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神이다-25/'하늘 옷'을 입은 위대한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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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 잃은 神이다-25/'하늘 옷'을 입은 위대한 승리자
  • 서창덕
  • 승인 2019.11.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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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덕
서창덕

세이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서 알게 된 일본인 친구 세이지가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알려왔다. 나도 페이스북으로 히말라야 우디바바 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 인도에서 페이스북은 최고의 통신수단이다. 그가 “스고이(멋지다)!”라며 좋아했다. 아쉬람에 같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나와 함께 이곳 우디바바 캠프에 왔을 것이다. 일본인답지 않게 모험심이 넘치는 따듯한 친구였다.

일주일 전 그는 인도의 서쪽 사막지역인 라자스탄으로 떠났다. 인도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라자스탄 지역을 여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년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10만 명이라고 하니 아마 절반인 5만 명쯤 되지 않을까. 1년에 한국의 웬만한 도시의 인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는 셈이다. 나는 세이지에게 정말 조심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었고 그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듯 소식을 알려왔다.

리시케시에서 동아시아인들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인도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유럽, 미국, 캐나다 등의 서양인들이다. 그러나 요가니케난 아쉬람에는 의외로 일본인들이 많다. 나는 늘 그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세상에 이해 못할 나라가 아니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한국에서도 늘 스트레스인 일본인들이 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온 인도에서도 장애가 될 줄은 몰랐다.

유독 일본인이 많은 이유는 아쉬람을 창시한 마하라지의 제자 중에 기무라라는 일본인이 있었고 그 사람이 아쉬람에 기부를 많이 했다. 그가 기부해 지은 건물도 있었다. 그러니 일본인들은 늘 아쉬람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숙소도 제일 좋고 조용한 곳에 배정을 받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영 기분이 별로였다.

그 중에 가장 꼴불견인 친구가 바로 내게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전해온 세이지라는 친구였다. 젊고 잘 생긴데다 요가자세도 거의 완벽했다. 나도 오랫동안 국선도를 해온 몸이라 유연성에선 뒤지지 않는데 그는 나보다 훨씬 잘했다. 목소리도 좋고 성격도 시원시원해 아쉬람에서 단연 인기 톱이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나는 비교당하기 싫어 가능하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요가를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미워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쉬는 시간이면 내가 잠자는 방 바로 앞에까지 와서 요가를 하곤 했다. 그날도 나는 그 꼴을 보기 싫어 잠깐 외출을 했다. 그런데 외출을 하고 돌아와도 아직도 요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갠지스강을 배경으로 풍경이 괜찮았다. 나는 몰래 사진을 찍어 나중에 책으로 낼 때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소리에 놀란 그가 일어나 나를 보고 웃었다. 들켰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너 주려고 찍었다며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하니 그가 “스고이!”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놀랍게도 그는 요가강사가 아니었다. 심지어 요가를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요가사진을 보고 자세를 똑같이 해봤단다. 자세를 똑같이 했더니 기분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이곳 아쉬람에 일주일 정도 머물며 요가를 하고 간단다. 그는 오키나와에서 펜션사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도쿄사람들이 너무 싫어 도쿄와 가장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영어로 번역된 내 책(<You're the God who got lost>)을 선물했다.

다음날 아침 요가를 하러 갔더니 일본인들이 모두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아마 세이지가 내 선전을 한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늘 가까이에서 요가를 했다. 아침에 볼 때마다 그는 진정한 존경을 담아서 내게 인사를 했다. 책이 어렵지만 중간 중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단다. 아침마다 늘 스트레스를 주던 친구가 갑자기 매일 아침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먼저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사진을 찍어 내 책을 줬기 때문에 그도 내게 보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것도 잠시 그가 갑자기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인도의 서쪽 사막의 땅 라자스탄(Rajasthan)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고서. 가는 곳도 하필이면 이슬람 신도로 가득한 라자스탄 지역이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갠지스강을 앞에 두고 요가 수행 중인 필자(사진: 서창덕 제공).
갠지스강 앞에서 요가 수행 중인 일본인 세이지(사진: 서창덕 제공).

라자스탄에서

4년 전. 나는 인도의 서쪽 사막지역인 라자스탄을 여행했었다. 비슷한 이름의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바로 옆에 있으니 인도의 라자스탄은 거의 중동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도 이슬람이 많았다. 당시는 IS를 비롯해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테러가 많았던 시기라 이슬람이 많은 지역에 가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 신도들의 함성소리가 삭막한 도심에 울려 퍼지면 심장이 쫄깃해질 정도로 기분이 묘해진다.

중간에 여러 사원을 들렀지만 나의 주된 목적지는 사막의 보석이라 불리는 델와라사원이었다. 사원이 있다는 아부산(Abu-mountaion)까지 델리에서 택시를 타고 7시간쯤 걸릴 거라고 했지만 아침 7시 넘어 출발한 우리는 저녁 9시쯤에 도착했다. 무려 14시간이 걸린 셈이다. 교통과 관련된 인도인들의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은 2시간쯤 남았어도 몇 분 남았냐고 물으면 항상 15분 남았다고 한다. 2시간을 간 뒤 다시 물어도 태연하게 15분 남았다고 한다.

자이나교(Jainism)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델와라사원이 있는 아부산은 인도의 세도나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영적인 기운이 강한 산이다. 사막 한가운데 바위로 된 산이 사막의 보석처럼 솟아 있다. 해발 1200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 무려 8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있다.

산의 정상은 넓게 분지처럼 되어 있고 작은 봉우리들이 분지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데 그 중앙에 델와르사원이 위치해 있다. 아부산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 정확히 자이나교 사원을 앉힌 것이다. 사원은 네 개의 건물을 따로 지어 하나로 연결했는데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2500명의 인부가 무려 15년이나 걸려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원이 아름다운 이유가 재밌다. 하루에 긁어낸 돌가루의 양을 보고 품삯을 줬기 때문에 인부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돌을 긁어 내다보니 더 정교해지고 더 아름답게 됐단다. 기발하다고 해야 할까. 자이나교답다고 해야 할까.

아부산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 예전에는 사원만 있고 마을이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원 입구까지 마을이 들어섰다. 유명한 사원이라지만 사원의 입구도 너무 허접하고 주변의 집들도 지저분해 이곳이 자이나교 최고의 사원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입구에서 사원을 지키는 경비원들은 어찌나 강압적이고 유난스러운지 신발은 그렇다 치고 핸드폰까지 빼앗는 바람에 기분이 상해 그냥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몇 번씩 들었다.

감각을 제어하는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
감각을 제어하는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

자이나교를 만나다

가까이 있어도 평생 이해 못할 나라 일본처럼 아무리 봐도 이해 못할 종교가 바로 자이나교(Jainism)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6년 동안 고행을 경험한 뒤에 이건 답이 아니라고 뛰쳐나와 우유 한잔을 시원하게 드시고 중도(中道)를 통해 깨쳤다. 이후 석가모니 부처님은 많은 경전에서 자이나교의 고행이 어리석다며 날선 비판을 하셨다. 자이나교는 불교보다 훨씬 오래된 종교이고 당시에는 교세도 매우 중흥했다.

3000년이 지난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데 델와라사원은 대표적인 사원이다. 엄격한 고행의 종교답게 사원의 입구에는 생리 중인 여자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줄을 서게 했다.

신발과 핸드폰을 맡긴 관람객들이 30명쯤 모이면 안내자가 일행을 끌고 갔다. 인솔자가 귀가 아플 정도로 떠드는데 힌디어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때로는 웃음과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안내인의 입담이 괜찮은 모양이었다. 서로 앞에서 보겠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바람에 나는 관람객들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도 없이 입구의 낡고 좁은 모퉁이를 돌았는데 깜짝 놀랄 세상이 펼쳐졌다. 델와라사원은 밖에서 보기에는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모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나는 이 사원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원을 아직 보지 못했다. 카메라를 뺏기는 바람에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일본인 건축가 가미야 다케오가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이 있으니 꼭 보시기 바란다.

사원은 총 네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네 분의 자이나교 신들을 모셨다. 마침 두 명의 신도가 마스크를 한 채 신들에게 공양물을 바치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마스크를 했지만 흰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남방쪽 인도에 가면 거리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체로 큰 먼지떨이 하나만 갖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자이나교 승려들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다. 유일하게 갖고 다니는 먼지떨이인 털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생명도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앉기 전에 그들은 자리에 혹시나 아주 작은 생명체라도 죽일까봐 털채로 꼼꼼히 쓸어 내고 앉는다. 자이나교는 두 개의 파가 있는데 하얀 옷을 입는 백의파(白衣波)가 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공의파(公依波)가 있다. 공의파를 일컬어 하늘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살생을 금하고 무소유를 지향하더라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한술만 더 뜨면 괜찮을 텐데 세 숟가락쯤 더 뜨다 보니 자이나교가 일반인들에게 도저히 이해되지 못하는 종교가 되었다.

인도에는 먼지가 엄청 많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저리가라다. 비포장도로에 교통량은 많고 청소도 하지 않아 거리에는 늘 쓰레기와 짐승들의 똥이 넘친다. 그래도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인도인들의 표정들이 좋지 않다. 이유는 자이나교 신자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자이나교도들은 혹시나 공기 중에 작은 생물체가 공기를 통해 들어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늘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한심한 종교가 3000년을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어떻게 이렇게 최고로 아름다운 사원을 만들었을까. 돈도 엄청나게 많이 들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다. 그렇다면 뭔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신을 모신 두 번째 건물에 갔다. 거기서 나는 신전 입구 양쪽에 신전을 지키고 서 있는 두 명의 수호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두 수호신 모두 큰 뱀이 다리를 친친 감고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는데 나는 그 장면을 전날의 꿈 속에서 분명하게 봤었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사원 근처에 있는 큰 호수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도 꿈에 본 것과 비슷한 두 마리의 뱀을 보았다.

날이 더워 망고주스를 마시며 호수를 보고 있는데 검은 뱀 한 마리가 물 위에 떠 있었다. 신기하다며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흰 뱀 한 마리가 또 다가왔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이곳 델와라사원에서 신전을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뱀을 또 보게 된 것이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강한 기운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급히 합장을 하고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운에 집중했다. 나는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덮여 있는 중국의 화산을 비롯하여 기운이 좋다는 국내외의 많은 명당들을 답사하고 그곳에서 수련을 했었다. 그런데 맹세코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내 몸의 모든 부스러기들을 모두 태울 정도의 강력한 전기가 내 몸 전체에 퍼졌다. 세상에나. 어찌하여 이런 곳에서 이런 은총을 내게 주시는 걸까. 별로 감흥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종교인데.

5분쯤 그렇게 감탄하며 서 있는데 저쪽에서 빨리 오지 않는다고 호각을 빽빽 불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기운에 집중했다. 내가 또 언제 이곳을 다시 올 수 있겠는가. 안내인도 귀찮은지 나를 포기하고 가버렸다. 신전에 나만 남았다. 나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종이처럼 불이 붙어 타버린 뒤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내 몸의 검은 것들이 모두 불에 타서 재가 된 뒤 머리 위 허공으로 사라지는 영상을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갑자기 찾아온 은총이었다. 난데없는 은총에 갑자기 자이나교 사원과 자이나교 자체를 무시한 내가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보답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이나교의 핵심 목표는 놀랍게도 해탈이다. 이해 못할 마스크에 털채를 들고 완전한 나체로 다니며 손가락질을 받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목표는 품위 있는 종교인 불교와 똑같다. 영혼의 해탈을 얻으려면 나쁜 업을 완전히 소멸해야 하는 것도 불교와 비슷하다. 단, 불교는 지혜를 통하여 업장을 소멸하는데 비해 자이나교는 모든 생명의 존재를 존중하고 죽이지 않음으로써 나의 나쁜 업장을 소멸하고 해탈에 이른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를 상징하는 부처님의 머리 꼭대기에 볼록 튀어나온 육계(肉髻)가 있고 자이나교는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가슴 한가운데 육계와 비슷한 표식이 있다. 자기 외의 모든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표시다. 이런 사상을 흔히 아힘사(ahimsā)라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가 바로 자이나교의 아힘사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혼이 완전히 자유로운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조차도 입는 걸 거부한다. 그래서 완전한 나체로 다닌다. 또 그들은 소유욕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화려한 자이나교 사원이지만 사원에 거주하는 승려는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옷도 입지 않는데 화려한 사원을 소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이나교 사원의 주인은 진짜 '신(神)'이다.

또 자이나교는 두려움도 없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성적인 갈망이나 웃음, 슬픔도 없어야 한다. 영혼은 육체의 감각이나 희로애락과 관계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머리도 깎지 않는다. 머리나 수염을 깎을 때도 행여 생명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손으로 일일이 뽑는다. 목욕을 하지 않거나 이를 닦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모든 것들을 지키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석 달에 한 번씩 머리털을 손으로 뽑을 때면 오래된 수행자라도 눈물이 찔끔찔끔 흐른다. 머리털을 뽑다 눈물을 흘리면 벌칙으로 하루를 굶어야 한다. 하루 한 끼를 먹고 매일 20킬로미터씩 걸어서 이동하는데 한 끼를 굶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의 수행을 극단적인 고행의 종교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을 하시다가 이건 아니라며 다른 길을 찾았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이런 것을 지키지 않는 자의 삶이 더 고통스럽다고 보기 때문에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실천이 매우 어렵다는 걸 그들도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모든 감각들과 두려움을 극복해 영혼의 완전한 자유에 이른 사람을 그들은 위대한 승리자라고 한다.

자이나교의 최종 목적은 불교와 마찬가지로 삼매(三昧)에 드는 것이다. 물론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자이나교는 살레카나 단식을 통해 삼매에 든다. 불교는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고 삼매에 드는 것이지만 자이나교는 음식을 끊는 살레카나 단식을 통해 죽어서 삼매에 든다. 육체가 있는 한 완전한 삼매에 들기 어렵고 잠깐 삼매에 들더라도 죽을 때 육체의 고통에 휘둘리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의 고행을 통해 영혼과 육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계속 숙달하고 자각한다. 고행을 통해 육체의 고통에 대한 인내심을 키우고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영혼이 육체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면 죽음이 왔을 때 영혼이 육체의 고통에 사로잡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신(神)의 품에 안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체력이 남은 상태에서 살레카나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병들고 늙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때 살레카나를 한다. 알려진 것처럼 자이나교의 살레카나는 일반적인 자살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삼매의 과정을 뺀다면 중환자에게 허용하는 안락사와 비슷하다.

자이나교의 신도는 인도에서 불과 0.3%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델와라사원처럼 자이나교의 사원들은 힌두교 사원보다 훨씬 화려하다. 자이나교 사원 하나를 팔면 힌두교 사원 열 개쯤을 지을 것이다. 이유는 자이나교 신도들이 대부분 잘 살기 때문이다. 인도 13억 인구 중에서 겨우 300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도에서 자이나교도들의 경제력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예부터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은 작은 생명도 존중하기 때문에 농업을 하지 않고 주로 무역이나 유통, 금융, 학술, 출판, 언론 등의 분야에 종사했다. 무려 3000년 전부터 그 일을 해왔으니 그들의 부와 노하우가 엄청나게 축척되었음이 당연하다.

또 자이나교가 옷 하나 걸치지 않는 완전한 무소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신도들은 다른 종교보다 훨씬 기부를 많이 하고 죽을 때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들여 사원을 짓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자이나교 사원들은 모두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다. 무소유와 생명존중의 사상이 오히려 부자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점이 있다. 내가 잘 나서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사실 내 부(富)를 만들어주는 것은 타인이다.

자기만 잘 살겠다고 자기 욕심만 차리는 사람들은 한때는 잘 살지 몰라도 길게 보면 대개 말로가 비참하다. 경주의 최부자가 그렇게 오랜 세월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기 욕심만 차리지 않고 주변을 돌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의 이해 못할 나라 일본에게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닥칠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험심 가득한 착한 일본인 세이지가 고향인 도쿄를 떠나 오키나와에 정착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국의 미래도 불안해 보인다.

우리 대한민국도 그들과 비슷한 길을 가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타인의 생명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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