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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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05.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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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정 기자 청와대 특별대담 진행 일부 매끄럽지 못해
그래도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한 순간도 멈춰선 안 돼
대통령은 존경의 대상이자 국민의 공복(公僕)이기도 해

백악관 웨스트 윙에 자리한 기자실과 브리핑 룸은 하루하루가 총성 없는 전쟁터다. 최고 권력자를 향한 언론의 날카로운 눈길은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지구촌을 움직일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출입기자들이기에 그들 역시 불굴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

펜을 든 전사들이 있는 백악관 기자실과 브리핑 룸 면적은 합해봐야 고작 32평에 불과하다. 그런데 백악관 출입증을 받은 내외신 기자는 750여 명이나 된다. 따라서 브리핑 룸에서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을 듣거나 대통령이나 고위 관계자의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는 기자는 많지 않다. 브리핑 룸의 좌석이 한 줄에 7개씩, 7줄 총 49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일 앞줄 일곱 자리는 ABC와 CBS, NBC 등 지상파 3개 방송사와 AP, 로이터 등 2개 통신사, 케이블방송인 CNN, 폭스뉴스가 차지하고 있다. 다음 줄에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이 선점하고 있다. 1981년부터 백악관출입기자협회가 정한 브리핑 룸 지정좌석 관례에 따른 것이다.

백악관 기자실에는 지정좌석도 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UPI 통신 기자로 시작해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50년 가까이 10명의 대통령이 바뀔 동안 백악관을 출입한 전설적인 기자 토머스 헬렌의 자리다. 그는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언론사를 몇 차례 옮겨 다녔지만 브리핑 룸 앞 줄 맨 가운데 자리는 그의 지정석이었다. 그가 2013년 사망한 이후 그 의자에는 ‘토머스 헬렌’이라는 동판이 새겨졌고, 현재 AP통신 차지다.

토머스가 활동할 당시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의 인사말로 시작해 “감사합니다. 대통령님(Thank you. Mr. President)”이라는 말로 끝났다. 그런 예우를 받는다고 해서 토머스가 대통령 구미에 맞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질문을 던진 적은 거의 없었다. ‘불편한 질문’은 그에게 있어서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이었다. 그게 기자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1991년 걸프전이 초읽기에 들어갈 무렵이다. 토머스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군사공격이 언제 시작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시 대통령은 “헬렌, 오늘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데, 기운 좀 내지 그래?”라고 말한 뒤 슬쩍 자리를 피해 버렸다.

아들 부시 대통령도 그의 까칠한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03년 토머스가 동료 기자에게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취재하고 있다”고 한 말이 부시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다. 격노한 부시는 대통령 기자회견에 그를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시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된 토머스가 이젠 부드러워졌을까? 그가 부시에게 날린 질문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진짜 이유는 뭡니까? 석유입니까? 이스라엘입니까?” 부시 대통령은 속이 부글거렸지만 “후세인 때문”이라고 마지못해 답했다.

백악관 기자들의 질문은 공격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거침이 없다.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백악관 인턴과의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기자는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액체는 대통령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헬스 케어 정책은 엉망이고, 지지율은 최저입니다. 올해가 최악의 해인가요?” 오바마는 “지지율은 오를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다. 그대로 끝낼 백악관 기자들이 아니다. 속사포처럼 보충질문을 날렸다. “대통령의 신뢰도가 내려가고, 지금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9일 밤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는 인터뷰 형식의 생방송 대담 뒤끝이 이상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대담을 진행한 KBS 송현정 정치전문기자의 진행 태도가 무례했다는 게 요지다. 송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정치 분야 질문을 하면서 ‘독재자’를 언급한 것, 대통령의 말을 중간에 자주 끊고 질문한 것, 대통령이 답변할 때 얼굴을 찡그린 것 등이 불편했고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말할 것도 없고, KBS 홈페이지 시청자청원 게시판, 인터넷 포털 등이 냄비 끓듯 달아오르고 있다. 심지어 송현정 기자 신상털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밝힌 국정에 대한 대담 내용은 아예 뒷전에 밀린 느낌이 들 정도다.

반면 한쪽에선 송현정 기자 영웅 만들기에 한창이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전 전 의원은 송 기자가 ‘멸종 상태이다시피 한 진짜 방송 언론인’이며 ‘치고 빠지는 현란한 투우사의 붉은 천을 휘두르는 인터뷰의 정석’을 보여 줘 ‘문 대통령이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면서 송 기자 지키기에 나서자고 부추기고 있다.

취임 2주년 특별대담이 대통령이 밝힌 국정현안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엉뚱하게 기자의 질문과 태도가 기사거리가 되는 현재의 상황은 아무래도 정상적이지 않다. 기자의 질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몰매질을 하는 쪽이나, 문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든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자기네 편이라며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 모두 온당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이런 상황 자체가 당파와 이념에 따라 갈등과 분열, 증오와 혐오가 뒤섞인 현재 한국 정치상황의 뒤틀린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국민들은 국정에 대해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보고받을 권리가 있다.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통해 국정에 대해 발표할 수도 있고,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하면서 생각을 피력하기도 하며, 국무회의에서 정부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일방향적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할 뿐이다. 청와대가 알리고 싶어 하는 내용보다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쏙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필요한 이유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다 보면 피하고 싶은 질문도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장관들의 대면보고도 피했으니 오죽했을까.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워낙 오랜 민주주의의 전통이 있어서 임기 중 수 십 번에서 수 백 번의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백악관의 오랜 전통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이 헬기를 타기 위해 잔디밭을 걸어 나올 때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은 최대한 성의 있게 답변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이번 KBS 대담 진행 기자의 질문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데 대한 불신, KBS가 과거 국민의 방송보다는 정권의 방송으로 비친 전력도 이번 대담 후폭풍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기에다 미숙하고 세련되지 못한 진행과 대담 기자의 부적절한 용어 사용과 전달방식도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다니…”라는 식의 반응은 적절치 않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정치체제에서 대통령은 항시 감시받아야 하며 견제되어야 마땅하다. 아무리 선한 권력의지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렇다. 그게 불편하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이고 원칙이다.

헬렌 토머스는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 관한 한 기자들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기자회견은 국민을 대신해서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대통령이란 자리를 존경하지만 국민의 공복(公僕)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진실을 빚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토머스의 얘기가 있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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