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 부는 여성 중심 작품 만개... 영화진흥위원회 ‘성평등 지수’ 도입에 “성평등 위한 정책” vs “역차별” 의견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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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 부는 여성 중심 작품 만개... 영화진흥위원회 ‘성평등 지수’ 도입에 “성평등 위한 정책” vs “역차별” 의견 엇갈려
  • 취재기자 김수빈
  • 승인 2021.01.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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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출연 '미나리', 미국 연기상 20관왕 달성... 오스카상 유력
극장가, 여성 배우들의 활약 돋보여... 여성의 시선을 담은 작품 봇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사업 심사에 ‘성평등 지수’ 도입
영화 ‘미나리’의 조연을 맡은 배우 윤여정이 해외에서 연기상을 휩쓸며 오스카상을 받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사진: 판씨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의 조연을 맡은 배우 윤여정이 해외에서 연기상을 휩쓸며 오스카상을 받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사진: 판씨네마 제공).

오는 3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미나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배우 윤여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미국 아칸소 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 가정의 고군분투를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중 배우 윤여정은 할머니 순자 역으로, 딸과 사위를 돕기 위해 미국으로 간 인물이며, 영화에서 가장 도전적인 장면을 이끄는 캐릭터다.

27일 영화 ‘미나리’의 배급사인 ‘판씨네마’는 전미평가위원회에서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미평가위원상은 전미비평가협회(NSFC)상과 더불어 북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상으로 꼽힌다. 그만큼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가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배우상 후보로 지명될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독 배우 윤여정에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그가 연기한 할머니 순자 역이 영화 ‘미나리’의 중요한 메시지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속에서 여성 배우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한 이유다.

여성 주연 배우들로 주목받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주인공들의 케미와 공감 가는 스토리로 흥행을 이뤄냈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여성 주연 배우들로 주목받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주인공들의 케미와 공감 가는 스토리로 흥행을 이뤄냈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는 침체를 맞았지만, 영화계 여성 배우들의 활약은 돋보인다. 한국 영화계는 남성 위주, 즉 남성성을 짙게 띄고 있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 서열, 거친 격투, 군사문화, 조폭문화 등. 이를 과시하는 쪽이든 성찰하는 쪽이든, 한국 영화계에선 남성 중심의 폭력 서사를 반복적으로 활용해왔다. 이와 반대로,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거나 보호받는 대상 혹은 성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영화계를 살펴보면,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이 많이 보인다. 이는 요즘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을 비롯해 성폭력, 성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그동안의 작품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여성 중심의 작품들을 보면, 남자가 하던 일을 반대로 여자가 한다는 단순한 변화가 담긴 것이 아니다. 아예 여성으로서 새로운 시선과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회사의 비리에 맞선 말단 사원들의 우정과 나아가는 연대 속 뿌듯한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배우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주연을 맡아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역시 개봉 후에도 14일 연속 박스오피스(흥행 수입) 1위를, VOD 서비스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신화를 이뤄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감상한 관객들은 “세 주연배우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며 “서울에서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여성들이 모여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호평했다. 또한 “앞으로도 여성 배우들이 주연 혹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진흥회가 지원 사업 심사에 도입한 성평등 지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는 지난 21일 총 624명의 동의를 얻고 마감됐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영화진흥회가 지원 사업 심사에 도입한 성평등 지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는 지난 21일 총 624명의 동의를 얻고 마감됐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원 사업 심사에 도입한 성평등 지수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영진위의 2021년 사업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원 사업 심사에 성평등 지수를 도입해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시나리오 공모전, 한국 영화 기획개발 지원, 시나리오 영화화 연구지원,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서 여성이 감독이나 프로듀서, 작가로 참여하거나 여성이 주연을 맡은 여성 서사에는 1~3점, 최대 5점(100점 만점)의 가산점이 주어지는 것이다.

영진위는 한국 영화 산업의 핵심 창작 인력에서 과소 대표된 여성 주도 서사의 비율을 늘려 성별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다양성을 확보하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입해 참신성과 창조성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성 평등을 위한 조치이지만, 창작 다양성을 해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영진위의 발표 이틀 뒤 올라온 국민청원에서 청원인은 “특정 성별이 주인공인 서사를 인위적으로 유도한다면,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인종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품은 더더욱 만들기 어려울 것”이며 “성별의 이유로 점수에 차등을 두는 것은 기회의 공정성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는 “성평등 지수 정책은 여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여성이 쓴 작품이 남성이 쓴 작품보다 불리한 평가를 받을 거라는 왜곡된 성인식이 내재돼 있다”며 “예술작품은 그 어떤 차등 없이 작품의 완성도와 창작자의 실력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 없었던 건 사회 전반적인 남성 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라면서 “영화계에서 여성 창작자가 힘을 내야 한다. 영진위의 성평등 지수 정책으로 조금이나마 문화계 성평등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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