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와 ‘막말’ 사이....홍준표 대표, 큰 정치를 도모한다면 언어부터 순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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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와 ‘막말’ 사이....홍준표 대표, 큰 정치를 도모한다면 언어부터 순화하라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8.01.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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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SNS 시대 청소년들이 즐기는 이른바 급식체 은어에 ‘입벌구’라는 게 있다. ‘입만 벌리면 구라(거짓말)치는 사람’의 머릿글자 모음이다. 이 은어 만들기 방식을 원용하면 요즘 일부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입벌막’이라 할 만하다. ‘입만 벌리면 막말을 쏟아낸다’는 뜻이다. 의정 단상에서 대놓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주사파의 소굴”로 힐난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이라 야유하며 북한 팀 참가 반대 서한을 IOC에 보내는 등 훼방을 놓는 간부도 있다. 또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문 정부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비난하면서 “반역”이라는 위험 수준의 막말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선두적 ‘막말러’는 홍준표 대표 그 자신이라는 게 일반적인 세간의 평이다. 작년 5월 대선 유세 도중 ‘장인 영감탱이’ 발언으로 막말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던 홍 대표는 친박 세력을 바퀴벌레로 규정하는 등 그 후에도 끊임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얼마전 사법개혁안을 발표한 조국 민정수석에 대해 “조국인지 타국인지”,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원한 때문에...”라는 등 인신 모독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그는 또 자신에 저항하는 여성 최고위원을 “주막집 주모”로 폄하하는 등 성희롱 수준의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2011년 당시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에서는 경쟁 후보였던 나경원 대표에 대해 “거울이나 보고 분칠하는 최고위원은 안된다”는 등 여성비하 발언의 전력을 숱하게 가진 사람이 홍 대표다. 그에게 비판적인 정치인들은 “홍 대표에게 내침을 당한 류려해 전 최고는 물론, 김성태 원내대표와 장제원 대변인이 자기들 나름 대단한 ‘막말 내공’을 과시하고 있으나 홍 대표에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며 야유하기도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문병희 기자, 더 팩트 제공).

서민 출신임을 내세우는 홍준표 대표의 말투는 좋게 말해 알아듣기 쉽고 탈권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평론가들은 강렬한 비유법을 구사하는 그의 언설을 두고 ‘머리 속에 착 달라 붙는 스티커(sticker) 언어’로 평하기도 한다. 또 홍 대표의 열혈 지지자들은 “그의 연설은 사이다 발언”이라면서 “홍 대표의 말을 들으면 가슴 속이 확 뚫리는 듯하다”며 환호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언어 용법이 너무 조잡하고 속어를 자주 구성하는 바람에 자칫 천박하게 흘러가기 쉽다는 점이다. 또 마초적 본성을 수시로 드러내 여성비하적 발언이 많다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작년 대선 기간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홍 대표의 돼지발정제 논란을 내세우며 “홍 발정과는 말을 섞지 않겠다”며 그와의 일대일 토론을 거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막말의 역사는 깊다. 권력자에 대한 험담이 물리적 억압으로 이어지던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오면서, 정적이나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막말이 봇불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시절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던진 ‘공업용 미싱’ 발언이 정계에서 파문을 불어일으키더니, 참여정부 땐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놈현’, ‘육XX놈’, ‘개X놈“ 등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의 폭언도 만만치 않았다. ’쥐박이‘, ’땅박이‘, ’2MB’등의 욕설이 SNS에서 난무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민주당 의원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 발언도 대표적 막말 중 하나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대변인을 맡은 윤창중 씨는 말 그대로 ‘막말 종결자’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장례식에서 보인 시민들의 애도 물결을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 파티”로 비난했고, 201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 윤여준 씨 등을 “정치적 창녀”로 매도했다. 대선 후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막말이 출세의 수단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 후 막말은 주로 보수 세력의 주요 정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문 정부를 공격함으로써 상실감을 가진 보수층의 결집을 도모하려 하는 것이다. 일베 등 극우 보수 사이트의 회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너나 없이 막말을 시도때도 없이 내뱉고 있다. 막말을 자주 하는 인사들을 네티즌들은 ‘~하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어미 ‘er’을 붙여 ‘막말러’로 부르고 있다.

홍 대표는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달라붙은 ‘막말러’ 호칭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지난 2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막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는 “바퀴벌레가 무슨 막말인가. 팩트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막말한 사례를 대보라. 어떤 게 막말인지 얘기해주면 대답해주겠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아픈 말은 (막말이 아닌) 팩트다. 그게 철부지들은 막말로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바퀴벌레”로 칭하면서 이를 ‘팩트’라고 견강부회하는데 대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장 아픈말 = 팩트’라는 게 어떤 문맥을 가지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팩트(fact)는 ‘객관적 사실’이다. 은유나 상징이 없고 화자의 주관이나 가치 판단이 배제된, 가장 드라이한 개념 덩어리다. 기사를 쓸 때, 역사를 기록할 때, 가급적 형용사나 부사를 사용하지 말도록 주문하는 것은 사실(事實)의 객관성을 최대한 담보하기 위함이다.

팩트는 '객관적 사실’이다. 은유나 상징이 없고 화자의 주관이나 가치 판단이 배제된, 가장 드라이한 개념 덩어리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팩트가 힘을 갖는 것은 맞다. 때로는 촌철살인의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정적(政敵)을 ‘바퀴벌레’로 비유하고 여성 정치인을 ‘주모’나 ‘분칠하는 여자’로 비아냥거린 것을 팩트라 할 수는 없다. 그냥 비루하고 천박한 욕설일 뿐이다. 게다가 홍 대표는 자신의 어법을 막말로 보는 사람을 철부지로 규정했다. 이 철부지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많은 국민들이 포함될 수도 있다. 이 말 자체가 엄청난 막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심이 마구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홍 대표는 자신은 팩트를 말할 뿐이라고 했지만, 이날 그의 연설문과 기자회견 가운데 팩트가 틀린 것들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프롬프터를 보고 기자 질의에 응답을 했지만 나는 아니다”라면서 자신의 언어 순발력을 자랑하듯 말했지만, 이것 역시 사실과 달랐다. 문 대통령이 프롬프터를 통해 본 것은 참모들이 써 준 응답이 아니라 질문 요지였던 것이다. 또 백악관식 무제한 자유 질의응답을 약속해놓고 거북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런 질문에는 응답않겠다”고 한 것 역시 비겁한 약속 위반일 뿐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일본의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澁谷昌二) 교수는 “타인을 깍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치 않는 사람은 칭찬에 목마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그렇지 않아 상대를 뒷담화하고 내리 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홍 대표의 이번 기자회견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자극을 받아 기획된 것으로 분석한다. 문 대통령과의 라이벌 의식에서 발로됐다는 것이다. 홍 대표가 기조연설에서 좌파 국가주의와 복지 포퓰리즘을 10여 차례나 반복해가며 문 대통령을 비난한 데서도 그의 경쟁심리를 엿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번 기자회견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형식이나 내용의 수준이 문 대통령의 그것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았다. 또 홍 대표의 독불장군 기질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회견에 참여한 많은 기자들로부터 불평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마침 북한 현송월의 방남이 겹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가 구사한 언어들이 막말 수준으로 저열해 팩트 저격 대상자에게 통렬한 아픔을 주기는커녕 불쾌감만 불러일으켰다는 평가가 많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자는 입 ‘구(口)’자 3개로 이뤄져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 쪽이 아닌 안 쪽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상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돌려 열고 나올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다. 홍준표 대표가 세상의 민심을 얻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막말을 함부로 쏘아댈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부터 갖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론 그동안 다져온 홍 대표의 정체성으로 볼 때 이런 충고가 귀에 닿을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명심보감 언어편에 이런 경구가 있다. "이인지언(利人之言) 난여면서(煖如綿絮)/상인지언(傷人之言) 이여형극(利如荊棘)/ 일언이인(一言利人) 중치천금(重値千金)/ 일어상인(一語傷人) 통여도할(痛如刀割)." 즉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말 한마디 무게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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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3-16 11:26:28
막말은 민주당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