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1)”: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상황이 신대중사회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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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1)”: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상황이 신대중사회 초래
  •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3.09.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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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졸저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경성대학교 출판부, 2023년 개정판)’13장 결론 부분을 일부 발췌해서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신대중사회 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사회변화는 곧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벌인 사회갈등의 역사였다. 조선시대의 양반,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친일파, 그리고 건국 후 정권을 장악한 권위주의 정부들이 신분제도, 식민지 정책,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로 지배 구조를 굳게 형성했으며, 그 시기마다 민중들은 동학, 농민반란, 3.1운동, 독립운동,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집회로 지배계급의 지배 구조에 저항했다. 지배 세력의 구조적 억압과 민중의 문화적(자발적) 저항이란 충돌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변증법적 결과물로 잉태시켰다.

1988년부터 시작된 노태우 정부는 언론, 교육, 문화와 같은 ISA(국가이념기구)를 활짝 민주화했다. 신문사 등록제, 문화 콘텐츠 검열 완화 및 해금, 언론노동조합 탄생, 언론사의 편집국장 직선제, 전교조 탄생 등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주장을 펴는 데 표현 자유 억압이라는 제약을 없앴고, 소통 공간(공론장)을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민주화되고 확대된 각종 미디어 소통 공간에서 정치인, 학자, 종교인, 예술인, 노동자, NGO, 학생들이 할 말을 주저하지 않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는 다양한 정치적 이익집단이 국민으로부터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 즉 헤게모니(패권)를 얻으려는 쟁탈 대상이 됐다.

그 후 한국 현대사 최초로 군부에서 시민 정부(김영삼 정부)로, 여당에서 야당(김대중 정부)으로, 그리고 중도적 진보에서 급진적 진보로(노무현 정부)의 정권 교체가 이어지고, 다시 보수 정권(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과 진보 정권(문재인)이 대략 10년 주기로 교체되고 있으니,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선진국임이 분명해졌다.

그런데 한국이 민주적 선진국이 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사이에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전통적 신문방송 미디어, 인터넷신문 등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밴드 등 소셜 미디어, 또한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WAVVE 등 OTT 플랫폼이 사람들 소통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렇게 헤게모니 쟁탈 공간이 된 미디어가 폭발하자, 헤게모니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정책이 결정되고 실행될 때마다,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 개인과 집단, 대북 견제와 남북대화,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의견이 양극화됐다.

그런데 자발적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세력 간 논리적 설득 싸움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의 진정성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주장의 설득력이 부족하든지, 어느 진영도 국민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한다면,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런 사회에서 ‘헤게모니 위기’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양쪽 집단 모두 각자 국민의 충성스러운 지지는 받고 있으나, 그게 정상적인 설득의 결과가 아니라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 팬클럽처럼 형광봉 흔들고 댓글로 환호하는 ‘낭만적 대중주의’ 내지는 ‘정치 유희’ 같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어느 진영이든 헤게모니를 잡고 있지 못한 상황을 지칭하는 헤게모니 위기가 아니고,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현상으로 보인다.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가 대중사회와 유사해져서, 사회의 상업화, 물질화, 획일화, 관료화, 비이성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가 대중사회와 유사해져서, 사회의 상업화, 물질화, 획일화, 관료화, 비이성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상황은 20세기 ‘대중사회’ 현상과 흡사하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20세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이에 따라서 교통과 통신이 폭증하면서,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소비(mass consumption)’, ‘대량 전달(mass communication)’ 시대가 됐다. 그리고 학자들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 조류, 새로운 인간상이 탄생하고 있음을 알렸다. 바로 ‘대중(大衆, mass)’과 ‘대중사회’의 출현이었다. 대중사회는 과거에는 부자나 귀족 등 지배계급에나 가능했던 풍요로운 소비생활과 여유로운 여가 활동을 중산층도 즐기게 됐다는 점에서 세상이 좀 더 평등해졌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런데 대중이란 단어는 점차 자본주의의 부정적이고 음습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학자들이 파악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대중은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서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상품을 소비하며, 비슷한 드라마를 즐겼고, 비슷한 노래를 불렀으며, 그 결과로 사람들은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적이며, 물질화된 삶을 영위하는 속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은 축구장이나 대규모 집회와 같이 한군데 몰려 있으면서 남을 따라서 몰려다니며 집단행동하는 ‘군중(群衆, mob)’과 차이가 별로 없고,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공중(公衆, public)’과는 달리 분별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학자들이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1923년, 호르크하이머(Horkheimer)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회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대중사회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아도르노(Adorno), 프롬(Fromm), 마르쿠제(Marcuse) 등이 대중사회의 문제점 연구에 동참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가 형성됐다. 이들의 대중사회 이론은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라 불린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경제적 측면’에서 청바지, 생맥주, 영화, 노래와 같은 소품종 대량생산에 익숙해진 대중의 물질화, ‘물상화 현상(reification)’과 이어진다. 인간의 가치를 소득, 자동차 배기량, 사는 집 평수로 따지는 경향이 바로 물질화 현상이며, 일종의 비인간화다.

‘문화적 측면’에서, 대중은 대량소비와 대량 전달 수단인 팝뮤직, 영화, 미디어 등의 ‘문화산업(culture industry,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가 사용한 말로 대중문화가 상업화하는 현상을 말함)’을 소비하면서 같은 사고를 하고, 같은 욕구를 가지며, 같은 행동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BTS나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등의 K컬처도 결국 비즈니스 상술로 상품화된 것에 불과하므로 진정한 한국 문화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대중문화는 엘리트 지배계층의 고급문화가 아니라 서민 대중이 즐기는 문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대중문화는 쾌락적이고 근본적으로 상품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대중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하지 못하고 대상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정도를 뜻하는 ‘구분적 사고(identical thinking)’에 그치며, 그래서 대중은 다차원적 인간이 아니라 ‘1차원적 인간(one dimensional men)’이라고 마르쿠제가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물질화된 미디어, 상품, 사고방식에 지배당하는 상태가 되며, 비판이론은 이를 ‘인간 소외(alienation)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대중사회의 ‘정치적 측면’ 문제점은 ‘정치적 무관심’ 내지는 ‘정치적 단순함’이다. 대중은 퇴폐적 문화와 풍요로운 소비에 빠져 정치에 무관심하고 깊이 숙의하지 못한다. 권리의식과 비판력이 부족한 이런 대중을 정치 엘리트들이 정치적으로 조작하기 시작한다. 엘리트들은 대중매체를 이용해서 이데올로기를 퍼트리고, 대중들은 비판력을 상실해서 엘리트의 정치 조작에 쉽게 동조한다. 그 결과, 대중사회는 새로운 관료 사회와 새로운 권위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에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자본주의의 결실로 독일 국민이 갑자기 얻은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즐길 방법을 모르고 방황한 나머지 독재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맡기게 된 것(이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의미)이 히틀러의 출현이라고 지적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자본주의의 물질화, 획일화, 정치적 조작에 실망한 나머지 자본주의의 대안인 사회주의 구소련 사회도 연구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소련은 선전, 선동, 계획, 통제, 감시라는 거대한 대중 조작 관리사회였다. 그래서 소련도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이기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모두를 비이성적 사회로 진단하는 비관적 이론이 됐다.

이렇게 대중사회는 1차 산업혁명인 ‘동력의 발달’을 거쳐 2차 산업혁명인 ‘대량생산 시대’를 암울하게 지배했다. 그런데 21세기 3차 산업혁명인 ‘인터넷 시대’를 거쳐 4차 산업혁명인 ‘AI 시대’를 맞으면서, 대중사회적인 인간의 몰개성, 고도 관리사회, 비이성적 사고와 행동이 다시 개성적이고, 다양하며,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로 변모할 거라는 기대감이 학자들 사이에 팽배했다. 그러나 마케팅 전문가 마크 얼스(Mark Earls)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마케팅을 연구한 결과, 소비자들은 스마트한 소셜 미디어가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과거 대중사회의 획일적인 대중과 유사하게 소셜 미디어의 위력에 휩쓸려 우르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고 개탄했다. 얼스는 이를 “평범한 ‘우리’가 똑똑한 ‘나’를 이긴다”고 질타했다. 대중사회의 몰개성적이고 비이성적인 소비자처럼, AI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여전히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 영향력에 속수무책으로 지배당해서 무분별한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대중사회의 재현, 즉 ‘신(新)대중사회’의 도래다. 한국 사회도 4차 산업혁명 AI 시대가 와도 여전히 대중사회의 부정적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 한국 사회의 신대중사회 현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2)”: 끝없는 우리그들의 싸움, 편가르기](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6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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