. 국가·국민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앞장서지 못할 바는 또 뭔가.

 

TV 시청자의 성원에 힘입어 최근 '시즌 2'를 시작한 '낭만닥터 김사부', 그 '김사부'의 리더십이 새삼 그립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나는 거다", 그의 명대사가 특히 그립다. 그 '낭만 리더십'의 배우 한석규는 자기 몫에의 확고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바탕삼아 말한다, "낭만은 사람에 대한 소중한 배려심"이라고-. 우리 현실도, 늘 '사람에 대한 소중한 배려'를 앞세우며 '더불어 함께' 사는 일상이었으면 참 좋겠다. 우리들도 그런 시대를 위해, 원로들의 귀한 고언에 늘 깨어 있어야 할 터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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