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SKY 대학도 정원 미달...‘3요’ 세대엔 의대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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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SKY 대학도 정원 미달...‘3요’ 세대엔 의대만 보인다
  •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3.02.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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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명문대 수시 입시에서 수십 명씩의 미등록 인원이 생겼다고 해서 난리다. 미등록이란 합격했는데 등록을 안했다는 말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들 미등록 인원 대부분은 다른 대학 의대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지난해 SKY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다가 중도 포기한 학생(자퇴, 미등록, 미복학 등을 포함한 ‘중도탈락생’)은 서울대 254명, 고려대 540명, 연세대 444명으로 총 1238명이라는 통계가 언론에 보도됐다. 이들도 대부분 의대 진학을 위해 다니던 대학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의대 편중 진학 현상이 이렇게 심화하자, 우리나라에서는 “마라도에 의대를 세워도 지원자가 몰릴 것”이라는 농담이 뜨고 있다고 한다.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고, 남 보기에 그럴듯한 직업, 간단히 말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명문대 웬만한 학과에 합격하고도 의대, 치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에 재도전하기 위해 자퇴, 반수 등 별의별 시도를 하는 대학생들이 많은 모양이다.

급기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준비해야 의대에 합격한다는 학원가의 상술로 ‘초등 4학년 의대 입시반’이 탄생했다. 초등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가 이 광고를 보고 학원으로 달려갔더니, 너무 늦었다는 학원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초등학교 4학년 의대 입시반에서는 무얼 가르친다는 걸까?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중학교 수준 이상을 선행학습시킬 게 뻔하다. 어려운 내용을 어려서부터 여러 번 풀게 하면 알게 된다는 게 학원의 노하우일 것이다. 32년 대학 강단에 섰다가 정년퇴직한 내가 재직시 겪은 일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과목의 강의 중에, 타 학과 여학생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이 과목을 작년에 이미 수강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 강의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이미 배운 내용과 동일한 부분을 반복해서 듣는 순간, 마치 ‘교수님의 강의 비밀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듯한 묘한 미소를 그 학생이 짓고 있었다. 학원의 선행학습으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학교 교사에게는 굴욕적이고, 서글프고, 불쾌한 일이다. 학생들은 학교 교사의 강의 내용과 수준을 선행학습 학원 선생과 비교해댈 것이다. 선행학습은 교내 폭력보다 더 심각하게 학교 교육을 무너트리고 멍들게 하는 교권 침해다.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개는 선행학습의 폐해를 절감한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원의 선행학습에 의존해서 의대에 합격한 다음, 그 의대생은 부와 명성을 좇아 장사 잘되는 대도시에서 유망 분야 전문의(예를 들면, 미용 성형외과)가 되어 개업에 성공하고, 병원을 개원하자마자, 고급 인테리어 비용과 고가의 월세를 벌기 위해 과잉 진료에 혈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돈은 안되고, 의료 사고 위험이 상존하며, 격무에 시달린다는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는 전문의 구인난에 허덕일 것이다. 최근, 속초의료원이 파격적인 연봉 4억 원을 내걸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으나, 지원자가 처음에는 제로였다가, 나중에 다행이도 1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창업 천국이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대학마다 컴퓨터, AI, 반도체 관련 학과에 학생들이 몰려들고, 이들의 창업을 향한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창업지수(창업 인프라 조건) 국가 1위가 미국, 2위가 영국, 3위가 이스라엘, 4위가 캐나다였다고 하며, 도시별로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가 9위, 서울이 25위, 부산이 207위였다고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불확실성의 난관을 도전 정신으로 극복해야 하는 신기술 스타트업에 뛰어들기보다는, 잘 준비된 성공행 고속도로인 의사의 길을 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의대는 영재들로 넘치고, 반도체 학과와 AI 학과는 추가 모집으로 겨우겨우 신입생을 채우고 있다.

나의 고교 시절에, 공군사관학교에서 파견된 홍보 담당 장교가 우리 학교를 방문해서 공사 입시홍보 특강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공사 입시홍보 특강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독특했다. 특강은 공사에 와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면 부와 명성과 행복을 보장한다는 장밋빛 희망을 내세우는 상투적 홍보가 아니었다. 당시 홍보 장교는, 공사의 전투기 조종사 훈련은 육체적으로 극한의 상황을 넘나들어야 하고, 정신적으로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겁을 주었다. 또한, 공사를 졸업하고 실제 전투기 조종사가 되면, 평양에서 몇 분이면 서울로 날아들 수 있는 북한 미그기의 위협에 맞춰, 근무 시간 내내 전투복과 군화를 벗지도 못하고, 수시로 북한 미그기의 출격에 맞대응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 비상 출격, 전투태세 돌입이 반복되는 긴박한 상황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과 일상적 업무의 고통과 싸우면서 ‘조국 수호’라는 알량한 자긍심 하나밖에는 가질 것이 없는, 전투기 조종사라는 험한 길을 기꺼이 가고 싶은 ‘또라이’ 내지는 ‘골 빈 사람’만 공사에 도전하라고 그 홍보 장교가 외쳤다. 특강의 반응이 대단히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런 ‘또라이’ 공사 진학자들의 까마득한 선배 중에는 한국 공군 창군 멤버인 전 공군 참모총장이며 현재 96세인 김두만 장군이 있다. 한 언론이 소개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당시 중위였던 김 장군은 6.25가 터지고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다음과 같은 상관의 명령을 받았다. “김 중위, 폭탄 10발을 가지고 가서 문산 철교를 폭파하고 오라!” 당시 한국 공군 전력은 훈련기 10대가 전부였으며, 김 장군은 이 중 한 대를 몰고 임무를 수행했고, 임무 완수 후 귀환해서 비행기를 살펴보니, 비행기 날개 밑이 저공비행으로 인한 지상 폭격의 여파로 울퉁불퉁한 달 표면 같았다고 증언했다. 폭격하다 본인 비행기가 날아갈 뻔한 무모한 전투 비행이었다.

생명을 내놓고 상관의 명령을 사수했던 ‘또라이’ 김두만 중위에게는 요새 MZ세대 직장인처럼 상사의 지시에 대놓고 소위 '3요'라는 "그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반문할 권리도, 자유도, 시간조차도 없었다.

세상에는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적인 부와 명성을 지향하는 ‘똑똑이형’ 인간과, 그래도 자기 이웃을 돌아보고 자기가 속한 집단을 우려하는 ‘얼간이형’ 인간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똑똑이가 될 수 없고, 역시 다 얼간이가 될 수도 없다. 지역과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세상에는 똑똑이와 얼간이 인간형이 적절히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툭하면 ‘3요’로 대꾸하고, 의대에 몰려가고, 반도체 학과를 기피하고, 창업 도전을 외면하는 대한민국 세태는 똑똑이형 인간이 많고 얼간이형 인간이 희소한 상황을 보여준다. 

빈 컵이 있고, 그 컵에 물을 한 방울 한 방울 채워 넣는 일이 있다고 치자. 그 작은 한 방울의 물이 차곡차곡 채워져 컵의 꼭대기에 이르고, 표면장력에 의해 물이 활처럼 부풀어 넘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마지막 물방울이 가해지면, 그 컵에서 비로소 물이 넘친다. 잘 발달한 의료 기술을 배워 돈도 벌고 명의(名醫) 소리도 들으면, 넘칠락 말락 한 물컵에 마지막 물방울로 뛰어들어 물을 넘치게 하는 데 성공하는 것과 같다. 매우 똑똑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반도체 개발, AI 연구가 언제 어떤 성과를 이룰지 모르지만, 반도체와 AI가 인류에 중요한 업적이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빈 컵에 첫번째 물방울로서 제일 먼저 뛰어드는 일은 자칫 바보 같은 선택일 수 있다. 세상의 젊은이 다수가 중요한 일의 밀알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젊은이 대다수가 잘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만 얹어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찾는 것은 문제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국무장관, 20세기 세계 질서의 설계자, 세계인의 스승이란 평가를 받는 헨리 키신저는 세계의 지도자들이었던 독일의 아데나워, 프랑스의 드골, 이집트의 사다트, 싱가포르의 이콴유, 영국의 마가렛 대처 등의 리더십을 분석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 언론이 소개했다. “서방 세계의 문화가 인쇄에서 영상으로 이동하면서 철학, 역사 교육과 독서가 쇠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도자에 필수적인 심층적 문해(deep literacy)가 사라지고 있다. TV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려 깊은 리더라면, 이런 흐름에 맞서 역사적 이해를 깊게 하고, 전략을 연마하고, 인격을 개선해야 한다.”

2015년 기준, 만 15세 이상 국민이 1년에 책 1권 이상을 읽는 비율이 영국 32.6%, 아일랜드 31.5%, 독일 26.9%, 프랑스 23%이고, 한국은 8.4%였다. 한국의 독서력은 세계적으로 빈약하다. 2015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4.37회로 세계 1위다. 아일랜드가 4.2회로 2위다. 2022년 기준, 명품 소비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책 안 읽고, 영상 많이 즐기고, 자기 과시욕의 상징인 명품 소비 세계 1위 한국은 키신저의 우려스런 분석처럼 사려 깊은 리더와 품격 있는 사회 지도층이 성장하기는 어렵고, 그 반대의 똑똑이들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공(公)을 위하여 자기 희생하는 이가 총인구의 5%가 있는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토인비 말대로, 한국에 '그런 사람'이 5%만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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