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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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20.02.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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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편집주간

Capela dos Ossos. 우리말로 ‘뼈의 예배당’이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버스로 1시 30분 가량 떨어진 작은 중세도시 에보라에 있는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뼈의 예배당’. 길이 18.7m, 너비 11m의 직사각형 사방 벽이 바늘구멍 하나 꽂을 틈 없이 온통 사람의 뼈로 만들어졌다. 사람 뼈로 벽을 ‘치장’ 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도 해골과 다리뼈로 만들었다. 죽음의 문양이 그려진 듯한 천장은 궁륭의 아치 선을 따라 해골을 박아 넣어 음침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멋까지 냈다. 성당을 세운 사람들이 내부를 어떻게 장식할지를 사전에 세밀하게 계산하고 설계도를 그린 뒤 작업을 한 듯 해골과 다리뼈 등을 질서 있고 통일감 있게 배치하고 회반죽으로 꼼꼼하게 붙여나갔다. 왼쪽 벽면에 나 있는 3개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만이 음산한 내부를 비출 뿐 예배당 안은 섬찟하리만치 무겁다.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뼈의 예배당’ 벽과 기둥이 모두 사람의 뼈로 치장돼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뼈의 예배당’ 벽과 기둥이 모두 사람의 뼈로 치장돼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는 유골은 무려 5000구에 달한다고 한다. ‘뼈의 예배당’ 안에 비치된 설명문에는 16세기 프란시스코회 수도사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되새기고자 마을 묘지의 뼈로 지었다고만 소개하고 있다. 역병이나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유골이라는 설도 있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전쟁 중에 숨지고 학살당하고 고문당한 이들의 시신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수도원 묘지가 재개발돼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묻힌 수도사들의 유골을 파내 예배당을 지었다는 말도 전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동양의 죽음관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은 분리돼 혼(魂)은 인간의 몸을 빠져 나와 하늘로 가고, 백(魄)은 시체와 함께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 5000여 유골들은 지하에서 영면하지 못하고 500여 년을 산 자들의 공간에 머물며 떠돌고 있는 셈이다.

충격과 두려움에 싸여 ‘뼈의 예배당’을 나오자마자 정면 벽에 드로잉으로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들어갈 때는 긴장해 보지 못했나 보다. 즐겁게 노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해설을 보니 죽음의 현장을 보고 나온 이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렸다는 것이다. 왼쪽은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며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기를 하늘로 쳐들고 어르는 정겨운 그림이다.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상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간단하게 나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뼈의 예배당’ 입구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삶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뼈의 예배당’ 입구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삶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밖으로 나가려던 발길을 돌려 삶의 세상에 서서 죽음의 세계인 ‘뼈의 예배당’을 뒤돌아보자 출입문 위 대리석에 글귀가 새겨져 있다. ‘NOS OSSOS QVE AQV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 직역하면 ‘여기 있는 우리들의 뼈는 당신들의 뼈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풀어보자면 ‘우리들의 뼈는 여기에 이렇게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문턱 하나만 넘으면 죽음이라는 걸 알려주는 경구이다. 호화찬란 부귀영화와 권세를 떵떵거리고 누려본들 죽으면 초라한 뼈 몇 조각으로 남을 뿐이라는 걸 경고하는 것 아닌가.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뼈의 예배당’ 출입문에 ‘우리들의 뼈는 당신들의 뼈를 기다린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포르투갈 에보라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뼈의 예배당’ 출입문에 ‘우리들의 뼈는 당신들의 뼈를 기다린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10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시대, 전쟁 영웅의 개선식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묘사되듯 화려한 마차에 올라 환호하는 로마시민들에게 거만하리만치 고개를 쳐들고 손을 들어 화답하는 개선장군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로원이나 호민관, 집정관 누구도 개선장군의 기세 앞에 숨을 죽였다.

그런데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유일한 훼방꾼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노예였다. 이 노예는 전쟁 영웅이 개선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개선마차 꽁무니를 따라가며 장군의 뒤퉁수에 대고 끊임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제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와 조국 로마에 기쁨을 안겨주고, 본인은 세상을 다 잡은 듯한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는 있는 터에 ‘죽음을 기억하라’니. 이런 패악질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하찮은 노예를 시켜 망신주기를 하고 잔칫상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죽음을 기억하라! 전쟁터에서 비록 적일망정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라선 당신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일까. 아니면 전쟁 영웅이 된 것에 우쭐한 나머지 오만해져 자칫 칼끝을 거꾸로 로마를 향해 겨누고 반역을 꿈꿀지도 몰라 경계의 호루라기를 분 것이었을까. 당시 로마는 전쟁 영웅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해 군대를 루비콘강 건너편에 두고 혼자 로마에 들어와 개선식에 참석하도록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해당될지 모른다.

포르투갈 에보라 구시가의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는 로마 신전. 1000년을 이어 온 로마제국도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포르투갈 에보라 구시가의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는 로마 신전. 1000년을 이어 온 로마제국도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개선식에서 노예가 목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스스로 자청해 이런 일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노예가 이 일로 뒷날 목이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그런 일을 하도록 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원로원의 아이디어인지, 황제가 시켰는지 아니면 개선장군 스스로 자청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로마가 이런 제도를 모두의 동의 아래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력 앞에 인간의 탐욕과 절제, 도덕심과 염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뼈의 예배당’을 둘러보는 시간에도 국내에선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고, 언론의 자유를 업신여기고 짓밟으려는 반민주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집권초기의 겸손함과 낮은 자세는 오갈데 없고 시간이 갈수록 오만방자, 방약무도, 안하무인이 하늘을 찔렀다.  국민이 부여한 한시적 권력인데도 마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이나 되는 양 행세했다.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말이 있다. 권력을 빼앗기고 난 뒤에야 땅을 치고 후회한다. 주권자의 눈은 감고 있는 듯 해도 눈꺼풀 속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뼈의 예배당’과 로마 신전에서 다시금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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