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미술관과 빌바오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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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미술관과 빌바오 효과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08.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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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편집주간

언뜻 네르비온 강에서 튀어나온 물고기인가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은빛 꽃송이 같기도 했다. 차가운 금속성의 냉정함이 느껴지는가 했는데 종이를 손아귀로 뭉쳤다가 툭 놓아버린 듯한 건축물의 구겨진 외관에서 장난스러운 미로가 연상됐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름값을 저버리지 않았다. 일부러 미술관 바로 앞 호텔에 묵은 덕에 침대에 누워서도 내려다보이는 구겐하임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밤 9시를 훌쩍 넘겨서야 지는 태양의 석양에 구겐하임의 티타늄 외장재는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새벽이면 이슬을 털고 깨어나 은색 연꽃으로 피어났다. 아침 식사를 위해 호텔 7층 루프 탑의 카페테리아에서 바라보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거대하고 아름다웠으며 오묘했다.

빌바오의 상징적 건축물이 된 구겐하임 미술관

시차 때문에 한밤중 깨어나 창밖으로 보이는 구겐하임 주변은 놀라웠다. 새벽 2~3시에도 구겐하임 미술관 앞 광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핸드폰 카메라로 연신 구겐하임을 담아내는 관광객과 산책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돌돌거리는 여행 가방 바퀴 소리는 구겐하임이 내는 또 다른 효과음이었다. 사람들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빌바오 시내 곳곳으로 흩어졌다. 오래된 마을의 정자나무나 우물처럼 구겐하임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다시 돌려보냈다.

인구의 3배 가까운 1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매년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도시 빌바오. 이른바 ‘빌바오 효과’다.

빌바오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철강 화학공업 조선산업이 번창한 도시였다. 북대서양으로 흐르는 네르비온 강을 끼고 자리 잡은 이 도시는 1980년대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철강 조선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주력산업이 급격하게 쇠퇴했다. 인구는 45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도시의 영화는 사라지고 녹슨 제철소와 조선소가 폐허처럼 남았다. 흉물이 된 항구, 증가하는 범죄, 어두운 시가지, 오염돼가는 네르비온 강. 실업률은 35%까지 치솟았고 격렬한 파업이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3년 대홍수로 빌바오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이 범람하면서 도심이 수몰되는 일도 일어났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바스크 민족의 오랜 도시이자 중심지인 빌바오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그 앞에 서 있는 전위작가 제프 쿤스의 설치작품 ‘강아지’. 석양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그 앞에 서 있는 전위작가 제프 쿤스의 설치작품 ‘강아지’. 석양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네르비온 강 정화사업과 문화관광산업에 초점 맞춘 빌바오 도시재생사업

빌바오 시가 나섰다. 시는 ‘문화관광산업’에 초점을 둔 도시재생사업으로 살길을 찾고자 했다. 때맞춰 1990년대 초 미국의 구겐하임 재단이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기 위해 일본 도쿄와 오사카, 러시아 모스크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시에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후보지도 아니었지만 빌바오 시가 구겐하임 재단을 자청해서 만났다.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민들은 반대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공장을 짓지 않고 미술관을 짓겠다는 시 정부의 돈키호테적인 발상에 발끈했다. 게다가 미술관 유치에 1억 유로(약 1280억 원)나 든다니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여기에다 구겐하임 재단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야 하고, 전시할 현대작품을 사들이도록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이 지역 바스크 시민 95%가 문화종속과 예산낭비를 들어 반대했다.

빌바오시를 중심으로 스페인 북부 해안가 일대 바스크 지방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만큼 분리독립 운동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지역민들의 동질의식도 강하다. 지금도 빌바오 시의 거리 표지판은 물론 지도, 관광 안내책자 등에서 영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바스크어를 먼저 적고 아래에 스페인어를 병기한다. 빌바오시 인근의 중세 도시 도노스티아(스페인어 산세바스티안)이나 온다리비아(후엔테라비아)의 핀초 바나 찻집에서 만나는 마을 주민들에게서는 바스크 민족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바스크 국민당이 주축이 된 빌바오시 정부가 시민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도시가 환골탈태하려면 ‘문화’가 살아 숨 쉬어야 함을 역설했다. 시민들도 하나둘 동의했다.

바스크족의 공동체 의식에다 지역에서 번 돈은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함께 누린다는 전통을 가진 바스크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 등이 합쳐져 도시재생과 문화도시로 거듭나려는 빌바오시의 의지가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바스크 지방기업들이 구겐하임 미술관 운영비의 25%를 지원하기로 함으로써 난제를 해결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실에 설치된 리차드 세라의 대형 작품 ‘시간의 문제’(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실에 설치된 리차드 세라의 대형 작품 ‘시간의 문제’(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제프 쿤스의 ‘강아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등 곳곳에 예술작품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1997년 탄생한 게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기둥과 보가 없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무게 60t에 달하는 0.3mm 두께의 티타늄 3만3000개를 이어붙인 미술관의 외관은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고, 거대한 선박을 떠올리게도 한다.

미술관 입구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전위 예술가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Puppy)’와 ‘튤립’이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네르비온 강 옆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마망(Maman)’이 서 있다. 엄마를 뜻하는 ‘마망’은 작가의 불행한 가정환경과 어머니의 강한 모성애를 가느다란 다리로 버티고 서서 알을 품고 있는 거미로 형상화해 놓았다. 미술관 안에선 미국 작가 리차드 세라의 거대한 설치 작품 ‘시간의 문제’를 만난다. 강판을 나선형으로 세워놓은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끊어지고 이어지는 길이 마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연상케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를 대표하는 건축물이고, 전시작품보다 미술관 자체가 더욱 유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빌바오 효과’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 때문에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 빌바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단순히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절망의 도시를 희망의 도시, 문화의 도시, 친환경 도시로 만들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네르비온 강 위의 도보전용 수비수리 다리. 하프 같기도 하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기도 하다. 건너편에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쌍둥이 건물 ‘이소자키 아테아’가 보인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네르비온 강 위의 도보전용 수비수리 다리. 하프 같기도 하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기도 하다. 건너편에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쌍둥이 건물 ‘이소자키 아테아’가 보인다(사진: 송문석 편집주간 제공).

절망의 도시에서 희망의 도시로…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 빌바오시

미술관 유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빌바오시는 오히려 죽음의 강으로 변한 네르비온 강을 살리고 그 강을 중심으로 다리 공공건물 벤치 조각상 하나에 이르기까지 공공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아름답고 편리하게 조성하는데 노력했다. 네르비온 강 환경개선에 지금까지 구겐하임 미술관 조성에 들어간 돈의 6배에 넘는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네르비온 강을 따라 널찍하게 조성된 산책로와 벤치, 식수대 등은 시민들의 휴식처이고 친교의 공간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들, 춤을 추는 젊은이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주부들로 네르비온 강 주변은 항상 살아 숨쉰다.

네르비온 강을 건너 시내로 연결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옆 살베코 주비아 다리의 붉은 색 H자 교각과 하프 모양의 도보 전용 수비수리 다리는 강 위의 예술작품이다. 수비수리 다리 건너편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2019년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쌍둥이 건물 ‘이소자키 아테아’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천천히 걸으며 빌바오 구석구석을 탐색하다 보면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고풍스러운 구시가지는 여전히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누에바 광장에는 어린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이를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이 흐르며, 바로 옆 고색창연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선 핀초 바에는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함이 활기를 내뿜는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산 니콜라스 성당은 수백 년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빌바오 시가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의 사례로 소개되면서 한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나 연구기관들의 단골 견학코스가 됐다. 특히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를 소생시킨 주인공이라는 찬사가 잇따르자 많은 도시들이 이를 본받아 미술관 박물관 체육관 등 대형 건축물을 세우려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마치 멋진 건물만 하나 세워두면 관광객이 몰려들고 도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부산의 도시재생 역시 시민친화적인 도시 조성에 맞춰져야

‘빌바오 효과’는 단순히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유명 건축가의 건물과 작품이 모여 ‘빌바오 효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을 위한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다. 그곳에 사는 시민들이 행복해야 관광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빌바오는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오래된 성당과 주택, 수 백년 간 걸어 다녔을 돌로 된 골목길, 그 어귀마다 들어선 핀초 바 등에 여전히 시민들이 드나들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광경이야말로 빌바오의 진정한 오늘의 모습이다. ‘빌바오 효과’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빌바오 시민을 위한 도시문화와 환경, 그리고 시민들의 높은 문화의식과 전통문화 존중 등이 어울어져 빚어낸 종합적인 결과이다.

쇠퇴해가는 부산의 조선업과 비틀거리는 자동차산업, 한때 전국 대표산업이었던 신발업과 의류산업 등은 이제는 옛 영화로 남아있다. 부산의 오늘은 빌바오의 과거와 많이 닮았다.

빌바오에서 부산의 도시재생을 생각한다. 우린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멋진 건물 하나만 지으면 부산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래된 건물과 전통문화는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며 깡그리 없애고 성냥곽 같은 특징없는 고층빌딩들만 세워놓으면 도시가 재생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정작 부산시민들은 살기가 불편하고 짜증 나는데 돈만 헛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빌바오에서 ‘빌바오 효과’를 되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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