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에게 위로를’... 세대 간의 소통창구 열어준 ‘할매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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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에게 위로를’... 세대 간의 소통창구 열어준 ‘할매니얼’
  • 취재기자 김태희
  • 승인 2021.09.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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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악세사리,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유행 중인 할매니얼
젊은이들 윗세대 문화 직접 따라 해보고 즐기며 공감대 형성
그동안 ‘꼰대’ ‘틀딱’ vs. ‘요즘 것들’ ‘젊은 놈이’ 등 혐오표현도
할매니얼 열풍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7080세대 간 격차 감소
할머니가 코바늘로 뜨개질을 하여 할머니 세대의 취향이 담긴 소품을 만들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할머니가 코바늘로 뜨개질을 하여 할머니 세대의 취향이 담긴 소품을 만들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최근 MZ세대(1980년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에 ‘할매니얼’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할매니얼은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할머니 세대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의미한다. 할매니얼은 어느새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할매니얼 열풍은 의류, 악세사리, 음식, 유튜브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에 한 벌 쯤 있을 법한 꽃무늬 의상이나 발목까지 오는 치마, 특이한 패턴의 조끼 등을 입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디저트도 마찬가지다. 초코 빙수 대신 인절미 빙수, 딸기 라떼 대신 흑임자 라떼가 큰 인기를 끌며 식품업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이는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 대한 열망, 단순 취향의 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젊은이들이 할매니얼을 사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윗세대 문화의 정겨운 감성을 통해 ‘위로’ 받았기 때문이다.

구독자 약 132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다(사진: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 캡처).
구독자 약 132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다(사진: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 캡처).

132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할매니얼 열풍의 대표주자다. 박막례 할머니는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등의 메시지를 던지며 바쁜 일상 속에 치여 사는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할머니로 다가갔다. 그 덕분인지 박막례 할머니는 연령대가 높은 유튜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 영상을 자주 시청하는 구독자 송 모(22, 부산시 사하구) 씨는 “힘들고 괴로운 날에 박막례 할머니 영상을 보고 털어낸다. 할머니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애정이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는 모델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SNS에 업로드하며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사진: 김칠두 씨의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는 모델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SNS에 업로드하며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사진: 김칠두 씨의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50세 이상의 중장년이 모델로 활약하는 경우도 있다.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는 올해 67세지만,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모델 작업을 자주 하고 있다. 그는 멋진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며 젊은이들에게도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힙’한 모습을 자랑하는 김칠두 씨에게 “나도 나이가 들면 당신처럼 늙고 싶다”, “너무 멋진 할아버지다” 등의 응원 댓글을 남겼다. 그의 시니어 모델 활동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됐는데, 20대 취업준비생 최정은(22, 부산시 사하구) 씨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내게 희망을 줬다. 늦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끝없는 도전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몸짱 할머니’로 이름을 알린 시니어 보디빌더 임종소(78) 씨도 할매니얼 열풍을 이끌고 있다. 임종소 씨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의 건강한 몸으로 대중들을 놀라게 했으며, 방송 출연과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 씨의 활동을 접한 대학생 구 모(22) 씨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래니룩’으로 불리는 다양한 할매니얼 의상들이 판매되고 있다(사진: 공간엔늘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서 ‘그래니룩’으로 불리는 다양한 할매니얼 의상들이 판매되고 있다(사진: 공간엔늘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할매니얼 현상은 의류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이들이 할머니 같은 의상을 직접 찾아 입게 된 것이다. 자수로 하나하나 짠 느낌의 할매니얼 의상은 MZ세대에게 할머니의 향수를 느끼게 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뜨개공방 ‘공간엔늘’의 대표 김민아 씨는 핸드메이드 뷔스티에, 베스트 등 다양한 할매니얼 의상을 판매하고 있다. 완성품뿐만 아니라 의상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DIY 패키지도 있어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요즘 유명 브랜드들도 시즌마다 크로셰(코바늘로 뜨개판을 만드는 공예) 라인을 만들 만큼 관심이 늘고 있다고. 김 씨는 “원래 레트로 감성은 주기적으로 유행이 돌아오지만, 손으로 직접 만든 의상이라는 점에서 할매니얼 의상이 사람들에게 가치 있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매니얼 열풍은 밀레니얼 세대와 7080세대 간의 소통 창구를 여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동안 젊은이들에게 윗세대 문화는 고리타분하고 유행과 맞지 않은 옛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반대로 노인들은 MZ세대 문화는 버릇없으며,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세대 간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자 MZ세대는 노인들을 ‘꼰대’, ‘틀딱’ 등의 혐오 표현으로 불렀으며,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요즘 것들’, ‘젊은 놈이’ 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할매니얼 열풍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윗세대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즐기게 됐다. 할매니얼은 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이제는 노인과 MZ세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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