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진중권들’에게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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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진중권들’에게 영광 있으라!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20.01.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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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을묘사직소'와 권력거리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접거나 구부리지 않고 주저 없이 펼쳐서 내지르는 것은 옳은 선비의 덕목이었습니다. 옛일들을 더듬어보면 그리 한 분이 한 둘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널리 알려져 있기로는 남명 조식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의 ‘을묘사직소(단성소)’를 읽어보겠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지 못하고 등용했다가 훗날 국가의 치욕이 된다면, 그 죄가 어찌 미천한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그릇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대비께서는 비록 생각이 깊으시다 하나 깊은 궁중의 일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다만 선왕의 일개 어린 후사이실 뿐입니다. 그러니 온갖 천재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어떻게 감당해 내며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상소문의 몇몇 표현들(일개 과부, 일개 어린 후사 같은)로 인해 남명은 죽을 뻔했습니다. 왕이 죽이겠다고 했으나, 신하들이 극구 만류한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을묘사직소’를 읽으면서 ‘권력거리’를 생각했습니다.

‘권력거리’는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기어트 홉스테드가 개발한 것입니다. 어렵게 말하면 ‘조직에서 부하를 그들의 상사로부터 격리시키는 감정적 거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부하가 상사에게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의 정도’가 되겠습니다.

홉스테드가 5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권력거리가 가장 큰 1위 나라는 말레이시아입니다. 안 좋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간쯤인 28위입니다. 일본에서 관료조직을 경험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분위기가 매우 권위적이고 딱딱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아서 33위입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수상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독일은 42위, 국왕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한 가게에 들렀다가 수표 결제가 안 돼 애를 먹었다는 스웨덴은 47위입니다.

이스라엘은 군(軍)에서도 하급자가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고, 비공식 행사에서는 총리도 시민들과 함께 줄을 서야 한다고 하는데, 아무렴, 52위입니다. 대망의 53위는 오스트리아입니다. 권력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매사가 그렇듯 여기에서도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위기 상황 앞에서조차 위험을 알리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위압적인 ‘레이저 눈빛’으로 대변되는 권력거리 때문에 무너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는 기자들이 “장관의 대면보고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면서 “대면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분위기가 스산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이 정권이 무너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지금 이 정권의 현실을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의사결정의 수준을 높이려면 상하 간, 구성원들 간의 의사 표명이 자유로워야 하고, 갈등과 마찰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실정이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도 북한 문제를 비롯한 몇몇 현안들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꺼낼 수조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야인사들로서 정권 창출의 핵심인 사람들조차 언젠가부터 청와대에 말을 넣을 수 없게 됐다며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광신도를 연상시키는 극렬 지지자들의 태도입니다. ‘문빠(문재인 정권 열성 지지자)’라 불리는 이들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문자 테러와 사이버 테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의 와중에, 조국을 수호하려는 건 현 정권과 진보를 죽이는 길이다, 라고 외친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금태섭 김해진 조응천 국회의원은 망측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자유한국당으로 가라, 다음 공천은 없다, 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국 사태’ 때 이건 아니다 하면서도 말을 하지 못한 의원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조국 사퇴’를 꺼내면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고, ‘조국 수호’를 외치면 본선에서 질 게 뻔해 전전긍긍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집단 린치’에 의한 해괴하고 가관인 권력거리가 똬리를 틀고 있고, 참모들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격의 없이 토론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민망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영화 '월드워 Z'의 한 장면. '열 번째 남자'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영화 '월드워 Z'의 한 장면. '열 번째 남자'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열 번째 남자'와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열 번째 남자’와 ‘악마의 대변인’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열 번째 남자’는 아홉 명이 동일한 정보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열 번째 남자는 무조건 반대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가톨릭에서는 누군가를 성인으로 추대하고자 할 때 학식이 깊은 무신론자를 초빙해 그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도록 합니다. ‘악마의 대변인’ 제도입니다. 둘 다 결정의 오류를 최소화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문빠’는 ‘열린사회의 적’이자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진보의 적이자 이 정권의 ‘트로이의 목마’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보기에, 이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문빠’가 만들어 놓은 권력거리와 거기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선전선동을 일삼거나 한 이르는바 ‘어용 진보 지식인’들의 책임이 결코 작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열 번째 남자와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할 것인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주목에 값하고 있습니다.

우선, 진중권은 동양대에 사직서를 냈고,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등의 진정성과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정권과 ‘조국들’을 일견 앙증맞고 깜찍하지만 실은 민망한 논리로 보위하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공지영 소설가, 김어준 뉴스공장 진행자 그리고 문빠 들의 카르텔을 여유 있게 해체하고 또한 꾸짖고 있습니다.

유시민에 대해서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의 발언을 ‘음모론적 선동’으로 규정했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지지자들을 ‘네오 나치’와 ‘좀비’라 불렀습니다.

악성 댓글에 대해서는 “독재정권 시절엔 견해가 다른 사람은 ‘빨갱이’로 몰았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견해가 다른 사람을 ‘자한당(자유한국당)’으로 몬다”면서 “저쪽이 악이라고 너희가 선이 되는 게 아니다. 너희도 악”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핵심을 잘 짚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진보(라 자칭하는)’ 쪽에서 박용진, 금태섭, 김해진, 조응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김경률 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 같은 ‘열 번째 남자’와 ‘악마의 대변인’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진중권은 특별히 강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중권의 행보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앞으로, 진보 보수 중도를 막론하고 더 많은 ‘남명 조식들’과 ‘진중권들’을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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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C뉴스 2020-01-08 23:01:39
논리전개가 매끄럽고 추상같은 결기가 넘쳐 흐르는, 글 읽은 맛이 정말 서늘한, 한국 언론에선 근래 보기 드문 명칼럼이네요,, 건필 꿋꿋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