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는 미국 언론사 외신기자가 돼선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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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는 미국 언론사 외신기자가 돼선 안 되나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03.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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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언론관 보인 여당…언론의 자유 없인 민주주의 불가능하다 / 편집주간 송문석

여당의 ‘검은 머리 외신기자’ 논평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졸지에 언론자유가 없는 후진국에다 전근대적 독재국가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거기엔 인종 차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무지, 전근대적 국가관, 해당 기자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폄하 등 공당에서 감히 해서는 안 될 생각과 표현이 모두 담겼다. 이해식 대변인은 이 논평을 한 본래 의도야 그런 게 아니었다고 변명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 민주국가에 우리는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걸 자폭한 셈이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게도 구럭도 다 잃은 논평이었다.

여당 대변인이 반 년 가까이 지난 기사를 끄집어 내 기자를 부관참시한 계기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 본회의 연설이었다. 나 원내대표가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으로 지칭하며 비판하는 것이 블룸버그 통신의 해당 기사를 인용했다는 이유였다.

인종주의와 언론자유에 대한 무지, 전근대적 국가관 보인 여당 논평

지난해 9월 26일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이 대변인은 나경원 대표가 이 기사를 인용해 대표연설을 했다며 기사를 작성한 해당 기자를 논평의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논평에서 해당된 부분을 옮겨보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제의 발언을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제하의 논평 일부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이 물의를 빚자 나 원내대표가 외신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블룸버그 통신의 이유경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다.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 통신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 대변인은 다음날에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국민을 모독한 발언을 철회하고, 황교안 대표가 나서서 국민 앞에 사과해야’라는 논평을 재차 발표했다. 관련 논평 중 해당부분을 소개한다.

“소위 ‘검은머리 외신’을 인용한 나경원 원내대표에 이어 황교안 대표는 한 술 더 떴다. 황 대표는, 뉴욕 타임즈에서 더 심하게 문대통령을 “에이전트”라고 불렀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를 두둔하였으나, 그 기사 역시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26일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가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 됐다'는 기사 일부(사진: 블룸버그 홈페이지 캡쳐).

두 개의 논평을 모아서 정리하면 민주당이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다.

‘소위 검은머리 외신’기자인 ‘이유경 기자’가 ‘악명 높은 기사’를 썼는데 그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 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의 기사를 게재’ 했으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어서 당시에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뉴욕 타임스에서 문 대통령을 “에이전트”라고 쓴 기사 역시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하다’.

기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기자가 아니라 언론사에 하는 게 상식 중의 상식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법적 소송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게 옳다. 기자가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 대로 기사를 쓴다고 생각하는 건 언론사의 내부구조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그런 언론사가 있기는 있다. 1인 미디어나 요즘 난립하는 작은 인터넷 언론사, 그리고 소규모 언론사의 경우 제대로 된 편집기능이 없어 게이트 키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이 그 정도 언론사는 아닐 것이라고 확언한다.

내친김에 블룸버그 통신의 지난해 9월 기사도 살펴보자. 제목은 민주당이 문제 삼은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로 달렸다. 그런데 본문 기사는 문 대통령이 UN에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김 위원장의 의지와 진정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고 적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전략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양측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편집과정에서 기사보다 제목이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편집 책임자에게 따져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이유경 기자가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기자 혹은 약간 실력이 모자란 기자인 것처럼 표현한 것은 그야말로 인격모독이다. 나는 이유경 기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개인적 친분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말 경력이 일천한 기자인가 싶어 확인해봤더니 블룸버그로 옮기기 전에 AP 통신에도 근무했다. AP 통신은 1846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통신사다.

가장 악의적인 표현은 ‘검은 머리 외신’ 기자가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의 기사를 썼다는 부분이다. 외신 기자는 반드시 노랑 머리여야 하는가. 검은 머리가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썼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가. “성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짚신이잖아?”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검은 머리 한국인이 미국 국적 통신사 기자를 하는 것은 인종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그리고 국가원수 모욕, 매국 이런 용어가 진보적 정당에서 나왔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특히 매국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마치 빨갱이, 친일파 딱지를 붙여 멀쩡한 사람을 매장시킨 극단적 광신주의자들의 광기를 연상한 것은 나만의 과민반응인가.

민주주의 국가의 최대 특징은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그리고 언론의 자유에 있다. 언론의 비판 대상에 그 어떤 성역도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데 기꺼이 동의한다. 물론 언론의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해식 대변인은 “기자의 논평도 논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 역시 100% 동의한다. 그러나 자신의 논평이 기사 자체에 대한 논평이었는지 아니면 해당 기자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과 공격이었는지 곰곰이 문맥을 다시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오바마 "기자는 아첨꾼 아닌 회의주의자…권력자에 비판적 눈길 던져야"

“난 그동안 여러분과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내보냈던 모든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대통령과 언론인 사이 관계의 핵심이지요. 여러분은 아첨꾼이 되면 안 됩니다.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내게 까다로운 질문을 해 주어야 합니다. 칭찬이나 늘어놓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은 대신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눈길을 던지고, 우리를 여기로 보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그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들이 대부분 공정함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여러분들의 결론에 내가 항상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7년 1월 백악관에서 출입기자들과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밝힌 언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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