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7/쉬바와 나디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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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7/쉬바와 나디현상
  • 서창덕
  • 승인 2019.08.0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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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보다는 무신론자가 돼라
서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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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신전과 쉬바의 삼지창

아침 요가(Morning Yoga)가 끝날 무렵 사제복장을 한 뚱뚱한 남자가 꽃과 향을 들고 요가홀로 들어오더니 정면 벽의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사라졌다. 저거다. 뭔가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비밀의 향기를 느꼈다. 요가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사제가 사라진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밖에서 봤을 땐 유리 장식장인 줄 알았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을 침범한 두려움이나 미안함은 없었다. 이미 마하라지는 가고 없고 비밀을 물려받은 제자도 없으니 내 스스로 비밀의 단서를 찾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물불을 가리거나 주저해서는 결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범어사 청련암의 비밀 벽화를 조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까지 안내한 마하라지의 계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 몫이다. 소를 물가까지 안내했다면 스스로 물을 먹어야 한다. 육조 혜능이나 마하가섭의 사례처럼 마지막 법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쳐야 하는 것이다. 내가 시절인연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대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 칸막이 안에는 작지만 깨끗한 신전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합장을 한 채 향과 꽃을 바치는 사제의 뒤에 서서 의식에 동참했다. 낯선 곳에서 합장은 가장 확실한 동참과 평화의 제스처다. 왼손으로 종을 치며 오른손으로 꽃과 향을 바치던 사제는 나를 발견하고 약간 놀라더니 곧 상관없다는 듯 이상한 말들을 큰 소리로 외우며 의식을 계속했다. 신전에 모셔진 신의 이름은 쉬바(Lord Shiva)였다.

인도에 사는 신의 숫자는 3억 3300만이라고 한다. 물론 그 숫자가 맞는지 세어 보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많다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그 많은 인도의 신들 중에 왜 하필 쉬바를 모셨을까.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사실 인도의 신들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신이 바로 쉬바다.

다른 신들은 목적이 분명하다. 가네샤 신은 풍요를 가져다주고 크리슈나 신은 사랑이다. 그러나 쉬바신은 무시무시한 파괴의 신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또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재창조한다. 그래서 쉬바는 자기 멋대로 하기 때문에 신들의 왕이라고 한다. 나는 신들의 왕이라는 쉬바가 요즘 말로 갑질의 왕인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년 전. 인도 친구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고 이해를 못했던 게 바로 쉬바를 모신 신전이었다. 왜 평화로워야 할 가정에 저렇게 삼지창을 든 무시무시한 파괴의 신을 모시는 걸까. 평화주의자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전쟁광이었네. 목구멍까지 질문이 올라왔지만 기분 나빠 할까봐 물어보지는 못했다. 혹시 욱하면 진짜 삼지창에 찔릴 수도 있을 테니까. 인도 친구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쉬바가 들고 있는 삼지창은 남을 죽이는 살상용이 아니라 요가를 할 때 나타나는 ‘나디(Nadi) 현상’이라며 웃었다. 이 한마디가 나를 깨웠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10여 년 전 죽을병에 걸렸다며 치료약도 없다는 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고 열심히 국선도 도장에 나가 단전호흡을 했었다. 치료약이 없다면서 주는 의사의 약은 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건 평생 나를 ‘호갱’으로 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잠자는 시간 4시간만 빼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단전호흡에 집중했다. 덕분에 병원에서 포기하라던 내 병은 말끔하게 나았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당시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하면 믿지 않습니다. 고시생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왜 새벽 4시에 일어난다는 말인가. 하기야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조차 믿지 않았죠. 처음 내가 새벽 4시에 잠을 깬 건 시끄러운 보일러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내 방은 보일러 옆방이었고 여름이라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을 잤죠. 그런데 새벽에 보일러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습니다.

아침 밥상에서 나는 아내에게 무슨 돈이 남아돌아서 한여름에 보일러를 틀어 잠을 설치게 하냐며 나무랐죠. 숟가락을 입에 문 아내가 쌍심지를 켜며 대들더군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보일러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나는 벌떡 일어나 보일러실에 달려갔죠. 내 증거를 잡으리라. 그러나 보일러는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죠. 그건 바로 내 몸 안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내 몸 안에 나도 모르는 발전기가 새벽만 되면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 <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 중에서

그러나 발전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등 뒤로 수백 마리의 개미가 떼를 지어 다녔고, 한번은 오른쪽으로, 한번은 왼쪽으로, 어떨 땐 중간으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요가에서 말하는 나디(Nadi) 현상이었다.

인도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광으로 의심하는 나에게 그는 쉬바가 들고 있는 삼지창은 살상용이 아니라 바로 등 뒤로 올라가는 세 가지 나디의 상징이라며 웃었다. 그 말이 나를 긴 잠에서 깨웠다.

리시케시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리시케시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요가의 세계에서 쿤달리니를 깨우다

왼손으로 종을 치며 향과 꽃을 바치던 뚱뚱한 사제가 입으로 뭔가를 여전히 중얼거리며 내게 눈짓을 보냈다. 뭘 어쩌라는 거지? 돈이라도 바치라는 건가? 아침에 요가하러 나오면서 지갑을 가져왔을 리는 없잖아. 나는 정말 돈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사제가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 쟁반에 들고 있는 꽃을 가리켰다. 아, 꽃을 바치라고. 나는 쉬바의 제단에 노란 꽃을 바치고 사제처럼 쉬바의 발에 이마를 댔다. 그러자 등 뒤로 세 개의 나디가 크게 반응을 하며 머리를 향해 곧장 올라갔다. 눈앞에는 엄청난 빛이 쏟아졌다. 내 이마가 쉬바의 발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밥 먹으러 가야 된다는 듯 뚱뚱한 사제가 헛기침을 섞으며 더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사실, 인도친구의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새벽만 되면 몸 안에 발전기가 돌아가는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실체는 분명한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불안은 쌓여갔다.

나는 실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시차가 7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프랑스에 가서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실험으로 실체는 분명한 건 알겠는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정신병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차마 정신병원은 가지 못하고 정신병과 관련된 책들만 잔뜩 샀다. 그러나 그러한 책에도 나와 비슷한 증상은 없었다. 국선도의 고수들도 내 증상에 대해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것 외에는 답하지 못했다.

이때 나를 혼란에서 구해준 게 바로 인도 친구의 집에서 본 쉬바였다. 쉬바의 삼지창이 계기가 되어 나는 요가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요가에서는 내 모든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이 나와 있었다. 나는 꼬리뼈에 잠들어 있던 쿤달리니를 깨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단 한 번이라도 요가를 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국선도를 했는데 왜 요가로 빠졌을까. 더 많은 의문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또 지나온 만큼의 고통과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다시 오늘 내 앞에 쉬바가 삼지창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아쉬람을 창시한 마라하라지께서 아쉬람 요가홀(Yoga hall)에 쉬바를 모신 것은 분명 그 분의 비밀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머리를 길게 기른 쉬바는 호랑이 가죽옷을 입었고 반쯤 뜬 눈과 이마에 새겨진 세 줄의 흰 주름에 세로로 또 하나의 눈이 있다. 머리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고 목에는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 머리를 바짝 세운 코브라가 친친 감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 기둥처럼 힘 있게 서 있는 황금빛 삼지창. 삼지창이 등 뒤에 흐르는 세 가지 기(氣)의 통로를 얘기한다지만 다른 것들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사무실의 책임자를 만나 마하라지에 관한 자료를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도서관장을 소개했다가 망신만 당한 사무실의 책임자는 나와 마주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탁할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명쾌하고 빨랐다. 앞에 실패한 게 미안해서일까. 아무튼 실천이 더딘 인도인치고는 특이한 성격이었다.

너는 마하라지의 자료가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 오케이. Follow me(따라와라)! Now(지금)? Yes, Now(그래, 지금)! 왜? 지금 안 돼? 무슨 다른 약속이 있어? No! No! 이역만리 인도에서 내가 무슨 다른 약속이 있겠는가. 나는 할 수 없이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그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갔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를 따라간 곳은 다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누가 있겠는가. 이 사람들이 정말. 나는 또 그 위빠사나밖에 모르는 도서관장에게 데리고 가는 줄 알고 남아 있는 작은 기대마저 포기했다. 사무실 책임자는 도서관장밖에 모르고 도서관장은 위빠사나밖에 모른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인도의 세 얼간이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도서관의 문을 열자 도서관장이 벌떡 일어났다. 이제 그는 멀리서도 나를 피했다. 그러나 사무실 책임자는 도서관장을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도서관에는 어마어마한 책들이 있었다. 도서관에 책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늘 도서관을 지나치며 그 안에 들어가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는 내가 찾는 모든 자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마하라지가 예전에 직접 썼던 책과 이미 절판된 자서전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자료는 마하라지가 소수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집중수련을 시켰을 때 강의를 기록한 노트였다. 어떻게 이런 갸륵한 생각을 했을까. 원래 노트는 다섯 권이 있었는데 모두 분실되고 딱 한권만 남아 있다고 했다. 수천 권의 책 중에 어떻게 그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는지 그들도 신기해했다. 더군다나 그 노트는 영어로 되어 있었고 내가 궁금했던 많은 답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쉬람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아쉬람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내가, 당신이 곧 쉬바다

그날 저녁. 나는 어둠이 내린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생각의 정리도 필요했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도 시켜야 했고, 나를 이끈 어떤 존재에게 감사를 드리고도 싶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갠지스를 찾는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 갠지스만 찾는 인도인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에도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는 평화롭고 한산했다. 수행자 복장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서양인이 갠지스를 보며 명상에 잠겨 있고 장사를 마친 행상들 몇이 머리에 봇짐을 지고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가족에게로 바삐 걸어갔다.

쉬바가 나를 이끈 것일까?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쉬바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했으니 이런 자비를 베풀 리 없다. 그렇다면 마하라지의 은총인가? 아니다. 내가 쉬바에게 꽃을 바치자 내 등 뒤로 수많은 나디들이 머리를 향해 돌진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걷는데 저만치 앞 강가에서 여자 둘이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허튼 짓을 말라는 듯 나를 쏘아봤다. 모녀사이 같기도 하고 자매 같기도 했다. 모녀라고 하기엔 꽃을 바치는 여자가 너무 젊어 보였다. 나이가 조금 많은 여자가 의식을 치르는 동안 조금 어린 여자는 똑바로 서서 주위를 경계했다. 나는 약간 떨어져서 합장을 하고 방해꾼이 아니라 같은 편임을 보여줬다. 낯선 곳에서 합장은 가장 확실한 동참과 평화의 제스처니까.

“이 돌은 뭔가요?”

의식이 끝나자 가까이 간 나는 그들이 꽃과 음식을 바친 돌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고생이 다시 나를 째려봤다. 아무래도 그녀는 인도의 크샤트리아 같은 무사의 기질이 있어 보였다.

“It's Lord Shiva(쉬바입니다)."

그것도 모르다니 한심하다는 듯 여고생이 대답했다. 이 돌이 쉬바라고? 아닌데. 쉬바는 삼지창을 들고 목에 코브라를 감고 있어야 하는데? 삼지창을 영어로 뭐라고 하지? Three... 적당한 영어를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의식을 위해 가져온 짐을 챙긴 나이 많은 여자가 일어서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이 평화롭게 빛났다. 그녀는 수행자였다. 그녀가 나를, 정확히 내 가슴을 가리키며 낭랑하게 말했다.

“Shiva is you(당신이 바로 쉬바입니다).”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낭랑한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남기고 그들은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동안 은은한 향기가 남아 있었다. 뭔가? 내가 헛것을 본 것인가? 인도에서는 하도 이상한 일들이 많으니. 뭐 그렇다 치고. 나를 보고 쉬바라니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의문을 가지자마자 갑자기 허공에서 불쑥 답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아, 그래. 쉬바의 삼지창은 쉬바가 아닌 내 몸 안에 있었다. 내 몸에서 그런 변화들이 일어났으니까. 그렇다. 그 생각으로 모든 혼란한 것들이 한 순간에 꿰어졌다. 저 돌은 내 몸 안의 물라다라 차크라고 저 뱀은 차크라를 뚫고 상승하는 기운이다. 저 기운이 삼지창처럼 왼쪽과 오른쪽과 중간으로 오르며 내 몸의 나쁜 것들을 파괴한다. 그리고 신성한 새로운 것들로 재창조한다. 쉬바의 목에 감겨 있는 코브라는 꼬리뼈에서 올라온 쿤달리니의 상징이다. 그래서 쉬바는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가 그랬다.

“바로 당신이 쉬바입니다.”

그녀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 단언했다. 그녀의 지적 덕분에 내 생각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뭔가 부족했다. 나는 의심이 많고 꼼꼼한 한국인이었다. 사실 의심은 직업병이기도 했다. 세상에 온갖 사기꾼들이 은행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그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모든 것이 하나로 꿰어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한구석에 의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정말 신일까? 아니면 내 안에 또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인가? 만약 그 신이 나타나면 나는 다른 몸을 찾아 떠나야 할까? 그런데 어떻게 내 안에 있는 신을 내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바로 신이란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밖에 있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무엇인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고?

물론 이런 모든 질문들에 대하여 성경이나 다른 경전에는 너무나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진짜 내가 정확히 보고 내가 실제 체험하여 체득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은 모래성에 집을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서양에 처음 요가를 전한 비베카난다는 강조했다.

“신이 있다면 만나라, 만날 수 없다면 버려라, 위선자보다는 무신론자가 낫다.”

갠지스강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갠지스강의 쉬바(사진: 서창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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