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미중 경제전쟁은 피할 수 없는 공룡들의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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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미중 경제전쟁은 피할 수 없는 공룡들의 패권전쟁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06.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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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셜론 정보망에 도전하는 화웨이...한국의 선택은?

#장면 1

미국 중앙정보국(CIA) 런던지국의 도감청용 컴퓨터에 금지단어가 포착된다. ‘블랙브라이어’. 미 국방부 산하 극비 조직에서 벌이는 요인 암살 프로젝트 이름이다. 취재원과 휴대전화로 통화하던 영국 기자가 무심결에 내뱉은 단어였다. ‘블랙브라이어’란 단어가 통신망으로 흐르는 순간 미국 정보기관 감청시스템은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감시대상에 올라 추적된다. 기자는 저격수에 의해 암살된다. 맷 데이먼 주연의 2007년 첩보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일부다.

#장면 2

잘 나가던 변호사 로버트 딘은 어느 날 갑자기 로펌에서 해고당하고 모든 금융거래가 차단된다. 아내로부터도 불륜을 의심받는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감청 및 도청 행위를 법적으로 승인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다. 이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암살하는 사건에 딘이 우연찮게 휘말리면서 쫒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딘의 말과 행동 등 모든 것은 24시간 감시된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추적당한다. 하늘 아래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다. 윌 스미스 주연의 1998년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일부다.

영화에 불과하다고?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장면은 어떤가?

전 지구적 도·감청 시스템 ‘에셜론’ 상시 가동 중

#장면 3

1988년 8월, 영국의 주간지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에 ‘누군가 엿듣고 있다(Somebody’s Listening )’는 제목의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던컨 캠벨이라는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가 쓴 기사다.

캠벨은 이 기사에서 ‘프로젝트 415’라는 일급기밀 지구감시 시스템이 작동 중이며, 영국에서만 연간 10억 통화가 감시당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나는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를 경험했습니다. 전화를 도청당했고 미행당했으며, 함께 기사를 쓴 미국 기자는 영국에서 추방됐습니다.” 캠벨 역시 몇 달 뒤 영국 기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나중에는 간첩 혐의까지 받았다. 체포 당시 그는 에셜론(ECHELON)이라는 비밀 도감청 시스템을 취재 중이었다. 영화가 아니다. 실화다.

#장면 4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와 국가안보국(NSA)에서 근무했던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기밀을 폭로했다. 스노든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미국 내 통화 도감청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을 공개했다.

"내가 당신 이메일이나, 당신 아내의 핸드폰을 보고 싶으면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당신의 이메일이며 비밀번호, 통화기록, 신용카드까지 알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스노든으로부터 NSA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가디언에 보도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2014년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No place to hide)’라는 책을 펴냈다. 그린월드 기자는 책에서 2012년 중반 현재 NSA는 매일 전 세계에서 수집한 200억 건 이상의 통신(인터넷과 전화 포함)을 ‘처리’했다”며 “자국 내에서도 매일 17억 건에 달하는 전화 통화와 이메일 등 다양한 유형의 통신을 수집했고, 미국 내 인터넷 트래픽의 약 75%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역시 영화가 아닌 실화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파이브 아이즈’ 실시간 정보 공유

미국과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중 정보 분야에서 긴밀한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해오다 1947년 두 나라 이름을 딴 UKUSA라는 협정을 맺는다. 비밀 도감청 시스템 ‘에셜론’의 시초다. 여기에 영 연방국가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2차로 참여한다. 일명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다. 이후 한국 일본 터키 등이 3차 가입국이 된다. 성골에 해당하는 1, 2차 가입국은 에셜론의 모든 정보를 제공받지만,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진골 혹은 6두품 정도에 불과한 3차 가입국은 제한적으로 정보 접근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셜론은 고주파(HF) 통신 감청, 위성을 이용한 마이크로웨이브 감청, 해저케이블 및 인터넷 감청을 한다. 전화 팩스 계좌추적 전자우편은 물론 항공기와 함정의 전파 등 지구상의 모든 통신을 추적해 감청할 수 있다. 만일 이메일이나 전화로 ‘테러’ ‘폭탄’ ‘핵’ ‘대통령’ ‘백악관’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에셜론은 즉각 추적에 들어간다.

캐나다 정보기관 CES에서 20년간 스파이로 재직한 마이크 프로스트는 2000년 2월 TV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이웃끼리 수다를 하다가도 자칫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CSE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한 여성이 저녁에 아이의 학예회에 갔어요. 아이가 학예회에서 너무 엉망으로 한 거예요.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어휴, 대니(아들 이름)가 어제 밤에 완전 망쳤어(bombed)’. (‘폭탄이 터졌다’는 뜻의 ‘bombed’ 단어가 나오자) 컴퓨터에 그 대화가 떴습니다. 분석요원은 그 대화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확실히 몰랐죠.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 때문에 요원은 그녀와 그녀의 전화번호를 테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명단에 올렸습니다.”

스노든에 따르면 NSA는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와 120대의 위성을 운영한다. 직원은 3~4만 명에 이르며, 한 해 11조 원의 예산을 사용한다. CIA 직원이 2만 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NSA는 에셜론 프로그램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NSA가 국가안전보장국(National Security Agency)이 아니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Never Say Anything)’는 뜻을 가진 조직이라는 우스개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비즈니스 위크는 “NSA는 전 세계적인 도청 시스템인 에셜론을 통해 모든 통신 내용을 도청하고 있다”면서 “여기에는 전화와 이메일 등이 포함돼 하루에 미국 국회 도서관 문서의 10배 가량 분량의 내용이 도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NSA 활동을 감시하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의 포터 고스 위원장은 “NSA는 일반인의 통화를 포함한 어떤 전화통화도 도청할 수 있으며, 내 전화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노든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한국 일본 유럽연합의 유엔대표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스 대사관도 NSA의 정보 수집 대상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유럽의회도 2001년 에셜론위원회를 가동해 1년 여 조사한 끝에 14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는 에셜론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민감한 정보에 대해 암호사용을 일상화하고 기존 암호를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게르하르트 슈미트 에셜론위원장은 이메일 전화 팩스 등 위성중계 통신 중 에셜론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한 정보 수집 넘어 경제전쟁에도 활용

에셜론이 안보 혹은 군사 목적으로만 사용돼 온 것은 아니다. ‘파이브 아이즈’ 국가의 이익은 물론 자국 기업들을 위해서도 에셜론이라는 천리안은 활용된다.

1994년 브라질이 발주한 14억 달러 규모의 환경파괴 감시 프로그램인 SIVAM 프로젝트에 미국 레이시온과 프랑스 톰슨CSF가 경쟁했을 때다. 미국 언론에 갑자기 프랑스 톰슨사가 브라질 고위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려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톰슨은 탈락하고 미국 레이시온이 계약을 따냈다. 미국 측이 에셜론을 이용해 양측의 대화를 도청했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했다.

한국이 도청 대상에 올랐다는 증언도 있다. 1998년 2월 28일자 ‘파이낸셜 포스트’는 캐나다 정보기관 CSE의 암호해독 요원 제인 쇼튼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보도했다. “1991년 한국 정부와 캐나다가 캐나다형 캔두 원전 3기 건설문제로 협상할 때 한국 외무부장관의 전화를 도청한 적이 있다.”

물론 미국과 NSA는 역시 이 같은 도청 사실을 부인한다. 에셜론의 존재조차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최강자로 패권국 지위에 오른 것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에셜론으로 상징되는 상상을 초월한 정보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정보력은 국가의 우위를 결정짓는 요소임은 물론 국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정보력은 미국으로선 사활을 걸고 지켜야 할 핵심 분야다.

중국 화웨이 에릭슨 누르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제조업체 올라

중국 거대 통신업체 화웨이의 로고(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중국 거대 통신업체 화웨이의 로고(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그런데 지구촌의 ‘빅 브라더’라 할 만한 미국의 에셜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 중국의 화웨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화웨이가 에셜론의 전지전능한 정보 그물에 구멍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게 미국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갑자기 화웨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다. 관세가 어떻고 무역불균형이 어떻고 하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실제는 미국과 중국이 지구촌을 놓고 벌이는 패권전쟁이다. 그리고 화웨이는 그 연결고리이고 뇌관이고 방아쇠다.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해 패권경쟁에서 굴복시키겠다는 미국의 전략이다.

화웨이는 중국의 삼성이다. 중국 첨단기업의 대표주자이고 하이테크 분야의 상징이다. 외국에 나가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 화웨이다. 화웨이는 중국 스마트 폰 시장에서 오포(OPPO), 비보(VIVO)와 함께 3강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는 삼성, 화웨이는 애플에 간발의 차이로 뒤처진 3위다. 2018년 기준 스마트폰 단가도 삼성제품 248달러, 화웨이 238달러로 큰 차이가 없다. 순이익은 2017년 925억 달러에 이른다.

화웨이가 스마트폰만 만들어 파는 기업이라면 미·중 경제전쟁, 패권전쟁의 도마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88년에 설립된 화웨이는 2012년 5G 기업인 스웨덴의 에릭슨을 누르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제조업체로 올라섰다. 화웨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 인프라 기술인 5세대(5G) 통신 분야의 선두주자다. 현재 170개국에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등 통신장비 분야에서 22%의 시장 점유율로 세계 1위다.

4차 산업혁명시대 5G 선두 업체 화웨이 정보고속도로 장악할 수도

4차 산업혁명시대는 초연결시대다. 대화가 전화선으로만 연결되거나 컴퓨터로만 정보가 오고가지 않는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고 전방위적으로 정보가 흐르게 된다. 다양한 물체와 장소가 연결되고 데이터를 주고 받게 된다. 가정에 있는 전화 컴퓨터 프린터 카메라 체중기 TV 시계 등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정보가 교류된다.

빅 데이터(Big Data)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다.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등 빅 테크 및 빅 커뮤니케이션 기업들은 오늘도 가만히 앉아서 고객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를 차곡차곡 빅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다. 첨부된 문서와 사진, 검색어, 음식, 쇼핑센터 구매물품, 카드 결제 등으로 우리들의 소비패턴, 제품선호도, 취향, 친구관계 등을 빅 데이터로 처리하고 있다. YES24나 알라딘 등에서 인터넷으로 특정한 책을 구매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으면 곧바로 컴퓨터가 또 다른 책들을 추천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초보적 빅 데이터 활용 수준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아마도 FAANG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5G다. 빅 데이터를 21세기의 석유라고도 하는데 5G는 석유로 치면 석유를 실어 나르는 송유관이고, 정보를 전달하는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화웨이의 역할과 능력이 막강해질 게 틀림없다. 미국 입장에서 빅 데이터가 흐르는 고속도로를 장악한 화웨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나 분명하다.

화웨이 소유와 경영은 물론 중국 정부와 관계도 비밀 투성이

화웨이(華爲)란 회사 이름은 중화인민공화국(華)을 위해(爲) 일하거나 활동한다는 의미다. 이름에서 보듯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기업이다.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으로 청년시절 모택동 사상에 심취했으며 중국 공산당을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런정페이는 ‘늑대 경영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는 화웨이가 세계적인 통신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임직원 모두가 “늑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표를 향해 떼로 몰려들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동물적 본능을 갖되 무리의 리더에게 절대적 충성을 하는 늑대를 본받자는 의미다. 화웨이가 세계를 향해 공격적인 도전을 하면서도 중국 공산당을 위해 충성하자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화웨이의 소유구조와 중국 정부와의 관계 등은 베일에 싸여있다. 비상장회사인 화웨이는 런정페이 회장이 단 1%만 지분을 갖고 있다. 직원들로 구성된 무역노조위원회가 나머지 99%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하다. 화웨이 노조는 중국 선전 지방정부의 노조에 등록돼 있다. 조합원은 회사를 떠날 때 지분을 노조에 팔아야 한다. 외부인은 주식을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 주식 99%를 소유한 직원들이 경영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다수의 부회장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경영하는 순환 CEO 제도를 운용한다고 하지만 역시 믿기 힘들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그대로 믿는 서방의 기업인은 없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연결돼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중국제조 2025’를 내걸고 기술굴기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화웨이가 중국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화웨이 급성장 과정에 선진국 기술 절취, 백도어 설치 등 의심

화웨이의 성장과정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 기업들은 거의 모두 ‘2G-3G-4G-5G’ 단계로 통신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화웨이는 2G에서 5G로 바로 넘어갔으며, 5G 기술로 도약했다. 정보통신분야의 선두 국가와 기업들은 화웨이가 기술 절취를 통해 5G 기술을 습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고 본다.

실제로 화웨이는 기술 절도를 하다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2003년 당시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Cisco)의 지적재산 불법 복제 사례, 1990~2000년 캐나다 통신장비업체 노텔(Nortel)의 컴퓨터 해킹 사례 등은 대표적이다. 2015년 초 한국에 수입된 중국제품 CCTV에서 ‘백도어 프로그램’이 발견된 적도 있다.

백도어 프로그램은 운영체제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정상적인 인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도록 뒷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프로그램이 작동하다가 헤드센터에서 신호만 보내면 핵심 정보를 뒷문을 통해 빼내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보를 훔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미중 경제전쟁은 패권전쟁...화웨이는 세계 정보망 흔들 뇌관 간주

미국은 화웨이 뒤에 숨은 중국을 의심한다. 화웨이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 5G를 장악해 전세계 정보통신망을 장악하게 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정보는 백도어를 통해 중국으로 술술 빠져나갈 것이란 게 미국의 시각이다. 그렇게 되면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미국 등 서방세계가 정보력에서 밀리면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중국이 첨단 제조기술을 통해 패권 지위를 넘보는 것에 미국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전기차 반도체 등 10개 하이테크 분야에서 제조업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계획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더구나 2035년에는 선진국 수준 제조기술을 달성한다는 목표아래 '중국표준 2035'도 추진중이다. 중국 기술표준을 전세계에 적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2050년에는 중국을 세계 제조업 선도국가로 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사실상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이 중심에 화웨이가 있다.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지정한 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동참할 것을 촉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헝가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화웨이를 쓰면 파트너로서 함께 가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동맹국들에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할 것을 압박했다.

미 “화웨이 쓰면 리스크 비용 클 것”... 중 “화웨이 제재는 심각한 결과 직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보다 분명하게 미국의 의지를 한국에 전달했다. 그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5G 네트워크가 한국 전역에 어떤 사례를 남길지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동맹이자 친구로서 우리가 이 모든 이슈를 함께 헤쳐 나갈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미국 편에 서서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을 것을 재차 압박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세미나 이틀 전에도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화웨이)를 선택하면 장기적인 리스크와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며 반 화웨이 동맹에 동참할 것을 한국에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중국이라고 마냥 손 놓고 있을 나라가 아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 공업정보화기술부는 며칠 전 주요 글로벌 기술 기업을 불러 트럼프 정부의 요구대로 중국 기업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에 불려간 기업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영국 반도체설계업체 ARM을 비롯해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도 포함됐다.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임원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을 찾아 부품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정부까지 나선 셈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 샌드위치 신세 한국...국가 이익 최우선 고려해 선택해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사드로 롯데가 홍역을 치른 걸 지켜본 기업들 입장에서 화웨이 사태는 발등의 불이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경쟁관계이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는 거래처이기도 하다. 5대 매출처 가운데 하나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 한국 기업 중 5G 이동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LG유플러스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기업들은 피가 마를 지경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남의 일 보듯이 하는 것은 한가하다. 정부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슨 수가 나지 않겠느냐는 요행수를 바라는 것 같아 답답하다. 청와대가 "(5G 사용이) 한·미 군사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고 말한 것 역시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군사안보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화웨이 제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가타부타 추가 설명이 없다.

세계 주요국은 각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정부 각 부처와 자위대 등의 정보통신 기기에서 화웨이 제품 사용을 사실상 배제키로 했다.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수용하는 쪽에 일찌감치 섰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했고, 영국은 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핵심 부품에 화웨이 장비 사용을 배제하도록 했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독일은 무조건 화웨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모두가 자국 안보와 이익을 고려해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 간의 갈등이나 분쟁이 아니라 국가 간 분쟁, 그것도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이 패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양쪽으로부터 선심을 산다면 다행이지만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는 박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지 않아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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