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22/우디바바의 삭발 미녀 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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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22/우디바바의 삭발 미녀 리타
  • 서창덕
  • 승인 2019.11.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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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덕
서창덕

우리는 인연으로 만난다

히말라야 우디바바 캠프에서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은 캐나다에서 온 삭발 미녀 리타였다. 그녀는 어스름 새벽녘부터 동쪽 실개천 앞에 앉아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했다. 자세도 안정되고 좋았다.

사실 수행을 많이 했는지 아닌지는 앉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자라 가부좌 자세가 쉽지만 침대와 의자에서 자란 서양인들은 간단한 양반다리도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리타의 가부좌 자세는 거의 완벽했다. 자세가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타는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개울 옆에 있는 텐트 안에서 계속 명상을 이어가거나 명상과 관련된 책을 봤다.

왜, 그녀가 삭발을 했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녀의 하루 일상에서 삭발의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우디바바 캠프에서 제공하는 텐트에 머물지 않고 자기가 가져온 개인용 텐트에 머물렀다. 아마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파란 텐트 앞에는 반지, 목걸이, 장신구 등을 텐트의 색깔과 비슷한 파란 보자기 위에 펼쳐 놓고 코팅된 노란 종이에 동물을 안은 사진과 함께 수익금의 절반을 인도의 동물보호에 쓰고 있다고 써놓았다. 인도의 배낭 여행객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경비를 마련해 장기간 여행을 계속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머니에게 드릴 반지 한 개를 샀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도 뭐 좋은 일에 쓴다니까 도움을 주고 싶어 한 개를 더 사줬다.

텐트 안에 책이 있어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책의 저자가 스와미 사티아난다 사라스와티다. 바로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리시케시의 요가 니케탄 아쉬람의 바로 옆에 있는 시바난다 아쉬람에서 머물렀던 바로 그 스와미다.

이 연재물을 처음부터 읽었던 분들은 시바난다 스승 밑에서 문둥병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인도의 비하르대학교를 설립했고 그의 요가와 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연 같지만 불교에서 말하듯 세상의 모든 만남은 모두 인연이다. 인연 아닌 만남이 없다. 단지 우리가 만남 뒤에 얽혀 있는 인연의 정체를 모를 뿐이다. 히말라야 산 속에서 만난 그녀와 나는 사티아난다 사라스와티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나는 20년 전 한국에서 그녀가 보고 있는 책의 저자가 쓴 <쿤달리니 탄트라>라는 책을 처음 읽었다. 그때는 본격적인 수련을 하기 전이라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엉터리 책이라 팽개쳤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았다. 나는 워낙에 많은 책을 사서 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집에 쌓인 책들을 버리거나 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랬기 때문에 엉터리라고 팽개친 책이 책장 어느 구석에 숨어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처음 읽은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나는 우연히 쿤달리니를 경험했고 책장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그 책을 꺼내 다시 읽었다. 그 책에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자에게 엉터리라고 팽개친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라스와티가 쓴 그 책은 쿤달리니에 대해 쓴 세계에서 유일한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책들과 모든 요가수업에서 쿤달리니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을 하지만, 그 어떤 곳도 어떤 책도 쿤달리니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요가의 천국이라는 인도의 리시케시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발간된 책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펴낸 몇몇 책들이 있지만 모두 수박 겉핥기 수준이고 그나마 비밀이라며 요리조리 핵심을 피해 애매한 말들만 늘어놓고 있어 저자가 진짜 쿤달리니를 경험했는지 확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면에서 사라스와티가 쓴 쿤달리니 탄트라는 쿤달리니에 대한 모든 것을 상세하고 과감하게 털어놓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작년에 밀교에 대한 책(,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을 쓸 때 나는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했다. 쿤달리니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그의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 외에 다른 책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있지도 않지만.

그리고 내가 쓴 바로 그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 나는 마하라지의 요가를 배우기 위해 인도의 리시케시에 왔다. 그런데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던 바로 그 책을 썼던 스와미 사티아난다 사라스와티가 지금 내가 머무는 아쉬람 바로 옆의 아쉬람에서 수행을 했던 분이었다.

인도가 얼마나 넓은가. 인도에 아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마 백만 개쯤 될 것이다. 인도에 와서 그가 공부한 아쉬람 바로 옆에 한국인인 내가 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최소한 적게 봐도 백만분의 일이다.

그런데 또 이곳 우디바바 캠프에서 그의 새로운 책을 만났다. 사실 나는 그동안 리시케시에 있는 서점을 돌며 그가 쓴 책들을 찾고 다녔다. 그러나 서점마다 모조리 훑어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녀가 사라스와티가 쓴 책을 갖고 있었다. 얼마나 굵은 인연의 끈인가.

리타에게 책을 쓴 저자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책을 권유받아 읽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렵단다. 책의 저자가 유명한 책 <쿤달리니 탄트라>를 썼고 지금 나는 그가 머물던 아쉬람의 바로 옆에 머물고 있다고 하자 그녀가 내 눈을 깊게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나와 같이 명상을 하고 싶단다. 같이 명상을? 단둘이? 내가 곧바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자 그녀는 꼭 같이 하자며 ‘제발(please)’을 덧붙인다.

나는 당황했다. 혹시 그녀가 내게 흑심을 품은 것은 아닐까. 설마, 삭발까지 했는데, 흑심을 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너무 나갔다. 늘 자만심이 문제다.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그렇다면 같이 명상을 하면 어떤 효과가 있기에 그녀는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에게 흑심의 오해를 무릅쓰고 매달리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또 왜 망설이는 것일까?

오랫동안 명상을 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자기보다 명상의 진도가 빠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명상을 하면 명상이 훨씬 잘 된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있으면 어쩐지 공부가 잘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기운(氣運) 때문이다.

리타의 개인용 텐트와 엑세서리 좌판(사진: 서창덕 제공).
리타의 개인용 텐트와 엑세서리 좌판(사진: 서창덕 제공).

기(氣)란 무엇인가

기(氣)는 실제로 존재할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수없이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기(氣)라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현미경이나 엑스선 등의 과학적인 장비들이 개발되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면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쉽게 설명하면 기(氣)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물리적인 힘을 갖고 있다. 큰 태풍은 집도 날려버릴 만큼 힘이 세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氣)가 바람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바람처럼 공기와 비슷하지만 공기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를까? 어떤 사람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기(氣)가 공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氣)에는 의식(意識)이 있다는 것이다. 기(氣)가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의식이 있다는 것인지 뜨악할 것이다. 물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런 의식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氣)에는 분명히 의식이 있다. 그래서 내가 허공에 떠도는 기(氣)를 의식적으로 흡입하겠다고 마음으로 끌어당기면 그 기가 호응하여 내 단전에 모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단전에 기운이 모이는 현상을 염력처럼 내 마음의 힘으로 기를 잡아당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슷하지만 엄밀하게는 다르다. 염력으로 기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기에게 내 생각을 전달해 그 기운을 내게로 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의식적으로 허공에 있는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로 들어오는데 그렇다면 공기도 의식이 있다는 말이냐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기(氣)가 가지고 있다는 의식은 지적인 성질, 즉 지성(知性)을 말하는 것이다.

지성은 어떤 것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공기를 마신다고 지성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氣)를 흡입하면 나의 지적인 능력이 커진다. 그래서 기(氣)를 신(神)이라고도 하고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도 한다.

일반인들은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기(氣)수련이나, 요가나 명상을 해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해가 되는 사람은 수련이 한 단계 더 상승한다.

산중의 수련법이었던 국선도를 최초로 시중에 보급한 청산선사께서는 단전호흡이 궁극의 경지에 가려면 자연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즉, 내가 염력으로 기운을 흡입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내 모든 것을 비우고 자연의 품에 안기면 우주의 의식을 가진 기운은 저절로 내 몸에 차게 된다. 내가 당기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큰 지성에 내가 안기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수련은 나의 욕심, 나의 에고를 버리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 나의 모든 에고(ego)를 비우는 수동성(受動性)을 깨닫지 못하면 어떤 수련이라도 궁극의 경지는 어렵다.

기(氣)는 밝은 사람에게 호응한다

한편, 기(氣)를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수련이 깊은 사람은 허공에 반짝이는 기를 볼 수도 있다. 특히, 땅의 기운이 강한 곳에 가서 호흡을 하면 반짝이는 기들이 금방 와글와글 모여든다. 기(氣)가 땅의 양기에 반응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운이 강한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둘 모두에 반응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기(氣)는 기본적으로 밝은 존재이기 때문에 양기가 많은 곳이나 양기가 많이 축적된 밝은 사람에게 호응을 하는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기운을 이해하고 다룰 수도 있어야 한다. 수련을 하는 궁극의 목적은 신과 합일하는 것인데 기(氣)가 신이 만든 의식이기 때문에 기를 내 몸에 가득 쌓으면 내 몸의 기가 나를 신에게 데려다 준다. 기(氣)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사람은 에너지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에너지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탁한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련자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아무리 수련을 열심히 해서 좋은 기운을 쌓더라도 탁한 사람을 만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좋은 기운이 탁한 사람에게 가버리고 탁한 사람의 강한 탁기는 내 몸으로 침투한다. 안타깝지만 이것을 막는 방법은 없다. 자연은 항상 나누고 평균을 유지하려는 지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명상 중인 리타(사진: 서창덕 제공).
새벽부터 명상 중인 리타(사진: 서창덕 제공).

젊은 여자와 단둘이 있지 마라

이런 등등의 이유에서 나는 캐나다에서 온 삭발 미녀 리타가 둘만의 명상을 제안했지만, 쉽게 예스! 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탁기가 많다거나 내 에너지를 그녀에게 빼앗길까 봐 주저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있는데 바로 지난편에 소개한 마하라지의 계율 때문이다.

200살이 넘은 위대한 스승은 마하라지에게 자신의 모든 기(氣)와 법(法)을 전수하며 몇 가지 계율을 꼭 지켜야 된다고 엄명하셨다. 첫 번째 계율은 지난번에 소개한 ‘타인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위대한 스승이 꼭 지키라고 했던 두 번째 계율은, ‘젊은 여자와 단둘이 조용한 장소에 있지 마라’ 는 것이다.

수행자가 타인을 비난하면 안 된다는 첫 번째 계율도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지만, 나는 위대한 스승의 두 번째 계율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보통은 여자를 멀리 하라, 또는 이성과의 성관계를 피하라, 등이 대부분인데 이 위대한 스승은 젊은 여자와 단둘이 조용한 장소에 있지 마라,고 하셨다. 비슷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술을 많이 마셔본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술자리에서 술을 적게 마신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술자리에 가기 전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술을 적게 마시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한두 잔 들어가면 술 마시는 습관이 발동해 결국 처음의 다짐은 무너져 버린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술자리 자체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성도 적당히 관계를 하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젊은 여자와 조용한 방에 단둘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에서 설명했지만 사람은 보이는 것 외에 기(氣)라는 것이 존재한다. 남성은 양의 기운이 강하고 여성은 음의 기운이 강하다. 자석의 음양이 가까이 가면 서로 당기는 것처럼,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을 만나면 서로 당기는 것이 자연의 본능적인 원리다. 그래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성적인 욕구를 자제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본능이 당기는 음양의 원리를 누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술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처럼 여성과 조용한 장소에 단둘이 있는 것을 피하라고 하신 것이다.

캐나다 삭발 미녀 리타(사진: 서창덕 제공)
캐나다 삭발 미녀 리타(사진: 서창덕 제공)

성 에너지와 해탈

한편, 위대한 스승께서 여자와의 관계를 피하라고 하신 데는 깊은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 몸의 성 에너지(호르몬) 때문이다. 기(氣)를 아예 믿지 않거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겐 갈수록 버거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기(氣)의 종류는 매우 많고 역할도 다양하다. 우주에도 많은 기운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의 기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수행자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운이 바로 성 에너지(Sexual energy)다. 왜 하필 성 에너지일까? 이유는 성 에너지가 인간이 가진 기(氣) 중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이 성 에너지는 인체의 중심인 성기 부근에 있다. 인도에서는 이 에너지의 형태가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는데 뱀이 세 바퀴 반을 감고 있다고 한다. 바로 쿤달리니가 잠들어 있는 형상이다. 이 강력한 에너지가 깨어나면 기(氣)가 척추를 타고 상승하는데 이때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정화하면서 머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수행자는 최고의 경지인 해탈을 맛보게 된다. 신과 합일하는 것이다.

이 강력한 성 에너지를 깨어나게 하려면 우선 축적을 해야 한다.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를 만나 펑펑 써버리는 수행자에게 평생 해탈은 없다. 더 높은 즐거움을 위해 이성과의 쾌락을 절제해야 한다. 참고 절제하고 노력하는 자만이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이것저것 다하며 주말에 등산가듯이 올라가는 곳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네 인생은 마시멜로 이야기를 닮았다. 마시멜로 실험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가 3~5세 미만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마시멜로를 주며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15분 뒤에 마시멜로 하나를 더 주는 게임이다.

어른들에게 15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심장박동이 활발한 아이들에게 15분은 만만한 시간이 아니다. 더군다나 눈앞에는 이미 맛봐서 알고 있는 달콤한 마시멜로가 유혹한다. 15분을 견디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지 못한다. 15분을 참고 견딘 아이들은 15년 뒤에 15분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보다 더 좋은 사회적 조건을 누렸다.

요즘 와서 이 이론이 틀렸다는 주장도 있지만 핵심은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쾌락을 억제하는 자제력과, 인생의 고통을 견디는 인내력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다. 우리네 인생도 마시멜로 게임의 결과와 거의 유사하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학창시절에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연애에 탐닉하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대부분 비참한 인생을 살아간다. 놀고 싶어도 꾹 참고 노력한 이들은 인생에 그만한 대가가 주어진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마시멜로의 교훈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는 보다 깊은 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단순한 남녀의 연애 이야기처럼 보이는 장면이 성경에 실리게 된 이유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쾌락을 자제하지 못해서 실패한 인간의 사례다. 아담과 이브는 달콤한 쾌락을 즐기라는 뱀의 꼬임에 빠져 관계를 하게 되고 이브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담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 천국에서 쫓겨나 죽게 된다.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두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이어갔던 천사들이었다.

천국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실패담이지만 오히려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간단하다.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즉, 한순간의 쾌락에 빠져 이성과의 관계에 탐닉하지 말고 자제하고 노력하면 천국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인도의 쿤달리니 이야기와 비슷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아담과 이브와 뱀이 등장하는 것처럼 인도의 쿤달리니는 남녀의 성행위를 뜻하는 시바의 링감과 링감을 세바퀴 반 감고 있는 뱀이 등장한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도 쿤달리니의 성 에너지와 연결하면 핵심의 의미가 일치한다.

즉,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쾌락의 유혹에 빠져 성 에너지를 섹스에 써버렸다는 것이다. 성 에너지가 모이지 않으면 쿤달리니 에너지는 상승하지 않는다. 이 에너지가 없으면 인간은 신의 거처인 천국에 오를 수 없다.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한순간의 쾌락에 소중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리고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보면 신은 인간을 상대로 마시멜로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신은 인간에게 성 에너지와 자유의지를 주었다. 순간의 쾌락을 자제하고 성 에너지를 아끼고 잘 관리하면 인간은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염라대왕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받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15분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리는 아이처럼 내일은 모르겠고 오늘만 즐기자는 사람은 결국 병들고 고통 속에 죽는다. 죽을 때 하루만 고통스러워도 평생 동안 즐긴 쾌락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순간의 고통에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쾌락은 가볍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죽으면 끝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싶겠지만 죽었다고 해서 끝난 것도 아니다. 마지막 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인간은 끝없이 윤회하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은 반복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캐나다에서 온 삭발 미녀 리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긴 설명을 하기에 내 영어 실력은 너무나 짧고 부족했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의 미안함과 성의를 담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문장으로 표현했다.

I am sorry Rita(미안해, 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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