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팁을 내란다고?...팬데믹 이후 팍팍해진 미국 팁 문화
상태바
[정태철 칼럼]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팁을 내란다고?...팬데믹 이후 팍팍해진 미국 팁 문화
  •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3.05.29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에는 식당이나 카페를 자주 들르게 된다. 그런데 이번 미국 여행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미국 음식 업소 팁 문화의 변화였다.

미국은 음식점이나 바에서 종업원에게 음식값 이외에 팁을 주어야 한다. 이게 한국 사람에게는 영 익숙지 않은 미국 문화다. 우선 음식점에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손님이 임의로 좌석을 선택해서 앉지 못한다. 대개는 좌석 배정을 위해 대기하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왜냐하면 음식점 홀의 여러 테이블마다 담당 종업원이 정해져 있고, 특정 테이블에서 나오는 팁은 그 테이블 담당 종업원이 소유 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님은, 팁이 어느 종업원에게로 가게 할 것이냐는 음식점 손님 배정 자체 규칙에 따라야 한다.

업주가 월급을 주는 한국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음식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면 일단 임무가 끝난다. 간혹 반찬이 모자라든가 마실 물이 더 필요하면, 손님은 종업원을 불러야 한다. 이때 벨을 누르기도 하고, “이모!” “사장님” 등으로 크게 소리쳐야 종업원이 온다. 이때 손님은 “아줌마”라고 호칭했다가는 요새 PC(political correctness: 차별적 호칭 사용을 금하자는 운동)에 역행하는 비지성인으로 몰릴 수 있으니, 이점만 주의하면 된다.

그런데 미국 음식점 종업원은 팁을 받아야 하므로 테이블에 주문 음식을 가져다주고도 수시로 테이블에 가서 손님에게 부족한 게 없는지 물어보는 게 일상적이다. 그래서 팁 문화는 종업원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손님 입장에서는 종업원의 서비스를 견인하는 엔진이기도 하다. 종업원의 친절이 팁이라는 자신의 인건비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 사람은 미국에서 종업원이 자꾸 테이블에 와서 부족한 게 없냐고 묻는 걸 귀찮아한다. 팁을 받아내야 하는 미국 종업원의 친절을 한국 사람들은 음식 먹는 걸 방해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팁은 대개 현찰로 주는데, 동전을 섞어 주는 것은 매너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우려가 있다. 손님이 나가면서 테이블에 팁으로 딸랑 동전 몇 개만 던져 놓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서비스에 불만이 생긴 고객이 종업원에게 가하는 일종의 모욕적 표현이다. 신용카드가 생기면서 팁 주는 방법이 약간 복잡해졌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져오면, 그 계산서에는 음식값이 적혀 있고, 그 밑에 팁 금액을 손님이 직접 적어야 하고, 또 그 밑에는 음식값과 팁의 합계가 얼마인지를 손님이 또 적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종업원이 ‘음식값+팁=총 얼마’로 적힌 계산서와 손님 카드를 받아서 결제하고 영수증과 카드를 손님에게 돌려준다.

미국의 팁은 음식점 뿐만이 아니고 대부분 서비스 업종의 종업원에게 어떤 형태로든 봉사를 받았으면 대부분 줘야 한다. 호텔 보이가 짐을 호텔 방으로 들어 준다든지, 호텔 현관에서 보이가 택시를 잡아줘도 팁을 줘야 한다. 자동 세차장에서 차를 세차하고 나오면, 일부 세차장에서는 종업원들이 차 바디의 물기를 닦아주는 곳이 있는데, 이때도 1-2불의 팁을 주어야 한다.

나는 미국 코네티컷에 있는 자매대학을 방문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곳에서 뉴욕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고속버스 밑에 짐을 넣은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자신이 짐을 꺼내면 안된다. 왜냐하면, 짐을 꺼내서 손님에게 건네주는 인부들이 있으며, 그 인부들은 그때마다 손님으로부터 1-2불의 팁을 수고비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10여 명의 손님들로부터 짐을 꺼내 주는 단 5분 동안의 짧은 시간에 1인의 인부가 20불 가까운 팁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인부는 팁을 받을 때마다 일일이 “Thank you! God bless you!”를 신나게 연발했다. 이를 지켜본 미국인 손님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국인 특유의 제스처인 어깨를 으쓱하면서 ‘저 인부는 저런 간단한 일을 해주고 도대체 얼마를 버는 거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팁은 홀의 테이블에 앉아서 종업원으로부터 서빙을 받는 음식점에서 손님이 서빙의 대가로 주는 것이다. 따라서 맥도날드처럼 손님이 주문대에 가서 주문하고 음식을 또 손님이 받아서 자기 테이블로 가져가서 먹는 음식점은 팁을 주지 않는다.

최근 왜 미국에서 팁 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음식 업소에서 손님이 줄어들자, 주인이 일부 혹은 전부 지급해야 할 종업원 인건비를 손님들에게 팁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80년대 유학할 때는 계산 금액의 10~15%가 팁으로 적정하다고들 했는데, 요새는 이게 인상되어 20~25%로 뛰었다고 한다. 더 심한 상황은 홀에서 서비스를 받는 음식점이 아니고 스타벅스처럼 주문대에서 주문하고 자신이 음료를 받아 가는 형태의 업소에서도 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번에 미국 여행을 가서 스타벅스를 이용했는데, 4불짜리 커피라테를 주문하고 카드를 계산기에 넣은 순간, 종업원이 “Answer that question”이라고 나에게 말하는 거였다. ‘질문에 답하라고?’ 이게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돼서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계산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질문에 답해 달라는 거였다. 그 화면에는 팁으로 얼마를 지불할지 1불, 2불, 3불의 선택지 중 하나를 터치해서 선택하게 되어있었다. ‘여기에서 팁을 달라고?’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1불을 선택하고 커피를 받았다. 서비스 형식이 동일한 맥도날드에서는 지금도 팁을 손님에게 요구하지 않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이런 식으로 팁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중에 만난 교포 지인들 말에 따르면, 거기에 ‘no tip’이란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에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카페라떼 4불짜리를 마시고 팁으로 1불을 또 내야했다(사진: 필자 정태철 제공).
미국 스타벅스에서 카페라떼 4불짜리를 마시고 팁으로 1불을 또 내야했다. 스타벅스 컵의 바다 요정 사이렌의 미소 그림이 정말 팁을 달라는 유혹처럼 느껴졌다(사진: 필자 정태철 제공).

보도에 따르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데 팁을 지불하도록 강요하는 업소도 많다고 한다. 업주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없어도 팁을 강요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팁을 강요하는 것은 음식값 인상과 다를 게 없다는 게 최근 미국인들이 음식점 팁 문화에 반발하는 이유라고 한다.

특히, 공정성에 민감한 미국의 MZ세대는 팁 문화가 궁극적으로는 주인이 부담해야 할 인건비를 손님에게 떠넘기는 것이며, 팁이 종업원의 순수한 노력보다는 미모, 매력, 젊음 등의 요소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심지어 팁을 악용해서 성희롱을 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돈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돈 애리얼리 교수는 남녀가 데이트할 때 누가 비용을 부담할 건지를 따지게 되면 관계가 서먹해진다고 했다. 결국, 미국의 팁 문화는 손님과 종업원, 또는 손님과 업주라는 관계 사이에 팁을 놓고 팁을 많이 받고 싶은 종업원(또는 업주)과, 팁을 덜 주거나 아예 안 주고 싶은 손님 간의 신경전을 벌이는 것과 같아서, 피차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최근 코로나 방역을 위해 미국이 이민자들을 제한했던 ‘한시적 국경 차단 조치(소위 42호 정책)’가 폐지되면서, 멕시코와 미국 국경으로 수만 명의 중남미 이민자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미국인들은 이들 입국을 반대하지만, 일부는 이들을 받아들여 싼값의 노동력으로 활용하면, 미국 내 임금 인상을 자제시키고, 인플레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받을 데 안 받을 데 가리지 않고 대부분 업소가 팁을 요구하면서, 미국 경제가 팍팍해지고 있다. 한국 음식점들은 원래 팁 문화가 없다 보니 대신 음식값을 올리고 있다. 미국 한편에서는 이참에 음식점에서 팁을 없애고 음식값으로 일원화하자는 의견도 등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식집, 횟집, 갈빗집, 한식집 등 한국 고급 음식점에서는 종업원에게 ‘과시형 팁’을 주어 VIP 대접을 받으려는 풍조가 은근히 번지고 있으니, 미국 팁 문화는 한국 음식점 오리지널 문화를 닮으려 하고, 한국 음식점 문화는 변질된 미국 팁 문화를 닮아 가는 것은 아닌지 아리송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