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 하는 한국 학생들, '차이나는 클래스'처럼 교수와 학생 상호작용할 수 없을까?
교수와 학생 모두 노력해야 비대면 수업의 문제 해결 가능할 듯
EBS가 2014년 2월에 제작한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라는 프로그램에는 한국 사람이 차마 보기 거북한 장면이 나온다(https://www.youtube.com/watch?v=fem5SG5YjaY).
여기서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이 소개된다. 그런데 그가 전 세계 기자들 중 한국 기자를 콕 집어서 “성공적인 회담에 기여한 한국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 질문권을 드린다”고 했다. 그때부터 약 20초 동안 회의장은 민망스러운 적막이 흘렀다. 아무 한국 기자도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어느 대통령 시절, 각본이 있어 보이는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질문하라고 하자, 기자들이 “저요! 저요!”를 외치던 모습이 연출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각본 없이 불쑥 내민 제안에는 아무 한국 기자도 호응하지 않았고, 그는 “누구 질문할 한국 기자 없나요?”라고 재차 한국 기자 질문자를 ‘애타게’ 찾았다. 그래도 질문자가 나서지 않자, 이번에는 “혹시 영어가 서툴러 한국말로 질문하면 (준비된 전문 통역사가) 통역해줄 것"이라고까지 했다. 날고 긴다는 한국 언론사의 기자들이 그 자리에 다 있었겠지만, 이 돌발적 한국 기자 위기를 구원할 질문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 중국 기자가 영어로 자기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면 안 되겠느냐고 발언하자, 공정성을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여기는 미국 대통령답게,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이 질문권을 넘길 의사가 있는지, 다시 말하면 한국 기자들이 질문할 권리를 포기할 것인지 최종 학인한 뒤, 중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넘겼다.
한국 기자로서 평생 갖기 힘든 미국 대통령에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한국 기자들은 이렇게 날려 버렸다. 언론을 다룬 영화 <트루스(The Truth)>에는 “기자가 질문을 멈추면 나라가 멈춘다”는 대사가 나온다. 한국 기자들이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질문을 꺼내지 못했어도, 한국은 여지껏 신기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질문 안 하는 한국 문화는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형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질문으로 아주 시끄러운 강의형 TV 프로그램이 있다. JTBC에서 방송하는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강의 형식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유명 교수가 나와 재미있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연예인 예닐곱 명이 학생으로 나와서 질문을 던진다. KBS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보내고 있는데, 그 타이틀이 ‘쌤과 함께’다.
나는 이 프로들을 보면서 현직 교수로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 학생 역할로 출연한 연예인들이 교수 강의 중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에 꼬리를 물고 또 후속 질문(follow-up)을 이어가고, 질문의 답을 들으면 “아, 그렇구나” 감탄하고, 웃고, 박수치며 강의 내내 교수와 학생이 한몸처럼 즐겁게 수업을 이어간다.
물론 이 프로에는 대본이 있을 것이고, 노련한 PD가 녹화 후 물 흐르듯 보이게 편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치 감동적인 극영화를 보고 실제 세상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는 것처럼, 나는 교수와 학생이 질문과 답변을 주거니 받거니 상호작용하는 이런 강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수업 장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강의실은 교수가 일방 통행하는 게 대세다. 교수 강의 빼고 학생 질문이 없으니, 강의실 교단 아래는 늘 적막강산이다. 수년 전부터 대학들은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 중 하나인 소위 CTL(Center for Teaching and Learning)이라는 ‘교수학습개발센터’를 의무적으로 두고 효과적인 강의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시로 교수법 개발 토론회도 연다. 교수가 여기에 참여하면 교수 평가에 인센티브도 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강의는 학생들에게 '노잼'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강의 몰입도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교수의 강의만 있지, 학생들의 질문은 희소하다. 왜 대학생들은 질문하지 않을까? 원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인의 ‘침묵 안전 정서’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학생들의 질문 회피 이유는 과목의 실용성 부족이다. 학과마다, 또는 과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이 수업을 왜 듣지? 이 수업이 내 진로에, 또는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지?”라는 대학 교육 내지는 학과 존립의 근본을 묻는 질문들을 학생들은 수강하는 과목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의대계열, 예술계열 학과, 국가 자격증 시험이 있는 학과는 수업 중 질문이 많을 것이고, 질문이 적어도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는 높을 것이다. 자기가 먹고 살 진로에 그 과목 성적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은 교수 강의 따로, 학생 수업 따로 현상이 짙다. 교수들이 강의 중 질문하면 학생들은 질색한다. “그냥 강의하세요. 귀찮게 질문하지 말고.” 학생들은 용도 불명의 강의에 이런 식의 반응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강의를 수강할 동기가 애매한 수업, 장학금 타기 위해 억지로 듣는 수업들이 즐비한 오늘날 우리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거대한 ‘바보들의 행진’에 가깝다.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 수업에 대해 항간에서는 말이 더 많아졌다. 정상적인 등교 강의실 수업도 교수와 학생이 따로 노는데, 줌이나 구글 미트 등의 화상 원격 수업에 교수들은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학생들은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느니, 등록금을 환불하라느니 아우성친다.
나는 30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 영상수업은 정말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번 2학기에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나는 내 교수 생활에 두 번 다시 가르칠 수 없다. 내년 1학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나에게 2학기는 이번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9월 개학 전,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나는 다음과 같이 이론 과목 수업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1. 학생들에게 과목 수강의 목적, 동기, 필요성, 용도를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과목의 존립 이유를 학생들이 모르면 수업 자체가 흔들린다.
2. 30년 가르쳐 온 과목이므로 강의록이 탄탄하지만, 비대면 수업을 위해서 영상자료도 더 찾고, 강의록도 보완했으며, 특히 수업 전 강의록을 두세 번 읽고 최신 예시 등을 연필로 추가한다.
3. 모든 학생들은 복장을 가지런히 하고, 재택일 경우 마스크를 벗어야 하며, 비디오에 얼굴이 제대로 나오게 해야 출석으로 인정한다. 여학생들이 화장을 안 했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미리 시간 내서 수업 준비하듯 화장하면 될 일이다. 외부 카페 등에 와 있는 경우는 당연히 마스크 착용은 예외다.
4. ‘줌’의 수업 개설자(교수) 설정의 ‘보고서’ 항목에 들어가면, 수업 참가 학생들의 수업 입장과 퇴장 시간이 초단위로 기록돼 있음을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줌 수업 중 수업 개설방을 들락달락하는 무질서한 학생들을 없게 하기 위해서다.
5. 교수가 파워포인트나 화이트보드를 공유해서 수업하는 사이에, 학생들이 게임을 하거나, 자거나, 친구들과 카톡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미 언론에서 여러 번 보도됐다. 교수가 파워포인트 공유 수업을 해도 학생들 개개인의 수업 듣는 얼굴을 여전히 교수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6.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대면 수업이 되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필기 시험으로 치를 수 있다. 나는 전국 코로나 확진자 변화에 매일 연연할 필요 없이, 즉 대면이 됐든 비대면이 됐든 필기시험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2주에 한 번 정도 1페이지 짜리 해당 진도에 관련된 리포트를 학생들에게 제출하게 하고, 이를 채점해서 사진 찍은 다음, 개별 카톡으로 학생들에게 전송해준다. 학생들은 학기 내 약 7-8회의 리포트를 내고 평가 받는다. 전체 성적 중 가장 배점이 크다. 2회의 중간/기말고사보다 결코 쉽지 않은 수행 평가다.
7. 수업 몰입도는 비대면 수업에서 가장 문제가 된다. 나는 모든 학생에게 노트필기할 것을 주문한다. 나는 매 수업 직후 무작위로 전체 학생의 1/4 정도에게, 종이 노트에 필기하든, 컴퓨터의 메모장이나 워드에 입력하든, 그 시간에 노트필기한 것을 사진 찍거나 파일형태로 교수에게 개별 카톡으로 수업 종료 즉시 보낼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노트필기의 질과 양을 점수화해서 학생들에게 카톡으로 피드백한다. 한 학기에 학생들은 자기 노트를 4-5회 교수에게 카톡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
8. 역시 비대면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대면 수업 때에도 많지 않은 학생들의 질문을 어떻게 하면 늘리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론 강의 수업이므로 약 10분 정도 강의하고 약 5분간 학생들에게 질의응답 시간을 주고 있다. 자발적으로 질문하는 학생도 있지만, 오바마가 애타게 한국 사람 질문자를 찾는 민망함을 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자발적 질문자가 안 나오면 출석부를 보고 가차 없이 학생을 무작위로 지목해서 질문하라고 한다. 질문의 질을 점수화해서 일정 비율 성적에 반영한다. 약 한 달 수업을 해 본 결과, 10분 강의 후 5분 학생 질문 시간에 학생들의 자발적 질문이 많이 늘었다.
나의 막바지 교육자 인생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나도 그날 수업을 끝내면 이마와 등이 땀으로 젖는다. 비디오 켜지도 않고, 노트필기도 안 하고, 질문도 안 받고, 수업방도 들락달락하면서 듣는 수업에 비하면, 내 수업 수강 학생들은 비명(悲鳴)을 지를 것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가 대면 수업보다 힘이 더 들어야 비대면 수업의 부족한 면이 보충된다. 이게 모든 비대면 수업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게 내 진단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한 말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생각난다. 이는 ‘그날을 잡아라(Seize the day)’로 직역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를 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다만 하루하루 열심히 가르치다 보니 정년을 맞았다는 내 자신 내면의 양심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