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2년,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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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 2년,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는다
  • 시인 이현우
  • 승인 2019.05.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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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현우
시인 이현우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지금 이 정권은 믿어도 좋은 정권입니까? 답을 얻기 위해 멀리 갈 것 없이 대통령 취임사를 찾아봅니다. 제목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었던가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서두를 참 멋지게 열었습니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라입니다."

그날 많은 국민들이 이 취임사를 들으며 가슴 뿌듯했을 겁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우리 앞에 열린다니 이 얼마나 감격할 일입니까. 그래서 취임 초기의 지지율이 80% 후반까지 치솟았겠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어언 2년이 지나면서 ‘열정·통합·공존·희생·헌신…’ 같은 고귀한 단어들조차 빛이 바랜 느낌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극한상황에 처해있고, 갈등과 분열이 국론을 둘로 나누어, 정치 토론을 하면 적이 되어 버리는 이 기막힌 현상은 도대체 언제 누가 초래한 것입니까? 통합과 공존을 말씀하시던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경제불황, 청년실업,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출산율은 역대 최저이며, 세계 경제 호황기에 우리만 뒷걸음치는 이게 바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얼굴입니까? 다른 문제도 많습니다. 외교는 고립무원, 국방은 아슬아슬, 교육은 교실 붕괴… 이 모든 것이 무지한 사람의 잘못된 진단이기를 바랍니다.

영광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없습니다. 오욕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진 나라도 없습니다. 영욕이 뒤섞인 역사에서, 오욕은 기억하며 겸허히 반성하고, 영광은 소중히 보살피며 확대 재생산해나가야 행복한 미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는 모택동의 초상화를 보셨겠지요. 모택동이 죽은 지 한참 지난 오늘까지 그 초상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줄잡아 70만이 넘는 문화대혁명의 직접 피해자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존치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 측근들이 ‘등소평 제거’를 건의하자, 모택동이 만류했습니다. "그는 비록 나에게는 최대 정적이지만 중국에 꼭 필요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다." 반대쪽 세상이 와서, 이번에는 ‘모택동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등소평이 단칼에 정리했습니다. "모택동은 공이 7이고 과가 3이다. 공은 취하고 과는 버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치는 1할의 과오만 있어도 모조리 부정하는 진영논리뿐이지요. 대통령님은 아닙니까?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이 지금 이 정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폐 청산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슨 말로 호도해도 그 과정이 ‘적폐를 이용한 반대세력 쳐내기’로 보입니다. ‘적폐 그 자체’보다 ‘사람에 방점’이 찍혀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폐 청산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현 정권은 신적폐를 만들지 않아야지요. 벌써 곳곳에서 신적폐가 구적폐를 따라잡고 있지 않습니까?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

이어진 말씀은 이렇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하셨네요. 그중에 하나만 취한다면 저는 ‘약속’으로 하겠습니다.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나라는 다른 무엇보다 대통령님이 약속만 잘 지키면 가능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탈세, 이중국적, 논문표절, 병역기피, 불법 재산증식’ 등등은 이번 인사를 통해서 누구나 저질러도 ‘괜찮은 불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평범한 서민들이 이런 짓을 했다면 장관이 아니라 감옥으로 갔겠지요. 똑같이 법을 어겨도 누구는 감옥 가고 누구는 출세하는 이런 세상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은 장식용이 아닙니다. 청와대 대변인을 봅시다. 특권과 반칙의 달인이더군요. 남을 재는 저울은 야박하기 짝이 없고, 자신을 재는 저울은 넉넉하기 그지없는 이중성이 돋보이는 인사였습니다. 상류 사회가 정의로워야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뿌리부터 흔들고 계시네요.

탕평인사와 관련해서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삼고초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인재를 구하는 데 있어 두말할 필요가 없는 고사지요. 그런데 현 정부에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최근의 7인 입각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대통령 비서실장(전)’ 이분들 모두 권력 핵심인데, 특정 지역 출신으로 채워졌네요. 그뿐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유사한 배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날 그토록 비난하던 공직 인사를 그대로 답습하셨군요. ‘인사가 아니라 망사’라 해도 하실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

더 읽어보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제발 좀 솔직해집시다. 잘못은 모두 지난 정권 탓으로 돌리시면서,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고 하셨네요. 정말 듣기 민망합니다. 아 참, 동반자가 있긴 있군요. 정의당, 평화당…본(本)이 같은 친구들. 아니, 그런데? 지금 이 시각 광화문 광장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미운털 박힌 오리는 오리가 아닙니까?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역대 모든 정권이 추진해온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대통령의 의지가 미약하거나, 아니면 과잉충성분자들 때문입니다. 만일 대통령님의 뜻이 확고하다면 권력기관의 장을 아예 국회에 맡겨 특검 임명하듯 하거나, ‘읍참마속의 눈물’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현 정권에도 ‘마속’은 분명히 있습니다. 능력도 없이 중책을 맡아 국정 난맥을 초래한 ‘자기 정치꾼’ 말입니다.

덧붙여, 공권력보다 무서운 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은 공공연히 여론을 주도해서 태풍을 만들고, 때로는 왜곡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어둠 속의 치효(鴟梟)와 같은 존재들이지요. 언론 권력, 군중 권력, 시민 권력, 광빠 권력… 이 밖에도 제법 있습니다.

과거에도 물론 그랬었지만, 작금의 언론은 권력 위의 권력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교묘하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진영을 위해 꼬리를 흔들고 요설을 늘어놓아 선량한 국민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초특급 미세먼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바야흐로 ‘기레기천국’입니다.

시민단체 또한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단체가 아니라 준 정치집단이지요. 권력의 떡을 조금이라도 베어 물면 감격해 마지않는, 그래서 더욱 열을 올리는, 그런 부류들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것,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더욱 문제는 지지자들입니다. 노빠. 명빠, 박빠, 문빠… 멍청하고 막무가내인 이들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우리의 정치판이 경직되었습니까.

이들은 대통령에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날의 칼입니다. 불가근불가원인 셈이지요. ‘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이들 숨은 권력을 이용하거나 편승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사려 깊은 지도자라면 촛불이나 태극기 같은 한쪽만의 지지세력을 앞세우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셔야 합니다.

촛불도 태극기도 결코 모든 국민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셔야 나라가 바뀝니다. ‘촛불정권, 촛불정권’ 하시는데, 좋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를 촛불에 두신다면, 다음에 ‘태극기정권’이 등장했을 때 어찌하시렵니까? 둘 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우스꽝스러운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국민들에게는 그저 ‘대한민국 ○○○정권’이 있을 뿐입니다. 국호 ‘대한민국’ 속에 ‘우리 모두’가 들어 있으니까요.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종식되어야 한다

아직도 제법 남아있군요. 한꺼번에 짚어봅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천하에 보기 드문 명문이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을 놓고 보니, 졸문 중의 졸문입니다. 약속의 대부분이 파기되었으니까요. 말이든 글이든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지켜져야 아름다운 법입니다. 한미동맹은 따로국밥, 기회는 새치기로, 과정은 뛰어넘고, 국정은 내 편끼리, 인재 찾아 우리 동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고, 잘못은 너 때문에, 소통은 말만으로, 결과는 오리무중….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재벌개혁은 어린아이 다루듯 해야 합니다. 상이든 벌이든 모성이 깃들어야 아이가 바로 크듯 재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이는 재벌개혁의 궁극적 의미가 개혁이 아니라 해체라고 단언합니다. 이미 그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불행한 역사의 반복’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취임사를 통해 ‘종식’을 말씀하셨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 까닭과 답은, 지난 2년 동안의 정치 속에 있습니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다가도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순리를 따라야 모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말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좌파 정권을 믿지 않습니다. 정의를 가르치면서 불의를 저지르는 교사와 같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적폐’를 척결하는 유일한 무기가 ‘도덕성’임에도, 그 위대한 가치가 지금 ‘위선’의 공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누구 못지않게, 인명 ‘문재인’이 역사 속에서 축복 받기 바랍니다.

이는 좌파정권에 대한 기대나 시각의 변화가 아니라, ‘현 정권이 성공해야만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해진다’는 갈망입니다. 오늘 이 글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성공하십시오. 이념과 진영을 떠나, 모든 국민이 다 함께 존경하는 첫 대통령으로 거듭나시기를 간곡히 소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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