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훌리건과 패거리즘이 지배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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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훌리건과 패거리즘이 지배하는 정치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04.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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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사라졌다. 달마다 세비를 챙기는 국회의원은 수두룩하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고 섬기는 정치인은 드물다. 서울 여의도에 국회의사당 건물만 있을 뿐 민의를 수렴하고 국리민복을 위해 고심하는 입법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소야대’ 지형의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래 지난 1년간 국회는 핏발선 삿대질과 고함소리만 요란했다. 국회의 제1의 존재이유인 입법 행위가 여야간 뒷다리 잡기로 사사건건 태클이 걸렸다. 여야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발의한 법안의 통과율을 보면 실상이 드러난다.

국민일보 보도(2023년 3월 11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접수된 의원 발의 법안 4964건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361건(7.27%)에 불과했다. 의원들이 만든 법안 100건 중 7건 정도만 통과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때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 28.42%(2만9587건 중 8410건 통과), 박근혜 정부 34.81%(1만7483건 중 6086건 통과), 이명박 정부 35.23%(1만4523건 중 5116건 통과)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 4년의 기간이 남았다고 하지만 국회가 심기일전해서 ‘열일’ 할 것 같지는 않다.

정부 발의 법안의 국회 통과율도 성적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0개월 사이에 정부 발의 법안 136건 중 28건(20.59%)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부 발의 법안 통과율 61.48%, 박근혜 정부 72.05%, 이명박 정부 78.03%와 비교할 때 부끄러운 수준이다.

원인은 제로섬 정치와 극단주의에 있다. 지금 여의도 정치판엔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전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타협과 협치를 통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찾으려는 노력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뒷전이다. 극단적인 주장과 일방적인 논리만이 횡행한다. 타협과 협상은 변절자나 사이비로 몰린다. 선명성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국회의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양 유치하고 설익은 초선의원들의 강성발언이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 당내 의원들을 다독이고 조율하는 원로의원이나 중진의원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국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여당과 야당 내부의 기형적이고 기묘한 구조에서 출발한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보다는 상대 정당, 내부 파벌투쟁에 골몰해 있다. 물론 과거에도 계파가 있고 친소관계에 따라 계파가 있었으나 지금처럼 죽기살기식으로 시퍼런 칼끝을 상대방의 심장에 겨누지는 않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선거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상대에 대한 분노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니 걸핏하면 대통령 하야 혹은 장관 탄핵 주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주요 요인의 하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집권당의 책무를 알고 있기나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이 희박하다. 아무리 여소야대 지형의 국회 의석구조라고 하지만 집권여당으로서 국가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나 결연함이 없다.  ‘용산’만 쳐다보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다시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재입성하는 것에만 관심이 쏠린 것 같다.

외면적으로는 윤석열 정권을 안정시키고 국정운영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여당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력투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준석 당 대표를 쫒아내고, 나경원 전 의원을 전당대회 후보에서 사퇴시키고, ‘윤안연대’를 표방했다고 안철수 후보를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규정하면서, 끝내 여론조사 꼴찌이던 김기현 후보를 1위로 만들어 당대표로 선출한 것은 ‘친윤 패거리즘’의 힘을 대내외에 알린 일련의 정치 이벤트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당 초선의원들의 행태는 부끄럽기 그지 없다.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초선의원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50명이 홍위병처럼 연판장을 돌려 당대표에 출마하는 나경원을 윽박질러 주저앉힌 것은 정당사의 희비극이다. 초선의원이라면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뒤집어엎고 새바람을 일으켜야 마땅한데 오히려 권력 앞에 줄서기를 하는 모습은 남우세스럽다. 오로지 ‘용산의 뜻’을 직할하는 ‘윤핵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손가락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모양새다. ‘윤핵관’의 눈에 들어야 다음번 선거에서 공천장을 따낼 것이라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을 잇는다는 민주당의 모습은 더욱 기괴하다.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개딸’(개혁의 딸)이 당내 언로를 좌지우지하고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압박하는 지경까지 왔다. ‘개딸’을 등에 업는 일부 초선의원들은 합리적이고 의회주의적인 중진의원들을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이라고 몰아붙이고 갈라치기를 하는 통에 대다수 의원들은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고 있다. ‘개딸’의 좌표찍기를 초선의원들이 뒷받침해주고 다시 조리돌림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민주주의 체제의 정당 모습이라기에는 처참하기까지 하다.

지난달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재석 297인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무효 20표로 ‘가결 같은 부결’이 됐다. 표결 직후 국회 의원회관 민주당 의원실의 전화통은 불이 났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 같은 ‘범인들을 색출’하려는 시도였다.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야, 이 XXX야” “쓰레기” “수박” “독버섯” “기생충” 같은 욕설과 비속어가 수화기 너머에서 쏟아졌다고 의원실 보좌관들은 전했다. 항의 전화에 시달린 의원들이 “부결표를 던졌다”고 억지 양심선언을 하는 웃픈 일도 벌어졌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민주당 이탈표 30여 명의 배후로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대표를 지목하고 ‘영구제명’ 청원에 들어가 답변 기준인 5만 명을 훌쩍 넘겼다. 또 ‘수박 7적’ 명단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러니하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지난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층인 ‘문파’가 상대 후보에 대한 문자폭탄과 비난 댓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오히려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라고 두둔했다. 결국 돌고 돌아 부메랑을 맞게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수박 7적’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것은 아직도 ‘양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가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은 정치인 스스로 정치 훌리건 수준으로 치닫는 강성 팬덤과 극단으로부터 결별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와 강성 팬덤은 구별돼야 한다. 강성 팬덤은 국회의원의 ‘소신정치’를 제약하고 포퓰리즘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강성 팬덤을 국민의 의사, 당원의 의견으로 호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스스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면서 필요할 때는 무책임한 군중을 옹호하고 들러리 세워 악용하려는 행태는 이율배반적이다. 극단주의와 극성 팬덤이 지배하는 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고, 이득을 보는 자는 정치 모리배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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