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예고 없는 전쟁’ 시대, 한국 사회의 ‘심리적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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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예고 없는 전쟁’ 시대, 한국 사회의 ‘심리적 내전’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11.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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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국가 간의 존망을 건 경쟁 속에 ‘예고 없는 전쟁’ 시대를 맞고 있다. 최근 두 개 전쟁의 참상을 보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개전 이래 1년 7개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중동판 진주만 공습’에 따른 중동전쟁 역시 개전 한 달 만에 1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끝날 기미가 없다. 냉전 종식 30여 년,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누가 예측했겠나. 그 교훈,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오늘, ‘4개 전쟁’의 공포에 직면하고 있다. 대만·필리핀에서의 중국발(發) 무력충돌 가능성에, 상시 한·미를 향해 핵 사용을 위협하는 북한까지, '세 개의 전장(戰場)+α(알파)' 시나리오다. 북한은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며, ‘남반부 영토 점령’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대북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에, ‘대한민국 종말의 기폭제’라 반발하며, “유럽·중동 전쟁 같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없다"고 위협하고 있다.

신냉전의 대전환기, 북한이 대결 태세를 강화해도, 세계경제 위기 속 국가경제가 흔들려도, 한국 정치는 ‘심리적 내전(內戰)’을 방불케 할 극단적 대치 상황이다. 그 극렬한 대치는 국민 분열을 부추기며 국가안보까지 정쟁화하고 있다. 정치와 언론이 연계하며 대립적 분파를 만들고, 그에 기댄 사이비 언론은 범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갈등 조장에 바쁘다. 최근 전쟁의 원인, 우크라이나의 내부 분열과 이스라엘의 정치권 신뢰상실 탓이 크다, 오늘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얼마나 아찔하고 서글픈가.


1. 한국 정치는 장관(급)과 수사검사, 나아가 대통령의 ‘탄핵’을 예사로 말하고 실행하는 단계다. 야당의 전 대표가 '올해 말 내년 초까지 대통령을 끌어내릴 것"을 선동하고,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 면전에서 “그만둘 것”을 권하며, 성직자가 해외순방길 대통령 전용기의 추락을 기도한다. 정치 극단주의에 기댄 혐오 표현은 일상적이고, 극단파의 상대편 비난과 혐오는 저주와 폭력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치는 죽었다’고 해야 하나?

적어도, 한국의 ‘정당’은 죽었다. 여당은 대통령의 경호부대로, 야당은 당 대표의 방탄조끼로 전락했다(진중권). 그 세계에 정치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여·야는 소통과 타협 없이 전쟁처럼 대치하고, 국가안보며 정부예산을 보는 눈도 극히 정쟁적이다. 대통령에겐 야당에의 배려가 없고, 야당엔 대선 결과에의 존중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이 그렇게 야당과의 협치며 국민과의 소통에 무심하고, 야당이 그처럼 쟁점입법을 일방처리하며 때도 없이 정치적 탄핵을 밀어붙일 수 있겠나.

오죽하면 대통령이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 현실을 직접 한탄하고, 검찰총장이 “당대표 수사에 대한 ‘보복 탄핵’이자 검찰을 마비시키는 ‘협박 탄핵’, 당대표에 대한 사법 절차를 막아보려는 ‘방탄 탄핵’”이라고 반발하겠나. 오죽하면 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한데 이어, 야당 대표를 재판할 판사까지 탄핵할 우려를 부르겠나. 우리 헌정사의 비극적 경험, 그 ‘탄핵’을 그저 가벼이 거론하는 상황, 국민은 또 얼마나 불안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소상공인과 택시기사, 무주택자, 청년 등과 함께 민생경제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며, 정부 예산안의 ‘건전재정 기조’와 관련하여 ‘대통령 탄핵’을 예사로 말하는 정책 반대쪽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소상공인, 택시기사, 무주택자, 청년 등과 함께 민생경제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며, 정부 예산안의 ‘건전재정 기조’에  ‘대통령 탄핵’을 예사로 말하는 정책 반대쪽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사진:대통령실).

국회에도 타협과 절충의 민주주의는 없다. 입법부를 장악한 야당은 ‘방송법’과 ‘노란봉투법’을 일방 처리했다. 둘 다, 사회에 미칠 영향은 크고, 야당이 여당일 때 처리하지 못했던 쟁점 법안이다. 내년 예산안을 둘러싼 대치 역시 접점이 없다. 재정이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황, 야당 대표는 특유의 재정투입을 통한 성장론을 고집한다. 우리는 벌써 IMF 외환위기의 비극적 역사를 잊은 것인가? 대법원장의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과 헌법재판소장의 인사청문 지연으로, 법조 양대 수장의 공백 사태도 현실화하고 있다.

거대 야당은 그들이 여당일 때 처리하지 못했던 두 쟁점법안을, 여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사진: 구글 이미지).
거대 야당은 그들이 여당일 때 처리하지 못했던 두 쟁점법안을, 여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사진: 구글 이미지).

2. 현대 민주주의 체제 속 정치든 대중이든 대화와 타협은 필수적이며, 다른 성향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즘 한국 사회에선 좌우를 가릴 것 없이, 극단적 진영논리를 앞세우며 비합리적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사회가 겪는 ‘심리적 내전’의 뿌리, 그것이다.

그 정치 극단주의 앞에, ‘나’와 생각이 다른 세력은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우리’의 결속을 위해 소통 없는 일사불란을 추구한다. 그저 진영논리에 매몰, ‘우리’의 주장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고 강변한다(이율배반). 특정 인물·집단을 맹목적으로 지지·추종하며, ‘우리’의 선택과 다른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을 비난·저주한다(극단적 배타).

정치 극단주의는 세계적으로 만만찮은 폐해를 낳고 있다. 그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는 특징적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아중심주의, 특정 인물·집단에의 맹목적 지지, 수준 낮은 음모론과 감정적 선동에 기댄 반지성적 배타주의, 중우(衆愚)정치에 바탕한 패권주의…, 두루 민주주의의 적(敵)이라 할 만큼 위험한 성향이다. 그에 따른 국민 사이의 갈등·분열·저주의 폐해는 또 얼마나 두려운가.

한국 사회에 유행하는 정치인의 멸칭(蔑稱, 비난·경멸하는 호칭) 역시 정치 극단주의에 기댄 혐오 표현의 형태다. ‘쥐명박’(이명박), ‘닭근혜'(박근혜)며 ’문재앙‘(문재인), ’찟재명‘(이재명)은 얼마나 유행헸나. 그 멸칭들은 또 얼마나 많은 파생어를 낳았나. ‘굥’, 윤석열 대통령을 한글 글자 뒤집기로 표현한 멸칭이다. 그 ‘굥’을 동원한 비판·조롱에는 ‘좀 배웠다는 인간들’이 앞장선다. 이런 감정풀이식 분열·저주로 국가·사회의 정상적 유지·발전인들 가능하겠나.

연전 네이버 오픈사전 상위에 뜬 신조어들. ‘석렬하다’(망칠 것을 예상했었으나 정작 망친 뒤 애석하다), ‘재명하다’(겉으로는 인자하고 너그러워 보이지만 속은 얍삽하고 오만하다)가 그것이다. ‘문죄앙’ 같은 정치적 멸칭 역시 정치 극단주의에 기댄 혐오 표현의 하나다(그림: 구글 이미지).
연전 네이버 오픈사전 상위에 뜬 신조어들. ‘석렬하다’(망칠 것을 예상했었으나 정작 망친 뒤 애석하다), ‘재명하다’(겉으로는 인자하고 너그러워 보이지만 속은 얍삽하고 오만하다)가 그것이다. ‘문죄앙’ 같은 멸칭 역시 정치 극단주의에 기댄 혐오 표현의 하나다(그림: 구글 이미지).

그 정치적 멸칭은 상대적이다. 한 진영이 특정 사건이나 밈으로 멸칭을 사용하면, 상대 진영도 곧 그에 상응한 멸칭을 던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같은 진영 안에서도 계파를 나눠 서로 비하·조롱하는 멸칭을 주고받고 있지 않나. 우리는 그 멸칭의 대상과 사적 적대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을 싫어할 따름이다.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회와 국가에 살고 싶은가. 자유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개인의 권리·자유인가, 국가·사회의 유지인가?


3. "중동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평화롭다", 최근 ‘중동전’ 발발 닷새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쓴 글의 일부다. 미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핵심인사의 판단도 신뢰할 수 없다? 그렇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착각이다. 우린 그 착각’과 결별해야 한다. 최근 중동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그만큼 묵중하다.

새 중동전쟁은 ‘예고 없는 전쟁’ 시대의 단적인 사례다(전쟁 속 화염에 휩싸인 가자지구(구글 이미지).
새 중동전쟁은 ‘예고 없는 전쟁’ 시대의 단적인 사례다(전쟁 속 화염에 휩싸인 가자지구(구글 이미지).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당하고도 신속한 반격에 성공했다. 전쟁 48시간 안에 30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 하마스의 거점을 점령하고 있다. 정치권은 신뢰상실 끝에 대규모 군사공격을 당했지만, 국민은 옛 중동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은 것이다. 하마스가 사용한 기습공격 작전은 북한의 대남공격 전술과 흡사하다. 만약 북한이 도발한다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즉각적인 반격·궤멸 작전에 나설 수 있을까?.

전쟁은 군사적 능력+비군사적 역량의 총합, 곧 국가 총력전이다. 우리, 정부-군-국민은 그런 전쟁을 감당할 태세는 갖추고 있나? 우리, 국방장관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야당은 ‘평화 속의 공존’을 주장한다. 북한 도발을 억제하려 부산항을 찾은 미군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보며, “전쟁을 도발한다”고 반발하는 목소리, 신병훈련 부대가 신병의 하루 동향을 나날이 사진으로 알려줘야 하는 현실,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안보를 갖는다”, 우리의 안보 현실을 걱정하는 한 예비역 장교의 직설적 토로(조성원)다. 프랑스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격언 ‘국민은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를 변용한 표현이다. 우리,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갈등과 소통·존중 없는 분열 속, 사회의 안녕을 지킬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유사 시 국가 총력전을 펼치며 나라를 지킬 결기(決氣)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사회의 정치적·이념적 갈등은 이미 심각하다. 연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비교에서,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전 영역에서 세 번째로 갈등이 심각했다(전경련). 우리 국민의 90%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했고,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정치적·이념적 갈등을 꼽았다(연세대)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대전환기의 ‘예고 없는 전쟁’과 세계 경제위기 앞에서, 과연 국가·민족의 유지·발전을 기약할 수 있겠나.

그 갈등·분열의 현재화(顯在化)는 끝내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입법-행정-사법의 견제와 균형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자칭 ‘언론’의 선동적 편향보도는 정치 극단주의의 영역을 날로 확장한다. 전통적 정치질서나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대신, 진영과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흐름이다. 거기에 특정 분파를 우상화하는 열성 팬덤까지 결합, 서로서로 공격하는 현상이다. 공론(公論) 아닌 ‘떼론’(진영논리)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비극적 현실이다..

최근 제7회 세계인문학포럼(11.8~11.10, 부산 벡스코)의 주제가 새삼스럽다. 대주제 ‘관계의 인문학: 소통·공존·공감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직면한 ‘심리적 내전’을 직설하는 표현이다. 중(中)주제 ‘소통을 통한 연대로’, ‘공존과 상생’, ‘공감을 통한 화합’, 우리가 지향할 실천방안을 그대로 제시한다. 그 중에는,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을 상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써, 서로 공감할 ‘상상력의 엄청난 노력’을 기대하는 바도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제7회 세계인문학포럼 대주제 ‘관계의 인문학: 소통·공존·공감을 위하여’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심리적 내전’ 현상을 직설하며, 앞으로지향해야 할 실천방안을 그대로 제시한다(올 포럼 포스터).
부산에서 열린 제7회 세계인문학포럼 대주제 ‘관계의 인문학: 소통·공존·공감을 위하여’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심리적 내전’ 현상을 직설하며, 지향해야 할 실천방안을 그대로 제시한다(포럼 포스터 부분).

우리에겐 오늘, 그런 소통과 공감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두터이 할 노력이 필요하다. 소통과 이해, 관용과 자제, 공존과 협력의 태도가 절실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의 오랜 격언이다. 그렇다, 우리가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 먼 길을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갈등과 소통 없는 분열 속에선, 사회의 안녕을 지킬 신뢰와 국가의 융성을 꾀할 통합은 그저 허무한 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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