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빅뉴스의 일요 터치]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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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의 일요 터치]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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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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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사진; 더 팩트 제공).
대법원 전경(사진; 더 팩트 제공).

1.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1월 21일 중요한 판결을 하나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에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청자 제작 전문 TV채널 시민방송이 방영한 ‘백년전쟁’에 대해 제재(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와 고지) 결정을 내린 게 부적법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친일문제를 연구해 온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것으로, 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다큐멘터리이다. 200만 명 이상이 봤다고 한다.

대법관 12명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부적법했다(김재형·박정화·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이하 다수의견)’와 ‘적법했다(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이하 반대의견)’가 6 대 6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이 정도면 ‘다수 의견’이 아니라 ‘의견 분열’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는데, 아무튼.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재형 대법관이 다수의견에 합류한 게 눈에 띈다. 그의 보충의견을 보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 행위에 대한 제재는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자율심의 체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방송에 행정기관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기준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추종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보수 쪽에서 추천한 김 대법관이 다수의견에 선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혼재해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하고, 일단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분만 추려본다. (독자들께서는 한번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시지요.)

“역사적 사실들은 이를 선택해 기록으로 남긴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마련이므로 어떠한 내용이 서적이나 언론보도 등 자료에 기재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숭배해 곧바로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반대 의견)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다수 의견)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정책적 과오에 대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적 시각이라고 볼 수 없다.”(반대 의견)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다수 의견)

“특정한 관점을 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확정할 수 있는 역할을 특정 방송의 제작자 나아가 우리 세대만이 독점할 수 없다. 이는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므로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송하려면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성찰해야 한다.”(반대 의견)

“‘백년전쟁’ 같은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은 방송내용의 진실성과 신뢰도에 대한 기대의 정도나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은 (...)전문성이나 대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다수 의견)

“사법부가 역사를 해석할 수는 없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하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견해는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반대 의견)

2.

정리하자면,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폭넓게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유튜브 제재 논의, 연세대 류석춘 교수와 부산대 이철순 김행범 교수 등의 위안부 관련 발언,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외가 쓴 <반일 종족주의> 같은 것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행정기관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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