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최선 아니면 차악, ‘나쁜 후보’ 걸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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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최선 아니면 차악, ‘나쁜 후보’ 걸러내기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4.04.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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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사회적 지위, 국회의원

1. 최근 세계 속의 15개 직업 중, 한국에서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은 국회의원이다. 그 국회의원의 사회적 지위, 미국 12위, 독일 10위로 최저 수준이다. 미국·독일에서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은 소방관이다. 그 소방관, 한국에선 11위로 최저 수준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최근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 비교연구’ 조사 결과다. 한국은 연구 대상 5개국 중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인식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왜, 국회의원의 사회적 지위를 ‘최고’로 인식하는가? 그건 국회의원이 누리는 독특한 특권과 높은 처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 국회의원은 특유의 불체포특권·면책특권에, KTX 특실과 비행기 비즈니스석 무료 이용권까지 186개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세비(연봉) 1억 5,700만 원 역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5.27배, 세계최고 수준이다. 한국보다 3배 잘사는 노르웨이보다 훨씬 많다.

그뿐인가. 한국 국회의원은 보좌관 9명에, 매년 7억 700만 원의 의정 활동비를 지원받고 있다. 선거는 후원금으로 치르고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받는 ‘파렴치’한 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 온갖 공천 추태를 벌이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 그건 공공에의 헌신보단 ‘신(神)의 직장’을 향한 무조건적 투쟁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국민의 선량을 자임하며 독특한 특권 앞에선 침묵을 지키는 무리, 범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하고, 뇌물을 받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감옥에서도 급여를 챙기는 사람…. 이런 국회의원에게 국민 혈세로 돈과 특권을 퍼주는 것,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최근 사회 일각에서 그 특권 폐지 운동이 불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번 4·10 총선에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주창하는 ‘특권폐지당’까지 등장했겠나.

나라사랑공생시민운동본부 주최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위한 헌법개정 100만 궐기대회’(2024년 3월 10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사진;구글 이미지).
나라사랑공생시민운동본부 주최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위한 헌법개정 100만 궐기대회’(2024. 3.10)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사진;구글 이미지).

국회 경쟁력, OECD 국가 중 최하위

2. 그 국회는 제 몫은 하고 있나? OECD 35개 국가 중 국민소득 대비 세비 3위에, 효과성 평가는 꼴찌에서 2위다. 당면한 국가적 위기엔 무책임하고 제 특권 지키기엔 얄짤없는 국회, 그게 국회의 대명사다. 우리에게 당연해야 할 사회적 질서며 이성적 합리성이 권위를 잃고, 혐오·극단의 정치와 침체 속의 경제가 일상화한 것, 국회 탓이 크다. 오죽하면 ‘교수신문’이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움을 보고 의로움을 잊다’를 선정했겠나

21대 국회는 주요 민생법안 처리를 외면했다. 오늘의 세계적 생존경쟁 속에서 국회가 당장 급한 중요 입법을 가벼이 한 것, 여·야가 주요 아젠다를 총선 잣대로만 여긴 때문이다. 한 표라도 얻을 것 같은 ‘달빛철도법’은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면서 중소기업이 그토록 호소한 ‘중대재해법’ 유예는 끝내 무산시킨 것, 그건 정당의 정치적 표 계산 때문임은 부인 못 할 바다. ‘민생 없는 극단 정치’의 폐해, 결국 국회의 직무 유기다.

한국 국회의 경쟁력(생산성)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21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구글 이미지).
한국 국회의 경쟁력(생산성)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21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구글 이미지).

21대 국회에서, 각종 범죄를 저질러 의원직을 상실한 9명의 평균 임기는 30개월이다. 당초 자격 없는 이들이 혈세를 축내가며 4년 임기의 절반 이상을 의원 노릇을 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 증명서를 만들어 준 민주당 최강욱은 기소 후 총선에 출마, 40개월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야당 대표를 포함, ‘범죄 의원’ 17명은 아직도 의원직을 유지하며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법을 한 야당 대표의 결정에 위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고수한 과정을 보라. 국민은 왜,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까지 선거방식도 모르는 유권자로 살아야 하나. 국민은 왜, 위헌정당으로 해산한 정당원을 국회의원으로 수용하는, 그 헌법 가치 훼손을 감내해야 하나? 국회의원 선거구를 선거 40여 일전 확정한, 그 불법 사태는 또 뭔가? 그건 ‘민의(民意)’ 대신 ‘정치 수(手)’ 싸움에 탐닉한 결과다.


4·10 총선, ‘정치개혁’의 시대정신 추구할 때

3. 4·10 총선 앞이다. 오늘의 혼란상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추구할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번 총선에서 추구할 ‘시대정신’(Zeitgeist, spirit of the age)은 뭔가? 그 시대정신은 오늘의 ‘실패’에 바탕한 반성·질책과 내일의 ‘성공’을 담보할 비전·열정이어야 한다. 이념에 침몰한 낡은 정치 대신 세계적 생존경쟁에 대응한 시대적 전환, 기존 정치질서의 해체와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 시대정신의 출발은 ‘정치개혁’부터다.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그 신조어를 되새긴다.

눈앞의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정치판이 아무리 해괴하다 한들 오늘 같은 막장극이 또 있을 수 있나. 여야의 공천 과정을 보라. 역대급 막말과 사회적 논란, 공천 취소 릴레이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비호감 총선판이다. 범죄를 저질러 유죄를 선고받거나 재판을 받는 범죄 혐의자들이 공천을 독점한다. ‘불공정+반칙·위선의 대명사’가 신당을 만들며, 재산 증식을 둘러싼 ‘아빠 증여 찬스’, ‘장녀 대출 사기’, ‘남편 전관 예우’까지 난무한다.

이번 총선 후보자의 1/3은 전과자다. 전과 11범도 있다. 범죄 혐의로 기소당한 피고인은 34명,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 후보만 추려도 28명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금배지를 달고 법정을 드나드는 국회의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연예기획사보다 못한 정당 공천’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나? 상대에 대한 이해·존중·배려 대신 혐오와 적개심만 가득한 선거판이라는 한탄이 나오겠나.

이런 과정 끝의 국회의원에게, ‘소명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겠나. 막스 베버의 명작 『직업으로서 정치』에서 강조한바, ‘신념의 윤리’보다 ‘책임의 윤리’를 앞세우는 소명감·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겠나. 정치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할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정치를 특권 누리는 직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기대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별 있는 국민의 분별 있는 정치인 골라내기

4.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어차피 정치는 현실인 것을. 정치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식으로는 최악의 결과만 남을 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때로는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 총선 역시 흠 있는 후보 중 ‘차악’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정치는 혁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을 지향하는 수단임을. 한편으론 우리가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책임도 생각한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뚜렷한 공약도 없다. 두루 혐오·증오에 기댄 과거 회고적 청산·심판론을 앞세울 뿐, 미래에의 희망적 담론은 없다. 우리가 직면한 극저출산-초고령화, 악화하는 북핵 위협, 세계 생존전쟁 속의 경쟁력 약화, 파멸적 기후위기도 그들에겐 관심 밖이다. 어차피 정치개혁의 핵심은 과도한 처우 및 특권의 과감한 축소부터다. 그나마 *헌법상 불체포 특권 폐기 *의원 정수 50명 감축 *세비의 중위소득 수준 감축 같은 공약은 어떤가?.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야 한다. 여러 후보 중 ‘아무나’를 뽑을 순 없지 않나.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정치를 할 순 있지만,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순 없다. 아무리 국회의 문턱이 낮아졌다 한들, 국가 관념이 걱정스러운 후보, 온갖 범죄를 정치로 뒤덮으려는 후보, 막말로 상대를 멸시하며 국민을 갈라치는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뽑을 수 있나? 민주정당에서, 이런 후보를 공천하여 국회로 보내는 것은 정녕 괜찮은가?

특히, 숱한 막말과 ‘불법 대출’로 국민 법 감정을 거스른 후보, 근거 없는 성(性)적 혐오 발언으로 각계의 지탄과 사퇴 요구를 받은 후보도 있다. 이 같은 ‘혐오의 일상화’는 정말 괜찮은가? 그들의 국회 입성을 막을 방법은 오직 사회의 공론과 유권자의 투표밖에 없다. ‘좋은 후보 고르기’보단 ‘나쁜 후보 걸러내기’가 절실한 이유다.

민주당 양문석 후보(왼쪽)는 잇따른 막말 파동에 이어, ‘불법 대출’ 의혹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사진; 더팩트), (아래)민주당 김준혁 후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 발언으로 이화여대와 여성계의 사퇴 촉구를 받고 있다(사진: MBC 화면).
민주당 김준혁 후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발언으로 이화여대와 여성계의 사퇴 촉구를 받고 있다(MBC 화면).

우리에게 그런 정치인을 가려낼 의지와 안목이 있을까? 그럴수록,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의 지적처럼,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Idiote)’, 곧 오늘날의 ‘얼간이(Idiot)’일 수는 없다. 우리는 공인의식에 바탕한 신뢰와 책임이 없는. 너무나도 정치적인 정치인에게 오늘의 정치와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순 없지 않나. 이제 모레,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그 ‘나쁜 후보 걸러내기’를 위해서. 분별 있는 정치인은 분별 있는 국민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선택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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