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神이다-26/홀리(Holy)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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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神이다-26/홀리(Holy) 축제
  • 서창덕
  • 승인 2019.12.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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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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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람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다

밀린 빨래를 하고 있는데 밖이 시끄러웠다.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여 무슨 행사가 있나 싶었는데 기어이 앰프를 설치해 놓고 노래를 틀었다. 맙소사. 노래라니. 그 동안 갠지스강 건너편의 아쉬람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 온갖 비난을 했었는데 설마 내가 머무는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서 노래를 틀 줄은 몰랐다.

그것도 신을 찬양하는 노래만 트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도 나온다. 세계적인 명상의 도시 리시케시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게 될 줄이야. 뭐지? 이 사람들이 명상의 요람을 나이트클럽으로 만들려는 건가. 아니면 며칠 만에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나를 반긴다고 환영 행사라도 하는 건가?

어제, 나는 히말라야 우디바바 캠프에서 내려왔다. 이제 사흘 뒤면 한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내려오자마자 나는 락슈만줄라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 데라듄 공항에서 델리까지 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델리에서 한국으로 가는 편은 이미 예약을 완료한 상태였다. 물론 우디바바 캠프에서 며칠 더 있다가 내려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생하는 것에 비해 솔직히 명상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혹시 히말라야에서 수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난로가 있는 아늑한 천연동굴이 있다면 모를까. 야외텐트는 너무 시끄럽고 춥다. 밤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해발 8000미터에서 내리치는 강한 바람에 텐트가 밤새 비명을 질러댄다. 가까이서 틀어대는 앰프 소리 못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따듯한 방안에서 보는 히말라야 설산(雪山)은 매력적이지만 막상 그 혹독한 환경에 들어가 보면 환상이 깨진다. '지혜는 무감각한 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에게서 구해야 한다'는 요가난다 스승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

산에서 내려와 아쉬람의 내 방에서 모처럼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따듯한 이불 속에서 달콤한 잠을 잔 뒤 아침부터 밀린 빨래를 시작했다. 이제는 귀국 준비를 해야 한다. 인도는 햇살이 강하고 건조하기 때문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금방 마른다. 그렇다고 오래 널어놓으면 먼지가 앉아 다시 빨아야 한다. 밖에 널어놓는 것도 금물이다. 어디선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원숭이가 잽싸게 가져가 버린다. 인도의 밤은 개가 대장이고 낮은 원숭이가 대장이다.

빨래를 널어놓고 날짜의 일정표를 보니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일주일 전에 만난 인도인이 그날은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아쉬람 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줬었다. 밖에 나가면 물감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행사를 준비하는 아쉬람 직원들이 얼굴에 모두 이상한 색칠들을 하고 있다.

방안에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어려웠다. 문을 닫고 이어폰을 껴도 앰프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워낙에 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쉬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사무동 옆에는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벌써 삼사십 명 쯤 되었다. 외국인들도 있고 아쉬람 직원들도 있다. 모두 얼굴에 치장을 하고 상대에게 물감을 뿌려댔다. 그리고 춤을 췄다.

나는 금방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사진을 찍어 놓으면 기념이 될 것 같아 행사장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처음엔 멀리서 줌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다. 주저하던 외국인들도 하나 둘 축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경쾌한 팝이 흘러나오자 가장 먼저 미국인들이 뛰어들었고 일본인들은 가장 나중에 끼어들었다. 나중에는 술에 취한 사람마냥 모두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서로의 몸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려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무엇이 이른 아침부터 저들을 들뜨게 하는 걸까? 신성한 아쉬람에서 꼭 이래야 할까? 나는 멀리서 사진을 찍다가 경계심을 갖고 조금씩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거리를 좁혔다. 사진을 찍다가 동영상도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왔다. 춤을 추던 외국인과 요가선생이 갑자기 내 쪽을 보고 뛰어왔다.

헉. 그들의 양 손엔 뿌리는 색깔 가루가 한줌씩 들려 있었다. 그들은 내가 몰래 숨어서 자신들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빨래와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나는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가을운동회 달리기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승부는 뻔했다. 그들도 포기하고 돌아섰다.

아쉬람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사진:서창덕 제공).
아쉬람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사진: 서창덕 제공).

홀리 축제는 모두 하나가 되는 축제다

인도에는 축제가 많다. 모두 신과 관련된 축제다. 인도에는 3억 3000만이 넘는 신들이 살고 있다. 그러니 축제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축제가 있을 때마다 앰프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니 아쉬람이 많은 리시케시는 1년 365일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나는 이들이 축제를 핑계로 놀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특히 오늘 같은 행사는 너무 심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쉬람 밖의 길거리도 온통 물감들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고 아쉬람마다 노래를 틀어대고 춤을 추고 난리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나는 한동안 아쉬람 안을 배회하다가 결국 다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행사장 가까이 다가갔다.

성스럽다는 의미의 홀리(Holy) 축제는 종교와 상관없이 인도 전역에서 펼쳐지는 새해맞이 축제라고 한다. 힌두 달력으로 12월의 마지막 보름달이 떴을 때 열리는데 보통 2~3월에 열린다. 우리나라 정월 대보름 행사와 비슷하다. 우리가 달집을 태우듯이 축제 하루 전에 ‘홀리까’라는 악마를 장작에 태운다. 축제 당일은 다양한 색깔의 가루와 물감을 서로에게 뿌린다. 오색의 물감으로 긴 겨울의 음기(陰氣)를 몰아내고 서로에게 양기(陽氣)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크리슈나 신과 그의 연인 라다가 서로에게 물감을 뿌려주며 놀았다는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슈나는 각자의 몸에 있는 신성(그리스도 의식)을 상징한다.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신성(神性)을 간직하고 있다. 단지 육체라는 유한한 물질적 한계에 익숙해져 있고 카르마가 신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다. 달집을 태우듯이 각자의 육체 속에 내재된 음습한 기운을 태워버리고 각자의 그리스도 의식(크리슈나 의식)을 깨워주는 게 홀리 축제의 의미다.

마침 행사장에서 약간 떨어진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어 나도 그곳으로 가서 옆에 끼어 앉았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인도말로 나보고 왜 행사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나무라며 나를 자꾸 행사장으로 가라고 재촉했다. 통역을 해주는 아주머니는 며느리였다. 나는 방금 빨래와 목욕을 했다며 예전에 많이 했기 때문에 안 해도 된다며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댔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갑자기 자신의 얼굴에 묻은 물감을 찍어서 내 얼굴의 이마와 양 볼에 발라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한 어머니의 은총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너무 진지해 기분이 묘했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벤치에 앉아 행사를 감상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내가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것을 봤던지라 또다시 물감을 들고 달려오지는 않았다.

역시 남미에서 온 친구들이 가장 잘 놀았다. 키가 크고 여기저기 문신을 한 근육질 남자가 단연 대장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열심히 요가를 했다. 아쉬람에 머문 지가 거의 한 달쯤 되는 장기 투숙자였다. 키가 크고 뻣뻣해 요가자세는 좋지 않았지만 항상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요가를 했다. 어느 날 도서관 앞에서 미국인 아줌마 셋을 앉혀놓고 요가가 어떻게 방탕했던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열변을 토하는 걸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온 아줌마 셋도 잘 놀았다.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놀았다. 그들은 아쉬람 내에서도 몰래 몰래 대마초를 피웠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을 때면 늘 도서관 앞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아쉬람 안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도서관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조금만 많이 모여도 속도가 뚝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아줌마들이 내심 싫었다. 대마초를 피우고 수다를 떨면서 굳이 생활하기 불편한 인도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대마초를 싸게 살 수 있어서일까.

갑자기 프랑스에서 온 총각이 도망가고 캐나다에서 온 처녀가 잡으러 뛰어갔다. 프랑스 총각이 캐나다 처녀에게 물감을 뿌리고 도망간 것이다. 캐나다 처녀는 키가 크고 예뻤다. 처음엔 어머니와 함께 다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보이지 않고 캐나다 남자와 같이 다녔다. 대놓고 스킨십을 하는 걸로 보아 애인 같았다. 어머니는 귀국했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처녀가 예쁘다 보니 프랑스 총각이 가끔 추파를 던졌다. 오늘은 프랑스 총각이 대놓고 물감으로 들이대고 있다. 아마 곧 애인이 바뀔 것 같다.

음식을 가져온 주방장이 요리사 복장을 한 채로 행사장에 뛰어들었다. 배가 나오고 키가 작은 사람인데 의외로 나이트클럽 죽돌이처럼 춤을 잘 췄다. 가만히 보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아쉬람을 청소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머리와 옷에까지 물감을 잔뜩 묻히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잘 식별이 되지 않았다.

아, 그랬다. 축제 때문에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무너졌다. 인도는 아직도 계급이 엄격한 사회다. 아쉬람에서는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이 브라만이라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사무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무사나 통치자 계급인 크샤트리아다. 가장 낮은 사람들이 아쉬람을 청소하거나 빨래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평소의 그들은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의 계급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격하다.

그런데 오늘 축제에서 그 모든 게 사라졌다. 누가 누군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요가 선생이든 청소를 하는 인부든. 각자의 가슴 속에 숨어 있던 신성한 크리슈나가 밖으로 드러나자 모두 똑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내면에 숨겨진 신성을 드러내지 못해서 불평등할 뿐 드러내면 모두 평등한 존재였다. 신성을 이미 깨운 요가선생이 브라만이고 그것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자신의 업을 닦아내며 깨우는 중이다. 먼저와 나중의 차이뿐 인간은 똑같이 신성한 신의 자식이다.

어둡고 추웠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물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어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자기 안의 신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긴 겨울이 있다. 오늘은 그 긴 겨울의 고통 속에서 깨어나 자기 안의 신성한 신을 찾으라고 서로에게 형형색색의 색깔을 뿌려대는 축제다. 그래서 홀리 축제인 것이다.

홀리 축제에서 만난 마하라지의 제자 할머니(사진:서창덕 제공).
홀리 축제에서 만난 마하라지의 제자 할머니(사진: 서창덕 제공).

마하라지의 ‘모든 제자’가 모인다고?

내가 아쉬람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은 겨울이 한창이었다. 이제 어둡고 추웠던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아쉬람에도 봄이 오고 있다. 이틀 뒤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면 이 모든 게 그리울 것이다. 이 장소. 이 사람들.

나의 긴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또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부산 범어사 청련암의 벽화와 인연이 닿아 밀교를 알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책(<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을 썼다. 그 책이 또 인연이 되어 이곳 요가 니케탄 아쉬람까지 오게 되었다. 비록 마하라지가 전수한 티베트 밀교의 맥을 이어받은 제자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의 도움으로 귀중한 원리를 깨칠 수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언제 떠나는지 묻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이틀 뒤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들은 델리에서 왔단다. 언제까지 계실 거냐고 했더니 2주 뒤에 이 아쉬람에서 행사가 있는데 끝나면 3주쯤 뒤에 돌아갈 거란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마하라지의 제자들이 모두 모이는 매우 큰 행사란다. 그래서 아쉬람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새 단장을 하고 있는 거란다.

“Every disciple(모든 제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까지 마하라지의 제자를 찾아 그렇게 고생을 해도 찾지 못했는데 2주일 뒤에 마하라지가 가르친 모든 제자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가 바로 이 아쉬람에서 있다는 것이다. 뭐지? 나는 머리가 띵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속였나? 아쉬람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나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들도 모두 마하라지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가 없다고 했었는데 2주일 뒤에 세계에 흩어진 모든 제자들이 모이는 행사를 한다니.

나는 한동안 이해를 할 수 없다가 그들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하니 밑바닥에서 심한 배신감이 올라왔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요가매트를 포함해 내가 쓴 모든 자잘한 생활용품들을 아쉬람에 모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약간의 현금까지 얹어서.

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자 할머니가 내 등을 토닥였다. 내가 마하라지의 책을 읽고 그 법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왔다는 것도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냐고 했더니 아쉬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단다. 할머니는 어릴 때 잠깐 마하라지 밑에서 교육을 받았을 뿐 깊게 배우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느새 홀리 축제가 끝났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이 연재를 처음부터 읽었던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마하라지의 제자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2주면 너무 긴 시간이다. 이틀 뒤에 나는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항공권을 취소하면 많은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나는 이미 직장을 그만 둔 상태다 .아, 미리 알았으면 조정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아쉬람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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