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8/더 깊은 히말라야 속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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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8/더 깊은 히말라야 속으로 3
  • 서창덕
  • 승인 2019.10.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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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바바 캠프에서 타로카드를 만나다
서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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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디바바 캠프를 향해 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요가 니케탄 아쉬람 도서관 앞에 있는 작은 공터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디바바 캠프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어제 그들은 뻔뻔한 택시기사가 절대 못 간다고 했던 산꼭대기까지 나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것도 택시기사가 부른 값의 절반 가격에. 거리와 가격을 감안하면 어제의 뻔뻔한 택시기사는 내게서 거의 2배를 더 벌어간 셈이다.

어제 나는 우디바바 캠프에 그대로 눌러앉고 싶었지만 선업을 쌓지 않으면 수행의 진척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마하라지의 질책에 마음을 고쳐먹고 폭포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로 다시 내려갔다. 예정보다 30분쯤 지체되었지만 다행히 뻔뻔한 택시기사는 추가요금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반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일 우디바바 캠프에서 당신이 부른 절반의 가격으로 당신이 절대 못 간다고 했던 산꼭대기까지 가기로 했다고 하자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앞만 보고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그건 이미 우리 사이의 대화거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나도 뭐 그러고 말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닌 인도니까. 그가 지체된 만큼의 추가요금을 요구하지 않아 크게 손해 본 기분도 아니었다.

나는 혹시 어제 약속한 픽업차가 조금 빨리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0분 전인 9시 30분부터 기다렸지만 역시 차는 오지 않았다. 인도에서 차가 예정보다 빨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모든 차들이 그렇다. 그 중에 기차가 제일 늦다. 한 두 시간은 예사고 심지어 반나절이 늦을 때도 있다. 한국에서 기차가 반나절 늦었다면 아마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기차의 유리창 몇 개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도서관 처마 밑의 그늘에서 주차장에 내리붓는 햇살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키 큰 사람이 역시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노신사를 배웅하러 나왔다. 도서관 앞의 작은 공터는 아쉬람의 모든 차들이 모이고 출발하는 정류장이자 주차장이었다. 그는 키 큰 노신사가 탄 자동차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동안 바라봤다. 돌아서는 그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나는 혹시나 좀 전의 그 늙은 노신사가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마하라지의 제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방금 사라진 노신사는 마하라지의 숨은 제자가 아니라 10년 전에 이곳에서 정년퇴직한 아쉬람의 전임 총괄 책임자였다. 혹시 그 책임자는 마하라지가 살아 계실 때 있었던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럼 혹시 이 아쉬람에서 마하라지를 직접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단다. 이 아쉬람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은 바로 본인이란다.

그는 무려 30년 가까이 이 아쉬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1985년도에 마하라지가 돌아가신 뒤 불과 몇 년 뒤에 채용되었다. 나는 그를 몰랐지만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아쉬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정말 마하라지의 제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그렇다면 당신이 오래 근무했으니 옛날 마하라지의 제자 중에 한 사람 정도는 알지 않느냐. 그 제자와 나를 연결해 달라. 그러나 그는 똑같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존경하는 마하라지의 제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건 참 고마운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당신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요즘은 아무도 위대한 마하라지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마하라지의 제자가 있었다면 나는 벌써 당신에게 알려줬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전화가 왔다. 픽업하기로 한 차가 엉뚱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픽업 기사가 마음이 급하니 영어가 인도어로 바뀌었다. 인도어는 나마스테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의 복잡한 길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옆에 있던 그가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더니 한참 설명한 뒤 끊었다. 픽업차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또 한참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겨우 도착한 픽업차를 타고 우디바바 캠프로 향했다. 키 큰 주방의 직원이 노신사를 배웅하듯 멀어지는 나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한국에서 온 낯선 동양인이 35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던 그들의 위대한 스승을 불러낸 것이 무한히 고맙다는 듯이.

나를 데리러 온 차는 스포츠라고 쓴 흰색의 현대차였다. 한국차를 보자 외국에서 친척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인도에 다니는 대부분의 차들은 스즈키라는 작은 일본차였다. 현대차를 몰고 온 기사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자기가 우디바바 캠프의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얼굴에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침착하고 똑똑해 보였다.

그는 좁은 비포장도로에 말을 탄 남자가 한참동안 비켜주지 않아도 클랙슨 한번 누르지 않고 조용하게 뒤에서 따라갔다. 말을 탄 남자도 빨리 비켜주고 싶었는데 세 마리의 말 중에서 맨 앞에 가는 한 마리가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를 추월시키지 않겠다고 자꾸만 속도를 냈다. 50미터쯤 따라가니 고집을 부리던 말도 지쳤는지 속도가 떨어졌다. 그때 말 탄 주인이 앞세운 두 마리를 옆으로 비켜 주어 차량이 앞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헐떡이는 말을 가리키며 재밌지 않느냐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우디바바의 돌부처와 텐트(사진: 서창덕 제공).
우디바바의 돌부처와 텐트(사진: 서창덕 제공).

마하라지의 자서전-곰과 다투다

길은 점점 고도가 높아졌다. 이제는 리시케시도 갠지스강도 보이지 않았다. 사장은 이곳이 겨울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차량 이동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이런 척박한 곳에서 무려 35년이나 수행자로 살았던 마하라지를 떠올렸다. 그는 눈밭을 대부분 맨발로 다녔고 어떨 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한 달 동안 눈에 갇혀 지낸 적도 있었다.

눈이 많이 오면 산에 사는 짐승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히말라야에는 주로 곰이 많았고 가끔 표범도 있었다.

하루는 히말라야 케다르나스라는 곳으로 가다가 중간에 눈이 많이 쌓여 어두워졌다. 며칠 동안 걷느라 그에겐 먹을 것이라곤 약간의 음식과 차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밤을 보내려면 추위와 바람을 피해야 하는데 마침 언덕 아래 동굴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주위가 이미 어두워진 뒤였기 때문에 동굴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머문 듯 마른 풀들이 깔려 있고 동굴 내부도 비교적 따듯했다. 마하라지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자신이 끌려가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으나 힘이 너무 강했다.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발에 전해지는 부숭한 털의 느낌에 그것이 야생동물임을 직감했다. 그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며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켰는데 불빛에 드러난 짐승은 예상대로 큰 곰이었다.

그가 다급한 마음에 곰을 향해 성냥불을 던졌고 곰의 가슴팍에 불이 붙었다. 곰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가 동굴 천장에 부딪쳤다. 그래도 불이 꺼지지 않자 다급해진 곰은 동굴 밖으로 뛰어가더니 강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그도 같이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불이 꺼지면 곰이 다시 덤빌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놀란 곰은 멀리 도망쳤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곰에게 약간 미안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히말라야에서는 유난히 곰과 부딪칠 일이 많았다. 하루는 아침에 언덕에서 이를 닦고 있는데 앞의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렸다. 누군가 싶어 크게 소리를 치면 흔들림이 멈췄다가 잠시 뒤 조용해지면 다시 나무가 흔들렸다. 마하라지는 나무들이 흔들리는 쪽으로 제법 큰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조금 뒤 큰 수컷 곰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왔다. 곰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있었는데 마하라지가 던진 돌에 맞아서 화가 나 있었다.

곰은 마하라지에게 달려들었고 마하라지도 도망가지 않았다. 이 시절의 마하라지는 젊었고 오랜 산악생활로 육체적으로도 강해져 있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둘은 한참동안 싸웠다. 마하라지가 옆에 있던 나무 지팡이로 곰의 가슴팍을 쳤다. 곰은 지팡이를 비켜내며 그의 다리를 잡으려 달려드는 척 하더니 마하라지의 머리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하라지가 미리 알고 피하며 오히려 주먹으로 곰의 머리를 정통으로 세게 쳤다. 충격을 받은 곰이 뒤로 주춤 물러서는 틈에 지팡이로 곰의 엉덩이를 강하게 밀었고 곰은 바위에 세게 부딪쳤다. 충격을 받은 곰이 허둥지둥 달아났다. 그 뒤 그 곰은 마하라지를 보면 도망갔다. 며칠 뒤에는 다른 곰들도 마하라지를 보면 함께 달아났다. 아마 마하라지에게 패한 곰이 모두에게 보통의 상대가 아니라고 알린 모양이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마하라지의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아쉬람의 직원이 마하라지를 향한 내 열정에 감동해 이미 절판된 30년 전의 자서전을 내게 주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곰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하라지처럼 히말라야의 거친 환경에서 살다보면 사람도 야생의 본성을 회복해 강해진다. 더군다나 수련을 계속하기 때문에 정신력과 집중력도 엄청나게 강해진다.

국선도를 보급한 청산선사의 일대기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더군다나 청산선사의 상대는 호랑이였다. 호랑이가 강한지 곰이 강한지 알 수는 없지만 잡식을 하는 곰보다는 육식을 하는 호랑이가 전문 사냥꾼이기 때문에 훨씬 싸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시기에 마하리지는 12만 5000번의 가야트리 만트라를 완성했다고 한다. 하루에 12만 5000번을 했다는 것인지 한 번의 시도로 며칠 동안 끊어지지 않고 했다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앞의 글에서 밝혔듯이 가야트리 만트라는 마하라지가 스무 살 때 펀잡 출신의 스승에게 배운 것이다. 비록 실망한 스승은 떠났지만 마하라지는 스승이 가르쳐준 수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번에 12만 5000번의 가야트리 만트라를 완성한 것이다. 똑같은 만트라를 며칠씩 하는 것은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숫자를 세며 만트라를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 번을 세기도 어려운데 무려 12만 5000번을 세는 일이다. 12만 5000번을 세는 동안 정신이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숫자를 건너뛰거나 까먹게 된다. 즉 엄청난 집중력을 장시간 유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집중력이 커지자 삼매의 시간도 차츰 늘어났다. 12시간 지속할 수 있었던 삼매가 무려 12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산의 능선 끝에서 짐을 가져가기 위해 인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디바바 캠프의 사장은 나무 그늘에 차를 대며 나보고 인부를 따라 내려가라고 했다. 인부가 부식을 넣은 큰 마대자루를 메고 능숙하게 앞장을 섰고 그보다 훨씬 작은 배낭을 멘 나는 그의 뒤에서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우디바바 캠프를 향해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자 외딴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집보다는 제법 큰 건물이 보여 물었더니 우리의 초등학교란다. 어떤 학생들은 몇 시간씩 걸어서 이곳까지 온다고 한다. 물론 눈이 많이 오면 못 온다. 마침 소녀 둘이서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어 물었더니 시험을 치는 중이란다. 엄지를 세우며 파이팅 했더니 무슨 소린가 싶어 빤히 쳐다봤다.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젊은 시절의 마하라지(사진: 서창덕 제공).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젊은 시절의 마하라지(사진: 서창덕 제공).

타로카드 그림을 그리는 프랑스 여인

드디어 우디바바 캠프에 도착했다. 나는 텐트에 짐을 정리해 놓고 잠깐 명상에 들어갔다. 역시 금방 등 뒤로 기운이 올라갔다. 역시 수행하기 좋은 장소였다. 히말라야라고 하여 모든 자리가 좋은 곳은 아니다. 특히 산은 기본적으로 음(陰)이기 때문에 양기(陽氣)가 모여 있지 않는 곳에서 명상을 하면 머리가 아프거나 건강을 해칠 위험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무턱대고 산에 가서 기도를 하거나 수련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옛날 청산선사의 제자가 자기도 산에 들어가 열심히 수련만 하겠다고 했더니 청산선사께선 산에 가면 귀신밖에 없다며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농담으로 들리겠지만 진실이 숨어 있다.

잠깐 명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텐트를 두드렸다. 점심식사가 준비되었단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다. 텐트촌 중간에 취사장이 있고 그 앞에 몇 개의 테이블이 식사를 하는 곳이다. 나보다 먼저 두 명의 젊은 연인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금방 샤워를 하고 왔는지 윗옷을 벗은 채 수영복 바지만 입고 있고 여자는 작은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남자에게 씻지 않은 포도 몇 송이를 주고 갔다. 씻었으면 몇 개 얻어먹으려 했더니 남자는 포도를 씻지도 않고 먹었다. 그러면서 나보고 같이 먹잔다. 당연히 ‘노 땡큐’다. 인도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데.

그림을 그리고 있던 여자의 이름은 루디였다. 내게는 어려운 이름이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르네 젤위거라는 헐리우드 여배우가 떠올랐다. 약간 통통한 얼굴에 어두운 과거에 눌린 듯한 미소까지 거의 똑같았다. 남자는 포도를 먹으면서 여자친구에게는 먹어보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녀가 포도를 싫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둘의 관계에 문제가 있나. 아무튼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서양에서 점을 치는데 사용하는 타로카드였다. 거의 똑같이 그렸다 싶을 정도로 그녀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왜 하필 타로카드를 그리고 있냐고 물었더니 타로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책을 보여 준다. 타로를 배우려면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듯이.

그녀의 나이는 22살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왔다. 당연히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창 대학에서 공부할 나이에 남자친구와 이런 곳에서 한가하게 시간이나 보내고 있다니. 인도에 왔으면 요가나 명상을 해야지 이상한 그림의 타로점이나 배우면서. 도대체 앞으로 뭐가 되겠다는 것인가.

카레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씻지 않고 포도를 먹었던 남자가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묻는다. 뭐하긴. 이곳에서 특별히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명상이나 해야지. 자신들은 뒤에 보이는 산꼭대기기까지 올라갈 건데 같이 가잔다. 산꼭대기? 와우. 좋지.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이곳에 올 때부터 텐트촌의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에 올라가 명상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는 큰 마대자루 하나를 챙겼다. 바위 위에서 깔고 앉으려나 싶었더니 저녁에 불 피울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오기 위해서란다. 자신들은 일주일 동안 매일 이 일을 하고 있단다. 밤에는 매우 춥기 때문에 모닥불을 피워야 한단다.

그가 미숙한 동생을 대하는 친절한 형님처럼 굴며 내 나이를 물었다. 내가 오십이 넘었다고 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자네는? ‘28살.’ 음. 첫사랑에 실패만 안했어도.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묵묵히 뒷산의 정상을 향해 걸었다.

히말라야의 소녀들(사진: 서창덕 제공).
히말라야의 소녀들(사진: 서창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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