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4)”: 큰 정부가 지나치면 중국 같은 ‘고도 관리 사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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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4)”: 큰 정부가 지나치면 중국 같은 ‘고도 관리 사회’ 된다
  •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3.11.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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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졸저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경성대학교 출판부, 2023년 개정판)’13장 결론 부분을 일부 발췌해서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신대중사회시리즈는 4부작으로, 이전 글은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1)”: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상황이 신대중사회를 초래하다(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83)],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2)”: ‘우리그들의 끝없는 싸움, 편 가르기(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64)],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3)”: 가짜뉴스, 가짜사건, 정치쇼...본질보다 이미지 만능 시대(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24)]였습니다.

세 번째 한국 사회의 신대중사회 현상은 ‘고도 관리 사회’ 가능성이다.

일본의 한국학자 다나카 메이는 고려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지배 세력은 일본과 달리 ‘통상적’으로 문인(文人) 양반이었다고 정의했다. 다나카의 이론을 정리하면, 고려 시대의 무인(武人) 정권 이후 조선에서는 선비정신과 유교 문화적인 문인들이 정권을 잡은 ‘통상의 시대’가 지속됐고, 이승만 정권 때도 여당은 물론 야당(한민당과 민주당)도 문인 양반 세력이 주류를 이룬 통상의 시대 연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는 이들과 다른 부류인 무인, 즉 군부가 집권했으니 ‘예외의 시대’가 됐다가,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다시 문인 주도의 ‘통상의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 지배 세력의 흐름을 이러한 양반 문화에 두고 유사한 진단을 한 사람이 인류학자 김은희 박사다. 그는 86세대(586과 동일)인 문재인 좌파 정부 주류 세력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인식체계와 흡사한 정신세계를 지녔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기 이익을 취하는 기득권은 적폐 세력이고 소인배들이지만, 86 개혁 세력은 사회정의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벌인 군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인배 기득권 적폐 세력은 86세대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고 김은희 박사가 설명했다. 김은희 박사는 그래서 윤미향 사태(위안부 단체 대표가 일부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가 나왔을 때 86 세력은 “회계상 문제가 있어도 위안부와 싸운 시민운동가에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윤미향을 변호했고,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가 유죄로 판결이 나왔어도 조국 전 장관이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의 적임자이므로 지지한다는 논리를 86세대들이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반 자손이 부귀영화를 대물림하듯 86세대 민주화 투사들과 독립운동가 자손은 불법보다 도덕적 우월성이 우선하므로, 민주화유공자법을 만들어주어야 하고,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뢰도 죄를 묻지 말아야 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 비리도 덮어야 한다는 특권적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김은희 박사는 도덕적 우월성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좌파 세력을 현대판 ‘신양반사회’라 불렀다.

정치학자 박명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화 세대와 86세대의 집합적 부도덕이 청년 세대를 분노하게 했다고 진단했다. 또한 정치학자 김영수 교수는 86 운동권 세대는 민주주의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부자들이 지배하고 부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민주주의)로 경멸했으며, PD계는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됐고, NL계는 김일성주의, 혹은 주체사상에 심취해서 상명하복이 엄격한 전체주의적이고 사이비 종교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윤미향, 박원순, 남인순, 김상조 등 문재인 정부 때 요직을 맡았거나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이 드러나도 비판하지 말라는 태도를 가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들은 좌파 진영이 도덕적 우월성과 특권의식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자기 이념 방식대로 ‘관리’하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최근, 중국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기업이나 개인의 사유재산을 조종하는 일명 ‘국가 자본주의’, 혹은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사회주의’ 내지는 ‘붉은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게 바로 세계의 민주적 가치에 위협적인 중국식 ‘고도 관리 국가 체제’를 말한다. 한국 ‘신양반 세력’의 특권의식과 친북, 친중 지향점이 여기서 겹친다. 칼럼리스트 박정훈은 “한국 좌파가 중국식 국가 모델에 동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민주당 대표단이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와 만찬 회동을 한 적도 있었다.

중국은 시진핑이 국가 주석의 10년 주기 교체 관례를 뒤집고 3연임함으로써 장기 집권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진핑은 대국굴기를 내세우면서 필리핀, 일본, 베트남 등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 핵 개발을 지지하고 있다. 시진핑은 마윈과 같은 거대 자본가를 지배하고 있으며, 중국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공산당이 시장과 자본을 지배하는 국가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고도 관리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현대국가 중에는 러시아도 있다. 러시아는 푸틴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며 천연가스와 석유를 이용해서 국부를 키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장기 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러시아의 푸틴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장악한 러시아의 짜르(슬라브 민족의 군주 칭호)가 됐다. 그러더니 2022년에는 전 세계의 여론을 개의치 않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나토와 유럽 국가들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푸틴은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젊은이들을 구속하는가 하면, 전쟁 참여를 두려워하는 러시아인들이 해외로 탈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밖에도 터키의 에르도안, 북한의 김정은도 1당 지배 체제를 갖춘 나라 그룹에 속한다. 여자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형시키거나 학대하는 이란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국가들의 특징은 종교든, 공산당이든, 비밀경찰이든, 특정 집단이 특권 지배 세력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으며, 반민주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고도의 관리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구소련의 특권 계층인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를 중심으로 공산당 1당 독재를 형성한 것과 유사하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도 20세기 대중사회의 망령이 다시 번지듯 확증편향적 편 가르기라는 비이성적 헤게모니 쟁탈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정책의 본질보다는 정치적 지지 부족(집단)의 이미지를 보고 환호하는 몰개성적인 이미지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같은 고도 관리사회를 동경하는 정치세력이 헤게모니를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으니, 한국 사회는 신대중사회 현상에 갇혀 있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한국의 신대중사회화 내막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신대중전달’ 수단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전체주의적 국가들이 힘을 모아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전체주의적 국가들이 힘을 모아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트럼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단 점령하는 것에서 전 세계 지성인들이 민주주의 선도국가 미국에 실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복고형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복귀하는 등 일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으며,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를 승계한다는 이탈리아 극우 정당 출신이 총리로 당선되고, 브라질에서 룰라가 복귀했으며,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는가 하면, 앞에서 소개된 것처럼, 중국의 시진핑은 황제의 위치에 올랐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민주적 지도자가 속출하고 그들이 다수 국가를 비민주적 방향으로 통솔하는 것은 바람직한 지구의 미래가 아니다. 2022년 11월에 실린 중국의 사진 한 장이 반민주적 고도 관리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사진은 마스크를 안 썼다고 손발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잡혀있는 한 여성의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중국은 국가의 관리에 의해서 사람의 통행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코로나 전염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했다. 지구 한편에서는 수만 관중이 마스크를 안 쓰고 목청 높여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카타르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데, 같은 지구 다른 한편에서는 수억 명의 국민을 한 발자국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중국도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시청한 중국 국민은 “중국과 카타르가 같은 행성에 있는 게 맞나요?”라는 댓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그후 중국에서는 월드컵 중계가 중단됐다.

최근 ‘차이나 런(China run)’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차이나 런은 차이나와 뱅크런의 합성어로, 미중 갈등, 중국의 홍콩 통제 강화, 중국의 대만 위협, 중국 당국의 각종 외국 기업 규제, 중국 소비자의 국수주의에 질려 중국에 투자한 서구 기업들이 중국을 탈출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구글, 나이키, 에어비앤비, 아마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중국 내의 자국 부유층도 중국을 벗어나고 있다.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반공산당, 반시진핑 시위, 또는 ‘백지 시위’(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당국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백지를 들고 시위하는 것)는 그래서 고도 관리 사회의 한계를 증명해주고 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백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방역 봉쇄 정책을 완화해서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했다. 고도 관리 사회의 허점을 중국 정부가 실토한 셈이다.

한국 사회의 신대중사회화는 인간의 비이성적 판단에 의한 편 가르기, 정치의 몰개성적 이미지화, 그리고 집단과 평등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고도의 관리사회 지향으로 요약되며, 신대중사회의 문제는 그 지향점이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세계적 민주화와 자유시장경제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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