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2/크리야요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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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2/크리야요가의 비밀
  • 서창덕
  • 승인 2019.09.0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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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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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의 왕’ 크리야요가

크리야요가(Kriya Yoga)는 전편에서 다룬 나다요가와 함께 인도의 대표적인 비밀요가다. 굳이 둘 중에 랭킹을 정한다면 당연히 크리야요가다. 그래서 크리야요가를 ‘왕중의 왕(king of kings)’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설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 사람의 위대한 스승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 살아있는 신의 화신으로 알려진 마하바타르 바바지다.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히말라야에서 육체를 유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보다 오래 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위대한 스승이 160년 전에 라히리 마하사야를 통해 세상에 공개한 요가가 바로 크리야요가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건설담당 공무원이었던 라히리 마하사야는 바바지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인사에 의해 라니케트라는 히말라야 오지로 갑자기 발령을 받았고, 부임하자마자 히말라야를 둘러보다 그만 길을 잃었다. 그때 갑자기 위대한 스승 바바지가 나타나 ‘오, 라히리, 네가 왔구나!’ 하며 그를 반겼다.

라히리 마하사야는 이미 결혼을 해 처자식이 있었고 나이도 삼십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초면에 불쑥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반기는 사람은 이십대 중반쯤으로 자기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얼떨결에 바바지의 동굴까지 간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전생에 바바지의 제자였음을 알게 되었고 열흘 동안 그곳에 머물며 크리야요가를 전수받게 된다. 이렇게 전수된 크리야요가는 스리 유크테스와르를 거쳐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로 전해졌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가 되었다.

나는 이십대 초반에 요가난다 자서전을 통해 바바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요가난다 자서전에는 ‘누구든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바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순간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정성을 담아 책에 나온 대로 바바지에게 내게 영적인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원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축복은커녕 아무런 느낌도 일어나지 않아 속았다 생각하고 책을 덮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뒤에 나는 요가난다가 설립한 미국의 단체에서 정식으로 크리야요가를 전수받았다.

최고의 테크닉인 크리야요가가 히말라야 동굴에서 열심히 수행만 하는 쟁쟁한 수행자에게 전수되지 않고 공무원에다 아내와 네 명의 자식까지 거느린 평범한 가장인 라히리 마하사야에게 전수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1861년 라히리 마하사야가 바바지로부터 크리야요가를 전수받은 그 시기는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가 세계로 번져가는 시기다. 인구도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고 물질문명의 발달속도는 머지않아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상황으로 전개될 예정이었다. 이때 급속도로 발전하는 물질문명만큼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도 그만큼 빠르게 발전되어야 했다.

즉, 기존처럼 히말라야 동굴에서 몇 몇 사람이 깨달은 것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모두 히말라야에 동굴을 파고 들어간다면 세상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라히리 마하사야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라히리 마하사야의 유일한 사진(사진: 서창덕 제공).
라히리 마하사야의 유일한 사진(사진: 서창덕 제공).

일상생활과 수련을 병행할 수 있는 요가

크리야요가는 수련의 핵심만 골라내서 절묘하게 체계화시켰기 때문에 직장과 처자식을 부양하며 수련을 병행해도 얼마든지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크리야요가를 직접 수련하다보면 왜 바바지가 최고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직장과 가정을 지키며 틈틈이 하는 정도의 수련으로 과연 높은 단계의 성취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라히리 마하사야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라히리 마하사야를 찍은 사진은 딱 한 장뿐이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억지로 제자들이 몰려와 함께 단체사진을 찍어도 그는 늘 빈 공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 제자가 몰래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는 말했다. “나는 영(靈)이다. 보이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있는 존재를 사진기로 잡아낼 수 있겠느냐.” 그의 육체는 사진기도 포착할 수 없을 만큼 이미 물질을 넘어선 상태였다.

그때 몰래 사진을 찍었던 제자가 한번만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울면서 애원을 했고 겨우 허락을 받아 찍은 사진이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진이다. 그는 항상 외부와 내부 세계의 중간쯤에 머무는 듯 반쯤 눈을 뜨고 있었는데 몇 시간 동안 지켜보아도 눈꺼풀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고 맥박도 정지한 상태에서 잠도 자지 않았다고 한다.

라히리 마하사야는 한국 나이로 34세인 1861년에 크리야요가를 전수받은 뒤 59세인 1886년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는 무려 25년 동안 직장생활과 가정에 대한 의무를 병행하면서 동시에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직 후 10년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인들은 고민한다. 내가 과연 직장과 가정의 의무를 다하며 높은 명상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1년 전. 나는 그가 제자들에게 크리야요가를 가르쳤던 바로 그 곳에 갔었다. 바라나시의 좁고 냄새 나고 지저분한 골목을 한참 동안 헤맨 뒤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이 더럽고 시끄러운 곳에서 그는 무려 36년 동안 직업과 가정을 지키며 수행하고 가르쳤다. 그는 진정 더러운 진창에서 핀 아름다운 연꽃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미망에서 깨어났고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에 의해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영혼들을 깨웠다.

당시 라히리 마하사야가 머물렀던 집은 지금 라히리 사원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갔을 때 사원은 텅 비어 있고 사원을 지키는 수행자 한 사람이 윗옷을 벗고 땀을 흘리며 물감으로 벽화의 벗겨진 틈을 메우고 있었다. 제법 넓은 거실에 마하바타르 바바지의 전신 조각상이 있는데 굉장히 힘 있고 당당했다.

나는 은은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바바지 조각상 앞 대리석 바닥에 혼자 앉아 명상을 했다. 라히리 마하사야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야요가를 전수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눈을 감자 150년 전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 앉아 있고 앞에는 라히리 마하사야가 반쯤 뜬 눈으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 겨우 아쉬움을 달래며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데 황당하게도 사원의 철문이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오후 5시쯤에 문을 닫는데 내가 그만 시간을 넘겨버린 것이다. 관리인도 내가 안에 있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어떡하지. 잠시 당황했지만 까짓것 잘됐다 싶었다. 밤새 명상이나 하자. 나는 다시 바바지 앞에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관리인이 나오더니 육중한 철문을 열고는 눈짓으로 나를 내보냈다. 아,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밖으로 나오니 더위와 소음과 악취가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지옥은 천국의 바로 옆에 있었다.

직장과 가정을 지키며 높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을 투자해도 강한 효과가 나야 하는데 바바지가 전수한 크리야요가가 적격이다.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한국에서 직장과 가정을 지키며 수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한마디로 전쟁이다. 업무의 양이나 스트레스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고 더군다나 수행과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술을 마셔야 한다. 한국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영업과 관련된 직업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크리야요가를 병행하며 은행의 부지점장 6년과 지점장 6년을 보냈는데 1급 지점장까지 되었다. 만약 내가 크리야요가를 배우지 않고 다른 수련을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라히리 사원의 바바지(사진: 서창덕 제공).
라히리 사원의 바바지(사진: 서창덕 제공).

빛을 이용하는 요가

비밀을 지키라는 서약 때문에 여기에 크리야요가의 자세한 수련방법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분들을 위하여 이미 자서전 등을 통하여 공개된 범위 안에서 요약하면 이렇다.

크리야(Kriya)라는 말을 듣고 어떤 분들은 크릴새우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지만 기본 뜻은 카르마(Karma)라는 뜻과 비슷하다. 즉, 내가 갖고 있는 나쁜 업(業)을 씻어내 내 깨끗한 본성을 되찾고 그 본성이 궁극의 신과 결합하게 하는 방법이다. 즉, 특별한 호흡을 통해 나의 카르마를 씻어 내는 수련법이다. 나다요가는 소리를 통해 궁극의 신과 결합을 했다면 크리야요가는 호흡을 통해 신과 결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호흡을 통한 방법이긴 하지만 크리야요가는 호흡보다는 빛을 이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야요가의 방식대로 하면 쉽게 빛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책(<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에서 이 빛에 대해 많은 부분 설명을 했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수련은 이 빛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불교에서는 니밋따라고 하고 중국의 도교에서는 현빈지문(玄牝之門)이라고 하고 국선도에서는 얼령이라고 한다. 절에 가면 심우도를 그린 벽화의 마지막에 동그랗게 큰 원을 그려 놓았는데 그게 바로 니밋따이고 크리야 요가의 빛이다. 나다요가에서도 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빛을 얻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성령이나 빛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하게 많다.

나는 왕성한 호기심과 다양한 인연 때문에 여러 비밀 수련법들을 익힐 수 있었다. 수련법들은 각자 나름의 장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궁극에서는 똑같은 빛이 보였다. 빛을 유도하는 방법도 거의 유사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크리야요가다. 이건 내가 모두 정식의 코스로 체험해 봤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다.

크리야요가는 굉장히 간단하고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제 도전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태까지 나는 많은 사람에게 수련을 권유했지만 실제 도전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가 신과의 합일을 꼭 이루겠다는 절실함이, 이번 생에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야 말겠다는 그런 간절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하면 절대 주저하거나 핑계 뒤에 숨지 않는 법이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열심히 국선도를 했는데 요가의 쿤달리니 현상이 나타났다. 국선도를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내게 20년 전에 바바지에게 했던 기도가 떠올랐다. ‘누구든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바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순간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는 바로 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가난다 크리야요가 협회의 본부가 있는 미국까지 가서 크리야요가를 전수받았고 크리야요가의 단계를 다 배우기도 전에 거의 모든 단계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아마 바바지에 의해 내가 크리야요가로 인도되지 못했다면 내 수행의 진도는 국선도의 정각도 단계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쯤에서 앞에 언급했던 내용들을 떠올려 결산해 보자. 즉, 내가 머물고 있는 요가 니케탄 아쉬람을 만든 마하라지의 수련기간은 무려 40년이었다. 그리고 바로 담장을 맞대고 있는 시바난다 아쉬람을 만든 쉬바난다는 12년이었다. 그에 비해 라히리 마하사야는 불과 10일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는 특별휴가 10일을 얻어 히말라야에 잠깐 들러 바바지로부터 크리야요가를 배웠고 이후에 국가 공무원으로서 직장과 아내와 2남 2녀의 가정을 돌보며 수행을 계속했고, 현재 그가 전파한 크리야요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열흘 벼락치기 공부한 학생이 12년 또는 40년 내내 공부한 학생보다 훨씬 성적이 잘 나온 셈이다. 이렇듯 불공평한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는 공부방법의 차이다. 크리야요가의 테크닉이 월등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요가난다는 크리야요가는 신에게 다가가는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다른 수련법이 달구지와 같다면 크리야요가는 비행기에 견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수행법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약간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과장이 아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심폐기능을 정지시키는 요가

조금 더 이유를 설명하자면, 크리야요가의 핵심은 바로 심폐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크리야요가를 수련하면 자연스럽게 심장이 멈추고 폐가 호흡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나도 처음 이런 현상이 왔을 때 약간 겁이 났지만 절대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그저 말없이 앉아 있는 명상은 생명력으로 한데 묶여 있는 마음과 감각을 억지로 떼어 놓으려는 비과학적 방법이다. 마음이 생명의 흐름에 의해 끊임없이 감각 쪽으로 끌려 나오기 때문이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심폐기능이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정(禪定)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체 하는 것이다. 이유는 인체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숨을 들이쉬고 내 쉬는 과정에서 사람은 반드시 생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생각에 끌려가지 않더라도 미세하게 생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세하게 생각이 계속 일어나는 상태에서는 우주의식과의 완전한 합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스승이 자신은 완벽하게 신과 일체되었다고 큰소리를 친다면 심폐기능이 정지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면 된다.

기독교의 성 바울은 생명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크리야요가와 비슷한 행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바 우리의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성 바울은 육체의 모든 생명력을 내부로 집중시키는 방법을 통해 매일매일 그리스도 의식의 기쁨 속에서 진정한 합일(요가)을 경험했고 날마다 죽는 자유로움을 만끽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설명하는 교회는 거의 없다.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폐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이유는 산소를 공급하고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몸 속에 남아 있는 이산화탄소가 없고 산소를 공급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면 심장과 폐는 자연스럽게 정지된다. 바로 이것이 과학적인 명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절대 죽은 것이 아니다. 정신은 숨을 쉬는 것보다 훨씬 또렷해지고 잡념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해진다. 이것이 바로 선정(禪定)이며, 이것이 바로 신과의 완전한 합일(Yoga)이다. 국선도에서 수련이 깊어지면 숨이 멈추는 현상이 온다고 하는데 동일한 원리다. 이것이 진짜 진기단법이다. 이것을 잘못 해석해 억지로 숨을 참는 경쟁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되면 고혈압과 뇌출혈로 죽을 수도 있다.

히말라야 붉은 사원의 크리야 티칭 포스터(사진: 서창덕 제공).
히말라야 붉은 사원의 크리야 티칭 포스터(사진: 서창덕 제공).

크리야요가로 은행 지점의 실적을 높이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1년 전 5월의 마지막 날에 해발 3천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바드리나트 사원에서 점심도 건너뛰고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 사원은 영국인이 세운 사원이었는데 히말라야에서 바바지를 만나 크리야요가를 전수받았다고 했다. 그 사원 아래 있는 붉은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워낙 오지라 휴대폰도 터지지 않았고 짧은 문자 정도 오갈 수 있는데 그것도 안 되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방심한 틈으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당연히 전화가 올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보는 용도로 휴대폰을 켜놓았었는데 황당하게 전화벨이 울린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같이 명상하던 사람들도 엄청 놀랐을 것이다. 아, 몰상식한 한국인 같으니. 번호를 보니 대출계 김차장이었다. 뭐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김차장, 왜?”

“지점장님, 큰일 났습니다. A기업에서 대출 200억 원을 갚았습니다.”

히말라야 눈밭에 와 있는 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10일 동안 특별휴가 중이었다. A기업은 지점에서 제일 큰 거래처였다. 내가 없는 동안 몇 가지 불만들이 쌓였는데 내가 연락도 닿지 않자 화가 난 A기업에서 월말에 대출을 모두 상환해 버렸다. 신용이 좋고 자금력이 좋아 은행들의 대출 섭외 1순위 거래처였다. 200억 원이면 지점 대출 계수의 10%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그 금액을 다른 곳에 대출해 줘야 하는데 신용이 좋은 곳에 그런 큰 금액을 빠른 시간에 대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히말라야 바드리나트에서 명상을 해보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래서 특별휴가까지 내고 왔는데 200억 원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우리 지점은 당연히 꼴찌였다. 그 순간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명상에 더 집중해보라는 소리가 들렸다. 맞는 말이었다. 히말라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명상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나는 차분해졌고 더 깊어졌다. 내 심장과 폐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A기업으로 향했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이미 해결되어 있었다. A기업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라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A기업은 300억 원 대출을 받아 갔다. 원래의 대출에서 100억 원을 더 추가시켰다. 추가 100억 원은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크리야요가를 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에 있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아실현협회(SRF)에 신청하는 것이다. 크리야요가를 신청하면 보너스로 지난번에 소개한 비밀요가 나다요가(Nada Yoga)까지 가르쳐 준다. 그런데 대개 영어 때문에 망설인다. 그러나 요즘은 유능한 파파고 번역기가 있다. 이것도 신청하기 귀찮은 사람은 바바지에게 신청하시면 된다.

‘누구든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바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순간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파라마한사 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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