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낸 기자 들어오지마”... 언론자유 위협하는 법무부 훈령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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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낸 기자 들어오지마”... 언론자유 위협하는 법무부 훈령 유감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1.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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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헌법 제1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트럼프 정권이 출범하고부터 지속적인 언론자유 지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기자들을 ‘인민의 적’으로 칭하는 것은 더는 놀랄 일이 아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만 봐도 불리한 뉴스는 일단 가짜뉴스로 매도하고 보는 정치권의 행태를 국민은 지켜봐 왔다. 이는 가짜뉴스의 과도한 생산만큼 정당한 비판마저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는 행위 역시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럴 때일수록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언론의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는 이런 필요에 역행하는 판단을 내려 언론계 안팎에서 날 선 비판을 받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30일 공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는 사건 관계인이나 검사 또는 수사 업무 종사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는 오보를 한 기자는 검찰청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앞으로는 형사사건에 대한 구두 브리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오직 검찰청이 승인한 공보 자료에 한해서만 사건 내용 공개와 질의응답이 가능하고, 검사나 검찰 수사관은 기자와 개별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즉, 사건 브리핑을 대폭 축소함과 동시에 기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할 권리를 빼앗고, 오보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앞으로는 ‘우리가 불러주는 것만 받아 적으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문제가 된다고 보는 지점은 법무부가 오보 여부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다는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해당 규정을 당장 12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언론의 오보 여부는 곧바로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일례로 법무부는 지난 8월 19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시점에 “후보자의 배우자가 조 씨의 소개로 '블루코어밸류업1호'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나 그 외에 조 씨가 투자 대상 선정을 포함해 펀드 운용 일체에 관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기자단에 알렸다. 하지만 지금껏 진행된 수사 상황을 보면,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는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총괄대표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현재는 주가조작,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 역시 ‘주식이 얼마나 오를지’‘언제 주식을 되파는 것이 좋을지’ 등을 조 씨와 상의한 녹취파일을 검찰이 입수하는 등 사모펀드 투자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즉,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관계만 놓고 보자면, 지난 8월 법무부가 기자단에게 공보한 내용은 거짓인 셈이다. 이 같은 일이 앞으로는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앞으로는 추후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질지라도 법무부가 오보라고 단정하면 취재진은 사실을 보도해놓고도 검찰청 출입제한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적 인물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취재 자유를 단지 '법무부 훈령'으로 이렇게 급하게 제한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취지에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한규 변호사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가 발표한 규정에 우려를 표하며,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규정안이 시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자협회, 변호사협회, 학계 등 관련 기관과 충분한 논의를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오보 대응 관련 내용은 법무부가 지난 9월 의견 수렴 과정에서 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에 규정안을 보냈을 때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부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오보 대응 조항을 추가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수사 중인 사건 관계인 등의 명예를 훼손하는 오보를 낸 기자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된 규정안이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추진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지금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깜깜이 수사 부추긴다’,‘정권이 보도 방향을 입맛대로 틀어쥐려 한다’는 식의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법무부의 오보 대응 규정이 무리수라고 느껴진다. 앞서 강조했듯 언론의 오보 여부는 곧바로 단정하기 어렵다. 법무부는 현재 규정안대로라면 오보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오보의 의도성 여부 등 오보를 판단할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오보를 냈을 때’라는 모호한 조항이 포함된 규정 안을 시행하겠다는 것은 하다못해 심리적으로라도 기자들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수사 과정이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소식이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선 이번 규정안은 반드시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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