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한국 민주주의의 적(敵)들; 보수의 분열, 진보의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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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한국 민주주의의 적(敵)들; 보수의 분열, 진보의 부패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06.0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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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퇴보하고 있다. 보수는 분열과 오만, 진보는 부패와 독선의 덫에 빠지며, 민주주의의 공적(公敵)으로 추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양극화에 기댄 정치권의 경계 없는 폭주(暴走)는 일상적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느라, 당위와 현실을 조율해야 할 정치의 책무를 외면하고 타협 대신 대결에 탐닉하고 있다. 그들의 민주주의 남용 및 탈선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회의(懷疑)하게 한다.

한국의 보수-진보는 오늘의 역사적 대전환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을 놓치며 추구할 가치를 외면한 결과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도 역설적 전환에 직면했다. 보수는 분열, 진보는 부패했다. 정부기관 신뢰도 최하위 ‘국회’(통계청), ‘가장 부패한 집단’ 1위 ‘정치권’(권익위), 이렇듯 무능하고 타락한 진영 세력에게 나라의 운명을 온통 맡기고 있다는 것, 우리를 참 슬프게 한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정의․공정․도덕과 민주주의를 설파한 지도 벌써 4반세기다. 그는 신간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최근의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퇴보 현상을 새삼 한탄했다. 지배층은 여러 구실을 들어 자기편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 소셜미디어는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내보내며 대중을 흔든다, 좌파-우파 지지층은 분리상태에서 살아가며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그 망국적 현상, 우리가 나날이 절감하는 데자뷔 그대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다. 지난 대선을 혐오․저주의 전쟁으로 치른 후유증은 극심하다. 그 진영 전쟁이 나라의 장래를 위협할 ‘정치적 내전’이었다면, 오늘 낡고 뻔뻔한 보수-진보의 극단적 대치는 ‘대한민국의 존망을 건 위기’라 할 만하다. 이대로 갈 순 없다. 지금처럼 목소리 큰 소수가 꾀하는 순응편향(順應偏向), 진영 중심의 집단착각에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 국가의 존망을 건 두려움 앞에, 유능하고 도덕적인 새로운 인물․세력을 찾아가야 한다.


1. 보수의 분열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때부터 우려했던 바다. 대통령은 실상 한 편의 기적처럼,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승리했다. 그 박빙은 ‘정권심판’의 결과다. 국민은 전임 정권의 실패, 곧 ‘신념윤리’를 앞세우며 ‘책임윤리’를 외면한 독선․오만, 공정․정의를 외면하며 ‘내로남불’에 침몰한 불의․부도덕, 그 국정 운영의 무능․무책임을 심판했다. 국민이 그에게 건 기대, ‘문재인의 실패’ 바로잡기와 국가․국민의 통합부터였다.

대통령은 지난 1년, ‘비정상의 정상화’에 매진했다. 취임 때 약속한 연금·노동·교육의 3대 개혁은 첫발도 못 뗐다. 대내외 여건의 악화로 경제 활성화나 민생 개선에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정의 동력, 그 대통령 지지도 역시 최근 44.7%, 최고치를 기록했을 뿐 내내 30%대를 오갔을 정도다. 임기 초반의 그 위기에는 분명, 심각한 내생적(內生的)요인이 있을 터이다. 양대 선거에서 연승한 여당의 악전고투, 좀 엉뚱하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에 매진했으나, 국정 지지도는 그리 높지 못하다. 독선에 빠져 국민과의 공감에 실패한 탓이다(사진: 대통령 취임식 후 현충원 헌화 장면,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에 매진했으나, 국정 지지도는 그리 높지 못하다. 독선에 빠져 국민과의 공감에 실패한 탓이다(사진: 대통령 취임식 후 현충원 헌화 장면, 대통령실).

‘윤석열의 위기’, 근본적 문제는 자신이다. 스스로 공정-정의 감각을 상실하며 국민과의 공감에 실패했고, 평정심을 잃으며 나름의 독선에 빠진 탓이다.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그 방식과 태도에 불만․불안을 느끼고 있다지 않나. 특히 안타까운 것은 여권(與圈)의 선거연합 해체, 곧 보수의 분열이다. “분열은 늘 해롭다”는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의 경고대로, 그 분열은 현실정치의 고전(苦戰)과 여론의 외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의 분열 과정에서 드러난 불의-불공정 사례 역시 선명하다. 여당 지도부 선출을 둘러싼 규칙 변경, 특정인사 배척을 위한 대통령실의 정치 개입,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당관계…. 그건 당장의 권력에 기댄 오만의 결과다. 약속했던 국민통합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언론 및 야당 관계에 취약한 것 역시 소신에 기댄 독선의 결과다.


2. 진보의 부패는 진작 예상했던 바다. 문재인 정권 시절 운동권 카르텔의 노골화에 따른 진보인사의 부패․불의 행위는 너절했다. 지금 야당 대표의 부패 관련 혐의에 따른 ‘사법 리스크’는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저해할 정도다. 최근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과 ‘가난한 청년 정치인’ 김남국의 가상화폐 논란은 민주정당의 도덕성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그 진보의 부패는 진보의 가치와 지지층을 배신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파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보의 부패 역시 구조적이다. 민주당은 당 대표의 ‘부패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그 어떤 부패도 척결할 수 없다. 그 당의 최근 1년은 온통 ‘이재명 방탄’에 탐닉했다는 말을 듣지 않나. 당은 당 대표를 위해, 당헌과 공천규칙도 다 뜯어고치고 있다. 최근 개정한 22대 총선 ‘공천 룰’은 그 단적인 사례다. 민주정당이 부패에 얽힌 대표며 유력인사를 위해 각종 규정을 멋대로 고친다? 그건 ‘법의 지배’를 파괴하는 행위다.

진보의 부패는 구조적 국면이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어에 집중하느라 다른 부패 역시 척결하지 못하고 있다(사진; 부패사건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명 대표, 더 팩트).
진보의 부패는 구조적 국면이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어에 집중하느라 다른 부패 역시 척결하지 못하고 있다(사진; 부패사건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명 대표, 더 팩트).

당연히, 여론은 악화일로다. 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갖고도 여당보다 정당 지지율은 낮고 비호감도는 높다. 특히 20·30세대 지지율은 급락세다. 의혹만 터지면 소속 의원들은 탈당으로, 당-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돈 봉투 사건’의 송영길 등은 당의 진상조사 전에, ‘코인 의혹’의 김남국 역시 진상조사 및 윤리감찰에 앞서 탈당했다. 당은 부패행위의 진상을 밝히고 합당한 징계를 내릴 결기가 없다. ‘민주당의 도덕적 파산’, 그저 정치적 수사(修辭)만은 아니다.

야당은 소속 의원들의 부패 국면에서, 부패행위의 진상을 밝히고 합당한 징계를 내릴 결기가 없다(사진: ‘코인 의혹’으로 민주당의 ‘도덕적 파산’을 유발한 뒤 탈당한 김남국 의원, 더팩트).
야당은 소속 의원들의 부패 국면에서, 부패행위의 진상을 밝히고 합당한 징계를 내릴 결기가 없다(사진: ‘코인 의혹’으로 민주당의 ‘도덕적 파산’을 유발한 뒤 탈당한 김남국 의원, 더팩트).

야당이 ‘공룡 야당’으로 군림한 지 1년, 정치판은 ‘전쟁’ 상황이다. 대통령의 대회 의지 부족에, 야당의 반사이익 추구 탓이 크다. 야당의 입법 폭주는 일상적이다. ‘검수완박법’ 강행에 이어, 양곡관리법․간호사법 같은 논쟁적 법안을 독자 처리하고 있다. 총선 대비용 포퓰리즘적 발상인가? 한국 정치사 최초의 ‘거부권 유도’ 정략인가? 그러나, 그 야당은 정체성-리더십-지지 기반의 삼중 위기를 겪고 있으니, 그 반사이익만으로 미래를 열 순 없을 터다.


3. 샌델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치명적 퇴보, 특히 ’너덜너덜한 사회적 유대감 끝의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에서 특출하다. 출처가 다른 뉴스를 접하고 다른 사실을 믿으며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나날이 절감하는 바다. ‘지지하는 정치 진영에 유리한 뉴스는 믿고, 불리한 뉴스는 안 믿는다’는 여론조사{STI) 결과도 있다. 진보층이 보수보다 가짜뉴스를 잘 믿으며, 가짜뉴스를 잘 믿는 사람일수록 확증편향이 심하다는 분석도 있고.

그래서일까. 이즘 진영 내부의 양극화도 치열하다. 민주당에서 김남국의 ‘코인 투자’를 옹호하는 주장이 잇따르고, 당 강성 지지층은 이재명․김남국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공격한다. “‘조국의 강’에 이어 ‘남국의 바다’”라는 당 안팎의 우려가 있다. 그 민주주의의 퇴행, 여당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 완력을 동원하여 지도부를 구성하고도, 당의 안정은커녕 연일 분열의 파열음을 내는 못난 모양새를 보라.

“정치가 사라졌다”, 한국 정치의 극단적 대립을 보는 한탄이다. ‘조국 사태’ 이후의 극단적 양극화로 심리적 내전은 확산세다. 여야의 격한 충돌로 국정과 민생은 표류하고 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며 주요정책의 평가 역시, 야권에선 인색하다. ’여의도 문법‘을 거부하는 초임 대통령, 팬덤에 기대 ’사법 리스크‘를 버텨내는 야당 지도자, 이 상황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나? 국민의 불만․불안은 크기만 하다.


우리, 양당 독점 정치를 극복할 순 없나. 언제까지 그들이 꾀하는 확증편향에 휘둘리며 정치적 양극화의 희생양으로 살 순 없지 않나. 돌아보라. 그들은 어떤 비전․정책을 내세우며, 토론하고 설득하던가. 당장의 세계적 경제위기며 급박한 기후위기 같은 삶의 문제에, 그들은 과연 열정껏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던가? 그들은 국민의 요구를 정치적 화두로 삼기보단, 그저 ’묻지 마 지지‘ 구조에 기대며 그들만의 정치쇼를 벌이기 예사다.

그 양당 체제가 뿌리내린 지 35년. 그 체제의 후예들은 정치적 가치와 도덕적 기반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양대 진영의 민주주의 인식 수준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이스만도 못하다. 그때 사람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폭력을 거부했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멋대로 부리는 일을 천박하게 여기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삶과도 공존하는 방식을 취했다. 말로써 사람을 설득하고 토론을 거쳐 공론(公論)을 결정하는 체제다.

오늘, 우리에게, 시의(時宜)적-심층적인 ‘민주주의 토론’은 귀하다. 위선과 부패, 증오와 혐오를 재생산하는 편가르기 정치, 양극단의 대결 위에 강성 팬덤에 기대는 정치, 그 비호감 정치에 대한 불신은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최근 20, 30대가 진보-보수 양당의 지지를 철회, 무당층이 30%에 이르는 흐름도 있다. 이제, 그런 흐름을 눈여겨보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인, 합리적 바탕의 대안세력을 기다려 볼까.

다시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국민의 책임을 되새겨야 할 때다. 보수-진보 양대 세력의 행적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믿을 수 없는 정치인을 배격하고 믿을 수 있는 정치집단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판의 ‘진정한 주인’임을 새삼 다짐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그 터무니없는 정치세력들을 깨끗하게 퇴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결코 쉽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결단의 기회가 온다는 것, 새삼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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