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명백한 불의’를 제거하는 한 방법...‘평생 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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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명백한 불의’를 제거하는 한 방법...‘평생 평가’가 필요하다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20.02.0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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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는 평생 평가를 받는다

누군가한테서, ‘완전한 정의를 모색하기보다 현실 속의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막는 게 더 중요하다’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막는 방법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래전, 한 교육감과 점심을 했습니다. 출신 고교를 묻기에 이러저러하다고 대답했더니 어느 교장이 바둑 친구라면서 평을 물어왔습니다. 대수롭잖다는 말투였습니다. 아마도 별 나쁜 얘기는 안 나오리라 여겼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잠시 궁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 교장은 평이 좋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매우 권위적이었으며, 조잡한 돈 얘기가 많았고, 조례 때는 횡설수설에 가까운 장광설로 학생들을 괴롭혔습니다. 지금도 조례 때의 비교육적 언사와 해괴한 발음이 귓전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서로가 괜히 어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저는 에둘러 말했습니다.

-교사 혹은 교육자는 평생 평가를 받는 직업인 것 같다. 세월이 지나서 보면 훌륭한 줄 알았는데 아닌 교사도 있고, 아닌 줄 알았는데 훌륭한 교사였던 경우도 있다. 물론 당시에 이미 정확하게 알아챈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육감은 오후에 교사들을 상대로 특강을 해야 하는데 이 말을 꼭 써먹어야겠다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그 뒷일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언론인 출신 4명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한준호 전 MBC 아나운서,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박성준 전 JTBC 보도총괄 아나운서팀장(왼쪽부터)(사진: 더 팩트 임영무 기자, 더 팩트 제공).
언론인 출신 4명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한준호 전 MBC 아나운서,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박성준 전 JTBC 보도총괄 아나운서팀장(왼쪽부터)(사진: 더 팩트 임영무 기자, 더 팩트 제공).

그는 존경의 대상이었을까 경멸의 대상이었을까

‘평생 평가’를 받는 직업이 비단 교육계에만 있을 리 만무할 것입니다. 정관계, 언론계, 법조계, 경제계 등 대부분의 직업에서 ‘평생 평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오불관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인사를 나눌 때 누가 장관 출신이다, 검찰총장 출신이다, 교장 출신이다, 교수 출신이다, 언론사 사장 출신이다 어쩌고 하면 그의 이력과 그 시절의 분위기를 더듬어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사 사장 출신이라고 하면 실력과 인품으로 된 것인지, 눈물겨운 비겁 비굴 아부 아첨으로 된 것인지, 구성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는지 쭟겨났는지 하는 것들을 따져 보는 것입니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김재철 전 MBC 사장,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안병길 전 부산일보 사장,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을 비롯한 몇몇 언론사 사장 출신들이 2020 총선에 뛰어들었다는데, 독자들께서는 인터넷을 통해서든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이들의 이력을 한번 추적해 보시지요. 포악한 갑질과 뻔뻔한 거짓말 등 허접한 짓을 일삼다 쫓겨난 사람들이 보입니다.

‘일국(한 나라 )의 장관 ’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닙니다.

법무부 장관 출신 중에서는 조국 씨를 비롯해 불명예 퇴진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만, 그 중 특히 주목을 받는 사람은 안동수 씨일 듯합니다.

안 씨는 검사 출신으로서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1년 5월 제50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임명 43시간 만에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일이 잘못돼 ‘충성메모 ’가 언론에 배포됐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시고, 부족한 저를 파격 발탁해주신 대통령님의 태산 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당연히 조소와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아첨이 아니라 공정성과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즉시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제목은 ‘노골적인 정권 편들기 의도로, 향후 법 집행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심각한 우려’입니다. 참여연대는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법 집행을 지휘하고 (...)엄정중립과 불편부당을 선언해도 모자랄 판에 ‘정권재창출’ ‘태산 같은 성은’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족이 되겠습니다만, 지금의 참여연대는 ‘법무부 장관의 공정성과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는커녕, 조국-추미애로 이어지는 법무부 장관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평생 평가'를 두려워 하게 해야 한다

한편, ‘평생 평가’를 두려워한 경우도 있습니다. 작고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사례가 그러합니다. 제가 ‘민선’이었던 안 전 시장한테서 직접 들은 얘기가 있으니, 정리정돈을 해 보겠습니다.

사건은 임기 말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산의 진산’이라 불리는 금정산에 골프장을 조성토록 한 게 계기였습니다. 당시 안 전 시장은 ‘관선’시장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일보와 시민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안 전 시장은 마침내 골프장 조성을 불허했습니다. 그 뒷얘기입니다.

-당시 정권에서는 골프장 조성을 허가하면 장관 자리를 포함해서 많은 걸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하루는 부산일보 시청 출입기자가 시장실 문을 박차다시피 하면서 들어오더니 “골프장 허가, 해 줄 거요, 말 거요?”라고 묻는 거야. “정말 해 주면 안 돼?”라고 되물었지. 그랬더니 그 기자가 “만약 골프장을 허가하면 금정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이 명산을 안상영이가 이렇게 망쳐 놓았다’ 하면서 대대손손 침을 뱉을 거요”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고민이 되더라고. 결국 불허했지. 대통령이 미는 사업을 관선시장이 막았으니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는데(그때 안 전 시장은 퇴임사를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얼마쯤 있다 민선시장 제도가 생기는 거야. 만약 골프장을 허가했으면 민선시장은 꿈도 못 꾸었을 테고, 손주들도 누구 손주라고 욕을 먹었을 테지. 세상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각하기에, 안 전 시장은 손자손녀가 또래들로부터 “너희 할아버지 시장은 시장인데 ‘개시장’이었다더라”는 말을 듣는 걸 두려워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누군가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고 하거나, 검찰총장을 지냈다고 하거나, 교장을 지냈다고 하거나, 언론사 사장을 지냈다고 하거나...할 경우, 그의 이력을 추적해 보는 일은 마침내 미덕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합니다.

이런 자세가, 비록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는 있으나 기실은 시시하고 하찮은 자들로 하여금 ‘평생 평가’를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가 제거되는 데 일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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