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이 화백 새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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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이 화백 새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 출간
  • 취재기자 심헌용
  • 승인 2020.01.0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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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송혜수 미술상’ 수상한 70대 저명 판화가
인간사의 추억과 회한 등 서정적 문제로 담아
주정이 화백
주정이 화백

“내 집 움막에서 차 마시는 이들은 마을 이름을 빌려 <안금다실>이라 한다. 자주 드나드는 술꾼 누구는 <시 읊는 주막>이라 하며 그는 움막에서 술 마실 때마다 모은 이오와 김후, 두 선비가 한 구절씩 지은 시를 읊는 것이 18번이다. 그가 웬만큼 주기가 오르면 읊는 시는 움막 분위기에 그럴싸하긴 하다.

깊은 대밭 속 대여섯 떨기 꽃이

산촌 적막한 집에 색을 더하고

방안 술동이에 술 있는 걸 보니

벼슬하고 싶은 마음 사라지네.“ (<움막> 중에서)

주정이 화백이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해성)를 냈다.

주 화백은 오래 전 경남 김해시 신어산의 한 자락을 빌려 기화요초를 심었고, 이들이 번갈아 피는 모습을 보며 살고 있다.

그는 이번 산문집을 두고 ‘자연과 함께한 이러저러한 상념의 편린을 버무려 담은 나물종기에 술 한 잔 얹어 낸 소반’이라고 자평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산문집에는 작가로서의 서늘한 마음가짐, 인간사의 추억과 회한, 자연에 대한 애정, 아프고 슬픈 역사 같은 것들이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나물비빔밥처럼 뒤섞여 있다.

산문집은 ‘일기’ ‘상무주 가고 있다’ ‘움막’ ‘새벽 이슬에 붓 적시어’ ‘실개천이 사라졌다’ ‘목의 가시’ ‘1학년 3반 의자’ ‘꿈을 깎는 목공소’ ‘글로 읽는 그림’ 등의 소제목으로 분류돼 있다.

대부분의 글들에는 저자 자신의 목판화 작품과 사진들이 함께 배치돼 있어서 글을 읽고 그림을 보고,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일정한 수준과 경지에 오르면 미술과 문학은 필경 삼투한다, 는 말을 이 산문집은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주정이 화백의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사진: YES 24).
주정이 화백의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사진: YES 24).

다음은 ‘욕망’이란 제목의 산문이다. 작가의 내면이 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어제도 숫돌에 칼을 갈았고 오늘도 숫돌에 칼을 간다.

밥 먹을 때도 목구멍으로는 밥알을 넘기지만 마음은 칼을 갈고 잠들어 꿈속에서도 칼을 간다.

외출할 때도 눈은 차창 밖 세상 구경을 하지만 가슴은 칼을 갈고,

칼 가는 것이 일이고 칼 가는 것이 운명이듯,

날마다 눈만 뜨면 숫돌에 연신 물을 축이며 싸악~ 싸악~ 칼을 간다. 일 년 열두 달 한 달 하루 한시도 거르지 않고 숫돌에 칼을 간다.

아직은 공력이 약해 무딘 칼날이라도 하루가 일만 날이고 일 년이 일만 달이듯 갈고 갈아 칼날이 다 닳고 손안의 칼자루도 다 닳아 비로소, 칼날이 보이지 않고 칼자루도 없는 빈손이 되어

오월 수릿날 하늘 길목 소도마을 공터에서나, 상무주 양철 지붕 때리는 소나기 소리 장단해서나,

허공을 가르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춤사위로 춤을 추고 싶다. 추다가 혼절이라도 할 만큼 실컷 칼춤을 추고 싶다.“ (전문)

한편 주정이 화백은 열일곱 살 때 국제신보에 시사만화를 그렸으며, 한동안 사진가로도 활동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판화로 장르를 옮겼는데, 1천여 회에 이른 부산일보 일일 연재소설의 삽화를 목판화로 감당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부산미술포럼의 대표를 지냈고 제1회 ‘송혜수미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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