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23/마더 테레사의 석관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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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23/마더 테레사의 석관과 눈물
  • 서창덕
  • 승인 2019.11.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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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덕
마하라지(사진: 서창덕 제공).
늘 요가난다의 자서전을 품에 안고 다니는 데이브 에이티와 필자(사진: 서창덕 제공).

우주의 기운은 수십 가지다

우주에 있는 기운은 몇 가지나 될까? 이 물음에 국선도 또는 이와 비슷한 기수련(氣修鍊)을 하는 사람들은 뜨악할 것이다. 여태껏 그냥 우주의 기운을 흡입한다는 생각만 했지 내가 흡입대상으로 삼은 우주의 기운의 종류가 여러 가지일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스승 마하라지는 우주의 기운을 수십 가지로 분류해 놓고 세세하게 각각의 기운에 대해 설명을 붙이셨다. 실로 마하라지의 위대한 능력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가 외부에서 오는 기운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는 인도 캘거타에 있는 테레사 수녀의 ‘마더 하우스’를 방문했을 때다. 당시 나는 캘거타에 있는 요가난다 자아실현협회의 본부(YSS)를 방문하고 요가난다의 출생지와 공부한 아쉬람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를 안내한 사람은 늘 요가난다의 두꺼운 자서전을 품에 안고 다니는 열렬한 요가난다의 추종자 데이브 메이티다. 그는 요가난다를 알기 전까지 거친 삶을 살았지만 요가난다를 알고 난 뒤에 인생이 백팔십도 바뀌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주저하며 내게 물었다. 혹시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를 싫어하지 않느냐고. 나는 종교는 간판만 다르지 모두 똑같은 신(神)을 모시고 있다고 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아는 좋은 곳이 있다며 나를 안내했다. 바로 캘거타에서 평생 빈자(貧者)를 위해 일했던 테레사 수녀의 ‘마더 하우스(Mother house)’였다.

데이브는 요가난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아실현협회(SRF)의 열렬한 회원이지만 가끔 그는 이곳에 와서 명상을 한다고 했다. 그는 며칠 동안 나를 지켜보며 내가 자기보다 훨씬 명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감동해 항상 내게 ‘Sir(선생님)’를 붙이며 깍듯이 대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묻거나 설명을 듣기보다는 명상을 했다. 신을 모신 아쉬람은 당연하고 요가난다가 태어난 곳이나 살았던 곳에 가서도 명상을 했다.

유서 깊은 곳이나 신성한 곳에 가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몸에 좋은 보약 한 첩을 먹는 것과 똑같다. 대개 성인들이 거쳐 간 곳이나 성스러운 장소는 좋은 기운이 어려 있다. 그곳에서 명상을 하면 그 기운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정화시키고 정신의 영역도 넓혀 준다.

설명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몸으로 느끼면 설명보다 훨씬 많은 실제의 정보가 들어온다. 가는 곳마다 나는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고 겨우 깨어나면 데이브는 나를 존경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래서 며칠 고민 끝에 그는 내게 요가난다와 전혀 관련이 없는 ‘마더 하우스’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테레사 수녀와 ‘마더 하우스’의 기운

테레사 수녀는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분이니까 나도 그냥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분. 그러나 그 분이 인도의 옛 수도였던 이곳 캘거타의 빈민촌에서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은 몰랐다. 마더 하우스가 있는 곳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동네였는데 건물 앞은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마더 하우스의 출입은 자유로웠다. 우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건물의 입구를 통과했다. 건물 안에는 복도를 따라 테레사 수녀의 사진과 봉사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수녀들이 일하고 있는 작은 방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방에는 수녀가 방문객에게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다른 수녀들도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늘 잔잔한 미소를 띤 채 평화로웠다. 웬만큼 수행한 사람도 바쁜 일상에서 저러기가 쉽지 않은데 이유가 있었다.

데이브는 자주 이곳에 와본 듯 수녀들과도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익숙하게 안내하는 그를 따라 몇 개의 방과 복도를 지나 약간 큰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무심코 들어선 홀 중간에 큰 대리석 석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뜨악했다.

나는 명상을 하는 곳이라고 하여 십자가가 있는 강당이나 성모 마리아를 모신 아담한 방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석관이라니. 나는 입구에서 망설였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들어와서 다시 돌아나갈 수는 없었다. 일단 나는 테레사 수녀를 모신 석관 옆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옆에 앉은 데이브는 벌써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나는 누구이든지 간에, 그 사람이 설령 성인으로 추대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모신 무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극단적으로 기피한다. 그런 곳에서 명상을 했다가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파 고통을 겪은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느 장소처럼 쉽사리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명상을 하는 대신 가만히 앉아서 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외국인들도 많았고 인도인들도 많았다.

마더 테레사의 석관과 성모 마리아상(사진: 서창덕 제공).
마더 테레사의 석관과 성모 마리아상(사진: 서창덕 제공).

이상한 눈물

방문객들이 많은 것에 비하면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인도의 유명한 사원들은 몸수색도 하고 신발도 벗어야 한다. 어떤 곳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절대 출입을 시키지 않고 아예 외국인을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다. 홀을 관리하는 수녀들도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대부분 침묵하며 고요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이며 평화로울 수 있는지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석관에 머리를 숙이고 이마를 대거나 입을 맞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드디어 이곳에 왔다고 감격해서일까. 그런데 표정을 보면 감격해서 우는 눈물이 아니었다. 슬픔이나 기쁨 때문이 아니라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눈물이었다. 예를 들면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을 때 흘러내리는 눈물이라고나 할까.

옆에 앉은 데이브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참배를 하며 감동 없는 눈물을 흘리는 참배객들을 지켜보는 것도 지루해진 나는 할 수 없이 눈을 감았다. 이러다 또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파 고생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면서.

아, 그런데 눈을 감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테레사 수녀가 누워있는 대리석 석관에서 따듯한 물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뭐지? 온풍기를 틀었나? 이 더운 여름의 캘거타에 선풍기면 몰라도 온풍기를 틀었을 리는 없다. 바람의 느낌은 아니고 흡사 따듯한 물 같았다. 눈을 떴더니 역시 내 쪽으로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은 없다. 있을 리가 없다. 다시 눈을 감자 또다시 따듯한 물 같은 맑고 부드러운 기운이 석관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문득, 나는 이 기운이 바로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 거룩하시며 누구에게나 부어주는 조건 없는 근본 우주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경험하는 종류가 다른 기운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기수련을 해왔지만 완전히 다른 기운이 세상에 존재할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갑자기 아무런 감동이나 마땅한 이유도 없이 그냥 가슴 안쪽에서 뭉클한 게 치밀어 오르며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바람에 나는 계속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억눌러야 했다. 참배객들이 감동 없이 흘리던 바로 그 눈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자 석관 위의 성모 마리아가 내게 애틋한 눈길을 보내며 속삭였다. 나는 늘 네 곁에 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옆에 앉은 데이브가 존경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성모마리아에게, 그리고 테레사 수녀에게도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나는 우주에 늘 함께하는 신성한 어머니의 실체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몇 년 전 ‘꽃보다 누나’라는 티브이 예능프로가 있었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는데 우연히 성당을 방문한 두 여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성당은 크로아티아에 있는 자그레브 대성당이었는데 성모의 승천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완공된 지 무려 900년이 넘은 오래된 성당이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두 여배우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카메라맨이 카메라 너머에서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느냐고 묻자 두 여배우도 당황해하며 왜 우는지 자신들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찬바람이 눈에 들어왔을 때처럼 자신이 허락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는데 몸에서 그냥 눈물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외부의 기운에 의해 깨끗하게 정화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눈물이다. 성모가 승천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자그레브 성당은 아마 실제 성모의 성스러운 기운이 성당 내부에 가득했을 것이다.

테레사수녀는 돌아가신지 5년 뒤인 2002년도에 교황청에 의해 복자(福者)로 인정되었다가 2016년도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가톨릭에서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반드시 두 번 이상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대충 일어나서는 안 되고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테레사 수녀가 돌아가신 지 1년 뒤인 1998년 인도 여성 모니카 베르사는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해 위종양이 나았다. 또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8년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 마르실리우 안드리뉴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뇌종양이 완치되었다. 이 두 건의 기적은 가톨릭 교단에 의해 인정되었다.

가톨릭 교단에 의해 인정되었다는 것은 교황청에서 진짜 테레사 수녀의 영향에 의해 치료된 것인지 아닌지를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에서 철저한 조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톨릭이 아니지만 그러한 기적을 믿는다. 왜? 내가 바로 직접 테레사 수녀의 무덤 앞에서 그 기운의 실체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보다 포교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생전에 남긴 편지에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편지를 보고 테레사 수녀도 끝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테레사 수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기운의 존재를 느꼈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수련이든 수련자가 이 기운(氣運)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련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바로 이 기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꼭 나처럼 기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기운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단지 지식이 없어 그것이 기운인지 모르고 지나칠 뿐이다.

예를 들어 등 뒤로 수십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바로 기운이 올라가는 현상이다. 얼굴이 가렵거나 얼굴에 먼지가 달라붙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기도를 할 때나 명상을 할 때 몸이 떨리는 현상도 바로 우주의 기운이 내 몸에 닿아 발생하는 현상이다.

소리와 빛

드물지만, 빛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있다. 이 분들은 한 단계 더 발전한 분들이다. 명상이나 기도에 의해 우주에서 내 몸으로 들어온 기운들은 내 몸의 막힌 곳과 탁한 곳을 조금씩 정화시켜 나간다. 이럴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심하면 몸에서 누런 것들이 빠져나와 웃을 더럽히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병이 치유되고 급했던 마음도 가라앉게 된다.

그렇게 안정이 되면 조금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어떤 사람은 갑자기 이명(耳鳴)이 생겼다고 착각한다. 몸이 쇠약해지면 이명현상이 온다고 했는데 자신의 몸은 분명히 예전보다 좋아졌는데 왜 갑자기 이명현상이 오는지 의아해 한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건 몸이 쇠약했을 때 나타나는 이명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한 기운이 서서히 척추를 타고 머리로 올라갈 때 듣게 되는 소리다. 이 기운이 서서히 올라가는 통로가 바로 천국의 계단이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거문고 타는 소리와 물이 흐르는 소리, 천둥소리, 나팔소리가 들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단계에서 듣게 되는 소리를 설명한 것이다.

나중에는 종소리가 들리는데 옛날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울렸던 종소리와 똑같다. 요한 계시록에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은 이 과정에 몸과 마음속의 나쁜 것들이 물러가고 정화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종소리가 들림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빛이 나타난다. 이 빛이 바로 천국의 빛이다. 결론적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이 빛과 이 소리뿐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허상(虛像)이다.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 또는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소리만이 나를 천국으로 안내한다. 만약,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 속는 셈 치고 지금 이 말을 잘 기억하시면 천국에 갈 수도 있다.

소리를 통해 천국에 가는 방법이 바로 나다요가(Nada Yoga)다. 소리는 신(神)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우리가 명상을 통하여 고도로 집중되고 고요해지면 우주에서 들려오는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가 들리면 이 소리를 따라가면 도착하는 곳이 바로 신(神)이 계신 천국(天國)이다.

테레사 수녀도 일기에서 고백했듯이 신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번 발견했다고 해서 늘 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 소리를 통해 신을 찾아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다. 한번 소리를 듣게 되면 소리는 늘 나와 함께 있다. 이 소리는 일반적인 낮은 차원의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귀를 막아도 들리고 열어도 들린다. 그래서 히말라야에 가면 동굴 안에서 나다요가(Nada Yoga)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빛을 따라 신(神)에게 가는 방법을 크리야요가(Krya Yoga)라고 한다. 소리가 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빛도 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빛 또한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그것도 창세기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이 소리(말씀)로 빛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가 먼저이고 빛이 뒤라는 얘기다. 그래서 명상에 집중하다보면 소리가 먼저 들리고 빛이 뒤에 보인다.

그런데 사실 소리와 빛은 모두 뿌리가 동일한 신(神)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근원통(耳根圓通)법을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부처님께서는 빛과 소리에다 한 술을 더 얹었는데 모든 뜻과 모든 감각들도 모두 신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 근원들을 따라가면 신(神)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빛과 소리를 통해 신을 찾아가는 방법 외에 널리 알려진 신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헌신하는 박티요가(Bhakti Yoga)다. 기독교는 박티요가와 매우 유사하다. 나는 예수가 사라진 젊은 날의 기간에 인도에 와서 박티요가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요가 중에서 이 방법이 가장 쉽다고 한다. 예수도 자신이 타고난 성품과 박티요가가 잘 맞았을 것이고 요가를 모르는 서양인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잘 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견 쉬워 보이지만 사실 이 방법은 매우 어렵다. 사람은 일상생활에 쫓기다보면 신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법대로 늘 신을 떠나지 않으려면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인간으로서의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테레사수녀는 자칫하면 멀어지는 신을 잊지 않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그녀가 쓴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그녀 또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해도 신에게서 멀어져 고통스러워했다. 신(神)으로부터 신의 속성인 자유의지를 물려받은 인간은 고통과 가난에서 멀어지면 금방 자만에 들떠 신에게서 멀어진다. 그래서 그녀는 가난과 고통을 덜어주기 보다는 신의 포교에 더 치중했을 것이다.

신(神)은 모든 에고(ego)를 비웠을 때 온다. 나를 모두 비워내면 비로소 신의 기운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예수는 항상 인간으로서의 자만을 경계했다. 수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지만 항상 내가 아닌 내 안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하셨다. 그건 겸양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 안의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예수라고 자만의 예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도 자만에 떨어지는 즉시 평범해지고 그 또한 지옥에 떨어지고 신(神)과 멀어지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묻힌 캘거타의 마더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따듯한 기운이 솟아난다고 하여 그 기운의 주체가 테레사 수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 기운을 보내는 주체는 테레사 수녀의 무덤 위를 지키고 있는 성스러운 어머니 마리아다. 우주의 어머니 마리아가 석관 위의 촛불을 밝히는 주체다. 테레사 수녀는 단지 창(窓)이다. 테레사 수녀는 성모(聖母)를 대신하여 가난하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하였고 성스러운 어머니는 그녀를 통해 신의 실체를 그곳에 펼쳐 보였다.

 

공중부양(사진: 서창덕 제공)
공중에 뜨는 성자 나겐드라의 영정 앞에서 명상 중인 필자(사진: 서창덕 제공)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테레사수녀가 기도실에서 다른 수녀들과 기도할 때면 항상 발목에 끈을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그녀가 기도에 집중하다보면 신이 그녀 안에 충만해 몸이 둥둥 떠올라 천정까지 닿았다고 한다. 이 얘기가 거짓말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궁금한 사람은 인도 캘거타에 있는 마더 하우스를 가보시면 된다. 가톨릭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우주의 어머니(聖母)는 종교의 간판에 연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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