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2): ‘우리’와 ‘그들’의 끝없는 싸움, 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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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한국은 지금 신(新)대중사회(2): ‘우리’와 ‘그들’의 끝없는 싸움, 편가르기
  •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3.09.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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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졸저 한국의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경성대학교 출판부, 2023년 개정판)’13장 결론 부분을 일부 발췌해서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신대중사회시리즈는 4부작으로, 이전 글은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1)”: 비이성적 헤게모니 위기 상황이 신대중사회를 초래하다](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83)였습니다.

한국 신대중사회 현상의 첫 번째 사례는 ‘편 가르기’다.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좌파와 우파로 나뉜 대한민국의 사회갈등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시기부터 시작해서 해방정국을 거쳐 조국이 분단되고 남북이 전쟁을 치르는 원인이 됐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지금도 좌우 이데올로기 대결은 멈추지 않았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Amy Chua)의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는 현대사회의 집단 내 존재하는 이념 대결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추아 교수는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지만 한 사회에 존재하는 원초적 집단(예를 들면, 인종, 민족, 지역, 종교, 이념 분파 등)의 불평등을 해소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추아 교수는 그래서 민주 선진국 미국에서도 흑백, 남녀, 종교, 이념적 각종 집단 간 ‘우리 대 그들’이라는 정치적 부족이 등장해서, 각자 “우리가 받는 박해와 억울함이 너희들보다 크다”는 정치적 부족주의 입장에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봤다.

초아 교수는 구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같은 선진 민주 국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해달라는 ‘분배의 정치(distribution politics)’가 아니라 자기 집단(부족)이 인간으로서 무시당했으므로 자기 부족의 존재와 권리를 알아달라는 ‘인정의 정치(recognition politics)’가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초아 교수는 이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강조해서 ‘나’와 ‘남’을 편 가르는 ‘정체성 정치(identitarian politics)’라고 했다.

초아 교수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저소득층 백인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초아 교수는 흑인 인권 운동에 가려져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저소득 백인층의 욕구 불만을 트럼프가 잘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영화는 바로 백인 저소득층의 문제(마약, 가난 등)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초아 교수의 정치적 부족주의 이론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하자 일부 지지층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무력 난동을 부린 비이성적이고 비민주적인 현상 역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여러 건의 죄목으로 기소됐지만, 그는 미국 공화당 내 대통령 후보 선호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식 정치적 부족주의가 여전히 미국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이 두 쪽이 날 정도로 분열되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편 가르기와 유사한 면이 많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이 두 쪽이 날 정도로 분열되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편 가르기와 유사한 면이 많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초아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두루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사람들이 1%의 부유한 화교와의 갈등 때문에 공산주의와 싸웠던 미국을 지지하지 않아서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했다고 했다. 또한,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는 원주민과 백인 지배층과의 갈등 덕택으로 다수인 원주민 지지를 얻어서 집권했으며, 차베스 좌파 정권 등장도 결국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부족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정치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끊임없이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갈라왔다. 재벌과 노동자, 남성과 여성, 친북과 반북, 반미와 친미, 극일와 반일, 서울과 지방, 강북과 강남, 20대와 60대, 1번(이재명 지지)과 2번(윤석열 지지)의 갈등이 좀처럼 수렴되지 않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모든 미디어는 더욱 격렬한 헤게모니 쟁탈 공간이 됐다. 그리고 그 헤게모니 쟁탈전 양상이 이성적이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헤게모니 싸움은 정책의 본질을 두고 숙의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하고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결론만 주입하는 싸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신대중사회의 신대중이 된 한국 유권자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잘도 휘둘린다.

한국에서는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진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편 가르기의 실상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시작 직후부터 벌어진 소고기 파동 집회이며, 박근혜 정부 때는 탄핵 촛불집회가 있었고, 윤석열 정부 때도 임기 개시 직후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지자마자 바로 윤석열 퇴진 집회가 벌어졌다. 지금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 홍범도 장군 동상의 육사 이전, 광주의 정율성 공원 설치, 한미일 공조 등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가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판은 미국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한 ‘거부(veto)의 민주주의(비토크라시, vetocracy)’를 연상케한다.

2019년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 설치, 검찰 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용어가 언론에 난무했고, 관련된 사건들이 연일 미디어에 보도됐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당별 의석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계산식은 몰라도 새로운 선거법이 자기 지지 정당에 유리하다는 이미지를 미디어를 통해서 확인했으면, 그다음은 그냥 선거법 통과를 ‘닥치고’ 지지하면 그만이다.

정치인의 팬덤 정치도 비이성적 편 가르기의 전형이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모임 이름은 ‘개혁의 딸’인데 줄여서 개딸이라고 한다. 가부장제를 혐오하는 20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결집했다고 하는데, 하도 공격적이라 한 언론은 이들을 “한국 정치의 탈레반”이라고 불렀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빅데이터 분석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가 지배적이었는데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된 2007년부터는 팩트에 관한 언어 사용이 급감하고 감정적 언어 사용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처럼, 20세기 대중사회가 지나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한창인 21세기에 나타난 이런 현상은 비이성적 헤게모니 싸움이며, 한국에서 곧 신대중사회가 출현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은 지금 신()대중사회(3)”: 가짜뉴스, 가짜사건, 정치쇼...본질보다 이미지 만능 시대](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2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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